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벗
언젠가부터 ‘환경’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지만, 웰빙, 오가닉 푸드라는 이름 속에는 어쩐지 부유함과
트렌디함이 숨 쉬고 있는 것만 같아 다가서기 쉽지 않다. 환경운동은 ‘운동’이라는 말 때문에 거창하게 느껴지기
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건, 지구를 생각하는 건, 결국 우리의 고독함을 덜어줄 단초가
될 수도 있다고, 결코 거창하거나 비싼 것이 아니라고.
고양시 아람누리 전시관에는 어린 시절 우리가 먹고 즐기던 달고나 한 세트가 떡하니 놓여있다. 옆으로는 지구를
살리자는 메시지를 담은 귀여운 애니메이션이 돌아가고, 그 앞으로는 누군가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이 설치작품의 작가 이경래는 주말에는 나와 직접 달고나를 만들어 관객에게 나누어주며 이야기를 나눈다.
"안국동에서 하던 퍼포먼스를 이곳으로 옮겨온 거예요. 옛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간식을 나누면서 우리가
잊고 있던 옛이야기를 나누고, 요즘 날씨 이야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의 환경이나 생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거죠." 조소과를 나온 그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면서 뉴욕이나 서울의 강남처럼 극단적으로 트렌디한 곳들에 자연
스럽게 관심을 가졌고, 패션 디자인 일도 했다. "어린 시절에 전라남도 보성의 시골 동네에서 자랐어요. 도시에 와서
가장 소비지향적인 곳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뒤늦게 어린 시절의 공간이나 환경에 새삼스럽게 관심을 두게 됐
어요." 한번 꽂히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인 터라 처음에는 지나친 투사 이미지마저 있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시
들어가는 지구를 돌보기 위한 생각을 하지 않나, 나중에 얼마나 후회를 하려고 이러나 답답할 뿐이었다. 스스로 선
구자, 선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남들을 가르치려 들기도 했다. "그런 나이브한 모습을 보이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미치광이 같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어요.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던 거죠. 환경이라
는 것도 결국에는 함께 잘 살아나가기 위한 것인데요. 그래서 요즘에는 어떻게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쌍방향
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작가 중심이 아닌, 지구 생태를 위한 디자인. 달고나도 그중의
한 프로젝트이고요." 현재 그는 환경 단체에서 여는 카페를 친환경적이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공간 디자인
에 몰두하고 있다. "디자인은 곧 생활이거든요. 삶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듯이 인테리어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구분하는 것도 아주 기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연스러운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어느 날 회사에 <핸드메이드 생리대>라는 책이 도착했다. 여성환경연대와 네모의 꿈, 친환경적인 서적을 출간하
는 출판사 북센스가 함께한 그 책에는 환경과 여자의 몸에 좋은 면 생리대를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상세한 도안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그 책은 오랫동안 책상 위 A4 용지의 무덤 안에 갇혀 있었다. 왜 실천하지 못했느냐고? 이유
는 간단하다. 생각만 해도 불편하니까. 그러나 본인도 8년째 면 생리대를 이용해왔다는 북센스의 대표 송주영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다들 그래요. 그렇게 사는 건 너무 불편하지 않으냐고. 근데 사실 우리가 좀 불편해도 괜찮
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지금 기획하고 있는 책은 대기업에 다니다가 전기 문명에 회의를 느끼고 회사를 나와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을 발명한 일본의 엔지니어의 이야기예요. 그는 실제로 전기 없이 작동되는 냉장
고를 발명했는데, 사실 그 냉장고는 굉장히 커요. 냉방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지도 않는 냉장고예요. 근데 사실 우
리는 그렇게도 살 수 있고, 그 불편함 속에도 즐거움이 있거든요."
핸드메이드 생리대를 만드는 법, 전기 없는 전자제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그 기술을 알려주는 남자의 이야기 등
을 책으로 엮으며 그녀는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자급자족하는 삶에 마음을 주게
되었다고 말한다. 환경이나 자기 자신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는 삶. 그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 현재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건 근본적으로 자연을 훼손
하는 일이죠. e북이 활성화되고 도서관 중심으로 유통구조가 개선되었으면 좋겠지만 궁극적으로 책 만드는 걸
그만두는 게 제 목표예요.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최대한 완성도 있는, 존재의 이유가 있는 책을 만드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고요."
불편한 그린티 파티. 저마다 컵이며 숟가락, 자기 그릇을 가지고 모여 환경에 대한 수다를 나눈다. 세미나가 아니
라 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다. 이 파티가 끝내주게 재밌기 때문이다. 도시 농부 프로젝트. 농촌을 찾아가 할머
니의 레시피나 살림살이 같은 진짜 한국 문화를 배우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이 도시의 남는 땅에 한 뼘 크기의 유
기농 식물을 키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귀여운 키트를 만든다. 결식 어르신들의 무료 급식 기금 조성을 위한 아
름다운 얼굴. 어르신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작업으로 감성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전시를 만든다.
이쯤에서 커뮤니케이션 우디의 정체가 뭔지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우디는 문화 예술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로
기업의 자본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소셜 벤처다. 무지막지한 기업의 홍보
비용이 사회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마음속에 한 움큼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도록 재미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대학원 시절 친구 사이였어요. 함께 무언가를 해보기로 하고, 그 때
나누던 수다를 바탕으로 '안녕 산, 들, 바람'이라는 기획안을 썼어요. 지금 와서 봐도 그 안에 우리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이 들어 있어요. 환경, 사람, 문화.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마인
드는 결국 좋은 문화가 바탕이 된다는 게 저희 생각이에요." 우디의 두 여자가 차려놓은 판에서 환경문제는 '당위'가
아니라 '놀이'가 된다. 그 안에서 놀다 보면 환경에 대한 관심은 결국 내 삶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
다.
에디터: 손혜영 김지선
출처: www.marieclair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