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속에서도 익어가는 감 - 늦가을의 최후의 보루!
가을 유감(有感)
가을하면 천고마비의 계절, 코스모스, 국화, 오곡백과 무르익는 추수의 계절, 조상들 선영에 성묘가는 추석 등 여러가지를 연상하게 된다. 귀뚜라미가 귀뚤 귀뚤 밤의 정적을 깨고 울어대는 가을밤! 휘영청 하늘에 걸려 있는 보름달을 쳐다보며 고향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며 어린시절을 보낸 기억이 새록 새록 떠 오를 때면 이곳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는 더욱 감회가 깊다. 그런데 나는 가을하면 유독 감 하고의 인연을 잊을수 없다.
노동절 휴가를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지만 나는 집에서 조용히 쉬면서 밀린 일이나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바쁜 나날들 속에서 휴식을 취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삶을 관조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계획하며, 오늘을 지혜롭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일인가!
딸 시어머니가 북가주에서 살고 있는데 큰 감나무가 집에 있어서 해마다 내가 감을 좋아하는 줄 알고 그 무거운 감을 한상자씩 소포로 보내 주곤 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싼 송료를 지불하면서도 우송해 주어서 매년 추석 땐 감으로 잔치를 벌릴 정도였다. 단감이 크고 어찌나 맛있는지 시장에서 사먹는 감하고는 비교가 안되었다.
나는 과일 중에도 감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감 중에도 홍시를 너무 좋아 한다. 하도 좋아하니까 주위에서는 이가 없는 할머니들이나 먹는 홍시를 그렇게 좋아하면 이가 빨리 빠진다며 놀려대던 어린시절이 떠 오른다.
시골에 가면 감나무가 앞뜰 뒤뜰에 여러그루 있어서 가을만 되면 온통 온 집이 감 과수원으로 변하고 만다. 초가 지붕 위에는 익어가는 박이 넝쿨과 함께 온 지붕을 뒤덮고 울타리 주위에는 수박만한 호박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으며 마당에는 빨간 고추가 널려 있어 주홍색으로 익어가는 감과 함께 수채화를 그려 놓은듯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감나무는 잎사귀가 먼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에 빨갛게 익은 감들이 주렁 주렁 달려 있을때 파란 하늘을 쳐다보면 그 하늘을 배경으로 빨갛게 익은 감의 색의 조화가 너무나 아름답다.
감을 수확할 때 감나무 한 그루는 내것이라며 손도 못데게 하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간청한다. 서리가 내릴 때까지 나무에서 완전히 익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마지막으로 그 감을 따게 되면 동네에서는 이제 초겨울이 오나보다 하고 생각할 정도로 나의 감나무 사랑은 유별났다.
앙상한 가지에 감들만 데롱 데롱 달려 있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감 따기가 아깝지만 긴 막대기에 못을 박고 감 꼬다리를 휘감아 한개씩 따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다. 그 때 시골 감은 단감이 아니고 떫은 감이었다. 삭혀서 먹어야 단감으로 변한다. 감을 모두 따서 큰 항아리에 채워 넣고 물을 펄 펄 끓여 그 항아리에 부은 다음 뚜껑을 덮고 이불을 씌워 감이 단감으로 변할때 까지 삭힌다.
오랫동안 따지 않고 감을 나무에 그냥 두면 홍시가 되지만 딴 감을 홍시로 만들어 먹고 싶으면 쌀이 가득한 쌀독에다 한개씩 박아 넣어 둔다. 아니면 쌀겨 속에다 넣어 두면 더 빨리 홍시가 된다. 이렇듯 감하고 씨름 하다보면 어느덧 가을도 다 지나가고 초겨울이 다가 온다.
나는 내 감나무에서 감을 다 따고 몇 개를 남겨 둔다. 사람들은 까치밥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몇 개라도 남겨 두어야 감나무에게 덜 미안하고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누어 줄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에게도 큰 위안이었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겨울이 아니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 났다. 폐렴으로 죽어가는 존시가 한개 남은 마지막 담쟁이 잎새가 떨어지는 날 자기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마지막 잎새는 떨어지지 않고 벽에 그대로 남아 있자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아랫층에 사는 베어맨 무명 화가 노인이 밤새 비바람을 맞으며 그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그 같은 벽에다 똑 같은 마지막 담쟁이 잎새를 그려놓고 본인은 막상 비바람을 맞은 탓에 폐렴으로 죽어 간다.
나도 누군가가 저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빨갛게 익은 감을 쳐다보는 순간 절망을 넘어 생의 애착과 의욕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삭막하고 스산한 초겨울의 날씨에도 끝까지 버티며 매달려 있는 마지막 한개의 감을 바라보는 감동은 필설로 형언키 어렵다.
홀로 고운 색깔로 마지막 가는 늦가을의 여운을 길게 물들이는 저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 가을을 사랑하는 어느 여인의 여심처럼 나의 심장을 붉게 물들인다. 다음해 봄이 올 때까지 추운 겨울을 이길수 있는 원동력으로 나에게 활력소가 되는 저 아름다운 감!
감을 이렇게 좋아하는 나는 미국에 와서 뒷뜰에 두 그루의 감나무를 심었는데도 다 죽고 말았다. 귤나무와 레몬나무와 아보카도 나무만 잘 자라고 있다. 다시 심어야 하는데 아직 엄두도 못내고 있다. 곧 다시 감나무를 심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오면 단감을 먹게될 기대 속에서 어릴적 감나무 추억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온다.
이곡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됐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이 노래를 알 것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지지율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고 이곡이 선정됐다. 선정 과정중에서
단 한명의 한국인도 없었고 이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이곡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나에게 깨우쳐줬다'
'듣는 도중 몇번씩 흥이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감동적이다'
이들 모두 처음 듣는 곡들 이었으며 한국 유명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 전자바이올린으로 연주했다.
잠시 눈을 감고 감상해 보세요.
첫댓글 일사후퇴때 충북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로 피난을 갔을때 추운 겨울철 주인집에서 감 몇개를 먹으라고 주었읍니다. 그런데 그감들은 연시를 겨울철에 얼린것으로 아이스크림 보다 달아서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지금도 잊지를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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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인은 인심이 아주 후하셨군요. 그런데 동문님은 피난간 장소의 주소를 어찌 잊지않고 다 외우고 계십니까?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경주로 피난을 갔는데 주소가 전혀 기억이 안나요. 겨울철에 얼은 감홍시! 그 맛 과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아이스 크림보다 더 맛있게 잡수셨다니 어찌 그 추억을 잊을수 있겠어요.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옛날 어른 들은 감을 수확할 때 한 나무에 서너개 씩 까치가 먹으라고 남겨 두었답니다. 시골 후한 인심을 동물에게도 베풀었던 것이죠.
옛날 우리 조상들은 콩을 심을때 콩세알을 심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땅속 벌레 몫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 나머지 하나는 사람 몫 -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할 동반자로 생각한 조상들의 공동체 의식이 오늘날 우리들 생각과는 자못 다릅니다.
어렸을 적 불광동에 감따러 갔던 아련한 추억이 납니다. 땡감을 잔뜩 따다 소쿠리에 두면 신기한 홍시가 되고, 가을내내 먹다먹다 강아지하고도 먹고 그래도 질리지 않던 맛있는 감~ 이쁘게 깍아 잘 포장한 백화점의 곶감들은 절대 줄 수 없는 그 풍족함이 그립네요.
사진이 기가 막힙니다 너무 아름다워 다음에 감을 먹을수 없을것 같군요 작품입니다
사진만 멋있는 것이 아니라 저의 글도 멋 있지않아요? ㅎ ㅎ ㅎ....
LA 에 살때 어느집을 사려고 갔더니 그 집 주인인 미국 할머니는 감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개 따서 내가 먹으며 한번 먹어 보라고 했더니 너무 맛있다고 이렇게 맛있는 과일을 왜 안먹었는지 모르겠다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물론 글도 아주 생동감있어서 진짜 감을 입 안에 넣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글에 관한 찬사가 그림에 숨었군요 쏘리 쏘리
이런 멋진 사진 ...할말을 잃었어요.
사진만 칭찬해 주시면 어떻해요? 저의 글도 훌륭하니까 사진이 더욱 돋보이고 멋 있는것이 아닐까요? ㅋ ㅋ ㅋ .....
에공~~~ 글 읽을 시간이 없었어요...
이제 성실히 읽으려구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