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본문 가운데 한 페이지]
-제13장 「한옥봉(韓玉峰,卽韓星姬)의 공술」내용임. pp459~462.
김성주가 열병에다가 오빈을 잃은 아픔까지 한데 겹쳐 앓는 소리를 내가면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최춘국의 심부름을 받고 김성주에게로 약을 날라다주었던
적이 있는 유격대원 한옥봉을 고발하는 편지가 ‘민생단 숙청위원회’에 날아들었다.
송일의 파견을 받고 한옥봉을 체포하러 갔던 사람들이 양성룡에게 제지당하고
돌아왔는데 이 일로 양성룡과 송일은 얼굴까지 붉혀가면서 대판 싸움이 붙었다.
나중에 양성룡은 왕덕태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하였고, 송일은 이상묵에게로 달려갔다.
그런데 왕덕태는 이때 연길현의 반토벌전투를 지휘하러 의란구에 가있었고, 양성룡도
뾰족산과 마반산을 오가면서 전투를 지휘하느라고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기에 별 효력은 없었다.
결국 송일은 한동안 김성주를 간호하였던 박춘자를 체포하여 별의별 황당무계한 공술들을 수십 장이나 받아냈다.
전부 김성주와 관계되는 죄증들이었다.
“김 정위(정위는 정치위원의 약자)가 아플 때 한옥봉이가 몇 번 왔다 갔는가?”
이것이 심문자의 질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지낼 때는 거의 매일이다 싶게 찾아오곤 했다.”
박춘자의 대답에 심문자는 “한옥봉이가 혼자 왔다 갔는가?” 하고 계속 따지고 물었다.
“처음에 ‘남자번지개’(재봉대 대장 김련화의 별명)와 같이 왔다가 후에부터는 계속 혼자 왔다 가곤 했다.”
“한옥봉이가 너에 대해서는 무슨 태도였는가?”
“처음에는 나쁜 소문을 듣고 와서 나를 몹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으나 나는 남편이 생전에
김 정위에게 너무 못되게 굴었던 것을 사과하는 마음에서 잘 간호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여 오해를 풀었다.
그런 뒤로 옥봉은 나와 속심을 터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문자는 끝없이 따지고 들었다.
“모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는가?”
“옥봉이가 김 정위의 아이를 배게 되었는데 이 사실을 김 정위에게 알려주니 김 정위는
한옥봉을 가야하로 데리고 가 맨발을 벗고 찬 물속에 한 시간 넘게 서있게 하였다고 하더라.
그렇게 하면 임신 중인 여자가 아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요법이 있다고 하더라.
김 정위가 한의사를 했던 적이 있는 자기의 외삼촌에게서 배운 방법이라고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래도 아이가 계속 떨어지지 않으니 이번에는 발로 수십 번이나 배를 걷어찼다고 하더라.
그렇게 몇 번이나 시도했더니 과연 아이가 정말 떨어졌다고 하더라.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김 정위가 다시는 한옥봉을 찾지 않고 있다면서 몹시 서운해하더라.”
박춘자의 이야기는 점점 황당스럽게 변했다.
‘민생단 숙청위원회’가 장악하고 있었던 이러한 공술 내용들은 대부분이 민생단으로
의심받고 있었던 혐의자들이 심문을 받을 때 심문을 진행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위협과
공갈에 배겨날 수가 없어 심문자들이 유도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어냈던 것들이었다.
이런 공술내용들을 죄증이랍시고 문서로 만들어낸 송일은 그것들을 들고 동장영에게로 달려갔다.
“서기 동지, 보십시오.
민생단이 아니고는 한 대오 내의 여성동지에 대하여 이렇게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박춘자의 공술만 가지고는 신빙성이 없습니다.
박춘자는 한옥봉에게서 들었다는 소린데 그럼 한옥봉의 공술도 있습니까?”
“조만간에 공술을 받아내겠습니다.”
“그럼 한옥봉의 공술까지 받아낸 뒤에 다시 봅시다.”
동장영은 김성주에 대하여서만은 항상 예외였다.
이미 ‘민생단 숙청위원회’에서 민생단으로 결정을 내린
사람에 대하여 이처럼 신중하게 처리하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는 김성주라면 무조건적으로 싸고도는 동만 특위 위원 겸 왕청현위원회 선전부장 왕윤성 때문이었다.
“이 정도 자료를 가지고는 누구보다도 마영(왕윤성의 별명) 동지를 설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자료를 좀 더 보충한 뒤에 다시 봅시다.”
송일은 과거 김성도(송일의 전임자, 동만특위 조직부장 겸 민생단숙청위원회 위원장, 그 역시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못지않게 김성주에게 집착했으나 김성주의 비호세력도 만만치는 않았다.
왕윤성 외에도 왕덕태가 자주 김성주의 역성을 들었는데 송일과 특위 조직부장
이상묵이 한편이 되어 동장영의 면전에서 왕윤성, 왕덕태와 한바탕 언성이 높아졌던 적이 있었다.
“대대장 양성룡과 정치위원 김성주는 두 사람이 짜고라도
든 것처럼 ‘민생단 숙청사업’을 백방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빨리 이 두 사람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유격대가 토벌대와 싸우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왜 자꾸 유격대 사람들을 이리저리로 오라 가라 하고 부릅니까?”
“유격대야말로 정치적으로 더 순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오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태가 엄혹할수록 더욱 더 ‘민생단 숙청사업’을 틀어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생단 혐의가 있는 자를 불러다가 심사하려고 하면 양 대대장과 김 정위는 그들을
뒤로 빼돌려서 숨겨놓거나 전투임무를 집행하러 나가고 없다고 딱 잡아떼면서 내놓지 않습니다.”
동장영은 마침내 송일의 손을 들어주었다.
“자세하게 설명해보십시오. 도대체 어떻게 방해를 놓고 있습니까?”
“한옥봉을 심사하러 갔던 일꾼들이 재봉대를 찾아다녔지만 대대장 양성룡이 고의적으로
재봉대를 계속 이동시키는 바람에 열흘 넘게 만나지 못하다가 겨우 ‘셋째 섬’에서 찾아내어 한옥봉을
데리고 ‘숙청위원회’로 돌아오려고 하다가 ‘셋째 섬’에서 제2중대 지도원 최춘국에게 또 빼앗겼습니다.
최춘국의 말이 양성룡 대대장이 유격대 사람을 데려가려면
대대장과 정치위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송일이 자세하게 설명하자 왕윤성이 나서서 해석했다.
“이 문제는 내가 설명하겠소.
지난 9월, 특위 확대회의 때 군사부장 동무가 마촌에 왔
다가 김일성 동무와 만나 이런 지시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만약 유격대원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선차적으로 먼저
유격대의 정치위원이 책임지고 심사를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적발되고 있는 문제들은 바로 대대장과 정치위원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이 두 사람의 문제가 가장 많습니다. 이들 두 사람이 서로를 심사하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동장영은 듣고 나서 송일의 손을 들어주었다.
“송일 동지의 말씀이 맞습니다. 빨리 심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어떤 일로도 ‘민생단 숙청사업’을 느슨히 하거나 또는 중단하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동장영은 만약 필요하다면 유격대 대대장이건 정치위원이건 상관없이 직무정지는
물론 면직까지 시켜가면서라도 ‘민생단 숙청사업’을 바짝 틀어쥐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토벌 때문에 마촌 바닥에서 쉴 새 없이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피해 다니면서도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원회에 올려 보내는 민생단 관련 사업보고서를 작성하느라고 밤낮 없이 일하였다.
사실 그들의 견지에서 볼 때 중국 공산당으로 적을 옮겼던 대부분의 조선공산당
출신 간부들은 모두 민생단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봐도 전혀 과하지가 않았다.
또 그들은 백 퍼센트 당 조직 내에서 ‘모조리 몰아내야 하는’ 대상으로 이미 분류되어 있었던
셈이었는데 여기에 젊었던 김성주보다는 사사건건 김성주를 보호하고 나섰던 양성룡이 먼저 걸려들고 말았다.
[저자 소개]
靑雪 유순호(劉順浩:Liu ShunHao)
중국 조선족 출신의 재미 동포 작가.
16세 때부터 문학에 빠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 1980년 희곡 『숲속의 메아리』가 중국 조선족문학사상
첫 영화문학선집 『민들레꽃』(1980년, 요녕인민출판사)에 추천 발표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1981년부터 1999년까지 18년 동안 역사공부와 함께 중국 동북3성을 도보 답사하였으며, 이때의 생생한 경험에서 얻은 자료를 통해 1999년에 동북항일연군의 명장 조상지(1908~1942) 장군의 비사(秘史)를 다룬 『비운의 장군』(1998년, 연변인민출판사)을 출간,
이후 1998년부터 본격적인 작품발표가 진행되어 지금까지 10종의 장편소설과
70편의 중・단편소설, 도합 1,440 여편의 신문기사・칼럼・수필・기행・논문 등을 발표하였으며,
특히 1999년 1월부터 2001년까지 중국 연변작가협회 기관지 『연변문학』에서 장편소설
『불나비』와 『성중애마』 2종이 동시에 연재되면서 조선족문단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0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중국 연변지역위원회와 중국 조선족사이버문학가협회를 발족하여 대표를
맡았으나 당시 정부에 의해 ‘사회주의 문화시장을 교란한다’는 죄목으로 강제 등록 취소되고 활동이 금지되었다.
2002년 8월, 정치적 압력을 받아 미국으로 이민, 현재까지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2009년에 잊혀진 독립운동가 허형식(1909~1942)을 다룬 논픽션『만주 항일 파르티잔』(선인),
2010년엔 『유순호 문학선집』 제1, 2, 3권(선인), 2015년엔 『유순호 정치 역사 문화 칼럼집』
(도서출판 행복한 마음), 2016년엔 에세이집 『앨마 샌즈의 유령과 만나다』(청설), 장편역사소설
『성중애마』, 유순호단편소설집『곤충3부곡-쥐, 벌, 바퀴』을 각각 출간하였다.
2017년 1월 현재 본서를 출판하기 위하여 방한중이다.
현재 이 책은 한국내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들에서 판매돼고 있다.
[차례]
*프롤로그를 대신하여/저자의 말… 015
*주요 등장인물 약전… 665
제1부 성장
제1장 출신과 출생
01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에서 태어나다 … 025
02 아버지 김형직과‘ 조선국민회’ … 032
03 보통강의 복음 … 037
04 우린 항상 눈물로 기도하였다” … 042
05 김형직의 체포 … 044
06 장일환의 부탁 … 046
07 송암 오동진 … 047
08 ‘3·1운동’과‘ 조선독립만세’ … 049
2장 만주 망명
01 중강진 … 056
02 순천의원과 백산무사단 … 060
03 팔도구 개구쟁이 … 063
04 ‘배움의 천릿길’ … 068
05 포평 탈출 … 070
06 동상(凍傷) … 073
07 장백현의 악동 … 076
제3장. 정의부의 품속에서 … 080
01 화성의숙 … 080
02 김창민과의 만남 … 085
03 ‘ㅌㄷ’의 불꽃 … 087
04 한별과 함께 … 091
05 부탕평에서 … 094
06 공청인도자 송무선 … 098
07 손정도와의 인연 … 100
08 육문중학교 … 102
09 오동진과 현익철, 그리고 김찬 … 106
10 ‘3부 통합’ … 108
11 김덕기의 음모 … 109
제4장 남만(南滿) 참변
01 남만 청총 … 115
02 김학규와 오광심 … 119
03 왕청문 사건 … 121
04 현익철과 양세봉, 그리고 고이허 … 123
05 ‘반국민부’파의 몰락 … 127
06 ‘중동철로사건’ … 130
07 길림감옥 … 136
08 축옥성의 이야기 … 139
제5장 ‘붉은 5월 투쟁’
01 ‘후생가외’(後生可畏) … 142
02 화요파와 엠엘파 … 146
03 조선혁명군 길강성 지휘부 … 149
04 세금징수 분대장 … 153
05 ‘5·30폭동’과 중국 공산당 예비 입당 … 156
06 김명균과 만나다 … 158
07 강반석의 개가 … 163
08 이광의 출현 … 167
09 김일성(星)과 김일성(成) … 170
10 이종락의 체포 … 178
11 조선혁명군에서 탈출 … 182
12 고동뢰의 피살 … 186
제2부 혁명
제6장 소사하 기슭에서
01 차광수와 세화군(世火軍) … 191
02 “아, 혁명은 가까워온다” …196
03 김일룡과 대사하 … 200
04 반일적위대 대장 … 202
05 종성으로 가다 … 205
06 양림과 료여원 … 212
07 동만 특위와‘ 외눈깔 왕가’ … 214
08 공청단 특파원 … 216
09 세화군의 몰락 … 219
10 ‘노3영’(老三營) … 220
11 “안도현장쯤은 시켜주겠지” … 221
12 푸르허에서 피신 … 225
13 ‘추수폭동’과 정식 입당 … 228
14 ‘콧대’ 안정룡 … 229
제7장 만주 사변
01 진한장의 휴서(休書) … 234
02 “모든 책임은 내가 안고 갈 것이오.” … 236
03 옹성라자회의 … 239
04 옹성라자사건 … 240
05 ‘노3영’의 반란 … 243
06 이광과 별동대 … 247
07 초무영의 주선 … 251
08 우 사령관을 설득하다 … 253
09 안도유격대 … 260
10 어머니와 영별 … 261
제8장 남만 원정
01 노수하(露水河) 습격전 … 268
02 ‘금비석비’(今非昔比) … 273
03 옛 친구와의 상봉 … 275
04 진심과 진정 … 278
05 양세봉의 분노 … 279
06 조선혁명군과 결렬 … 283
07 이홍광의‘ 개잡이대’를 찾아 … 287
08 바람둥이 오성륜 … 290
09 ‘개잡이대’의 몰락 … 293
10 최창걸의 죽음 … 298
11 차광수의 조난 … 301
제9장 노흑산의 겨울
01 영안으로 가다 … 305
02 유한흥과 김성주 … 309
03 소만국경 … 314
04 개털모자 … 317
05 18명 … 320
06 구국군의 패퇴 … 321
제3부 시련
제10장 동만주의 봄
01 ‘관보전사건’ … 327
02 정치위원에 임명되다 … 334
03 한옥봉(韓玉峰) … 342
04 요영구 방어전투 … 353
05 ‘월선의 노래’ … 357
06 ‘따거우재’ 이용국 … 362
07 “내 성은 공씨요” … 365
08 허호림과 최상동 … 367
09 혁명일가 … 368
10 동만 특위 마영 … 371
제11장 반민생단 투쟁
01 ‘송노톨사건’ … 378
02 연길헌병대장과 김동한 … 381
03 한인권의 변절 … 385
04 김명균의 탈출 … 387
05 반경유가 동만주에 오다 … 393
06 “유령이야, 유령” … 399
07 왕덕태와 만나다 … 403
08 연합부대 참모장에 임명 … 406
09 팔도구전투 … 410
10 도문지주 납치사건 … 413
11 온성으로 가다 … 418
제12장 동녕현성 전투
01 제1차 면직 … 421
02 ‘작탄대’ 대장을 맡다 … 428
03 작전회의 … 430
04 오의성과 이청천을 이간하다 … 434
05 ‘승전후구전, 패전후구승’(勝戰後求戰, 敗戰後求勝) … 441
06 서산포대 … 444
07 사충항을 구하다 … 446
08 독립군의 해체 … 448
09 구국군의 몰락 … 449
제13장 불타는 근거지
01 십리평 박 과부 … 455
02 오빈을 잃다 … 457
03 한옥봉의 공술 … 459
04 적후교란작전 … 463
05 “성룡이는 못죽이오”… 468
06 제2차 면직 … 472
07 동장영의 공과 죄 … 480
08 독립사 출범 … 483
09 윤창범과‘ 장강호’ … 486
10 주운광의 출현 … 488
11 아동단선전대와 소년의용대 … 494
12 삼도하자에서 … 496
13 나자구 전투 … 509
14 장택민 … 513
제4부 붉은 군인
제14장 불요불굴
01 길청령 … 516
02 태문천의 구국군과 함께 … 522
03 엄호 … 528
04 ‘만록총중 홍일점’ … 532
05 체포와 석방 … 534
06 윤창범의 도주 … 541
07 노송령 … 546
08 동구에서 탈출 … 549
09 종자운의 비호(庇護) … 557
10 이상묵의 공개편지 … 559
11 ‘사방대사건’ … 561
제15장 제1차 북만원정
01 양광화와 만주성위원회 … 567
02 모스크바에서 억류된‘ 노마 ’… 569
03 이연록의 곤경 … 573
04 오평의 출현 … 578
05 오평과 민생단 문제 … 582
06 오평의 구상 … 586
07 ‘평남양’과 강신태 … 588
08 ‘동맹군’과‘ 연합군’ … 590
09 ‘연합전선’ 구축 … 594
10 별명의 연대성 … 596
11 강신태와 박낙권, 그리고 오대성 … 599
12 “일구난설(一口難說)입니다” … 605
제16장 동틀 무렵
01 동만주 소식 … 614
02 정안군의 토벌과 신안진 전투 … 618
03 김 노인과 조 노인 … 626
04 해산된 만주성위원회 … 630
05 ‘대흥왜회의’에 참가 … 643
06 동헌장의 운명 … 647
07 동만주에 왔던 이광림 … 648
08 “과연 환영이란 말인가” … 655
09 ‘요영구의 논쟁’… 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