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 참석하여 무력 70분간에 걸쳐 쏟아놓은 200자 원고 101매분의 장광설(長廣舌)은 ‘제 정신’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고 창피스럽게 느끼게 만든 일대 사건이었다. TV 화면을 통해서, 신문 지면에서 이 연설의 내용에 접한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을까”라는 회한(悔恨)의 통념(痛念)을 다시 한 번 느껴야만 했다. 필자는 인터넷 엠파스에서 노 대통령 발언 전문을 읽어 보았다. 한 마디로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다.
우선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은 한 나라 대통령으로서의 품위(品位)를 완전히 벗어난 광언(狂言)이었다. 그 동안 동서고금의 공인(公人)들의 연설문들을 적지 않게 읽어 보았지만 필자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민주평통과 같은 공조직의 모임에서 이렇게 비속한 어휘(語彙)를 사용하면서 횡설수설(橫說竪說)한 선례(先例)를 본 기억이 없다. TV화면이 전해 준 이날 그의 흥분된 제스처는 1962년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한 쪽 신발을 벗어 들고 탁자를 내려치면서 고함을 지르던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를 연상(聯想)시키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필자를 아연(啞然)하게 한 것은 노 대통령의 천방지축(天方地軸)의 막된 법(話法)이었다.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에서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했던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면 대통령에게 합당한 화법이 있는 법인데 어떻게 이런 저질(低質)의 화법을 구사(驅使)할 수 있는 것인가.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 전문을 이 나라 내일의 주인공으로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이를 따라서 배우게 되어 있는 청소년들이 읽었을 때 그들은 거기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사람이 하는 말은 그 말의 내용이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내용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말의 품위다. 노 대통령의 연설 내용에 대해서는 뒤에 언급하겠지만 도대체 그 자신은 그가 사용한 화법이 시장터 저자거리의 ‘양아치’ㆍ불량배(不良輩)들의 화법과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가를 노 대통령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대통령의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국민들의 추앙(推仰)을 받는 데 미치지 못할지라도, 다른 것은 고사하고 그가 쓰는 말씨라도 최소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본보기가 되도록 신경을 쓰기는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더욱 기가 찬 것은 이 자리에 참석했던 소위 민주평통 상임위원들이 이 같이 조잡(粗雜)하기 짝이 없는 노 대통령의 횡설수설을 들으면서 대목대목 마다 박수를 쳤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읽으면서 새삼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은 영국영화 ‘조지 왕의 광기(狂氣)’(Madness of King George)다. 노 대통령은 연설 도중 그가 ‘제 정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내용도 그렇지만 그가 사용한 화법으로 볼 때 “과연 이것이 그가 ‘제 정신’으로 쏟아놓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것이었다. 도대체 대통령의 ‘입’에서 어떻게 ‘바짓가랑이’ㆍ‘짜고 치는 고스톱’ㆍ‘뺑뺑이’ㆍ‘거들먹’ㆍ‘멍청한 놈’ㆍ‘박살’ㆍ‘돌아버린 사람’ㆍ“걔, 완전히 돌았어”ㆍ“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산다”ㆍ“천지 없이 겁 없는 대통령”ㆍ“노무현 기 꺾어라”ㆍ“흔들어라”ㆍ‘형님 빽’ㆍ‘굴러들어 온 놈’ 등의 난잡한 어휘(語彙)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문제는 역시 발언의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이 ‘제 정신’임을 강조하기 위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특정 장관 내정자를 상대로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고 물은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국회 쪽에서 그 같은 질문을 함으로써 “내가 한국전쟁, 6.25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할 만한 사고력을 가진 대통령이라는 전제를 붙인 것이 아니냐”고 시비하면서 “참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이 이재정(李在禎) 통일부장관 내정자에게 ‘6.25’에 관하여 질문한 이유는 그의 그 동안의 언행(言行)에 6.25를 ‘북침’으로 보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대목이 있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재정 씨는 청문회에서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라고 묻는 한 야당의원의 질문에 대해 한 동안 대꾸를 하지 않고 “그 대답을 꼭 해야 하느냐”면서 머뭇거리다가 야당 의원들로부터 계속 재촉이 있은 뒤에야 마지못해 “남침이라고 생각한다”고 억지(?) 대답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이재정 장관에게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 하면 이번 청문회에서 마지못해 “남침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애매한 답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금까지의 언행에는 “6.25는 최소한 ‘남침’은 아니다”라는 것이 그의 ‘진정한 생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대목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참으로 기가 찬 대목이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鄭東泳)ㆍ김근태(金槿泰) 씨는 2002년 노무현 정권 출범의 1등 공신들이다. 그들이 노 정권의 각료로 기용된 것은 전형적인 ‘코드 인사’였었다. 그런데 이날 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그들을 각료로 기용한 것을 정적(政敵)을 안아 들였던 에이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의 ‘포용 인사’에 비견(比肩)함으로써 정ㆍ김 두 사람을 졸지(猝地)에 그의 ‘정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도 그의 악명 놓은 ‘코드 인사’를 링컨 대통령의 ‘포용 인사’에 비견한 것은 실로 그가 아니면 생각해 낼 수 없는 자존망대(自尊妄大)의 극치(極致)로 링컨 대통령이 지하에서 듣는다면 기겁을 할 망발(妄發)이었다.
도대체 노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을 어떤 사람으로 알고 그런 망발을 하는가? 링컨 대통령은 미국이 2개의 ‘국가’로 분단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의 고귀한 목숨을 바친 위인이다. 링컨 대통령이 1860년 ‘분리독립’을 선언한 남부 11개 주의 ‘섬터’ 요새(Fort Sumter)에 대한 ‘선제공격’에 무력으로 대응함으로써 ‘남북전쟁’을 선택한 것은 “미국이 ‘분단국가’가 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결의 때문이었다. 링컨은 남부 11개 주가 ‘분리독립’을 추구하지만 않는다면 ‘노예해방’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타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남부 11개 주가 끝내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링컨은 “전쟁을 선택해서라도 국가의 통일은 유지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때 링컨이 남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명구(名句)’가 있다. “안에서 분열된 가정은 존립할 수 없다”(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는 것이다.
링컨의 ‘남북전쟁’ 결단은 외로운 것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의회와 행정부는 물론 여론의 대세(大勢)도 전쟁에 대해서는 부정적, 또는 비판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나라의 통일’을 지키기 위해 반대여론의 역풍(逆風)을 감내하면서, 그리고 처음에는 반드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독한 결단’을 내리고 또 이를 수행했다. 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드디어 끝났을 때 전쟁의 참화는 참담한 것이었다. ‘남북전쟁’ 기간 중, 남과 북을 통 털어, 도합 63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남북전쟁’을 제외하고, ‘독립전쟁’으로부터 최근의 ‘월남전’ 까지,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포함하여, 발생한 미군 ‘전사자’의 총수가 69만 명이다. ‘남북전쟁’의 ‘전사자’는 그 전체 수자보다 불과 3만 명이 적은 수자다. 게다가 ‘남북전쟁’은 링컨 자신의 고귀한 생명까지 앗아갔다.
‘남북전쟁’의 여파는 인명피해로 그치지 않았다. 전쟁에서 패한 남부 11개 주는 북부군에 의한 ‘점령지’가 되어 가혹한 수탈의 대상이 되었고 그로 인한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상처를 치유하는 데 100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되어야 했다. 그러나 링컨은 이 같은 희생을 무릅쓰고 ‘남북전쟁’을 수행한 결과로 ‘하나의 통일국가’로서 미국을 지켜냈고 그렇게 함으로써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 이론을 앞세워 구 소련이 주도했던 ‘공산독재’의 거센 북풍(北風)을 잠재우고 오늘날의 ‘유일 초대강국’의 위치에 서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에 반하여 노 대통령 자신은 어떠한 인물인가? 그는 지금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안보의 목적이고 평화를 지키는 것도 안보의 목적”이라고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린 “맞았습니다. 맞았고요” 식 궤변(詭辯)을 농하면서 “전쟁을 회피한다”는 명목으로 2천3백만 북한 동포들이 겪고 있는 지옥(地獄)과 같은 고통은 외면하고 천문학적인 ‘대북 퍼주기’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金正日)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할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수령독재 체제가 연명(延命)하도록 도와줌으로써 한반도 분단의 장기화를 초래하고 있는 장본인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 대처하는 데도 “전쟁이 나면 피해자는 우리”라는 이유로 오히려 북한의 편에 서서 미국을 견제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거기에 더 하여 지금 이 나라의 많은 애국시민들은 그와 그를 추종하는 집권세력이 사실상 북한 김정일 정권의 ‘반한나라당 연합전선’ 형성론에 편승하여 “평화냐, 전쟁이냐”ㆍ“자주냐, 외세냐”라는 그릇된 슬로건으로 특히 젊은 세대들을 현혹시킴으로써 내년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친북ㆍ좌파’ 정권 재창출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대상이 되어 있다. 노 대통령이 이번 연설에서 느닷없이 50만으로의 군 규모 축소와 함께 “장가 빨리 보내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군인들의 복무연한 단축 문제를 거론한 것은 그가 이 문제를 내년 대통령선거용으로 구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국가안보마저 정권안보의 차원에서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산 증거다. 이러면서도 그 자신을 링컨에게 비견(比肩)한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모독(冒瀆)이 아닐 수 없다.
21일의 노 대통령의 연설 중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를 가지고 역대 국방장관들과 참모총자들을 희화화(戱畵化)한 부분이었다. 이 말을 하는데 그가 동원한 어휘 역시 참으로 천박하기 짝이 없는 비속어들이었다. 그는 “우리가 작전통제할 만한 실력이 없냐.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 했노. 나도 군대 갔다 왔고 예비군 훈련까지 다 받았는데, 심심하면 사람한데 세금 내라 하고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 그 위의 사람들은 뭐 했어. 작전통제권,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통제도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심심하면 사람한데 세금 내라 하고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라는 대목은 노 대통령 자신이 부연하여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대체 그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횡설수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작전통제할 실력이 없냐”는 투정이나 “작전통제권,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통제도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 운운의 대목은 전혀 실제와는 맞지 않는 사실의 왜곡(歪曲)이다. 우선 “우리가 작전통제할 실력이 없냐”는 그의 투정은 우리 군에게 지금 그럴 뿐 아니라 과거에도 그렇게 할 실력이 있었는데도 역대 국방장관들과 참모총장들이 ‘실력’에 합당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고 “별만 달고 거들먹거렸다”는 이야기로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말’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건군(建軍)에서 6.25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일성(金日成)과 김정일(金正日)의 북한으로부터의 무력남침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안보를 수호해 낸 국군의 피어린 역사를 모독하는 망언(妄言)이다. 불행하게도 과거는 물론 지금도 아직은 한국이 한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실력’이 충분치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권 자체가 2012년을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 목표 연도로 하여 그 이전에 이른바 국방개혁 2020 계획에 의거하여 물경 620조 원을 투입하고 또 한미 간에 결코 용이하지 않은 협상을 성사시키려 애쓰고 있는 것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가 작전통제할 실력이 없냐”는 노 대통령의 말은 어느 술주정뱅이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몰라도 대통령의 입에서 그 같은 ‘말’이 나온다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는 1985년부터 남북의 군사력 균형이 역전(逆轉)되어 지난 20년간 남한의 군사력 우위(優位)가 계속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방부가 발간한 국방백서에 의하면 국방부의 입장은 최근까지도 주한미군을 포함한다면 몰라도 한국군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한국군의 전력이 북한군의 70%선이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노 대통령의 남한의 군사력 우위론은 그 근거를 어디에 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난 20년간 남한이 북한에 비해 국방비를 더 많이 사용했다는 수치를 근거로 만약 한국군의 전력이 북에 비해 열세라면 역대 국방부장관들이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성토(聲討)했다. 그러나 그는 남북한의 경우 국방비의 집행 방법이 남한은 인건비 위주이고 북한은 전력증강 위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은 모르는 체 했다. 더구나, 그는 특히 최근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로 남북한 간에는 매우 심각한 비대칭성이 존재하고 있어서 이로 인한 안보위험이 우려할 만 한 정도라는 것도 외면해 버렸다.
역시 문제의 핵심은 노 대통령이 여전히 굳이 ‘환수’라는 용어의 사용을 고집하고 있는 ‘작전통제권’ 문제다. 노 대통령은 “작전통제권(을)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내고 (하는 것이) 직무유기 아니냐”면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역대 국방장관들과 참모총장들을 나무랐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말’은 사실의 중대한 왜곡이다. 이 기회에 이 문제를 분명히 짚어 둘 필요가 있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가운데 ‘평시’ 작전통제권은 1994년 한국이 이미 회수하여 독자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남은 문제는 ‘전시’ 작전통제권이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은 지금 미국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과 함께 한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은 한미 양국군이 5대5로 구성하고 있는 ‘합작회사’ 체제인 ‘한미연합사령부’ 안에서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행사하고 있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을 무조건 ‘한미연합사령부’가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령부’가 행사하는 것은 ‘방어준비태세’(데프콘)가 4단계에서 3단계로 격상된 이후의 일이다. 4단계 이하의 상황에서는 전쟁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전투행위에는 한국군만이 한국군 합참본부의 작전통제 하에 투입되고 주한미군은 전투행위에 참가할 수 없다.
데프콘을 4에서 3단계로 격상시키는 문제는 한미 양국의 합의가 필요하다. 4에서 3단계로의 데프콘의 격상은 일단 ‘한미연합사령부’라는 ‘합작회사’의 ‘이사회’에 해당하는 ‘한미군사위원회’(양국 합참의장이 공동의장)에서 의결한 뒤 양국 대통령의 동의가 있어야만 이루어진다. 어느 한 나라의 대통령이 거부해도 데프콘의 격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렇게 될 때는 한국군에 대한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시’ 작전통제권 행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경우의 전투는 한국 합참의 작전통제 하에서 한국군에 의하여 단독으로 수행될 수밖에 없고 미군은 참전이 불가능하다. 4에서 3단계로의 데프콘 격상이 양국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이루어지면 비로소 주한미군이 전투에 참가하게 되고 ‘한미연합사령부’가 한국군과 주한미군을 통합 지휘하는 가운데 이미 작성되어 있는 ‘작전계획 5027’에 의거하여 전투를 수행하게 된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데프콘이 4에서 3단계로 격상된 이후의 ‘전시’ 상황에서도 한미 양국군에 대한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통제권 행사는 미군 단독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한미 양국군에 의하여 공동으로 수행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요한 정책 결정과 군사전략은 ‘한미군사위원회’에서 의결되고 양국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한미연합사령부’에 시달된다. 양국 대통령은 서로 사실상의 거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국이 한미연합작전 체제에서 행사하는 ‘주주권’은 각기 51%가 된다. 이 경우 ‘전시’ 작전통제권은 한국이 이미 51%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회수’할 실체가 없다. 노 대통령이 말하는 ‘전시’ 작전통제권의 ‘환수’ 또는 ‘회수’는 어불성설인 것이다. 도대체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겠다”는 그의 말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가? 누구에게서 무엇을 ‘환수’하겠다는 것인가, 노 대통령은 이 대목을 해명해야 한다.
‘한미연합사령부’가 한미 양국군의 작전을 통제하는 상황이 되면 전투는 ‘작전계획 5027’에 의하여 수행된다. 이에 의하면 한국군과 주한미군은 전쟁 개시부터 60일간 현 휴전선에서 서울 북방의 FEBA선까지 전술적인 후퇴를 하면서 북한군의 전력을 소모시키는 육ㆍ해ㆍ공 화력전을 전개하고 그 동안 미국본토로부터 전쟁 발발 후 60일부터 90일 사이에 지상군 2개 군단, 2개 해병기동군, 5개 항모전단, 32개 전투비행대대로 구성되는 69만명의 병력과 1천여 대의 탱크, 700여 문의 화포, 1,600여 대의 전술항공기, 160여 척의 함정, 토마호크 등 전략ㆍ전술 미사일과 AWACS 공중경보기 등의 최첨단 장비들이 한국전선으로 투입되어서 북한군의 침략을 물리칠 뿐 아니라 평양으로 진격하여 북한정권의 숨통을 끊어버리게 되어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바로 ‘작전계획 5027’의 위력(威力)이, 주한 미지상군의 인계철선(tripwire) 배치와 함께, 북한을 위압(威壓)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감히 전쟁을 도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쟁억지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인계철선이란 말 자체가 염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남의 나라 군대를 가지고 왜 우리 안보의 인계철선으로 써야 하느냐”면서 “피를 흘려도 우리가 흘려야 한다”고 말했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 한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 대통령의 말은 부당한 말이다. 왜냐 하면 ‘인계철선’이란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기 때문이다.
‘인계철선’은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李承晩) 박사의 고심작(苦心作)이었다. 1953년 휴전 당시 이 대통령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집요한 대미외교의 결과물로 1954년에 발효된 ‘한미방위조약’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빨 없는 호랑이였다. 전쟁 재발 시 미군의 ‘자동참전’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이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쟁취해 낸 것이 ‘인계철선’이었다. 남북간 전면전(全面戰)이 재발될 경우 북한군의 서울공격 주공도로는 의정부 축선과 파주 축선의 2개였다. ‘인계철선’ 배비에 따라 이 북한군의 서울공격 주공도로에 각기 3개씩의 미군기지를 설치함으로써 북한군이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군기지를 직접 공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미군이 북한군의 공격을 받으면 응전(應戰)이 불가피해져서 전투행위가 발생하고 이렇게 되면 미 의회도 미군의 참전을 사후적으로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로써 미군을 상대로 하는 전쟁을 겁낸 북한이 감히 전쟁을 도발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 때문에 등장한 것이 북한의 소위 ‘갓끈 전술’이다. 즉 ‘갓끈’(한미동맹)을 단절시킴으로써 ‘갓’(주한미군)을 날려 보냄으로써 ‘맨머리’가 된 남한을 폭력이나 무력으로 붕괴시킨다는 것이다. ‘인계철선’은 1953년 이후 가장 확실하게 “피 흘리지 않고” 북한의 무력남침을 저지해 온 전쟁억지 장치였던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한미 간의 ‘합작회사’ 체제인 ‘한미연합사령부’의 ‘사령관’이 미군 장성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유사시(有事時)의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의 수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한미연합사령부’는 국군뿐 아니라 주한미군과 유사시 미 본토로부터의 대규모 증원 병력과 장비를 지휘ㆍ통제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동원ㆍ투입되는 무기체계와 장비들의 대다수는 한국군에게는 생소한 것들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이 참가하는 어떠한 형태의 다국적군(多國籍軍)의 경우에도 최고 지휘관은 미군 장성이 맡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장치는 특정 국가의 ‘주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다국적군의 효율적 운영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지휘 체계에 불과한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할 사실이 또 있다. 그것은 ‘인계철선’과 함께 ‘작전계획 5027’이라는 강철 이빨을 구비한 한미 연합작전 체제는, 물론 전쟁이 일어나면 승전(勝戰)을 보장하는 장치임에 틀림없지만, 그 보다도 전쟁을 억지하여 예방하는 장치라는 점이다. 이 두 장치에 겁을 먹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한 ‘한미연합사령부’가 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전ㆍ평시와 상관없이 ‘한미연합사령부’는 유사시에 대비한 준비를 하는데 전념할 뿐이고 한국군에 대한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통제 문제는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군에 대해서는 한국 합참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자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고 주장하는 노 대통령은 완전한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소위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라는 ‘사기극(詐欺劇)’에는 엄청난 위험이 숨겨져 있다. 그가 추진하는 대로 소위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가 이루어지면 그 결과로 북한의 ‘오판(誤判)’을 유도하여 오히려 전쟁재발을 초래할 위험이 증가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는 ‘말’로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가 추진하는 것은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고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2원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작전계획 5027’은 폐기되고 한국군 단독으로 새로운 전쟁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경우 최대의 문제점은 유사시 미 본토로부터의 대규모 증원군 투입 계획에 차질이 초래되고 나아가서 유사시 주한미군에 대한 작전통제를 누가 하느냐의 문제가 미군의 참전을 가로막는 제약 요인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결국 노 대통령이 주장하는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와 한미 양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의 ‘2원화’는 역으로 한반도 전쟁억지 장치의 중대한 고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그 결과 역으로 전쟁재발의 위험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망발은 끝이 없었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았는데 한국으로 그 미사일이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여 이 문제를 크게 취급한 언론들의 보도 자세를 문제 삼았다. 노 대통령의 이 ‘말’은 같은 날 북한의 대남기구인 <민족화해협의회> 리춘복 부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연합통신> 기자에게 한 “핵은 민족을 지키기 위하여 만든 것이지 남쪽을 공격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말과 맥을 함께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노력에 광적(狂的)으로 매달려 있고 이에 대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만장일치의 결의로 거듭 경고를 발하면서 심지어 대북 제재조치마저 취하고 있는 한반도의 안보상황 속에서 정작 잠재적 피해 당사자인 한국의 대통령이 “한국을 향하여 시험발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민들에게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보고도 “놀라지 말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그의 안보관에 중대한 고장이 발생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21일에 있었던 노 대통령의 기상천외(奇想天外)의 망발에 대해서는 여야 정치권과 여러 여론 계층은 물론 언론기관들에서도 우려(憂慮)에 찬 반응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이 나라 국민들이 과연 앞으로도 계속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엉뚱한 광기(狂氣)를 참고 견디어 내야 하느냐는 문제로 귀착된다. 그는 아직도 1년2개월의 임기를 남겨두고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1년 동안에 걸쳐 진행될 차기 정권 창출에도 개입ㆍ간여하고 나아가서는 퇴임 후에는 경상남도 진영의 향리(鄕里)에 거창하게 신축될 사저(私邸)를 무대로 정치 활동을 계속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고등학교 학생 시절 국어 교과서의 글 가운데서 기억에 남아 있는 한 토막의 한문(漢文) 구절이 머리를 무겁게 찍어 누른다.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였던가? [끝]
[이동복 전 명지대 교수]http://www.dblee2000.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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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통령 발언이 언론에 알려진 다음 날 이곳 영사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교포들은 그 연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도 기가 막혀서 "No comment" 라고 했다가 속이 풀리지를 않아서 "당신네 나라 수준이 그 정도요." 했네요. 아이고 더러버라.
정신상태가 약간 abnormal한 것 같아...정상적인 사람이 느닷없이 "나는 제정신이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