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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여리고*로 가다가
박혜원
1.
그가 돌아왔다. 아니 그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소문처럼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는 또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언제나 우리를 혼돈 속에 던져 넣고는 다시 떠나기에 급급했다. 은남이 태어났을 때도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얻은 딸의 웃음과 재롱이 자신의 발을 묶어놓을까 봐 무절제한 욕망을 가로막을까 봐 그는 서둘러 집을 떠나곤 했다. 아니 그는 아예 사람에 대한 애정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기실 없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연의 두터운 고리에 얽혀 매이기 마련이지만 그에게는 그런 게 전연 없었다.
나는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로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내 생활의 균형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 그의 존재가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기를 바란다. 나는 되도록이면 감정이 흔들리지 않게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창 밖을 내다본다.
나뭇가지의 잎이 거의 떨어져 내리고 시꺼먼 둥치만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잿빛 하늘이다. 희뿌연 안개가 온통 창 밖을 채우고있다. 눈이 침침하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손을 비빈다. 뜨거워진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지그시 덮어 누른다. 그 자세 그대로 한참을 앉아있다. 눈시울이 뜨듯해지면서 눈꺼풀이 젖어든다. 사위가 조용하다. 사무실은 텅 비어있다. 아직 히터를 켜지 않아 썰렁하다. 무릎이 시리고 발끝이 싸늘하게 식어온다. 여전히 사무실은 어두침침하고 창 밖에는 안개가 가득하다.
“왜 그렇게 결혼을 서두르는 거야? 그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사랑이 뭐가 그리 중요해? 죽네 사네 사랑해도, 막상 결혼해서 사는 거 보면 다 엉망인데…….”
은남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마음껏 웃고 아름다운 꿈으로 가득 해야 할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의 은남은 자신의 결혼을 두고 그렇게 이기죽거렸다.
“사랑이 중요한 게 아니라면, 그럼, 현실적인 문제는 해결돼야 하는 거잖아? 거기 가면 먹고 사는 건 확실하대? 결혼은 꿈이 아니고 현실이거든.”
“언니는 그래서, 지금 자기 현실이 좋아? 그래, 결혼은 꿈이 아니고 현실이랬지? 그렇기 때문에 하는 거야. 나를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드는, 너무나도 확실한 현실. 그게 바로 알렉세이거든. 지금 나한테 가장 확실한 현실은 알렉세이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창 밖을 내다본다. 하늘이 거의 땅에 맞닿을 정도로 내려앉아있다.
“왜 하필이면 키르키스스탄이야? 그 흔한 미국도 아니고…….”
“거긴, 그 인간이 도저히 올 수 없을 곳이니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은남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무간지옥 같은 이 곳. 미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 언니는 지긋지긋하지도 않아? 나는 그 인간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곳으로 멀리멀리 도망쳐, 온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살고 싶은 은남의 욕망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러나 그 바람 속에는 패배주의적 상처가 너무나도 깊었다. 젊음을 팔듯이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했던 은남의 현실이 남의 일이 아니어서 더 가슴이 아팠다. 또한 그런 은남의 상황을 번연히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비참했다. 울고 싶었다. 은남이 자포자기처럼 선택한 결혼이지만, 그러나 그 결정의 저변에, 자신의 소박한 행복을 가늠하며 자기가 만들어 나갈 사랑의 모양새를 그리는 마음이 일말이라도 깔려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은남은 간단한 과제물을 제출하듯 간결하게 혼인식을 치르고 알렉세이와 함께 키르키스스탄으로 떠났다. 그리고 이 땅 위 우리 곁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은남은 정말 그 곳으로 떠난 후 단 한 장의 엽서를 보내왔을 뿐, 그 후로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나는 은남이, 엽서에 있던 그림처럼, 하얗게 눈 덮인 천산산맥 만년설 아래 말을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드넓은 들판을 달리면서, 각박한 세상의 바람에 시달리고 나부낀 만큼 알렉세이와의 연분을 애틋하게 피워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사무실에는 어둠이 성큼 들어서 이제 더 이상 문서에 기재된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아라비아 숫자들 또한 적요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2.
“한주임, 이런 말,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사람한테, 빈 집이 하나 있거든…….”
인정 많은 정과장은 내 눈치까지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노친네가 갑자기 세상을 버렸거든. 아들은 강남에 살고……. 보일러도 괜찮고, 가구도 쓰던 그대로 있대. 조만간 재개발될 곳이긴 한데, 그게 언제가 될 진 아무도 모르니까, 당분간은 살 만한 거지.”
도심을 벗어난 들판에 비닐하우스가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예 살림을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닐하우스 사이에 끼어있지만 정과장이 앞서 간 집은 그래도 슬레이트 집이었다.
대문은 없고 현관 안이 어두침침하고 눅눅했다. 빗물이 창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고 창문에는 안개가 끼여있었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소파와 테이블이 너저분하게 늘렸고 거실에는 의자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먼지가 뽀얗다.
나는 정과장과 함께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방치된 마루에 신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혔다. 거실 유리창을 내다보았다. 도미노 게임이라도 하듯이 하얀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현실이 아니라 비현실의 세계로 들어선 것 같았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의자를 끌어당겨 바로 세웠다. 의자가 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한 쪽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그냥 그대로 기울어진 채 두었다.
“치우고 정리하면 살만 하겠지?”
정과장이 내 눈치를 보았다.
“네, 충분해요. 깨끗이 치우고 당장 들어올 게요. 정말 그래도 되는 거죠?”
나는 쓰던 것들을 미련 없이 버렸다. 아들 것만 몇 개 남겨두고 책도 옷도 다 버렸다. 가구와 가전제품은 이미 오래 전에 버렸다. 버린 게 아니라 버림을 받았다. 딱지가 붙어 내 것이 아닌 것이 되었다. 미련 같은 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닌 지 오래 되었다.
보따리를 든 어머니를 부축하고 아파트를 나설 때, 사람들은 창을 열고 우리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명치끝이 아릴 뿐이었다.
비닐하우스 숲 사이로 슬레이트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아파트를 나올 때처럼 명치끝이 찌르듯이 아파왔다.
“은실아, 문 밖에 누가 왔나 보다. 아까부터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
어머니가 자리에 누워 예의 그 맥없는 소리로 말한다.
현관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 둘이 버티고 서 있다. 한 사람은 회색 양복을 입고 문 앞에 바투 서서 문을 노려보고 있고, 스포츠형 머리를 한 사람은 잠바차림으로 건너편 비닐하우스 위에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다. 둘 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키가 훤칠하다.
“당신이 한은실이야? 김기철 딸 맞지? 뭐야? 이건 또 왜 이래? 에비하고 성이 다르잖아? 그래도 에빈 에비니까, 에비가 진 빚은 갚아야지, 안 그래?”
환청처럼 다그치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아파트를 가득 채우고 앉아 있던 빚쟁이들. 그들은 그의 이름을 들먹이며 나의 어깨를 밀어젖혔다. 나는 그의 이름으로 된 것에 눈꼽만큼의 미련도 없으니 모두 다 가져가라고 큰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아무 소리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몸을 돌려 도로 방으로 향한다. 현관에서 한 움큼의 바람이 불어와 옷깃 속을 파고든다. 가슴이 떨린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는 그 남자들에게 달려들고 싶다. 그래서 화난 그들이 내 머리채를 잡아끌어, 끌리면 끌리는 대로 거실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질질 끌려 다니고 싶다. 그리고 악다구니를 쓰며 비명을 지르고 고래고래 울어대서 비닐하우스 사람들이 뛰어나오고 구경꾼들이 몰려와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나를 바라보게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다니면서도 나는 입가에 조소를 띄움으로써,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도리어 얄밉고 미운 감정이 일어나도록 만들고 싶다. 카인의 낙인처럼 나는 철저하게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가 되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노인의 아들들이다. 집주인인 셈이다.
그들은 그들이 엄연한 집주인이고 우리는 세입자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몇 장의 계약서를 쓰고 도장을 찍게 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임대료를 책정하고 돌아간다.
희뿌연 시야 너머 창 밖에는 더욱 세차게 비가 내리고 간간히 창문에 튕기는 빗방울 소리가 밤공기를 울린다. 나는 갑자기 긴장감이 풀리면서 한꺼번에 몰려오는 피로감에 일찌감치 자리를 펴고 눕는다.
3.
아무도 없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다. 온 산에 흰 눈 뿐이었다. 끝없는 눈밭의 한가운데 나는 홀로 내던져졌다. 흰 눈 위로 햇빛이 강하게 내리쪼였다. 눈이 부셨다. 강하게 비치는 햇살 사이 저 멀리, 사람들이 나지막한 언덕 위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서 있었다. 주황빛 불꽃이 하늘거리고 불꽃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햇빛이 반사되어 화살처럼 눈에 꽂혔다. 눈이 따가웠다. 사람들의 모습이 아지랑이 위로 아득히 떠올랐다. 나는 그들에게 가고 싶었다. 그러나 발이 잘 나아가지를 않았다. 팔을 높이 휘저으며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내디뎠지만, 발은 자꾸만 눈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때였다. 어른거리는 햇빛 사이로 실루엣처럼 늑대 한 마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혹시 헛것인가 해서 눈을 비볐다. 그것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온몸이 얼어붙어 그 자리에 멈추었다. 늑대의 털은 잿빛에다 연한 갈색이 섞였고 햇빛을 받아 그 끝이 희끗희끗 반짝였다. 눈을 번뜩이면서 이빨을 드러내고 낮은 소리로 으르릉거렸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온통 하얀 눈밭뿐이었다. 저 쪽 언덕 너머 사람들은 여전히 두런거렸고 그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하얀 눈 위로 내리쬐는 햇빛에 목이 탔다. 목구멍이 따가웠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소리는 안으로 잠겨들고 나오지를 않았다.
늑대는 으르릉거리며 내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눈을 움켜쥐고 던졌다. 늑대는 고개를 흔들어 가볍게 눈을 털어냈다. 나는 계속 뒷걸음질하면서 눈을 뿌렸다. 손이 빨개지고 손바닥이 얼얼했다. 늑대가 거의 손에 닿을 듯 다가왔다. 늑대 눈에서 파란 불이 꼬리를 그으며 쏟아져 내렸다. 나는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늑대가 앞발을 들어 나의 가슴을 쳤다. 나는 얼굴을 옆으로 피했다. 늑대가 다시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나는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숨이 막혔다. 뒤로 땅을 짚었다. 손바닥에 뭔가 잡히는 게 있었다. 나뭇가지였다. 제법 굵은 것인데 가시가 돋치고 잔가지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움켜쥐었다. 가시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늑대가 머리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나는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늑대가 잠시 뒤로 물러나더니 다시 공격해 들어왔다. 가지를 치켜들고 후려쳤다. 늑대의 표정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이를 드러내고 낮게 으르릉거리더니 왼쪽 어깨 위로 뛰어올랐다. 어깨가 찢어지듯 아팠다. 물린 것이었다. 나는 마구 가지를 휘둘렀다. 방향도 없고 대중도 없었다.
아지랑이 너머로 사람들은 여전히 모닥불 주위에 모여 불을 쬐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흘낏 보는 것도 같았지만 여전히 웃음소리까지 내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늑대가 다시 머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나는 춤추듯이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휘두르는 가지 위로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강렬하기만 했다. 어지러웠다.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쓰러질 것 같지만 악을 쓰며 버텼다. 늑대도 지치는지 입가에 거품을 물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조금씩 발을 옮겨갔다. 눈 밟히는 소리와 늑대의 으르릉거리는 소리가 묘하게 얽혔다. 사람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늑대가 다시 공격해왔다. 나는 숨을 헉헉거리면서 나뭇가지를 내리쳤다. 가지 끝이 늑대의 눈 위에 정확하게 꽂혔다. 늑대가 날카로운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포효하는 늑대의 눈에서 시퍼런 불이 일어났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향해 가격했다. 늑대의 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늑대는 몸을 낮게 엎드린 채 한참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높이 날려 머리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늑대를 후려쳐 화톳불 쪽으로 밀어붙였다. 늑대의 무게감이 손으로 팔로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이 솟은 늑대를 바라보았다. 하늘에 햇살이 퍼져 눈이 시렸다. 늑대는 공중에 잠시 멈추는 듯 떠 있더니 캐갱! 소리와 함께 모닥불 위로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불길이 확 치밀어 오르면서 시꺼먼 연기가 솟구쳤다. 불길이 높이 타 오르며 노린내가 진동하고 파란 하늘이 시커먼 그을음으로 뒤덮였다. 순간 다리에 힘이 빠져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온 몸이 땀이다. 나는 새우처럼 몸을 말고 뒤척인다. 이불 속까지 한기가 파고든다. 꿈이었다. 나는 웅크리고 누운 채 어둠을 응시하며 창밖의 소리를 듣는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는지 물 듣는 소리가 들려온다. 비 그림자가 보랏빛 어둠 속에 얼핏얼핏 사선으로 비친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다. 어깨가 시리다. 몸을 돌려 눕는다.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이 엄청난 무게로 방을 누르고 있다. 허리가 몹시도 아프다. 관절통이 일시에 신경의 날을 세우며 들고 일어선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감긴 눈 사이로 꿈속에서 빛나던 순백색 눈밭이 떠오른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그러나 시리게 차갑던 촉감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겨 보지만 잠은 쉬 들 것 같지 않다.
4.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나는 일어나 어둠을 더듬어 머리맡에 둔 문갑 서랍을 연다. 어둠 속으로 깊이 손을 넣는다. 손아귀에 잡히는 것이 있다. 그것을 가만히 쥐었다가 놓는다. 가슴이 뭉클하다. 아파트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던 아들의 팽이다. 팽이에 실을 감아 공중에서 땅에 흩뿌리듯 놓아, 팽이가 뱅뱅 돌아가는 모습과 무지개 색깔이 속도를 받아 하얀 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놀라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던 어린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너저분한 방에서 아들은 동화책을 보다 말고 물었다.
“엄마, 우리, 언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야?”
나는 옷을 정리하다가 아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들은 내 입을 바라보았다.
“지금 갈까?”
그러나 아들은 다시 동화책으로 눈길을 거두었다. 잠시 후 시큰둥하게 “다음에 가지 뭐.”라고 하더니 한동안 반응이 없었다. 책장이 넘어가지를 않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못본 척 했다. 아들은 드디어 머리맡에 책을 놓고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학교가 끝나면 아들은 제가 갖고 있는 열쇠로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 제 외할머니가 있는지 확인하고 은남을 기다리곤 했다.
어느 날 들어선 아파트 안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빨간 딱지가 붙은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텔레비전, 냉장고, 전축, 피아노, 가구들을 홀로 바라보고 서 있었을 아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박스를 채우다 말고 아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을 뻗쳐 이불을 끌어내렸다.
이불이 꼼짝도 안 했다. 나는 다시 당겼다. 이불 안쪽에서 아들이 강하게 맞잡고 있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이불을 통째로 끌어안았다. 이불 안에서 작은 떨림이 전해졌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나의 가슴이 저미듯 아팠다. 나의 온 존재가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들 곁에 가만히 누웠다. 목구멍이 뜨겁게 부풀어 올랐다.
이불을 벗기고 두 손으로 아들의 젖은 눈 가를 닦아냈다. 그리고는 아들의 손을 잡으며 두 눈을 마주 보았다.
“엄마를 똑똑히 봐!”
아들의 눈이 부풀어 올랐다.
“우리 아들, 힘들지? 알아. 엄마도 알아. 그렇지만, 산다는 게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잖아? 이럴 때 잘 견뎌내야지, 안 그래?”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당분간이야.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엄마는 여기 남아서 처리할 일이 있고, 너는 아빠랑 미국 가서 많이 배우고 있고……. 우리 아들, 씩씩한 남자니까! 잘 해낼 수 있지?”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흘러내렸다.
“아니, 딸이 돼 가지고, 자기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 줄도 몰랐단 말이야? 도대체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차압이라니? 나는 영화에나 나오는 말인 줄 알았다. 어떻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도장은 왜 찍어? 그것도 니 것도 아닌 니 남편 걸.”
시누이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애당초 집안이 복잡해서 결혼은 안 된다고 그렇게 말렸건만……. 뿌득뿌득 하더니, 봐라! 꼴 좋다!”
시누이는 어머니가 있는 작은방을 바라보며 소리를 높였다.
“올케 일은 나도 모르겠다. 돈 얼마로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희망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부부가 뭐니? 도대체 너는, 뭘 하며 살았다는 거냐? 그 많은 돈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그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게 이해가 되는 말이야?”
남편은 딱지가 붙은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남편의 옆모습이 조각상처럼 딱딱해 보였다. 화면에는 개그맨과 게스트의 웃는 모습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무성영화 속에 빠진 것 같은 먹먹함에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허구처럼 느껴졌다.
“여기서는 재기하기 힘들 것 같고, 이번에 미국 들어가면 니 자형한테 얘기할 테니까, 그리 알고 준비해. 하긴 준비할 것도 없지. 남은 게 있어야 말이지.”
시누이가 다녀가고 그날 밤 남편은 외박을 했다. 나는 완전히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머니는 밤새껏 밭은기침을 해댔다.
남편과 나는 이미 먼 나라의 사람이었다. 나는 줄곧 남편의 눈을 따라다녔고 남편은 내 눈을 피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남편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휴식을 원했다. 특히 나에게서는 그 어떤 이야기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남편은 하루라도 빨리 내 곁을 떠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애초부터 나의 것은 없었다. 남편의 이름으로 된 것조차 이젠 다 사라져버렸다. 유일하게 나의 이름으로 지급되던 봉급도, 압류신청이 들어오고 지급명령이 떨어져 겨우 최소생활비만 남겨둔 채 채권자들과 은행이 나누어간다.
이제 남편이 나에게 남겨놓은 것은, 아들을 위해 열심히 나무를 깎고 크레파스를 칠했던 팽이 하나뿐이다. 나는 남편에게 한 치의 미움이나 서운함도 없다. 남편이 꿈꾸었을 아름다운 인연의 그림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빗발처럼 몰아치던 빚쟁이들의 전화소리조차 그리울 정도로, 방 안에는 정적만 가득하다. 가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창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나는 팽이를 다시 어둠 속에 밀어넣고 서랍을 닫는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밤비가 점점 더 심해지는지, 남편도 아들도 은남도 없는 빈집 같은 집에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가득하다.
나는 문득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욕지기가 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메스꺼움을 삼키며, 그를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 속에다 풀어내며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나쁜 자식! 나쁜 자식!’
5.
희끗희끗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무겁게 내려앉고 누런 뗏장 사이로 붉은 흙이 비쳤다. 그 위에 눈이 내리자 곧바로 바람이 몰고 갔다. 바람이 더욱 심하게 불어 눈발은 방향을 잃고 사선으로 맴돌다가 차가운 땅 위에 떨어지자마자 또 날려가곤 했다.
사람들은 얼굴을 베는 것 같은 추위에 손에 입김을 불며 바람에 떠밀리듯이 언덕을 내려갔고 나는 혼자 무덤 앞에 서 있었다. 산언덕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소리가 언덕에 가득했다. 바람이 전혀 차갑질 않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울어서 나도 따라서 잠시 울었을 뿐이었다. 엄마는 혼절해서 아예 산에 따라오지도 않았다. 나는 어깨를 기댈 데조차 없이 텅 빈 산언덕에 혼자 서 있었다.
엉성한 봉분 위, 붉은 흙과 누런 뗏장 사이에 눈이 비듬 박히듯 들러붙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 세상의 그 모든 것이 다 구저분하게 보였다. 아버지가 사다 주었던 빨간 색 륙색도 크레파스도 무지개빛 팔랑개비도 노랑 풍선도 다 거짓부렁이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자, 여태껏 거짓말처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갑자기 봇물처럼 터져 나왔는데 나 자신도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덤 앞에서 눈을 맞고 선 채 혼자 악을 쓰며 울었다. 목이 매여서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발을 구르며 울었다. 왜 그렇게 울어댔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더 깊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왠지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손아귀에 가득 쥐고 있던 것을 다 뺏긴 것 같은 상실감 또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을 끌어냈다. 나는 더 이상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지도 않고 온몸에 힘이 빠져 서 있을 수가 없어서야 울음을 그쳤다.
문득 하얀 상복 위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울음을 거두고 치맛자락을 치켜들어 흐른 눈물을 닦으려 하였다. 그 때 곱게 접힌 하얀 손수건이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먼저 손수건을 잡은 긴 손가락을 보았고, 그리고는 그 손가락을 지닌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린 나의 분에와 공허감을 충분히 공감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은 양복 윗옷을 벗어 나의 어깨를 덮어주었다. 따뜻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나의 아버지는 내 곁을 떠나갔고 그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방 공기가 싸늘하게 내려앉고 있다. 나는 몸을 새우처럼 오그린다. 어머니 또한 잠들지 못하는지 밭은기침을 계속 해댄다. 시계 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참으로 또렷하게 들려온다. 아무리 몸을 뒤채어 보아도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그는 내 아버지의 회사를 처분하고 어머니와 나의 곁에 남았다. 그는 어머니를 무참하게 닦달해 내 할아버지의 산을 날려 버렸고 내 아버지의 밭과 집을 팔아 그의 아파트와 사무실을 잠시 가졌다. 그는 야차처럼 우리가 가진 그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의 접근이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다는 쑥덕공론이 수많이 들려왔지만 한 번 주저앉은 어머니는 끝내 홀로 서질 못했다.
그가 내 삶의 궤도로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비루해졌고 온통 혼란뿐이었다. 공부하다가 문득 내 방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눈빛은 어두운 열기에 번들거리곤 했다. 섬뜩함에 늘 가슴이 떨렸다. 차라리 그의 부재가 마음 편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았던 내 손을 저주했다.
그리고 은남이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딸인 은남의 등록금마저 들고 나갔다. 그가 나에게 준 것은 정말 손수건 한 장 크기만큼의 연민과 내 손바닥에 잠시 머물었던 그의 체온뿐이었다.
나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 서둘러 결혼했다. 그러나 그의 곁을 떠나기 위해 그렇게도 몸부림쳤지만 그는, 나에게 남은 모든 것을 다 앗아가 버렸다.
그는 당좌수표를 부도낸 이유로 기소중지 상태라고 했고 그가 만든 유령회사의 부도액 규모가 엄청나서 최소한 십 년은 살아야 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채무자들이 갖는 것만큼의 관심조차 있지 않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뿐이다. 다만 가슴 아픈 것은, 아버지가 떠났을 때 나와 어머니 단 둘이만 이 세상에 남았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와 나만 이곳에 남게 되었다는, 무슨 업처럼 되풀이되는 전철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때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그렇게 아귀처럼 울었던 것일까?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아픈 기억들이 자꾸 뇌리를 파고든다. 차라리 이대로 잠들어 끝내 눈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밖에서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지 처마 끝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홈통을 울리고 그것은 적막을 뚫으며 방으로 스며든다. 마당에 떨어지는 빗물 듣는 소리가 자그락자그락 발자국 소리처럼 들려온다. 그 소리가 점점 또렷해지고 있다. 나는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눕는다. 소리가 멎는다. 역시 환청이다. 이젠 정말 잠을 자고 싶다. 너무 피곤하다. 오늘은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차입금의 합계가 맞지 않아 영수증과 장부 사이를 오가며 씨름했다. 베개를 다시 베고 자세를 편하게 잡는다. 그리고는 다시 잠을 청해 본다. 머리가 어지럽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그 한숨소리가 문 밖에서도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향해 걸어간다. 문고리를 가만히 잡고 잠겨있는지 확인한다. 잠겨있다. 돌아서다 말고 다시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을 듣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선다. 몸이 굳는다. 나는 아무런 반응이 없길 바라면서 혼잣말처럼 아주 낮은 소리로 묻는다.
“누구세요?”
“…….”
잠잠하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 몸을 돌린다. 그러나 곧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나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다. 꿈에서 봤던 끝 간 데 없던 눈밭이 떠오른다. 머리 위로 뛰어오르던 늑대의 눈빛도 또렷하게 비친다.
문 밖에는 빗소리가 여전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말 없이 문을 연다. 문 밖에는 밤안개가 자욱하고 그와 함께 빗소리가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 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잠깐 들른 거다. 이제 얼굴을 봤으니 가야지. 일은 곧 해결될 거다. 알고 싶지도 않겠지만, 크게 양심에 꺼릴 일은 안 했다.”
그는 애써 자신 있게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말머리가 자꾸 꺾이고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그리고 자꾸만 몸이 기울어진다.
“그래도, 여기 오니까, 마음이 편하다.”
그는 쓰러진다. 그리고는 아예 눈을 감는다.
“이젠 좀 쉬고 싶다.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피해 다니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정말 지쳤다. ……차라리 누군가……, 나를 잡아 넣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쉴 수 있겠지……? ”
그는 꿈결에서처럼 겨우겨우 말을 이어가더니 마침내 고개를 꺾고 잠이 든다.
나는 어머니의 방으로 그를 끌고 들어간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않고 그의 잠바를 벗기고 이불을 덮어준다. 그리고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어머니의 말소리가 먹먹한 귓속을 깊이 울린다. 나는 방문을 닫고 나온다.
어느덧 비는 눈으로 바뀌었고 눈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녹아버린다. 길이 축축하게 젖어 들고 있다. 안개가 자욱하고 눈송이는 방향을 잃고 흩어진다. 나는 마당으로 내려선다. 눈송이가 얼굴에 부딪치며 물방울로 흘러내린다. 비닐하우스 위에 눈 내리는 소리가 싸락싸락, 온 세상에 가득 차오른다. 길 가에는 가로등불이 희미하게 빛을 잃어가고 멀리서 교회의 십자가 불빛이 거리 위로 너울져 떨어진다. 눈발이 불빛에 붉게 번지며 춤추듯 흩날린다. 거리는 텅 비어 있다. 오직 나 혼자만 눈을 맞으며 걷고 있을 뿐이다.
그가 우리 곁에 돌아왔다. 또다시 우리를 할퀴고 도망치기 전에 이번에는 내가 그를 구하리라. 인당수에 빠진 심청처럼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며…….
나는 어깨 위에 내린 눈을 털어내며 공중전화 부스의 문을 민다. 그리고 전화기에 다가서서 천천히 다이얼을 돌린다. 벨이 잠시 울리더니 자동인식 음성이 들린다.
“112 경찰입니다. 신고 접수 중이오니 잠시 후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잠시 후 전화기에 대고 또박또박 말한다.
“여기, 신고할 사람이 있습니다.”
부스 밖에는 눈발이 더욱 거칠게 흩날리고 짙은 안개가 거리를 기어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 안개 너머로, 키르키스스탄의 은남이 온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채 말을 타고 나에게로 달려오고 있다. 드넓은 들판 멀리 설산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박혜원 / 1994년 청구문화제 수필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 『세기문학』에 소설로 등단했다. 수필집 『그 길 위엔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다』가 있고, 현재 거창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