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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의 싸움이 시작된 순간, 모두가 내 적이 됐다"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37>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기사입력 2013-07-14 오후 12:53:17
누가 고고한 안동의 선비를 이토록 분노하게 했나? 어떻게 해서 그는 기득권이 건드리지 않으려는 재벌의 문제, 그것도 삼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게 됐나? 그것도 정부기관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금융연구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나는 한 번도 내가 진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개혁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다만, 내가 그동안 정통 경제학을 하면서 배운 것이 우리 경제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내가 배운 바대로 경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놈이라며 색칠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시장경제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 문제는 시장경제가 재벌 때문에 제대로 안 돌아가는 데에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학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다. 다만 어떤 사람이 정당하지 않게 잘 먹고 잘 산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좋은 경제이다. 대한민국 5퍼센트에 속하는 정통 경제학을 한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시장경제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의 독식은 죄악이다.
"학자가 글을 쓸 때는 이상적인 수준까지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 문제를 다 고려해서 여기까지만 하자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학자는 해야 할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는 거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할 것인지는 현장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진보적인 학자들이 우(友)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보다 훨씬 세게 좌(左)로 이야기를 해줘야 중간에라도 타협을 하고 좌 쪽으로 조금이라도 올 수 있다."
학자란, 자신이 학문하는 분야의 진보 보수의 양 끝 사이에서 진보와 보수의 중간 언저리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상(理想)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맞다. 그것들 사이에서 최종 타협을 하는 것은 정치와 행정의 몫이기 때문이다.
"계속할 거다. 여론을 환기시키고 사회가 바뀌도록 노력할 거다. 그것이 현실에 참여한 학자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큰 바위 얼굴이 나와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제는 나도 곧 은퇴할 날이 다가오는데, 남은 기간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충성하고 도와줄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내게 남은 모든 것을 바쳐서 불사를 수 있는 인물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이 정부가 끝나기까지 아니, 그의 모든 것을 바쳐서 충성하게 될 백마 탄 초인이 나온 이후에도 이동걸 교수의 쓴 소리는 계속될 것 같다. <편집자>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표 경제민주화가 허구인 이유", "박근혜, 잘못된 경제인식도 문제다", "'박근혜 불가론'의 11번째 이유" 등의 제목으로 <한겨레>에 칼럼을 썼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후에도 "위기의 근혜노믹스", "박근혜식 창조경제, 성공할까?" 등 박근혜 정부에 계속 쓴 소리를 하고 있다. 권력이 이미 넘어간 상황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계속 내는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불안하지 않나?
내가 그 사람들한테 잘 보일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잘 보인다고 뭐 얻어먹을 게 있는 것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거나 불안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민주당이 잘할 거냐 못할 거냐는 것을 떠나서 새누리당과 '박근혜'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박근혜를 반대했던 이유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우리나라가 많이 망가졌는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앞으로 이 나라가 더 퇴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대한민국 50년 발전사에서 분명 '박정희'가 기여한 바는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가 다시 박정희를 불러낼 만큼 후진국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박정희가 대통령이었는데, 내 딸이 대학을 다니는 요즘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온 건 정치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여권은 야당의 아젠다를 훔쳐 쓰면서 이겼고, 야당은 모든 것을 도둑맞고 바보처럼 졌다.
▲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도 칼럼을 쓰면서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못 써서 "박근혜가" "박 대통령이"라고 썼더니 신문사에서 자꾸 "박근혜 대통령"으로 바꾸더라. 아직까지 이게 내 심정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고 5년간 그 자리에 있을 텐데, 이 기간에 우리나라가 더 퇴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라도 너희가 약속한 걸 제대로 지키라는 차원에서 '누군가는 계속 쓴 소리를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경험한 것이 있다. 그동안 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됐고, 상당히 성숙해졌기 때문에 정부가 어떤 한 사람의 생활을 악의적으로 좌지우지하지는 않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생활을 중단할 만큼 개인의 사생활에 개입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적어도 그런 식으로 치졸하게 국민들을 괴롭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밥통 공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의 생계에 위협을 주며 협박했다. 금융연구원장직을 임기 중에 그만두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학교로 갈걸, 그러면 적어도 65세까지는 안전할 텐데...'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불안한 것은 아니다. 수입이 상당히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못 벌어먹는 것도 아니고, 또 박정희 시절처럼 사람을 잡아다 죽이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핍박과 감시는 있고 직장에서 밀어내는 생존의 문제는 심각하다. 나야 어디 가든 밥벌이는 할 수 있지만, 일반 국민에게 이런 생계의 위협은 정말 큰 것이다.
국가 권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에서 경험했지만, 박근혜 정권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개인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이 힘들진 않나?
더 이상 쫓겨날 데가 없다. 지금 있는 학교의 계약기간이 다 되어서 여기에 더 있을지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지 모르겠지만, 어디든 가서 강의하고 글 쓰면서 살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예순이니 몇 년 만 더 일하면 된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생활을 위해서 최소한의 돈은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하든 생계는 유지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연구원장을 하면서 돈에 관해서는 굉장히 신경 썼다. 단 한 푼도 연구원 돈은 건드리지 않았고, 세금도 다 찾아서 내려고 했다. 분명히 상대편에서 뒷조사해서 허물이 있으면 협박을 할 것이고, 여기에 조ㆍ중ㆍ동이 달려들어 죽이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을 느끼기도 했다. 직원들이 아프면 금일봉을 주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고, 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영수증 처리를 할 수 있는 꽃이나 과일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도 병원 생활을 해봤고 우리 아버지·어머니가 병원 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병원 생활은 정말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내 월급에서 50만 원, 100만 원을 빼서 금일봉을 주는 식으로 직원들 신경을 많이 썼다. 이렇게 신경을 썼다는 것 외에는 별것이 없다.
금감위 부위원장 시절과 금융연구원장 시절 비판했던 '투자유가증권평가이익', '금산분리완화정책' 등은 삼성을 비롯한 재벌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이 내 적이 됐다"라고 말했듯이 삼성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반드시 짚어야 할 핵심 문제는 무엇이었나?
2004년 금감위 부위원장 시절, 내가 삼성과 부딪혔던 것은 투자유가증권평가이익이라는 것이었다. 재벌들은 항상 돈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은행을 갖고 싶어 하는데, 재벌의 은행소유는 은행법으로 금하고 있다.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후 제일 먼저 한 것이 삼성에서 은행을 뺏고 재벌의 은행소유를 금지한 것이었다. 그 당시 한일은행인가를 삼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은행 다음으로 돈이 많은 곳이 생명보험사인데, 재벌이 은행을 못 갖게 했더니 삼성이 생명보험에 눈독을 들였다. 삼성은 삼성생명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동방생명을 인수해 지금까지 키웠다. 그리고 그 생명보험사의 돈으로 계열사를 늘리면서 성장했다. 그중에 가장 성공한 게 삼성전자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많이 갖고 삼성그룹의 홀딩 컴퍼니 역할을 한다는 것은 모두 삼성생명 돈으로 투자를 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삼성생명 돈은 이건희 회장의 돈이 아니라 계약자의 돈인데, 계약자의 돈으로 투자를 한 것이다. 삼성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지분을 계약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회계를 조작해 주주와 회사의 몫으로 전부 돌리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당겨간 돈이 4조 원 가량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엔 2조 원 정도인 줄 알고 터뜨렸는데, 조사하다 보니 4조 원 정도로 늘었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삼성에 전달한 메시지는 "이 건을 가지고 너희를 분리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계약자의 돈을 탈취해 간 것만큼은 계약자의 이익보호 차원에서 계약자 몫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일은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침해한 문제이기 때문에 계약자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1차적 목적이었다. 물론 재벌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더 커지는 건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재벌 개혁'과는 별건이다. 그런데 삼성에선 그것을 재벌 개혁으로 본 것이다.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됐고, 그 순간 모두가 내 적이 됐다.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밖으로 터뜨릴 때 마음이 어땠나?
우연히 사건의 전말을 알게 돼 검토하다 보니까 삼성이 회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처음에는 감독원 보험팀을 데리고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사보타주(sabotage, 고의적인 사유재산 파괴나 태업 등을 통한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검토해서 가져오라고 하면 그 다음에 똑같은 것을 가져오고, 왜 일이 진행이 안 됐냐고 하면 준비 중이라고만 하고, 일주일 뒤에는 또 같은 것을 가져왔다. 내가 위원장이었으면(당시는 감독원장 겸임이었다) 그놈들을 파면시키든지 좌천시켜버리고, 새로 팀을 구성하면 되지만 내게 인사권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거기서 접고 혼자 한 3~4개월을 고민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 일을 터뜨리면 삼성이 죽자 사자 달려들었을 텐데…. 여기서 내 주장이 조금이라도 틀렸으면, 나는 그날로 생매장되는 거였다. 감독원은 등을 돌렸지, 나 혼자서 싸워야 할 싸움인데 삼성의 힘이 얼마나 센지는 알고 있지, 사실 겁도 많이 났다. 그렇지만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관련 전문가들에게 이 일이 삼성 건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런 건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으면, 열이면 열 "그것은 이동걸 박사 말이 맞다"며 내 의견에 동조했다. 그렇게 확인 작업을 거치고 난 후에 터뜨린 것이다.
좀 변칙적으로 기자들과 밥을 먹으면서 이 사실을 터뜨렸는데, 신문에 보도된 이후부터는 많은 학자들이 거기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걸 꺼렸다.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10명 중에 8~9명이고, 나머지 1~2명은 내가 틀렸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내 욕을 하기 시작했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로 뒤에서는 내가 틀렸다고 수군대고 다녔다. 그래서 일일이 그들을 다 만났다. 일부 보수 학자들은 나더러 "이동걸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로 분란을 일으킨다"라고 말해서 조목조목 반박해줬다. 어느 교수는 생명보험학회까지 동원해서 내 욕을 해서 직접 가서 정면으로 싸우려고 했다.
결국 금감위원장까지 나서 "부위원장님이 거기에 가서는 안 된다"고 말려서 못 갔지만, 몇몇 학회장들과 교수들에게는 직접 만나자고 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나를 만나는 자리에 '내가 자기 욕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만큼…'이라면서 신문 기사를 가지고 나왔다. 증인을 세운다며 내 고등학교 선·후배와 교수들 몇 명까지 데리고 나왔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욕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그 신문 기사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런데 끝까지 보여주지 않더라.
내가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 내가 뭐가 틀렸냐?"라고 물어보니, 한 시간 동안 내가 틀렸다는 얘기는 못하고 주변적인 이야기만 했다. 끝까지 들었더니, '이 친구가 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못하는구나. 자신이 없는 게로구나'하는 감을 잡았다. 그래서 "그러십니까. 말씀 다 하셨습니까?"라며 "그럼, 이제 내가 말하겠습니다."하고는 20분쯤 나는 이런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것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딴소리하면, 그때부터 당신과 내가 공개적으로 한판 붙을 각오를 해라"고 했다. 그랬더니 "뭐, 싸우자는 게 아니고..."라면서 말끝을 흐리더라.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얘기를 안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이론적으로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제압하고 났더니, 그 다음에는 "이동걸은 일을 시끄럽게 처리한다"라며 나를 욕하더라. 한번은 청와대 고위 공무원에게 불려 가서 "일 좀 조용히 처리하라"는 말을 들었다. 경찰이 강도질을 한 놈을 잡아 쇠고랑을 채워 가는데, 그놈이 조용히 안 가고 반항하면서 시끄럽게 한 것을 경찰 탓하는 셈이다. 그것은 경찰이 잘못한 게 아니다. 박정희식으로 하면 시끄럽게 못 하게 입에 재갈 물리고 쥐어박아서 데려가는 것인데, 민주적으로 하려다 보니까 발악하고 난동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범법자가 조용히 해야지 어떻게 경찰이 조용히 하느냐?"라고 했다. '금감위 부위원장'이라는 공권력이 정당한 이유와 절차를 따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할 때는 그것을 위배한 자가 마땅히 따라와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성의 반응은 어땠나?
내가 금감위 부위원장으로 있었을 때 재벌계열 금융기관들의 법규위반사항을 여러 건 적발해서 시정도 하고 처벌도 했다. 그 때 경험에 의하면, 보통 다른 재벌들은 법을 어긴 게 적발되면 순순히 정부의 시정명령에 따른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따르는 척이라도 했다. 그런데 삼성은 달랐다. 정부를 이기려고 하더라. 아니면 다른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나를 잡으려고 그랬던 건지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이 건으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삼성생명 계약자들인데, 어림잡아도 수백 만 명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삼성생명이 편법으로 가져간 4조 원을 나눠 가져봐야 각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크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덜하고 실제로 이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삼성만 직격탄으로 손해를 보는 일이기 때문에 죽자사자 달려들었다.
삼성이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기업으로 크면서 공을 세운 것도 물론 많지만, 그만큼 힘이 세지면서 여러 과도 저질렀다. 그것을 고쳐야지만, 우리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 재벌이 잘한 면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재벌의 부정적 측면을 바꾸자는 것이다. 많은 재벌들이 다른 중소기업들이 기여한 부분을 뺏어가면서 자기네들이 제일 많이 기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주체들이 경제 행위를 못하게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경제 잠재력을 죽이는 것이다.
환율이 오를 때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대재벌들은 떼돈을 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들에게는 환율이 오른 만큼 원자재의 부품 값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만큼을 더 뺏어간다. 국민들은 높은 물가만큼 그것을 지불하면서 재벌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보조해 준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고 힘이 없는 중소기업들이다. 나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왜 재벌을 편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 말처럼 정상적으로 시장경제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경제 주체들이 각자 기여한 만큼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 이상으로 가져가는 것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힘이 엄청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돌아가는 이익 집중을 막을 주체가 없는 상황이다. 재벌의 집중화된 힘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러 해 전부터 계속 '기업생태계' 이야기를 해 왔다. 자연적이고 건전한 기업생태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힘센 공룡들이 너무 설치고 다녀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기업을 키워야 하고 대기업의 포악함을 제어해야 한다. 실제로 중소기업이 우리의 생명력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건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다. 2000년대 들어 10년간 중소기업에서 300만 개의 일자리가 나왔고, 대기업에서는 50만 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기업의 흐름을 보면, 벤처에서 시작한 기업이 큰 기업으로 커 나갈 때는 일자리가 많이 생기지만 일단 그 기업이 성숙하면 더는 일자리가 안 생긴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이제는 성숙한 기업이 되어 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새로 내놓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자꾸 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여론이 형성된다. 심지어 이제는 박근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계속 우리나라는 30대 재벌이 아닌 300대, 3000대 기업 체제로 가야 한다고 하는 거다. 우리가 만약 재벌이 우리를 먹여 살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들을 옹호한다면 절대로 재벌개혁을 못 한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를 먹여 살리지 않는다. 실제로 재벌이 없는 영역에서 새로운 대기업이 나왔지 않나. 미래에셋과 웅진 등의 기업이 그랬고, 게임 산업에서도 큰 기업들이 많이 나왔다. 다행히 재벌 따님들이 게임을 안 해서 그 산업이 컸다(웃음). '햇반'을 만든 것을 보면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창조적인지 알 수 있다. 재벌이 생각하지 못한 영역에서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희망적이다.
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그만둘 때도 그랬고, 2009년 금융연구원 원장을 그만둘 때도 마찬가지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다가 결국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나?
함부로 자리를 던지고 나온 적은 없다. 내가 여기서 조금만 굽히고 더 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두더라도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할 것인지 마지막까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결정한다.
부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삼성 건을 시작할 때 기자들에게 "지금 내가 삼성을 건드리면 이 자리에서 3개월을 못 버틴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이것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내 양심에 의해 이 일을 그냥 덮고 갈 수는 없었다. 내가 그냥 한 번 눈 감으면 그걸로 영원히 덮고 가야 하는 일이었다. 두 번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정재 금융위원장이 나가고 윤증현이라는 사람을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나를 승진시키지 않았을 때 '아, 노 대통령의 금융개혁·재벌개혁은 여기서 끝났다. 나보고 더 이상 일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구나' 싶었다.
ⓒ프레시안(최형락)
금융연구원장으로 반년 정도 머문 후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었는데, 그때부터 사퇴 압박을 많았다. 버티려면 몇 달은 더 버틸 수 있었겠지만, 당시 이명박 정부 내부에서도 티격태격하면서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많았다. 그것들을 잘 해주지도 않으니 나중에는 "청와대랑 한 판 붙으려는 거냐?"는 소리도 듣고 협박도 받았다. 내가 부위원장을 할 때 은행에서 전무, 상무 하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자 은행장이 되어 정부의 사주를 받고 나더러 그만두라고 공격해왔다. 그래도 임기가 3년인데 절반은 넘겨야지 하는 생각으로, 2007년 7월 14일에 취임해 딱 1년 반인 2009년 1월 15일을 넘기고 보름을 더하고 사임했다. 버틸 만큼 버티고 나온 것이다.
나는 어떤 문제 앞에서 여러 고민을 하는데, 기왕 문제를 해결할 때는 최대한 미는 데까지 밀어 보자는 주의다. 예를 들어 학자가 글을 쓸 때는 이상적인 수준까지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 문제를 다 고려해서 여기까지만 하자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학자는 해야 할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는 거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할 것인지는 현장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이상적인 수준을 두고 현재의 상태에서 최대한 이상적인 상태로 밀어 보자는 게 우리 쪽이고 반대로 최대한 현 상태를 지속하자고 하는 쪽이 보수다. 여기서 바로 행정의 중간타협이 필요한 것이다.
금감위에 있을 때 친한 선후배 동료였던 김상조, 전성인, 윤석헌 교수 등이 "밖에서 우리들이 너무 세게 얘기하면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기에 "당신네들이 약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더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진보적인 학자들이 우(友)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보다 훨씬 세게 좌(左)로 이야기해줘야 중간에라도 타협하고, 좌 쪽으로 조금이라도 올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내 입장을 고려한다고 해서 적당히 이야기한다면, 우 쪽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내 욕도 하면서 세게 말해야 나도 저쪽으로 가서 "나도 욕먹어 가면서 당신네들과 타협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바로 행정의 묘미이다.
행정을 그만두고 학자로 나왔을 때는 직접 왼쪽의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싶어서 나온 건가?
일단 나왔으니 내 위치로 돌아가서 원래 주장하려던 바를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야 이쪽으로 조금이라도 끌고 올 수 있다. 어차피 좌가 집권하든 우가 집권하든 간에 양쪽이 하고 싶은 대로는 다 못한다. 중간에서 조금 더 좌로 가느냐, 우로 가느냐 정도의 차이다. 양쪽에서 싸우다가 결국 중간 어디쯤에서는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계속 떠들어 줘야 한다.
언론이나 학자들 사이에서 삼성 문제나 재벌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에도 일종의 '호기' 같은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삼성의 문제나 재벌 개혁의 이야기가 뜸하다.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가?
우리 사회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에게 애증(愛憎)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애(愛)라는 건 그래도 저만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해서 우리 경제를 끌어왔다는 것이고, 증(憎)은 저들이 갑 노릇을 하면서 을에 대한 착취를 해왔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애가 더 득세하고 어떨 땐 증이 득세한다. 바로 증오가 득세할 때가 재벌개혁을 할 호기다.
1997년 경제위기를 맞고 몇 년간은 재벌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국민들 사이에서 확실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개혁적 조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재벌들이 반격하기 시작했다. 모든 상권을 다 집어 먹는데, 이제는 먹다 먹다 먹을 게 없어서 동네 라면집, 떡볶이집을 먹으면서 골목 상권을 장악했다. 이것을 피부로 느낀 서민들이 이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고 2011년경부터는 다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때쯤 고민을 하다가 이제 타이밍이 됐다고 여겨 "만약 삼성그룹이 없어진다면"이라는 글을 썼다. 지금이 바로 재벌 개혁의 모멘텀을 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 때는 사람들이 재벌의 폐해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던 때라 재벌 개혁 쪽으로 확 쏠렸다. 심지어는 새누리당 박근혜도 경제민주화 하겠다고 사기를 쳤다. 우리 쪽의 아젠다가 저쪽으로도 넘어가 결국 새누리당, 민주당 전부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한 2년 가까이하면 사람들이 식상해 한다. 그러면서 "새누리당도 한다고 하는데 왜 자꾸 시끄럽게 또 이야기하느냐?"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멘텀이 중요한 거다. 이것을 놓치고 정권을 못 잡는다면 그다음엔 그냥 손 놓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 너희들도 한다고 했으니까 약속한 만큼이라도 해봐라"하고 쓴 소리를 계속하면서 다음 모멘텀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수구 기득권층과의 싸움에서는 돈의 힘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우리 쪽이 불리하다. 저쪽은 워낙 돈이 많아서 사람도 기계도, 심지어는 군대도 살 수 있다. 요즘 들어오는 메일 중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전경련, 한경련 등에서 보내는 메일이 가장 많다. 전경련에서 일반 학자들을 동원해서 "경제민주화하면 나라 잡는다", "경제가 어려운데 재벌을 왜 속박하느냐?", "일자리를 늘려야지 경제민주화가 웬 말이냐?", "서민들의 시기심과 증오로 국민갈등이 생겼다" 등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글들을 수도 없이 발행한다. 그 밑에는 몇 십 명의 박사들을 가진 한국경제연구원이라는 수구 싱크탱크도 있다.
또 삼성, 현대 등 재벌마다 경제연구소를 두어 수없이 많은 자료를 쏟아내면서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 아젠다를 끌고 가고 있다. 여론몰이를 하는 거다. 국민들도 자꾸 그 말을 듣다 보면 세뇌되기에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더 세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역할을 소수긴 하지만 김상조, 전성인, 유종일, 최태욱 등의 학자들이 열심히 해주고 있다. 그런데 중과부적(衆寡不敵)이다.
결국 국민들의 불만이 돈의 힘을 능가할 만큼 증가하면서 동시에 국민들의 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원론적인 측면에서 국민들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해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본다. 그런데 그다음 개혁의 효과를 보여 줘야하는 민주당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지면서 국민의 열망에 대해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이만큼 만들어 줬는데 기회를 놓치다니 당으로서 허접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12년 총선 당시 유종일, 이해영, 이상이, 홍종학 교수(현 홍종학 의원), 우석훈, 선대인 씨 등으로 꾸려진 '9988 유세단(99% 국민을 위해 88 뛰는 후보들을 응원한다)'과 함께 송파 을에서는 천정배 후보를, 강남 을에서는 정동영 후보를 지지했다. 평소 선비라고 불리는 이동걸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유세 현장에 있는 모습이 약간은 생경했다. 어떤 마음으로 활동을 함께했나?
그만큼 절박했다. 사실 피켓만 들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마이크 잡고 얘기하라고 해서 당황했다. 돌이켜 보면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 자기 밥그릇을 챙기다 보니 일이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 차원에 공천을 할 때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동시에 당의 쇄신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을 공천해야 하는데 "그 자리는 누구 자리였으니까 그 자리 지키기 위해선 누구를 줘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내가 칼럼에서 "지역구가 명동 좌판이냐?"라고 했다. 국회의원 공천을 사고파는 식으로 하니, 하도 화가 나서 경제학자나 정치학자가 해야 할 얘기를 했다. 그런 절박함으로, 밖에 뛰쳐나가서 소리도 지르고 한 것인데 별로 도움은 안 됐을 것이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고 나서 민주당 일각에서 중구난방으로 "이번에 진보 쪽의 득표율을 모두 모아보면 우리가 이긴 거다"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더라. 그런 말을 하는 거 보니까 '대선에서도 지겠구나' 싶었다. 화가 나서 욕도 좀 했다.
결국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정치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한다는데, 정부가 재벌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옛날에 우리나라가 자본이 부족했을 때는 박정희 스타일로 정부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 뒤 자본 공급이 이루어졌다. 그 혜택을 받은 것이 바로 재벌이다. 옛날에는 부족한 자본을 모아준다는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돈이 너무 많은 상황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게 돈이다. 대한민국의 금융자산 총액이 자그마치 1경을 넘는다. 1경은 1조의 만 배다. 요즘 제일 많이 받는 문자가 "오빠 심심해?"랑 "돈 쓰세요"다(웃음). "전화를 거시면 4000만 원 즉시 입금" 등과 같은 메시지가 허다하다. 금융기관에 돈은 너부러져 있는 것이다. 이 돈을 가지고 옛날처럼 관치금융을 통해 재벌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중소기업을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본래 금융의 기능은 자본이 필요한 부분에 자본을 적절히 제공해주면서 수익도 얻고 옥석도 가리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시작했던 금융개혁의 목표도 바로 금융의 본래 기능을 회복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168조 원이라는 거액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어 붕괴된 금융산업을 복원시키고 또 수많은 제도개혁을 했던 건데, 오히려 이것이 재벌과 관료의 힘만 키웠다. 그래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재벌과 관료들이 눈치라도 봤는데,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너무 많이 퇴보했다. 60년대, 70년대로 돌아간 기분이다.
박근혜가 '창조경제'를 하겠다고 했으니, 앞으로 할 일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든 금융이든 이것들이 시장 안에 골고루 퍼지도록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이 억눌린 사람에게나 혹은 지금은 시장 경쟁에서 쳐져 있지만, 앞으로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경제는 아직까지 큰 놈이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모든 권력을 행세하는 후진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 시장경제가 극도로 왜곡돼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 개혁이란 재벌들이 유망한 중소기업을 돈의 힘으로 무자비하게 죽이는 생태계, 창조력을 질식시키는 오염된 생태계를 깨자는 것이다. 분명 바뀌리라 기대하고 싶지만, 실상은 쉽지 않다. 재벌뿐 아니라 관료의 힘도 세졌기 때문이다. 이 둘이 연합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경제민주화란 비정상적인 경제 기득권을 깨는 작업이고 거기에 우리 생사가 달려 있다고 본다. 박근혜가 잘해야 하는데, '박근혜의 창조경제'에는 내용이 없다.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김대중 정부 행정부에서, 또 금융감독위원회와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일하면서 가장 재밌게 일했던 것은 언제였나?
김대중 정부에서 1년 동안 청와대에서 일했던 때와 노무현 정부 때 금융감독위원회에서 1년 반 동안 부위원장을 할 때가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이 있었다. '정말 쓰러져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도 많이 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그 일을 하는 동안 '아, 이런 게 공권력의 힘이구나'를 여러 번 느꼈다.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발휘되는 공권력을 당해낼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당시 너무 바빠서 일기를 못 써 자꾸 기억에서 사라지는데 돌이켜 보면 정말 재밌는 일이 많았다. 김대중 정부 때 대우를 포함해서 부실재벌들을 구조조정 시키면서 국민 세금부담을 30~40조 원 이상 줄였다고 자부한다. 그 정도면 대한민국 모든 대학생의 몇 년 치 등록금은 될 것이다. 만약 구조조정을 계속 미뤘다면 그 빚이 점점 커졌을 텐데, 싸우면서까지 구조조정을 시켜 비용을 줄이고 또 비용이 덜 드는 방법을 찾기도 했다. 생명보험회사를 통한 재벌의 이익 편취 문제를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생보사들까지 못하도록 법을 바꾼 것도 의미가 있었다.
정무직 공무원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가끔 '나는 이 자리가 이렇게 힘든데 공무원들은 어떻게 저 자리에서 저렇게 잘 버틸까' 하고 고민을 했다. 이유는 딱 한 가지였는데 공무원들은 시키는 만큼만 하고 또는 하는 척하고 그 자리를 즐기면 된다. 공무원들이 과장급 이상이 되면 입맛은 재벌급 정도가 된다. 앞으로 장관까지 생각하는 공무원들은 커리어를 생각해서 돈은 조심하는 것 같더라. 제대로 안 된 공무원들이 돈까지 받는 거다. 어떤 공무원들과 식당에 한 번 가면 정말 최고급으로 시킨다. 자기들 돈이 아니니까 맨날 비싼 와인 시켜먹으면서 고급스러운 생활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물러날 때쯤 되면 나가서 갈 자리를 만든다. 내가 금감위를 그만두고 쉬면서 다시 연구원으로 복귀하는데 주변에 친한 기자들과 공무원들이 나더러 "왜 나갈 자리를 안 만들어 놓으셨어요"라고 하더라. 그게 다반사이다.
내가 일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은 중에는 이상한 로비를 한다거나 하는 위험한 사람도 있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거의 다 피했다. 그런 사람들은 나를 대접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는 열 명을 만난다고 하면 세 명은 내부 직원들이나 동료들 밥을 사주고, 다섯 명쯤은 학자들이나 외부 사람들 만나서 의견을 듣고 설득하고, 나머지 한두 명 정도 옛날부터 알고 지냈던 금융기관의 사람들을 가볍게 만나 금융시장 돌아가는 사정을 듣는 정도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 끼니가 일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 일 자체가 힘들고 지겨워 죽겠는데 다른 공무원들은 잘도 버티더라.
이제는 그 자리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다만 좋은 후배들이 공직에 많이 들어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좋은 사람들을 키우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 베이스를 만들어 놓으면, 다음에 진보적인 정권이 됐을 때 그 사람들이 들어가 일하기 시작하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개혁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하면서 그런 단초를 볼 때마다 보람을 느꼈다. 쑥스럽지만 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는데, 내가 그만두고 나서 도루묵이 된 것이 많아 아쉽다. 그렇지만 '어차피 나는 어떤 흘러가는 흐름에서 그 순간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고, 안 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 부분은 누군가가 또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차피 수십 년 쌓인 병폐가 하루아침에 한두 사람의 힘으로 고쳐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꾸준히 해나가야지.
'경기고등학교-서울대-예일대'라는 한국사회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형편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고 충분히 엘리트이면서, 어떻게 고급스러운 공무원의 입맛보다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었나?
나도 입맛이 높다(웃음). 가끔 고급 와인도 마신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노무현 정부 때 (금융감독위에서) 1년 반을 하고 나왔을 때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보좌관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당시 몸도 많이 아팠고 다시 (관료직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증권거래소에서 오라고 하는 것도 거기 가서 내가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한국은행의 금통위원으로 가라고 하는 것도 그냥 안 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월급을 한 수억 원씩 준다고 하던데 '아, 갈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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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복귀를 위해 애쓴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면에 재경부는 나를 많이 반대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저 친구는 동창들과도 교류를 많이 안 한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거였다. 어이가 없었다. 물론 동창회에 나가긴 하지만, 주로 친한 멤버들이나 보고 대부분 상갓집이나 결혼식 같은 데서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하는 정도이지 친구들하고 긴밀하게 만나진 않는다. 그러니 공무원들이 그렇게 욕을 하더라. 이렇게까지 치졸하다. 내가 친구들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단계에서는 바쁘고 서로가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못 만나게 되는 것이고,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만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저질스러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거 아닌데? 이것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게 아니야?"라고 몇 번 글을 쓰고 나면 저쪽에서는 나에게 자꾸 빨간 칠을 한다. 내가 A라는 주장을 하고 다른 사람이 B라고 주장을 하면 이 두 주장이 생산적인 논쟁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건설적인 논쟁의 대표적인 예로 넉시(R.Nurkse)와 허쉬만(A. O. Hirshman)이라는 두 명의 학자가 있는데, 넉시는 균형 성장론을 주장한 분이고 허쉬만은 불균형 성장론을 주장한 사람이다.
균형 성장론은 경제가 균형 잡히게 발전하지 않으면 결국 무언가 뒤틀리고 브레이크가 걸리기 때문에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불균형 성장론은 가장 효과가 높은 산업 쪽으로 지원을 몰아주면서 그 산업을 키우면서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산업도 키우자는 주장이다. 넉시는 그렇게 되면 경제 불균형이 심해져서 결국 을·병·정은 죽고 갑만 크게 된다며, 서로 치열하게 논쟁했다. 누가 맞고 틀렸다기보다는 둘 다 맞고, 둘 다 틀린 거다. 상호보완적인 거다. 그러다가 넉시 교수가 먼저 타계했는데, 허쉬만이 넉시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다음부터는 자신도 논문을 못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식으로 논쟁은 서로가 상생할 수 있도록 생산적이어야 되는데, 우리는 논쟁을 시작하면 색칠부터 한다.
정통 경제학을 한 학자가 어쩌다 진보적인 학자로 분류된 건가?
나는 한 번도 내가 '진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개혁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다만, 지금껏 미국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유럽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자본주의 정통 경제학밖에 모른다. 정통 경제학을 하면서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배운 바대로 이것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놈이라며 색칠한다. 하지만 나는 시장경제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 문제는 시장경제가 재벌 때문에 제대로 안 돌아가는 것이지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정태인 소장이 한 말이 '정통 경제학을 한 사람 중에 자기하고 얘기가 될 수 있고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장하성, 이동걸, 김상조밖에 못 봤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정통경제학이 온통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굉장히 우경화돼 있는 게 사실이다. 언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럽을 두고 한참 오른쪽으로 와야 미국이 있고 거기에서 한참을 더 오른쪽으로 와야 한국이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 표현이 정확히 맞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진보는 미국 기준으로는 중도 개혁이나 온건한 민주당 수준밖에 안되고, 유럽 기준으로 보면 보수나 마찬가지다. 나라는 사람이 진보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고 개혁적인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은 반대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우경화돼 있는지를 보여 준다. 내가 진보로 분류되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색칠하고 구분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진보를 선택했건 하지 않았건, 그럼에도 지금의 위치에서 '진보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가?
주변에 나보다 훨씬 더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내 친구들은, 특히 고등학교 동창들은 대부분 나보다 훨씬 더 잘 산다. 하지만 나도 이 정도면 웬만한 사람들보다는 꽤 잘 벌고 잘 산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함께 돈을 벌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 외식도 하고 휴가여행도 가고 뮤지컬도 보고 할 정도는 된다. 골프는 안 치면 된다. 외제 차도 안 몰면 된다. 현대차도 성능이 좋다. 집도 있고. 대한민국 5퍼센트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면 된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교수 중에서 더 잘 먹겠다고 저쪽에 붙는 놈들은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 우리나라에서 교수의 월급 수준은 재벌 기업의 회장님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지금 월급에 앞으로 연금까지 더하면 굉장히 높다. 그런데 이런 교수들이 돈에 욕심을 부려서 재벌들의 어용 노릇을 하는 것을 보면 좀 메스껍다. '그 정도면 됐지 얼마를 먹으려고 저렇게 아부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다.
'내가 옳다고 생각이 되면 그것을 추진한다'고 했다.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나?
학술적인 면과 논리적인 면이 있다. 우선 학술적, 논리적으로 틀리면 안 된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은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것은 학술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A부터 D까지의 논리 중에 목표에 따라 자기가 선택을 하는 거다. 이 단계에서 자신이 사회를 보는 눈, 즉 '무엇이 정의인가, 어떤 것이 공정한 것인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등이 개인적 판단의 기준이 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학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다. 다만 어떤 사람이 정당하지 않게 잘 먹고 잘 산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제학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동서고금을 통해 그래왔다. 그것을 바로잡자는 거다. 경제학은 가진 자를 위한 학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학문이다. 내 판단의 근거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라는 책이 나왔을 때 속으로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이 나오는 것은 아닌데...'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대학의 시간강사를 하는 분으로 기억하는데, 마침 그분이 "왜 아픈지나 아냐?"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더라. 그가 거기서 "도대체 네가 청년이 왜 아픈지는 알기나 하느냐? 그 아픈 마음을 팔아서 너는 돈을 벌고 앉아있냐"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다.
나는 매 학기 강의를 하면서 마지막에 학생들에게 졸업생들이 취직을 못하는 것에 대해 내 스스로 '미안하다'고 한다. 우리 때는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취직 걱정을 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일자리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많은 청년들이 취직이 잘 안 되는 것이 그들이 모두 다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의 일자리는 만들어 주지 않고 "너희들 열심히 해서 희망을 잃지 말고 더 갈고 닦아라"라고 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선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아프지 않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지금 청년들은 취직을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고 있다. 아무도 스펙을 쌓지 않았을 때는 누가 증권관리사 자격증 같은 것 하나만 있어도 "어 이놈 봐라" 하면서 뽑아줬다. 그러나 요즘은 모든 친구들이 그런 자격증 정도는 몇 개씩 갖고 있어서 큰 의미가 없어졌다. 스크리닝에서 잘리지 않을 정도밖에는 의미가 없다. 이것은 절대로 학생의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다. 증권관리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그 친구에게 증권에 대해서 물어보면 정작 잘 모른다.
나는 국가가 청년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데 돈과 시간을 버리지 말고, 차라리 기초학문을 열심히 공부하게 하고 또 열심히 놀게 만들어서 미래의 잠재적인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꾸 경쟁만 시키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다. 노량진에 가면 수십만 명이 고시 공부한다고 죽치고 앉아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큰 낭비인가. 대학 졸업생들의 취직이 계속 어려워지니 정부에서 예산지원이 좀 나왔는지, 학과별로 교수들에게 학생들 취업지도를 하라는 명분으로 한 명당 얼마씩 겨우 국밥 한 그릇 먹을 정도의 돈이 나오더라. 학생 상담해주라는 모양이었는데,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이게 어떤 특정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면 그 효과가 조금은 있을지 모르지만 전국 대학에서 모두 다 그렇게 한다고 하면, 이것은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밖에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 졸업반 애들이 모두 국밥 한 그릇씩 먹고 끝나는 거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하는 짓이 딱 그 정도밖에 안 된다. 그렇게 취업지도를 해준다고 해서 직장이 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정작 일자리는 만들어 주지 않으면서 너희더러 자기계발을 하라고 하는 것은 정말 웃기는 소리다. 청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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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은?
한국에서 재벌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앞으로 그 폐해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1890년대부터 대공황이 있기 전 1920년대 말까지 미국이 얼마나 광란의 시기를 보냈는지 보게 되면 지금 재벌이 판치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결국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그 시기에 미국에는 록펠러, 카네기, 맬런, 제이피 모건 등 더러운 자본주의를 통해 막대한 부를 획득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미국으로서는 다행이었던 것이 나중에 가서 그들 전부 거기서 손을 떼고 좋은 일을 하려고 했다. 보수적인 색채가 있기는 하지만 록펠러 재단, 카네기재단 등을 만들어 지난날 기업체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좋은 식으로 마무리했다. 뉴딜 등 대대적인 개혁도 했다.
우리에게도 그런 전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사업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좋은 일에 쓰겠다고 하는 일이 많아져야 한다. 재벌들이 지금처럼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돈을 버는 일에만 급급하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본다. 1997년 IMF 때 한 번 망하지 않았나. 그때는 그래도 운이 좋아 다행히 우리 경제가 회생했지만, 다음번에 망할 때는 정말 망한다. 그래서 "망하기 전에 고쳐야 한다. 개혁이 돈이다. 개혁이 밥이다. 개혁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계속할 거다. 여론을 환기시키고 사회가 바뀌도록 노력할 거다. 그것이 현실에 참여한 학자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지침이 되는 사람이 있나?
주변에 훌륭한 분들이 많다. 어떤 한 분이 내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다만 어떤 사람을 보면 '나는 절대로 저런 사람처럼 돼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는 있다. 막판까지 잘 해오다가 끝에 잘못해서 얼굴에 먹칠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계속 일관성 있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큰 바위 얼굴이 나와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제는 나도 은퇴할 날이 곧 다가오는데, 남은 기간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충성하고 도와줄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내게 남은 모든 것을 바쳐서 불사(不死)할 수 있는 인물을 기다리고 있다.
이동걸에게 '사랑'이란?
젊었을 때 연애할 때의 사랑은 논외로 하고(웃음)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말하라면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손해 봤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 서로 조금씩만 손해 보면서 살면 우리나라가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동걸이 생각하는 '자유'란?
'자유'라는 게 여러 가지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심오한 뜻이 있다. 그런데 나는 세속적인 경제학이란 학문을 해서 그런지, 그런 고상한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경제학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의 자유가 제일 근본적인 것 아닌가 생각한다. 옛날 전근대적 사회에서 인간은 곡괭이 하나를 쥐고 야산에 가면 하다못해 초근목피(草根木皮)라도 먹을 것도 구하고 마실 물도 구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없으면,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는 자본주의 사회가 됐다.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오면서 생계가 더 절실해진 것이다.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이나 재산이 없을 때는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다. 그게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것이다.
'고상한 자유'는 이 기본적인 요건 다음에 있는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는 생존의 위협으로부터의 자유, 최저한의 인간다운 생활(minimum descent living)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인 것이다. 이런 자유를 가지지 못했을 때 인간은 나락으로 떨어져 정말 인간 이하가 되는 것이다. 개개인의 인간은 최저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 때 소신껏 행동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 그 기본 생계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럴 때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고 국민의 행복권과 자유권이 보장된다.
'사회계약론'에 의하면 무정부상태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인간은 무제한적인 자유를 갖고 있었다. 자기 생존을 위해 남의 것을 뺏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고, 남이 나를 해칠 때 나를 지키기 위해 남을 죽일 수도 있는 자유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이다. 그런데 그런 무제한적 자유를 내려놓기로 우리가 사회계약을 할 때는 "내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국가가 막아 달라, 그러면 나도 협조하겠다"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이런 인간의 기본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않고 자식을 조카를 굶겨 죽이지 않으려고 빵을 훔치는 사람을 19년 동안 감옥에 가두는 짓을 한다면, 그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빵을 훔친 사람을 19년 동안 가둬 둘 것이 아니라, 다시는 빵을 훔치지 않도록 최저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 이 사회가 '레미제라블'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정부의 가장 본질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것부터 이야기하고,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게 내 주장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고 떠들지 마라.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 3만 달러' 하지 마라. 아직 우리나라에 결식아동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 쪽방에서 폐지를 주워 먹고 사는 노인들이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인터뷰 및 정리: 정치경영연구소 손어진, 조경일, 정인선)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상호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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