수필
출필곡 반필면 出必告 反必面
윤승원
‘아버지, 저 오늘 베트남 여행 떠나요. 3박 4일입니다. 잘 다녀올게요.’ 공무원 아들이 보내온 ‘출필곡(出必告)’ 문자 메시지이다.
‘아버지, 저 서울 공항에 지금 막 도착했어요. 무사히 잘 다녀왔어요.’ 역시 문자 메시지로 보내온 ‘반필면(反必面)’이다.
▲ 아들이 보내온 ‘출발 인사’와 ‘도착 인사’(카카오톡)
‘출필곡(出必告)하다’라는 말은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에게 가는 곳을 아뢴다’는 뜻이다. ‘반필면(反必面)’은 ‘밖에 나갔다 돌아왔을 때 반드시 부모님을 뵙고 귀가했음을 알리는 말’이다.
나는 과거 부모님과 함께 시골 생활하면서 먼 길 떠날 때는 아버지에게 꼭 ‘큰절’을 했다. 다녀와서도 큰절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쳤다. 유년시절부터 길든 것이라 어른에 대한 당연한 인사법이라 여겼다. 귀찮거나 번거롭게 여기지 않았다.
어느 때는 아버지가 밭에서 일하고 계셨다. 그러면 일하시는 곳으로 달려가 밭두렁에서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려 꼭 큰절하면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연로하신 아버지께서는 잠시 호미질을 멈추고 허리를 펴시며 “그래, 매사 조심해라.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무사히 잘 다녀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학창 시절 객지에서 하숙했으므로 주말에 집에 오면 어머니께서는 먼저 “얘야, 아버지께 인사드렸냐?”라고 물으셨다.
“아니요, 방금 도착하여 인사드리지 못했어요.”라고 하면 어머니께서는 깜짝 놀라시면서 “저 건너 다랑논에서 피사리하고 계신다. 어서 뵙고 와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에게 달려가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아뢰면, 아버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래 잘 다녀왔니? 불편한 것은 없었고? 먼 길 오느라 애썼다. 편히 쉬어라.”라고 말씀하셨다.
▲ 농부 아버지 - 살포는 근엄한 아버지의 상징이었다. 아버지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를 중시하셨다. 가정 비망록 첫 장에도 논어 한 구절을 적어 놓으셨다. (삽화 = 손자가 그린 할아버지)
근엄하기만 하셨던 아버지 앞에서 자식은 언제나 경직된 자세였다. 평소 말씀이 적으신 아버지께서 나지막하게 던지는 한 마디 ‘편히 쉬어라’가 자식으로서는 어찌나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네, 아버지. 제가 좀 도울 일은 없을까요?”라고 짐짓 말씀드렸다.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지는 따뜻한 말씀 한마디에 ‘도울 일 없느냐’라고 넌지시 말씀드린 것은 재하자(在下者)로서 ‘감사의 예’이자 ‘숨길 수 없는 효심’이었다.
‘출필곡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이란 이렇듯 인정과 사랑과 공경과 예(禮)와 도리(道理)가 함축돼 있다. 유교 경전 『예기(禮記)』 「곡례(曲禮)」 편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출필곡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을 글로 쓸 때는 편집진에서 자칫 오자(誤字)를 내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된다.
‘출필곡(告)’과 관련하여 잊지 못할 몇 가지 일화가 떠오른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한학에 조예가 깊은 옛 직장 상사가 전화했다.
“윤 선생 수필집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쪽에 나오는 ‘출필고 반필면’은 ‘출필곡 반필면’이라 써야 맞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자가 났군요.”
오랜만에 반갑게 전화하신 옛 직장 상사가 내 책에서 오류를 발견했다니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교정’이라면 전적으로 신뢰해도 좋은 출판사의 책이다.
교정 전문가가 수차례 살펴본 원고를 저자가 최종 정밀하게 검토한 책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자와 출판사의 ‘오자 실수’를 먼저 시인하지 않고 궁색한 변명부터 했다.
“‘告’자는 흔히 알릴 ‘고’ 자로 읽히니, 독자들이 그대로 이해하고 너그럽게 넘어가지 않을까요?”
하지만 한학에 밝은 어르신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출필곡하다’에서 ‘告’자는 ‘뵙고 청할 곡’으로 읽어야 맞을 겁니다.”
역시 옳은 지적이었다. ‘告’ 자는 ‘알리다’, ‘묻다’, ‘가르치다’, ‘깨우쳐 주다’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지만, ‘뵙고 청할 곡’ 또는 ‘국문할 국’으로도 쓰인다. 그러니, ‘출필고 반필면’은 ‘출필곡 반필면’이 바른 표기이다.
그 후로 이런 문구를 꼭 써야 할 필요가 있으면 빨간색 또는 파란색으로 ‘곡[告]’자를 도드라지게 표기해 보낸 적도 있다. 교정 과정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 달라는 필자의 노파심이 담긴 주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막역하게 지내는 초등학교 동창생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 친구 역시 나의 어느 글에서 ‘출필곡 반필면’이 나오는 대목을 보았다고 한다.
“친구의 글 반갑게 잘 읽었네. 그런데 오자를 발견했어. ‘출필곡 반필면’은 ‘출필고 반필면’으로 고쳐야겠네.”
격의 없이 다정하게 지내는 친구의 친절한 지적이었다. 필자로서 난처한 일이었다. 이럴 때는 구구한 설명보다 나은 방법이 있다.
스마트폰에 깔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해당 낱말을 캡처해서 보여주었다. 친구가 놀라워했다. “몰랐던 것을 한 수 가르쳐 주어 고맙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평소 자신을 늘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는 겸허한 인품의 친구다운 태도였다. 에피소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어느 기관의 책자에서도 ‘출필고 반필면’으로 인쇄된 것을 발견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정기 간행물이었다. 필자는 바르게 잘 썼는데 교정 담당자가 ‘곡’ 자가 오자인 줄 알고 ‘고’ 자로 고쳤다고 한다.
마침 편집자와 소통할 기회가 있어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였더니, “큰 실수를 했습니다”라고 미안해했다. 그러면서 편집자는 “좋은 글에 흠이 생겨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죄송하다’라는 답을 듣고 보니 필자가 오히려 미안해서 이렇게 답했다.
“앞으로는 혼란을 주는 이 같은 한자는 되도록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독자가 오자를 낸 필자를 나무라지, 편집자를 탓하지 않을 겁니다.”
기관의 책자 발행인도 ‘책임을 느낀다’면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별도 정오표(正誤表)라도 내는 방안도 검토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성의를 보이니 필자로서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옛 부모님 시대에 익숙하게 써왔던 그런 글자를 이 시대에 굳이 써야 했는지 반성했다. 하지만 아들아, 아비가 걱정하지 않게 어디 갈 때는 ‘출필곡(出必告)’ 잊지 마라. 다녀와선 ‘반필면(反必面)’도 꼭 지키고. ■ 《월간문학》 2023. 5월호
♧ ♧ ♧
첫댓글 ♧ 청촌수필 카페에서
◆ 원경(수필문학 독자) 23.4.27. 12:06
옛 어른들의 가정교육이 새삼 그리운 시대입니다.
기초 예절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부모님을 통해 배우는 것이 바른 생활 교과서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달라질 수 없는 것,
옛 어르신들의 반듯한 자녀 교육을 본 받는 일입니다.
▲ 답글 / 윤승원(필자) 23.4.27. 13:40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 주셔서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좀더 쉬운 말로 바꾼다고 해도
인간의 기본 도리와 생활 예절 방식에는
변함없습니다.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에서
◆ 지교헌(수필가, 철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3.4.27. 12:21
좋은 글을 보여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마침 《월간문학》에서 읽기도 하였지만 다시 카페에 소개하여 주셔서 반갑습니다.
나는 뒤늦게 대학에서 윤리 분야를 강의하게 되어 전통 윤리를 연구하게 되고,
시내의 한학자들을 찾아가 대화도 나누고, 지도도 받고, 전통교육에서 교재로 사용하던
자료들을 읽으며 현대인들이 읽는 것과는 다르게 읽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저 그렇게도 읽는다는 수준에서 멈추고 깊이 천착하지는 않고 넘긴 셈입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상식이나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수준으로 만족하였기 때문인데
언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그것을 표준어로 인정해버리는 국가의 언어정책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출필곡”과 같이 단순히 외출하는 것을 보고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뵙고 청한다”는, 행선지와 목적을 아뢰고 허락을 받는다는 뜻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그 시비를 가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충곡이선도지”도 같은 차원에서 바르게 읽어야 할 것입니다. (지교헌)
▲ 답글 / 윤승원(필자)
그러잖아도 이런 글은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지교헌 박사님께 미리 보여 드리고
깊이 있는 고견을 듣고 싶었습니다.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올사모 카페’를 통하여 존경하는 박사님의 귀한 소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영광이고 값진 배움입니다.
‘출필곡’과 관련된 일화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글자 하나 해석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를 가면 간다>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고 <어딜 다녀왔으면 다녀왔다>라고
가족에게 자상하게 말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자식, 며느리, 손자에게 이런 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할아버지가 글로 쓰면 손자까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특히 전통 윤리를 전공하신 대학자님의 귀한 고견을 듣는다는 것은
이 시대 가정교육 자료로서 더없이 귀중하고 값진 일입니다.
소개해 주신 ‘충곡이선도지(忠告而善道之)’도 새롭게 공부합니다.
귀한 가르침이기에 가족 소통방에도 올려 공유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윤승원)
♧ 대전수필문학회 단체카톡방에서
◆ 박영진(교육자, 수필가) 2023.4.27. 14:00
고맙습니다. 윤 회장님 잘 읽었습니다.
저도 출필고 반필면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 답글 / 윤승원 14:22
글자 하나 해석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의도는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면 간다>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고
<어딜 다녀왔으면 다녀왔다>라고 가족에게 자상하게
말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평소 그런 점을 아쉽게 여길 때가 있지요.
겸손하신 박 교장 선생님 댓글인품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3.4.28. 09:29
장천 윤 선생, 여러 번 읽어도 항상 새로운 것 같습니다.
저도 선생의 글을 읽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좋은 가정 교육이 후손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高林 지교헌 교수님의 부연 설명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감사합니다.
졸고 수필 한 편 지면에 실리면 일반 독자는 물론 평소 존경하는 대학자님의
귀한 소감과 고견을 들을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글을 쓴 필자로서 큰 힘을 얻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분량이 다소 긴 글은 읽지 않는 풍조인데도, 원고지 15매 분량의
수필은 그래도 관심 있게 읽어 주는 것 같아 고마운 일입니다.
평소 책만 펼치면 “졸리다”라고 하는 가정주부 아내도 이번 글은 다 읽었는지,
제게 조용히 다가와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
“고할 告 자를 곡으로 읽는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월간문학’에 글이 실리면 원고료가 얼마나 되나요?”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 페이스북에서
◆ 윤홍수(한학자, 성균관부관장, 대전·충남 유림회장) 2023.4.29. 07:05
족대부님의 훌륭한 문장 잘 감상하고 있습니다.
▲ 답글 / 윤승원
충남 청양 저의 고향에 계신 존경하는 원로 한학자이시며
자랑스러운 성균관 부관장이십니다.
저의 졸고를 읽어 주신 것만도 큰 영광인데
귀한 격려의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어젯밤 꿈이 좋더니, 오늘 아침 큰 복을 받았습니다.
늘 건강하시어 훌륭한 가르침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