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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오월쟁패와 초한쟁패를 서술한 부분입니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여 대하소설 같은 장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오월쟁패에 나오는 인물 중에 단독 주연으로 손색없는 사람이 오자서(伍子胥)입니다. 오자서열전은 사마천이 오자서의 일생을 깊이 공감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고난에 떨어진 오자서가 불굴의 용기로 헤쳐 나오는 것이 사마천 자신과 똑같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오자서의 강개한 심정에 깊히 공감하면서, 오자서의 일생을 따라가며 어떨 때는 열렬하게, 어떨 때는 안타깝게 응원합니다.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으로 아버지는 오사이고 형은 오상입니다. 오자서의 선조 중에 오거라는 사람이 초나라 장왕에게 직간하여 장왕을 춘추오패 중의 하나로 만든 이후로 오씨 가문은 명문 가문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오자서 때의 초나라 왕은 평왕이고, 그 태자가 <건>인데,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는 태자건을 보좌하는 태부 벼슬을 하고 있었고, 비무기라는 사람이 태자를 보좌하는 하급 벼슬인 소부를 맡고 있었습니다.
태자건의 나이가 차게되자 진(秦)나라 공주와 결혼시키기로 하고, 소부 비무기에게 진나라 공주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비무기가 공주를 살펴보니 너무나 아름다운지라 자기 출세를 위해 초나라 평왕에게 "진나라 공주가 뛰어나게 아름다우니 왕께서 후궁으로 맞이하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여자를 얻어주도록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초평왕은 마음이 동해서 며느리가 될 여자를 자기가 차지하고 지극히 총애하여 아들 <진>을 낳게되고, 태자건에게는 다른 여자를 얻어주게 됩니다. 진(秦)나라에서는 "며느리 될 여자를 자기 후궁으로 하다니 역시 남방 오랑캐라 무도하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왕에게 아부하기 위해 태자를 배신한 비무기는 태자를 떠나 평왕의 측근이 됩니다. 그러나 태자가 나중에 왕이 되면 자신을 죽일까봐 걱정이 된 비무기는 밤낮으로 태자를 참소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평왕은 태자를 성보라는 변방의 요새로 보내 군대를 조련하게 합니다.
그러나 비무기는 여전히 태자의 단점을 과장되게 이야기 하여 평왕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태자가 진나라 공주의 일로 왕께 앙심을 품고 있습니다. 태자가 성보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제후들과 교류하면서 장차 난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습니다."라고 부추기자 평왕은 태자의 태부인 오사를 불러 물어보게 됩니다. 오사는 비무기가 왕에게 태자를 참소하였다는 것을 알고 "대왕께서는 참소를 일삼는 하찮은 신하때문에 골육을 멀리하십니까?"라고 직언하지만 비무기가 "지금 왕께서 이들을 누르지 않으면 왕께서 이들에게 사로 잡힐 것입니다."라고 말하니 평왕은 화가 나서 오사를 가두고, 성보에 있는 태자를 죽이기 위해 분양이라는 사람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분양은 태자가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미리 사람을 보내 태자를 피하게 해서 태자건은 송나라로 도망가게 됩니다.
태자를 놓친 비무기는 태자를 도울 수 있는 오사의 아들들까지 없애려고 합니다. "오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둘 모두 현명합니다. 아버지를 인질로 아들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니 평왕은 오사에게 "너의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오사는 아들들이 오면 살려주겠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평왕은 사자를 오자서와 그 형 오상에게 보내 "너희들이 오면 아버지를 살려주고, 오지 않으면 당장 죽이겠다."라고 말하게 합니다.
오상이 가려고 하자 오자서는 "초나라에서 우리를 부르는 까닭은, 아버지를 살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두명까지 모두 죽이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로 달아나 힘을 빌려 아버지의 치욕을 씻어드려야 합니다."라고 오상에게 말하자 오상은 "내가 가더라도 아버지의 목숨을 보존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부르셨는데 가지 않았다가, 후에 그 치욕도 갚지 못하면 천하에 웃음거리가 됨이 한스러울뿐이다. 나는 가서 죽을 것이다. 너는 떠나서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보복하도록 하거라."라고 말하고 아버지에게 가게 됩니다. 오자서는 할 수 없이 혼자 태자가 있는 송나라로 도망하게 됩니다. 물론 오상이 초나라에 오자 오상과 오사를 모두 죽이게 됩니다. 오사는 죽기전에 오자서가 송나라로 탈출했다는 말을 듣고, "초나라 왕과 신하는 장차 병란으로 고생을 하겠구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자서가 송나라에 가서 태자를 만났지만, 송나라에 반란이 일어나서 정나라로 태자건과 함께 도망가게 됩니다. 정나라 사람들은 태자건을 잘 대우해주었는데, 태자건이 다시 진(晉)나라에 가니 진나라 경공이 태자건에게 "정나라에서 태자를 신뢰하고 있으니, 태자가 나를 위해 정나라에서 내응하면 내가 외부에서 정나라를 공격하여 정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소. 정나라를 멸망시키면 태자를 정나라에 봉해 주겠소."라고 제의하자 태자건은 이를 수락합니다. 태자건이 정나라에 되돌아가서 일을 꾸미려고 준비하던 중, 태자건이 개인적인 일로 종자를 죽이려고 했는데, 이 종자가 태자건이 진나라와 통해 정나라를 공격하려고 한다고 정나라에 일러 바치게 됩니다. 이때 정나라의 재상이 그 유명한 명재상 자산이었으니 배은망덕한 태자건을 용서없이 잡아 죽이게 됩니다.
오자서는 겁이 나서 태자건의 아들인 <승>과 함께 오나라로 도망가게 됩니다. 정나라에서 오나라로 가려면 초나라를 통과해서 가야 했는데, 초나라에서는 포상금을 내걸고 오자서를 잡기위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초나라 군사의 눈을 피해 가다가 <승>과도 헤어지고 군사들의 추격을 받게됩니다. 뒤쫓는 자가 바로 뒤에까지 오는 위급한 순간에 장강에 도착하고, 강변에 배를 탄 어부가 오자서를 태워서 강을 건네주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오자서가 오나라의 도읍에 도달하기 전에 병이 나서, 도중에 머물면서 걸식을 하기도 하면서 거지꼴로 마침내 오나라 도읍에 도착하게 됩니다.
오나라는 지금의 소주, 상해지역으로 춘추시대 때는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땅이라 머리카락을 박박 깍고, 몸에 문신을 하고 맨발로 생활하는 남쪽 오랑캐가 사는 곳으로 여기던 곳입니다. 그러나 개발이 시작되면 중국의 어느 지역보다도 풍요로운 지역이 됩니다. 현재의 중국에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된 곳은 소주, 상해, 항주 지역입니다. 이때의 오나라 백성들을 월족(越族)이라고 했습니다. 오나라 남쪽의 항주, 소홍지역에 위치한 월나라 백성들도 월족입니다. 오와 월은 같은 민족이지만 죽고 죽이는 살벌한 원수지간이 됩니다. 오나라가 먼저 발전했고 뒤이어 월나라도 흥기하게 됩니다.
오나라의 왕 수몽때 초나라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진(晉)나라가 오나라를 후원하면서 세력이 커지게 되면서 신흥강국으로 발돋음하게 됩니다. 수몽은 왕위를 네 아들 중에 가장 현명한 넷째 아들 계찰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계찰은 "형들이 있는데 넷째인 제가 왕위를 물러받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라고 말하고 백이숙제처럼 끝내 왕위를 사양합니다. 그러자 수몽은 큰아들인 제번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동생들에게 차례로 왕위를 전해 기필코 계찰이 왕이 되게 하라고 합니다.
제번은 왕이 된 후 초와의 전쟁에서 저격을 받아 죽게되자, 둘째인 여제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하고 죽게됩니다. 둘째인 여제도 왕이 된 후에 암살당해 일찍 죽게되자 셋째인 여말이 왕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여말도 일찍 죽게되어 드디어 계찰이 왕이 될 순서가 되었는데, 계찰은 또 끝끝내 고집을 부려 왕위를 사양하고 도망갑니다. 이때 계찰이 한 말이 "나에게 부귀란 지나가는 가을바람 같은 것일 뿐.(富貴之於我, 如秋風之過耳)"입니다. 계찰은 진심으로 왕이 될 생각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다음 왕위를 누가 이을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왕위를 형제에게 상속하면 결국 형제상속의 마지막 왕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나라도 세째인 여말의 아들인 <요>가 왕이 됩니다.
이 결정을 수긍하지 못하고 앙앙불락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첫째인 제번의 아들 <공자광>이었습니다. 공자광은 "넷째 숙부이신 계찰이 왕위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셋째 숙부 여말의 아들인 요가 아니라 첫째이신 제번의 아들이고 장손인 나 공자광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공자광은 인재를 알아보는 눈도 있고, 초나라를 꺽어 이름을 날리겠다는 야망도 있으며, 장군으로의 능력도 있어 초나라와의 전투에서도 여러번 승리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나라가 이런 상황에 있을 때 오자서가 오나라에 왔습니다.
오나라 수몽왕 이래로 오와 초는 국경지역에서 여러번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오와 초의 국경지역에서 붙어 있는 초의 종리와 오의 비양지라는 마을에서 두 나라의 부녀자들이 누에를 치다가 뽕나무 밭을 두고 다투게 되었는데, 일이 커져 두나라간에 군사를 동원한 전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때 오나라는 공자광이 장군이 되어 초를 쳐서 초나라 땅인 종리와 거소를 빼앗고 돌아오게 됩니다.
오자서는 공자광의 주선으로 오왕을 만나 "초나라를 쳐부술 수 있습니다. 공자광을 다시 보내기 바랍니다."라고 설득하지만, 공자광은 "오자서는 부형의 원수를 갚고자 할 뿐입니다. 초나라를 공격하더라도 쳐부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 오자서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그러자 오자서는 공자광이 요왕을 살해하고 자신이 왕이 되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 우선 공자광의 거사를 돕기로 합니다. 오자서는 전제라는 용사를 공자광에게 천거하고 물러나 태자건의 아들인 <승>과 함께 들에 나가 밭일을 하면서 공자광의 거사를 기다리게 됩니다. 오나라에 들어올 때 헤어졌던 <승>도 무사히 오나라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이로부터 5년 후에 초의 평왕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평왕이 며느리가 될 진의 공주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아서 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진>이 결국 초나라 왕이 됩니다. 이 왕이 소왕인데, 오나라 왕 요는 초나라에 초상이 난 틈을 타서, 자신의 두 동생에게 병사를 이끌고 가 초나라를 기습공격하게 합니다. 그러나 초의 군대가 뒤를 막는 바람에 오의 군대는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가 되고 됩니다.
오왕요는 공자광에게 두 동생을 구원하기 위해 출정해달라고 부탁을 하자, 공자광은 이를 수락하고 전쟁에 나가기 전에 왕을 잔치에 초대합니다. 승리를 기원하는 명분으로 잔치를 마련했는지 어쩔수 없이 요왕도 참석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자광을 꺼림직하게 생각하고 있던 요왕도 경호원을 빽빽히 배치해서 암살에 대비했는데, 전제가 요리사가 되어 요리한 물고기 뱃속에 비수를 숨겨 경호원들의 눈을 피하고 요왕에게 그 요리를 바칠 때, 그 비수로 왕을 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비수 이름을 물고기 뱃속에 칼을 숨겼다고 해서 어장검(魚腸劒)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물론 왕이 죽어 우왕좌왕하는 경호원과 왕과 가까운 신하들은 공자광이 숨겨둔 병사들이 모두 죽이게 됩니다. 전제의 이야기는 자객열전에 자세하게 실려있습니다.
요왕을 죽이고 새로 오나라의 왕위에 오른 공자광이 춘추오패 중의 한명인 합려입니다. 합려는 적에게는 잔인한 사람이지만 자기를 도와준 사람을 평생 믿고 일을 맡겼습니다. 나중에 월나라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구천 옆에서 온 힘을 다해 도와준 범려는 "구천은 환난은 같이 견딜 수 있으나 즐거움은 같이 즐길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구천을 떠납니다. 그러나 합려는 환난과 즐거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손무가 부녀자를 훈련시킨 이야기는 손무의 비범함을 보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합려가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갖고 있고 배포가 큼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오자서 가문을 파멸시킨 비무기가 초나라에서 또 한명의 뛰어난 인재를 모함해서 죽입니다. 초에서 좌윤벼슬을 하고 있던 극완은 성품이 곧으면서도 부드러워 백성들이 매우 따랐는데, 비무기가 초의 재상 낭와와 극완을 이간질해서, 낭와가 극완을 죽이고 그 집안 사람들을 몰살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극씨와 동성인 백씨 집안의 백비가 오나라로 망명하게 됩니다. 오자서는 같은 처지의 백비를 동정하여 합려에게 백비를 등용하자고 진언하면서 한 말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습니다. 합려의 아들인 부차 시절에 백비가 흑화하여 오자서를 참소하는 간신이 되지만, 처음 오나라에 망명할 때는 행정의 달인이고 문무겸비한 인재였습니다.
백비가 오나라에 망명한 후에 비무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초의 재상인 낭와에게도 비난이 집중되자 낭와가 비무기를 죽이게 됩니다. 자기들 손으로 죽여할 원수가 먼저 죽어서 오자서와 백비는 원통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자서와 백비와 손무까지 얻은 합려는 초나라를 대거 쳐들어갈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오자서는 내치와 전략에도 뛰어나고, 군대 지휘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자서는 손무, 백비와 상의하면서 오의 도성을 새로 쌓고, 군대를 조련하고, 초와 동맹을 맺고 있던 약소국인 당나라와 채나라를 설득해 오와 연합하게 합니다.
초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오도가도 못한 상태에 빠졌던 요왕의 두 동생은 합려가 요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초나라에 항복하게 됩니다. 초나라는 국경지역에 그들을 배치하여 오나라를 막게합니다.
합려왕 3년 오나라 군대가 요의 동생들을 공격하면서 오와 초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요의 동생을 사로잡고 성을 빼앗은 오나라의 합려는 내친 김에 초의 수도인 <영>땅 까지 진격하려고 했지만, 오자서와 손무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말립니다.
그 후 매년 오와 초는 소규모 전투를 계속하지만 주로 오나라가 이기게 됩니다. 그런데 합려왕 5년에는 월나라와 싸워 이겼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진(晉)이 초를 배후에서 견제하기 위해 오를 후원했는데, 초도 오를 배후에서 견제하기 위해 월나라를 지원하면서 월나라도 국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오나라를 집적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합려왕 9년 마침내 합려는 오나라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소국인 당나라와 채나라의 군대도 연합하여 초나라로 대거 쳐들어갑니다. 오나라의 군대는 초나라의 군대를 상대로 연전연승하여 드디어 초의 수도 <영>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때 나이가 17세인 초의 소왕은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게 됩니다. 춘추시대때 남방의 패주로 군림하던 초나라의 수도가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오나라에 의해 함락된 것은 한 시대를 마감하는 일대사건이었습니다.
오자서가 원한을 갚아야 할 원수는 세명입니다. 아버지 오사를 모함하여 죽이고 태자건을 참소한 비무기와 며느리를 탐한 것도 모자라 간신의 말을 듣고 죄없는 태자를 쫓아내고 충신인 아버지를 죽인 초의 평왕, 그리고 태자건이 이었어야 할 초의 왕위를 가로챈 진나라 공주의 아들 소왕이 오자서가 반드시 보복해야 할 원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왕과 비무기는 이미 죽었고, 반드시 사로 잡았어야 했던 소왕은 수도를 버리고 도망하여 지방으로 떠돌아 다녀 잡지 못하고 있으니 오자서로서는 애가 탔을 것입니다.
과거에 신포서는 오자서의 친구였는데, 오자서가 도망할 때 신포서에게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멸망시키겠네."라고 말하니 신포서는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보존시킬 것이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나라 군사가 초의 수도 <영>에 들어갔을 때, 소왕을 잡으려다가 잡지 못하게 되자, 오자서는 초나라 평왕의 묘를 파헤쳐 그 시신을 꺼내서는 삼백번의 채찍질을 해서 원한을 풀었습니다. 이를 굴묘편시(堀墓鞭尸)라고 합니다. 산에 도망가 있던 신포서는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오자서에게 보내 "원수를 갚는것이 너무 심하구려. 예전에 그대는 평왕의 신하였었는데 시신을 욕보이는 것은 하늘의 도리에 어긋남이 극에 달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꾸짖으니, 오자서는 심부름 온 사람에게 "나를 대신해 신포서에게 날은 저물고 갈 길이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니 용서해달라고 전해주시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일모도원(日暮途遠)과 도행역시(倒行逆施)라는 사자성어가 유래되었습니다.
신포서는 진(秦)나라로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지만 진나라는 초나라가 이미 망했다고 생각해서 거부합니다. 그러자 신포서는 진나라 조정의 뜰에 서서 7일 밤낮을 통곡합니다. 진나라 애공이 가엾게 여겨 "초나라는 무도한 나라이지만 저런 충신이 있으니 망하게 나둘수 없다."라고 말한 다음에 군대를 동원해서 초나라를 구원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때 월나라가 오나라의 국내가 빈 틈을 타서 오나라에 쳐들어 오게 됩니다.
부개는 합려의 동생으로 용감해서 이번 오초전쟁의 선봉으로 나서서 큰 공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초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온 진나라군대와 싸우다가 패했는데, 오나라 군대의 본진에 합류하지 않고, 월나라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자기 멋대로 휘하의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 본국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왕위에 오릅니다. 합려는 초나라를 버려두고 오나라에 돌아가 부개를 공격하여 부개를 패배시키니 부개는 초나라로 도망가서 초나라에 항복하고 맙니다. 그 사이에 진나라의 군대와 초가 다시 규합한 군대가 초에 남아있는 있는 오의 군대를 쳐서 이기게됩니다. 할 수 없이 오나라 군대는 오나라로 모두 돌아오게 되고 도망갔던 초소왕은 수도 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지만 2년 후에 오나라는 계속 초나라를 쳐서 초나라 땅을 빼앗자, 오나라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초나라는 수도를 <영>에서 <약>이라는 곳으로 천도하게 됩니다. 이 때 오자서와 손무의 계책으로 오나라는 막강한 초나라를 격파하고, 북쪽으로 제나라와 진(晉)나라를 위협했고 남쪽으로 월나라 사람을 굴복시키게 됩니다.
오나라가 초나라를 쳐들어 갔을 때 월나라가 오나라에 빈집털이 한 것을 보복하기 위해 9년 후에 오나라는 월나라를 쳐들어 갑니다. 이에 월나라왕 구천이 오나라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월나라는 오나라의 적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월나라에 패하게 되고 합려는 손가락에 입은 상처가 덧나서 죽게됩니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겨우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는데 죽었을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세균이 감염되서 죽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항생제가 있었다면 가볍게 회복될 상처였을 것입니다.
합려는 죽으면서 아들 부차에게 월나라에 복수할 것을 유언하고 죽게 됩니다. 그래서 부차는 왕위에 오른 후에 궁실의 문에 시종을 세워놓고 "부차야, 구천이 네 아비를 죽인 것을 잊었는냐?"고 외치게 합니다. 흔히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부차는 장작 위에서 잠을 자고 구천은 곰의 쓸개를 맛보면서 원수를 잊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는 식으로 해설하는데, 부차가 장작 위에서 잤다는 이야기는 없어서 와신과 상담 둘 다 구천이 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차는 군대를 다시 정비하고 조련한 후에 월나라를 공격하여, 부초에서 월나라를 격파합니다.
오나라가 월나라를 격파한 것이 부차가 아버지의 유언을 잊지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자서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다짐하여 합려의 원수를 갚은 것이었습니다. 오자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한 것 처럼 합려의 복수를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것입니다.
월절서라는 책에서 오자서의 심정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합려가 패해 돌아오자 오자서는 속으로 근심하길 '신하가 되어 군주를 장구하도록 보좌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칼받이가 되게 했다.'고 스스로 그렇게 책망하면서 속으로 상처를 입었으나 아는 이가 없었다. 죽은 병사를 묻고 부상입은 사람들을 보살피는데, 이 모든 일을 빠짐없이 스스로 처리하며 눈물을 떨구고 통곡하며 월나라에 복수를 하고 죽고 싶어 했다. 그에 내리 3년 동안 스스로를 책망하며 처자도 멀리하고, 음식도 배불리 먹지 않으며, 추워도 비단옷을 덧걸치지 않고 월나라에 복수할 생각만 했다.>
오자서는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오자서는 거지꼴로 오나라에 왔을 때 자신을 받아주고, 자신의 계책을 써서 초나라를 격파하여 초의 수도 영을 함락시키게 해준 합려의 은혜를 갚기 위해 합려에게 충성을 다했고, 그 충성을 합려의 아들인 부차에게도 바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나라 군대가 월나라 군대를 격파하자 월나라왕 구천은 남은 병사 5천명과 함께 회계산 꼭대기로 피신한 후 오나라에 강화를 청하게 됩니다. 부차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오나라태재 백비가 월나라 대부 문종에게 뇌물을 받고 강화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진언하자 이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이에 오자서는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월왕은 사람됨이 능히 고생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없애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실 것입니다."라고 간언을 올립니다. 그러나 부차는 백비의 계책대로 월나라와 강화하게 됩니다. 민간의 전설에는 중국 4대 미녀 중의 하나인 서시를 월나라에서 바치자 부차가 이를 흡족하게 생각해서 월나라의 강화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후에 월왕 구천은 말 그대로 와신상담하면서 겉으로는 오나라 부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치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행해서 부차의 경각심을 무너뜨리고, 내부적으로 대부 문종과 범려의 정책을 적극 수용하여 국력을 키워 복수할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월나라가 오나라에 강화를 청한 후 21년 후에 구천은 부차를 죽이고 오나라를 멸망시켜 복수를 완성하게 됩니다.
부차는 아버지 오합려의 원수를 잊지 않겠다며 매일같이 시종에게 "구천이 네 아비를 죽인 것을 잊었는냐?"라고 외치게 했지만 결국 진지하게 듣지 않고 건성으로 들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오자서 처럼 원한이 뼈에 사무쳤다면 이렇게 흐리멍텅하게 처리하지 않는 법입니다.
부차는 초나라를 격파한 아버지와 오자서의 업적을 뛰어 넘는 공적을 세우겠다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5년 후에 제나라 경공이 죽고 대신들이 후계자 문제로 다투게 되자 제나라를 치려고 합니다. 오자서는 "구천이 반찬 하나로 밥을 먹고 백성들에게 문상과 문병을 하는 것은 백성들을 하나로 모아 나중에 써먹을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나라에 있어 월나라는 사람 뱃속에 병이 있음과 같습니다. 대왕께서 월나라를 처리하지 않고 제나라에 힘을 쏟으시니 잘못된 일입니다."라고 말하지만 부차는 듣지 않고 제나라를 쳐서 애릉에서 제나라 군대를 크게 이기게 됩니다. 그러자 의기양양해진 부차는 오자서의 계책을 점점 더 멀리하게 됩니다.
사실 부차가 북쪽으로 제나라를 쳐들어가는 전략은 무모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서쪽에 초나라하고 원수지간이 되어있고, 남쪽에 월나라는 복종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언제 배반할 지 모르는 상태인데, 북쪽으로 강대국인 제나라와 척을 진다는 것은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었습니다. 오나라에서 제나라로 쳐들어 가려면 장강과 회수를 건너 지금의 산동성까지 와야 합니다. 제나라와 싸워 이겨 제나라 땅을 빼앗아도 오와 제는 너무 멀어서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겨도 제나라와 싸워 승리했다는 명성외에는 별 성과없이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월나라는 오나라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민족도 같아서 점령하면 바로 오나라땅이 되고 오나라백성이 될 수 있어서 빨리 멸망시키는 것이 오나라에 유리했습니다.
애릉 전투 4년 후에 부차가 또 제나라를 쳐들어 가려고 하자, 오자서는 "제나라는 쳐부순다고 해도 돌밭과 같아 쓸모가 없습니다. 월나라를 먼저 처리하시기를 바라오며,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셔도 이미 늦은 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또 말하지만, 부차는 듣지않고 제나라를 정탐하라고 오자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냅니다. 오자서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길에 아들에게 "오나라가 망할 것이 뻔한데 네가 그 난리 통에 죽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제나라의 대부인 포목에게 아들을 맡기고 오나라에 돌아오게 됩니다.
사기열전을 읽다보면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가 합려를 도와 초나라를 격파하고 초나라의 수도 <영>을 함락시키는 데 공이 있다는 기록은 있는데, 오와 월의 전쟁이 시작된 이 후에는 손무의 소식이 뚝 끊기게 되어 궁금중을 일으키게 합니다. 만약에 손무가 다른 나라로 망명했다면 이 정도의 인물이 망명했으면 반드시 기록에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오와 월의 전쟁이 한창일 때 뛰어난 장군인 손무가 은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니, 오월 전쟁이 시작될 즈음에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는 합려가 부상을 입어 죽었을 때 손무도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어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죽기전에 평생 전우인 오자서에게 자기 자식들을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제나라 대부 포목에게 오자서가 자기 아들을 맡길 때 손무의 아들도 맡겼을 것이고, 그러면 오나라에서 활약한 손무의 후손인 손빈이 왜 제나라에서 태어났는지 의문이 풀리면서 아귀가 맞게됩니다.
백비는 오자서가 동병상련이라고 동정하면서 합려에게 천거해서 오나라에서 태재벼슬을 하게 된 사람입니다. 오나라가 월나라와 강화할 때 부터 서로 사이가 틀어져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오자서를 부차에게 참소하기 시작합니다. "오자서는 사람됨이 고집이 세고 포악하며,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은데다가, 시기심이 많고 교활해서 그가 원망하는 마음을 품으면 큰 화근이 될까 두렵습니다. 전에 대왕께서 제나라를 치려고 할 때, 오자서는 반대했지만, 대왕께서는 제나라를 쳐서 큰 공을 세우셨습니다. 오자서는 자신의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수치스럽게 여겨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다시 제나라를 치려고 하시는데 오자서가 반대하는 것은 오나라가 패해서 자신이 계책이 더 뛰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번에 오자서가 제나라에 사신을 가서 아들을 제나라 대신에게 맡기고 온 것은 반역 행위입니다. 대왕께서는 조속히 그를 처리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부차는 "그대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의심하고 있었소."라고 말하고 사자를 보내 오자서에게 촉루검을 내리면서 "그대는 이 검으로 죽으라."고 합니다.
당시 모든 제후국의 군주들은 초나라를 격파한 오자서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해서 오자서같은 뛰어난 인물이 자기 나라에 와서 재상이 되기를 바랬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형이 죽었을 때 오자서가 초나라에서 탈출하여 오나라로 망명한 것 처럼, 부차를 피해 오나라를 탈출하여 다른 나라로 망명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기를, "아! 참소하는 신하 백비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이는구나!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오나라가 월나라에 망하면 부차의) 관을 만들 수 있게 하고, 내 눈을 파내 오나라 동쪽 성문 위에 걸어 두어, 월나라 적군이 들이닥쳐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게됩니다. 부차는 그 말을 전해 듣고 크게 노하여, 오자서의 시체를 가죽 자루에 넣어, 장강 한가운데로 떠내려 보내게 합니다. 오나라 사람들이 그를 가엾게 여겨, 장강 기슭에 사당을 세우고, 그 일대를 서산(胥山)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오나라 부차는 오자서를 죽인 다음 마침내 제나라를 공격해서 이겼지만 아무 실익이 없이 돌아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패주(覇主)가 되고 싶은 욕심으로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올라가서 여러 제후들과 회맹하고 제후들을 이끌었지만, 그 틈을 타서 월나라가 오나라를 기습하여 오나라 태자를 죽이고 오나라 군사를 격파합니다. 오나라 부차가 급히 돌아와서 월나라에 많은 재물을 바치고 강화했지만, 이미 오나라의 국력은 많이 쇠퇴해 있었습니다. 어떤 제후들도 오나라를 도와주지 않았고, 월나라는 매년 오나라를 쳐들어와 야금야금 오나라 도성을 포위합니다. 마침내 9년 후에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오나라왕 부차를 죽였으며, 자기 군주에게 불충하고 남의 나라의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태재 백비도 주살합니다. 부차는 오자서를 뵐 면목이 없다고 얼굴을 가리고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합니다.
오자서의 일생은 너무나 극적이고 흥미진진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오자서의 편이 되고 맙니다. 오자서는 평생 3번의 배신을 당합니다. 초나라 평왕이 초나라에 충성하는 가문인 오씨 가문을 파멸시켰고, 백비와 부차는 오자서에게 은혜를 입기만 했는데도 합작해서 오자서를 죽였습니다. 그 뛰어난 능력으로도 합려의 은혜를 잊지 못해 끝까지 오나라에 충성하다가 마침내 자결하는 오자서를 안타까워 하게 됩니다.
위의 글 중에서 오자서열전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는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 제5편 오월쟁패, 춘추질서의 해체>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열전의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틱하게 산 오자서를 두고 사마천은 이렇게 평합니다. "만일 오자서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땅강아지나 개미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작은 의로움을 버리고, 큰 치욕을 설욕하여, 그 이름을 후세에 남겼지만, 슬픈 일이구나! 바야흐로 오자서가 장강의 강변에서 곤경에 처하고, 길가에서 걸식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어찌 잠시라도 <영> 땅을 잊은 적이 있었겠는가? 그래서 모든 것을 마음 속에 감추고 참아 내며 공을 세우고 명성을 얻었으니 오자서와 같은 열혈장부가 아니라면 누가 능히 그와 같은 일을 해낼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