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1912 4월14일 타이태닉호 침몰
세월호 침몰 사건과 비교가 됩니다.
최근 진도해상에서 일어난 여객선 세월호 침몰에
가슴 아파하며 대참사 속에서도 많은 승객을 구출한
100년 전, 1912년 4월 14일의
타이태닉호 침몰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져서...
그래서 온갖 자료들을 찾아 봤습니다.
관련된 사진까지 열심히 보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영화 타이태닉의 한 장면인데,
실제로도 이만치 화려하고 호화로운 배였다고...
부두에서 대기 중인 호화 여객선 타이태닉호
건조 당시의 스크류를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큰
규모라는 것을...
안전을 위해 많은 구명정을 만들었다고...
1912년 4월 10일. 최대규모로 건조된 타이태닉호는
2,200여 명의 승객과 함께미국으로 꿈을 싣고 출항합니다
영국 싸우쌤프턴항에서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배였습니다.
타이태닉호의 일등실 요금은 현재 가치로 5만달러가
넘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하지요?
당연히 당시 세계의 부자들이 타이태닉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화려한 타이태닉호 객실 모습인데 엄청나지요?
100년 전의 호화 여객선에 이만한 방이 있었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배 안에 있던 레스토랑의 모습이랍니다.지금 봐도
정말 멋집니다
타이태닉호의 최저요금도 일반인들에겐 2주 이상의
임금치였다고 합니다.
주로 이민자들이 요금이 싼 하층 객실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망자들의 대부분도 바로 이 하층 객실
승객들입니다.
결과적으로 여성 승객 중 1등실 탑승자들은 97%, 어린이 52%가 살았고
3등실은 55%만 구조되었는데, 전체 남자는 70%가
사망했다고...
타이태닉호가 침몰한 지 100년이었던 2012년엔
이를 기념해 침몰한 배에서 건진 보석들로 전시회가
열렸는데
아주 유명한 여우장식 머리핀을 비롯해
고가의 보석들이 많이 전시되었다고...
보기만 해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보석들이지요?
당시 탑승객들의 부의 수준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12년 4월 10일 출항했던 타이태닉호는 4일만인 14일에
대서양에 놓인 거대한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고 맙니다.
2,200여 명 중 1,513명이 사망한 사상 최대의 해난 사고...
생존자는 겨우 711명...
너무도 짧은 시간동안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데...
어느 나이 든 부부 승객은 나이 탓에 구명정에 탈 수
없음을 미리 알고
스스로 배에 남기로 하고 애틋하게 죽음을 기다리기도...
영화 타이태닉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모델이랍니다.
뉴욕에서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던 스트라우스 부부.
이 부부는 하인을 구명정에 태우고
둘이 포옹한 채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렇지만 행복한 노부부가 함께
했으니
조금은 덜 춥고 덜 두려웠을 까요?
마지막까지 남아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연주를 계속했던 실내악단으로
영화에서는 4인조 현악단이었지만 실제는 8명으로
구성된 연회장의 실내악단이었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이 참 감동적이었지요.
물론 모든 장면이 다 마음을 울렸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지만 영화에서 봤던 그 여운이 가시질
않습니다.
타이태닉호와 최후를 함께 한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
영화에서도 표현을 잘 했습니다. 제임스 캐메런 감독이
고증광이라더니
이런 부분에서도 섬세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빙산과 충돌로 인한 침몰이 되는 대혼란 중에도
많은 승객들의 목숨을 구하고 타이태닉호와 함께
의연하게 숨져간
역사의 인물이자, 위대한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
1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고향 리치필드에는
그의 위대한 업적과 투철한 사명감을 기리기 위해
영국출신 선장의 긍지를 상징하고 기억하려는 동상이
세워져있다고...
배의 설계를 맡았던 토마스, 그도 역시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합니다.
수많은 생명이 심해로 사라졌던 타이태닉호 침몰 사건.
이후 많은 얘기와 음모론도 제기되었지요.
제 역할을 못하던 올림픽호와 바꿔치기 해
일부러 침몰시킨 것이란 설에서부터 독일 잠수정의
공격설까지...
참 갖가지 이야기들이 있을만큼 규모가 큰 침몰사건이었고
그 속의 이야기들이 많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침몰하던 타이태닉호를 떠나 구명정에 몸을
실은 711명이
무사히 구출된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 1985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해양 탐험가인
밥 발라드가
타이태닉호를 발견했습니다.
발견 당시 타이태닉호는 심해 4천 미터 아래에 잠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동강이 난 채 각 선체가 6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답니다
잠수정으로 내려가는데만 2시간 반이 걸리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심해.
그러나 그 참혹했던 침몰당시,
많은 승객을 죽음에서 구해낸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과
나이 든 어른들과 남자승객들은 어린이와 여성을
우선적으로
구명정에 승선하도록 권유하며
일부 재벌과 남편들은 홀로 떠나는 부인에게
"내가 신사답게 죽었다고~"말해 달라며
생명을 버리기까지 귀중한 사랑의 본을 보여주었기에...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끔직한 침몰사건이 호화 여객선 참사라기 보단
아름다운 인간애를 발휘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이땅의 여객선 선장은
승객을 내팽개치고 몰래 선원들과 함께 비밀통로를 통해
탈출했으니...
지금도 진도 앞바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있는 귀한
생명들이
안타까운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생각을하며
주님을 섬긴다는 나이든 장로의 마음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기에...글쓴사람.
<받은메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