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걷다. 여섯 번째 충주호 7월 13일
아침 아홉시에 수양개 선사 유물관에서 차를 내려 걷기 시작하다. 수양개는 충주호가 생기기전에 저 아래 남한강 유역에 있었던 마을이름이다. 고향을 떠나갔던 사람들이 망향의 아쉬움을 돌 판에 그려 놓았다. 큰 서낭, 작은 서낭, 나루터 등 마을의 지형지물과 이명삼, 김상진, 조진욱 등의 주민들의 집들이 엉성하게 그려져 있다. 총 마흔 네 가호, 적지 않은 마을이었다. 마을 가운데로 작은 개울이 흘렀고, 마을 중앙에는 나루터가 있었다. 마을을 돌아가는 열차 선로가 있었다.
중앙고속도로가 머리위로 지나간다. 적성교를 건너 단성면 하방리에 도착했다. 단성면의 면 소재지다.
봉서정에 올라 잠시 땀을 식혔다. 겸재 정선의 화첩에 나오는 정자였다. 옛날 자리는 아니고 최근에 다시 세운 것이다. 지금은 물에 잠긴 저 아래 강변에 있던 누각이었다.
단성 중학교를 지나서 우화교를 넘어 삼거리 휴게소에서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임제식형이 마련한 자리였다. 출발하고 두어 식경이 지났고, 목이 탈 때쯤이었다. 갈증을 달랬고, 막걸리 기운으로 고갯길을 수월케 넘었다.
외중방리를 지났다. 이 마을도 수몰되어 산위로 올라와, 옛 마을의 정경을 망향비에 그려놓았다. ‘포구에 소금배가 도착하니, 주모의 술 거르는 손길이 바빠졌고 , 숯가마골 영치막골 나무꾼의 한 숨소리 커졌다.’
외중방리에 수중보가 있다.
물가둠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가뭄에 수중보가 드러나 보였다. 중부지방은 아직 해갈이 되질 않았다. 비가 흠뻑 쏟아지면 좋겠다. 강물에 떠다니는 부유물도 씻겨 내려가고 강물도 좀 더 맑아질 것이다. 내가 사는 남도해안 지방은 봄부터 비가 많이 내려 강물은 푸르고, 초목도 울창하다.
날씨는 더워지고, 오르막길에 숨이 차오른다. 찻길을 내려서 개울을 건넜다. 옛날에 열 집 이상 살았던 구미마을이다. 마을이 온통 빈집이었다. 길이 없어, 관목을 헤치고 바위를 타고 올라서니 농가별장이 나왔다. 노부부가 맞아주었는데 불청객을 과히 마다하지 않았다.
뜰안의 장미 꽃. 다시 큰길을 만났고, 길은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아스팔트는 덥혀져가고 있었고, 바람은 한 점 불지 않았다. 힘든 고갯길이었다. 고갯길을 넘어 펼쳐지는 경치가 좋았다. 우리가 걷고 있는 도로는 월악산 자락이었다.
기암절벽에 소나무가 여러 모습으로 뿌리를 내렸고, 오랜 세월의 풍상에 대자연의 조화에 함께하여 국립공원의 풍경을 이루어 가고 있다. 호수 건너편은 시무산, 월형산, 아미산이다. 열두시에 장회나루 선착장에 도착했고, 오전 일정을 마쳤다.
오후에 장회나루에서 배를 탔다. 배의 상갑판에 올랐다. 햇볕은 내리쬐었지만 바람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배낭에 숨겨온 술을 들이키고나니 불콰한 기분이 되었다. 옷깃을 간질이는 바람에 뱃노래라도 불러보고 싶은 흥이 일었다. 삼십 분여 순간순간 스쳐가는 풍광을 즐겼다.
아! 이 바람, 저 물결, 저 산 자락! 상갑판에서는 모든 객체들이 빠르게 육화되어, 자연을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길 심정을 만들었다. 절로 흥이 생겼다.
청풍 문화재단지 선착장에서 배를 내렸다. 술기운이 있었는 데다가 한 낮의 태양은 내리 쬐이는 선착장을 올라가는 길이 가장 힘이 들었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호가 생기면서 수몰되었던 이 근방의 문화재를 이곳에 옮겨 새로 조성한 곳이다. 선사시대의 선돌, 고인돌을 비롯하여 민가(초가), 향교, 관아등을 배치했고, 생활유품을 옛 풍속대로 전시해놓았다. 문화재로는 한벽루, 석조여래입상, 향교 등이 배치되어있다.
한벽루, 향교 등을 보고 가장 높은 망루, 망월정에 올랐다. 충주호와 충주호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산세가 한 눈에 들어왔다. 적성산, 대덕산, 비봉산, 가은산. 통쾌무비 했다. 망월정에 올라보지 않은 여행자여! 청풍명월을 말하지 마라.
뜨거운 아스팔트길에 익혀진 발바닥을 식히려 탁족할 장소를 찾았다. 월악산 자락 골뫼골 개울에 발을 담그다.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 석 탑(이름이 길다), 원래를 구층이었지만 지금은 탑신부가 사층만 남아있다.
7월 14일
충주댐물문화관에서 기행을 시작했다. 강을 따라 내려갔다.
충주시 동량면 용고리에 수형이 멋진 느티나무가 있다.
포장도로의 복사열이 푹푹 치민다. 강변 고수부지로 내려갔다. 뽕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임영남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사과즙, 당근, 방울 토마토들을 나눠먹었다.
요기도 되었고, 갈증을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 충주시 목행교를 건넜다. 오래전에는 충주에 들어서는 중요한 다리였지만, 지금은 차량왕래가 거의 없는 다리였다. 다리를 건너서는데, 다리 아래 노인들이 잔디 위에서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게이트볼인가 했는데 클럽으로 쳐내는 공이 골프공이었다. 홀컵과의 거리가 가까웠고, 클럽을 하나만 사용하는 게임이었다. 드라이버, 아이언, 퍼터 등으로 세분화되어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홀컵에 넣는 골프게임이 아니었다. 클럽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해냈다.
파크 골프라 했다.
강변의 고수 부지에 잔디를 깔고 어르신들에게 편하게 운동을 할 수 있게끔 운동시설을 만들어준 충주시의 노인복지정책이 눈에 들어왔다.
충주시에 들어서니 차량왕래가 잦아졌다. 소음이 심하다. 자전거길로 내려섰다. 가로수 벚나무 그늘이 좋았다. 자전거 길을 이십여분 걷다가 드디어 탄금대 공원에 들어섰다.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렀다.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계단에 오르니 시원한 나무그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벗고, 양말도 벗고 오전 노정의 피로를 씻었다.
열두대 저 바위 너머로 신립장군이 투신을 했다.
탄금대는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던 명소이다. 남한강의 절경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임진왜란의 아픈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래에 상륙하여 파죽지세로 쳐 올라왔던 왜군을 저지하라는 선조의 특명을 받고 도원수 신립이 배수의 진을 쳤던 곳이 여기 탄금대였다. 비장한 각오로 배수진을 택했던 것이다. 결국의 조총을 앞세운 왜군에게 반격 한번 제대로 못하고 조선군은 몰살을 당했다. 아무리 싸움을 독려해도 조총의 위력 앞에 조선의 병졸들의 시신은 낙엽처럼 쌓여만 갔다. 패장 신립은 탄금대에서 뛰어내러 투신을 했고, 시신조차 수습을 하지 못했다. 왜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바로 한양이 수중에 들어올 것을 낙관했고, 선조는 몽진을 서둘러 한양을 빠져나가게 된다.
서툰 역사학자들은 신립이 천험의 요새지 문경새재에 방어진을 치지 않았던 것이 전략적인 실수라고 지적을 했다. 모르는 소리다. 밀집대형으로 싸웠던 전장에서 조총이라는 신무기에 어떤 방어진도 무력했다. 인류의 전쟁사에서 보면 새로이 발명된 무기를 채택해서 싸우게 되면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기관총, 탱크, 비행기가 처음 도입되었던 전쟁을 보면 알 수 있다. 에스파냐의 코르테스는 오백여명의 군사를 가지고, 수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아스텍(지금의 멕시코)을 멸망시켰다. 이것은 돌도끼나 나무창을 가졌던 원주민들과 무기차이 때문이었다. 침략자들은 벼락을 만들어내는 총과 대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임진란 후기에서야 조총의 약점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조총은 유효사거리가 20여 미터 밖에 되지 않았다. 근접전에서나 백병전에서는 치명적인 무기였지만 공성전이나 먼 거리의 전투에서는 활보다 유효사거리가 짧았다. 우리나라 활은 유효사거리가 150미터였다. 이런 전략을 세워 행주대첩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탄금정에서 내려간 바위가 열두대였다. 가야금이 열두줄이라해서 열두대가 되었다. 신립이 최후에 투신한 곳이 바로 여기 열두대였다. 탄금대에서 오전 일정을 마쳤다.
오후에 탄금대 건너편에서 차를 내렸다. 다리가 두 개가 지나가고, 속리산에서 내려온 달천이 남한강과 합쳐지는 합강지점이다. 탄금호에 물이 가득하고 곳곳에 수상스키장이 있다. 호반을 수상스키 물길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호반으로 난 이차선의 도로를 따라 걷고 있다. 차로와 별도로 인도가 있다. 가로수 그늘이 좋고, 강바람이 시원했다. 창동리 마애불을 보러 언덕을 넘어 강가로 갔다. 여기 마애불은 남한강을 오갔던 뗏군과 뱃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들은 무사귀환을 여기 부처님에게 빌었을 것이다.
다시 길을 나섰다. 조정경기장 선착장을 따라갔다
2013년 국제 조정대회를 치렀던 조정경기장이었다. 조정경기장의 끝에 중앙탑이 있었다. 국보6호.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중앙탑도 마찬가지로 남한강을 운행하던 배들의 좌표가 되었다.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그 중 옛 고승의 귀한 말씀을 옮겨 적는다.
“도와 덕이 있는 사람은 대중과 같이 즐기고 도와 덕이 없는 사람은 혼자 즐기기를 좋아한다. 대중과 같이 즐기는 사람은 오래가지만 혼자만 즐기는 사람은 망한다.” 문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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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충주호가 엄청 시원스럽네~
가히 청풍명월일세
내가 사는 남부 지방은 비가 계속 내렸는데. 중부지방은 가뭄이 심하더라고, 한강이 넘실거릴 정도로 비가 왔으면 하네.
그러면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겠지.
바우의 '한강을 걷다' 여섯번째가 최고의 풍광인것같네!
수고해준 덕에 청풍명월 구경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