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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秋情)
박 영 준
집을 둘러싼 돌담이 있다. 돌담 안의 뜰도 근 칠십 평이나 되는 넓이다. 돌담 남쪽 복판에 있는 대문을 나서면 바깥마당이 있다. 마당은 백 평에 가까운 넓이다. 안팎으로 이백 평이나 거의 되는 두 마당에는 화초와 수목이 우거져 있다. 앞마당은 마치 화원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한편에는 사방 유리로 되어 있는 온실이 있을 뿐 열십자로 낸 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당 전체가 화초로 덮여 있다. 유자, 목련, 백일홍 또는 라일락 같은 꽃나무도 있지만 장미, 달리아, 국화 같은 꽃이 대부분이다. 가을철이라 눈에 뜨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화였다. 화분에 심겨 있는 것만도 근 백 그루는 되어 보였다. 아직 피지는 않았지만 야생초처럼 땅에서 자란 국화도 수없이 많았다.
바깥마당에는 태산목, 자귀나무, 향나무 등 값나가는 나무가 위주였는데 그 중에는 포도덩굴, 등덩굴, 덩굴장미가 있는가 하면 감나무, 대추나무 같은 과일나무도 있다. 안마당이나 바깥마당 모두가 잔디로 깔려 있는데 잔디가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정성이 들어있는 정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깥마당에는 울타리가 없는 대신 코스모스가 둘러서 있다. 빨강, 연분홍, 흰빛깔의 코스모스가 엉켜서 피어 있다.
이런 마당을 가진 집이 ○시에서 오 리쯤 떨어진 유덕산 밑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집 바깥마당을 나서면 그대로 논이요 밭이다. 들에서는 맨 끝이요, 산에서는 맨 밑인 이 집 주인이 정명로(鄭明路)다.
집도 산 밑에 홀로 서 있지만 집에서 사는 사람도 정노인 혼자뿐이다. 혼자뿐이라는 것은 정노인의 직계가족이 하나도 없다는 것으로 동거인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십 년 전에 소박을 당한 뒤 계속해서 식객처럼, 아니 가정부처럼 같이 살고 있는 누이동생이 한 사람, 그리고 동냥 다니는 것을 붙잡아서 기르고 있는 열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동거인으로 같은 지붕 밑에 살고 있다.
지금 정노인은 같이 살고 있는 아이 향미(鄕美)를 맞으러 바깥마당을 거쳐 들길로 나서고 있다. 들길이라고 하지만 마당에서 오십 미터쯤 거리에는 길 양쪽에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다.
코스모스― 그 중에서도 흰빛깔의 코스모스는 소녀를 연상시킨다. 색감이 없는 순수하고 청초한 흰빛깔의 코스모스는 성숙한 정열을 갖지 않고 있다.
생각도 단순하고 마음도 그만큼 깨끗한 때묻지 않은 소녀.
정노인은 흰빛깔의 코스모스를 보면서 걷다가는 멀리 들길을 내려다보았다. 흰빛깔의 코스모스 같은 향미가 걸어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이른 모양이었다. 노인은 흰 코스모스 한 가지를 꺾었다. 향미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어머나…….’
흔해 빠진 코스모스지만 자기가 주는 것이라고 해서 향미는 기뻐 받올 것이다.
그러나 정노인은 꺾어 든 한 가지의 코스모스를 던져 버렸다. 그 많은 가운데서 겨우 한 가지만을 꺾어 준다는 것에 부족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왕이면 한아름 꺾어서 줘야지. 한아름 아니라 한 지게를 꺾어도 아깝지가 않을 것이다. 정노인은 코스모스를 밑둥으로 한줌 움켜쥐고 엿가락 꺾듯 꺾으려 했다. 꺾으려는 순간 그는 주먹에 들어있는 코스모스를 놓고 말았다. 욕심쟁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자기가 느끼는 것보다도 향미가 그렇게 느낄 것이 겁났던 것이다. 많은 것은 아무래도 욕심을 표시한다. 향미가 자기를 욕심쟁이로 인정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향미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 절대로 욕심쟁이 할아버지라고 생각지 않는 그미에게 욕심쟁이라는 깨끗지 못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정노인은 다시 흰 코스모스 한 송이를, 그것도 길지 않게 목을 잘랐다. 그리고는 심심해서 꺾어 든 것처럼 그것을 휘휘 저으며 걷기를 시작했다.
어느새 두 마장쯤 걸었는데도 향미는 보이지 않았다. 정노인은 향미를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걸을까 생각했다. 교실 소제라도 하느라고 늦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몸이 피곤할 것이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오는 향미를 멀리 마중 갈수록 향미는 반가워할 것이다. 그러나 정노인은 길가 풀섶에 앉아 버렸다. 마당에서 누이동생 경분(敬芬)이 내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정노인의 향미에 대한 애정을 필요 이상의 것으로 보고 있다. 며칠 전 마당의 잔디를 깎다가 쉬지도 않고 향미를 마중 나갈 때 누이동생은 피곤할 때 쉴 것이지 마중은 무슨 마중이냐고 어린 자식을 꾸중하듯 걱정하는 말을 했다. 매일 학교에 갔다 오는 애를 마중 갈 필요가 무엇이냐는 말까지 했다. 그것을 의심하는 것이라거나 질투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필요 이상 멀리까지 간다면 그미가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통 때보다 과히 늦지도 않았는데 멀리까지 간다면 향미가 도리어 반가워하지 않을지 모른다. 자기를 잊지 않고 마중 나왔다는 생각만 넣어 주는 것이 향미를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정노인은 코스모스를 풀 위에 놓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울 동안도 그의 눈은 아래쪽으로만 쏠리고 있었다. 그런데 향미는 그때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새 담배 하나를 또 꺼내 물었다.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우는 편이 아닌데도 마음이 초조해 왔기 때문이다. 돌아올 때가 됐는데도 향미는 어째서 아직 돌아오지 않을까? 대청소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친구네 집에라도 들렀다는 것인가? 혹시 선생한테 벌을 서고 있는 것은 아닌가. 뛰어오다가 넘어져 다리가 상한 것은 아닐까?
그는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친구네 집에 들른다든가 선생에게 벌을 받는다든가 하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향미다. 그런만큼 의외의 돌발사건이 생긴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가 않았다. 어디가 아파서 병원으로 간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자동차사고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두 대째의 담배를 거의 다 태웠을 때 정노인은 읍내까지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바지를 털며 일어섰을 때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향미가 그의 시야 속에 들어왔다. 틀림없이 향미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안심을 하고 다시 풀섶 위에 주저앉았다. 앉아서도 향미를 지켜보고 있던 그는 이백 미터 거리쯤 가까이 왔을 때 갑자기 길가 수수밭 사이로 몸을 숨겼다. 향미를 놀려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수수밭 고랑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향미가 자기 앞을 지나간 뒤에야 슬그머니 길로 나와 에헴 하고 소리를 냈다. 생각 같아서는 향미 앞으로 뛰쳐나와 악 소리를 질러 주고 싶었다. 그러나 어린 향미가 놀라 혹시 기절이라도 하면 하는 겁 때문에 점잖게 에헴 소리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향미는 깜짝 놀라 ‘엄마’ 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때 정노인이 빙그레 웃어 보이자 향미는 그에게로 달려오며,
“할아버지두…….”
주먹을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다. 때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미는 내민 주먹을 펴서 정노인의 손을 잡고는,
“정말 혼났네.”
하며 웃었다.
“놀라기는 다 큰 것이.”
정노인은 흰 코스모스를 향미 얼굴 앞에 내밀었다.
“그건 왜 꺾었어요?”
“널 주려구.”
“아이 좋아.”
향미는 코스모스를 받아 코에다 대보기도 하고 뺨에 대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가슴에 안아 보는 흉내도 낸다.
정노인은 흐믓한 마음으로 그미를 바라븐다. 집에 가면 얼마든지 있는 꽃이다. 집뿐 아니라 가을만 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인데도 향미는 자기가 준 것이라고 해서 그것을 소중히 어기는 것이다.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소녀다. 그만큼 영리하다고나 할까?
정노인은 귀여운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오늘 학교에서 늦은 이유를 물었다. 그 밖에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물었다. 소녀는 정노인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좋은지 그 손을 잡은 채 흔들기도 하고 또는 흔들던 손을 꼭 잡기도 하며,
“청소를 했어요. 물을 길어다 번소 청소를 하느라구 혼났어요. 냄새가 나서 코를 막구…….”
“오늘 선생님이 ‘넌 서울 가서 입학시험 치르지? 하고 묻잖아요.”
이런 이야기도 꺼냈다.
“그래서 넌 뭐라구 했니?”
“전 이곳 중학교에 다닌다구 그랬어요.”
“왜? 내가 서울엔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아니오, 절대로 그렇진 않아요.”
향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금시 쓸쓸한 얼굴이 되면서,
“할아버진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하고 물었다.
“나는 네가 가고 싶다는 데루 보내 줄 생각이 있는데. 혹시 네가 잘못 알구 그런 생각을 한 것이나 아닌가 해서…….”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이면서도 자기의 체면을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향미는,
“전 서울 가구 싶지 않아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데 가서 어떻게 살아요.”
얼굴을 활짝 펴고 말했다. 정말인 것 같았다. 친척 하나 없는 서울에 가서 공부하느니 신통치는 않지만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정노인은 그 말 속에서,
‘할아버지가 없는 데는 가기 싫어요.’
하는 뜻을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없는 서울엔 가기 싫어요라는 말로 해석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바람이기도 했다.
“잘 생각했다. 나두 널 고생시키면서 공부하게 하구 싶진 않다.”
자기의 진심을 말하고는 그미의 손을 잡았던 손을 빼고 그미의 어깨를 안았다. 어깨를 안은 채 걸었다. 그런데 얼마를 걷다가 향미가,
“할아버지.”
하고 불렀다.¡
명랑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응!”
무슨 말이 나오는가 기다리고 있을 때
“하늘이 참 좋죠?”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냈다. 가슴속에 아무 딴 생각이 없다는 만족스런 마음의 상태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정노인은 자기에게 조금도 불만이 없고 티끌만한 거리감도 갖고 있지 않은 그미에게 고마움을 늑기며,
“참 좋다. 한국의 자랑은 가을하늘뿐이라고들 하지 않니.”
팔에 힘을 주어 어깨를 힘 있게 끌어안았다.
“할아버지, 그림물감이 저런 빛깔을 가지구 있다 해두 하늘처럼 곱지는 못하겠죠?”
“그렇구말구.”
그럴 것 같았다. 어떤 물체라고 해도 하늘과 같은 빛깔을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설사 같은 빛깔을 낸다고 해도 물체가 아닌 하늘만큼 고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늘은 제가 저렇게까지 고운 것을 알구 있을까요?”
“글쎄.”
“알구 있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런 걸 아는 건 사람뿐이 아닐까? 사람 가운데두 그런 걸 모르구 사는 사람두 있지만.”
“제가 곱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두 있어요?”
“얼굴이 고운 것은 다들 잘 알겠지. 그렇지만 마음이 고운 상태에서 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야.”
“그걸 왜 모를까요?”
정노인은 그때 향미 너는 지금 고운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고운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하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 향미의 그 고운 마음을 혼자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만족한 마음이 깨질까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경솔로 소녀에게 실망을 주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향미가 또,
“할아버지 !”
하고 불렀다.
정노인은 또 무슨 기발한 말이 나오는가 해서,
“응 ― ”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집에 다 왔죠?”
하고 말했다. 조금 멋쩍게 느꼈지만 정노인은 그래도 좋았다. 할아버지 하고 입버릇처럼 부르는 그것이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정노인은 향미를 집에서 같이 살자고 한 뒤 자기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지 않고 할아버지라 부르게 한 것을 새삼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라고 하면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더 가까운 애정을 느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한정해 놓고 부르는 호칭이다. 밉거나 싫어도 의무적인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동시에 애정과 친근감도 정해진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그렇지가 않다. 친척 관계자에게도 부를 수 있지만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인간 대 인간관계 이외에 다른 의미가 없어도 좋다. 연령적 관념은 주나 평등한 인간적 입장에서 일대일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다.
정노인이 바라는 것은 확실히 그것이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굴레 속에서 느끼는 한정된 애정이 아니라 아무런 관계 없이 평등한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애정을 갈망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눈앞에 집을 바라보는 순간 향미의 어깨 위에 있던 손을 슬그머니 떨어뜨렸다.
일흔 살과 열세 살. 그들이 손을 잡고 부둥켜안는다고 해도 그것을 부자연스럽게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노인은 누이동생의 눈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미만은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고 있지만 평등한 위치에서 대한다는 마음이 특히 누이의 의심을 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누이동생과 자기는 혈육으로서의 의리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애정은 없다. 무엇인가가 제거된 애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관대해질 수도 있지만 그 관대란 무관심에 가까운 것일 수가 있다. 무관심은 이해보다도 편견을 만들어 낸다. 정노인은 편견에서 오는 오해가 싫어서 누이동생 앞에서는 될 수 있는 한 행동을 삼가고 있다.
안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정노인은 부엌을 향해,
“향미가 왔어.”
하고 향미가 돌아온 것을 알렸다.
단 세 사람만이 살고 있는 집안에서 누이동생은 두 사람이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내다보지도 않는다. 정노인이 말을 했는데도,
“그래요?”
할 뿐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저녁을 짓느라 바쁘다는 것일까? 정노인은 그미가 확실히 어떤 편견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울 것은 없지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개의할 일도 아니어서 그는 우물물을 떠다 놓고 향미에게 세수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수건을 꺼내 들고 서서 향미가 세수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누이동생이 부엌에서 얼굴을 내밀고,
“나무나 한 단 갖다 주세요.”
가시가 돋친 음성으로 말했다. 세수하고 있는 것까지 지켜보고 있을 것이 무엇이냐는 말투였다.
정노인은 수건을 꽃나무 위에 놓고 바깥마당에 쌓아 놓은 나무를 한 단 들어다 부엌에 들여놓았다. 그리고는,
“불 좀 때줄까?”
하고 말했다.
세수하고 있는 향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못마땅해서 신경질적으로 말한 누이동생에게 너그러움을 보임으로써 보복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빠두, 이제 밥만 꿇이면 돼요.”
누그러진 말투로 보아 정노인의 너그러움이 효과를 뵨 셈이었다. 짜증낸 일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을 때 정노인은,
“나두 할 일이 없는데…….”
하며 나뭇단을 끄르고 마른 나무를 집어 아궁이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가끔 그런 일을 해준 적이 있기도 했지만 미안해하는 누이동생이 측은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육십이 다 된 여자가 혼자서 가정부 노릇도 하고 식모 노릇도 한다. 사십에 소박을 맞고 근 이십 년 동안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온 그미를 생각할 때 언제나 측은함을 느낀다.
“글쎄 들어가 라니까요. 오빠두…….”
누이동생이 정노인을 밀어 냈다. 짜증냈던 것을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정노인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누이동생을 위하는 일인 것 같아 부엌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물독에서 물을 퍼서 화초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한 번씩 주늠 물이다.
정노인이 화초에 물을 추기 시작하자 방 안에! 있던 향미가 뛰어나와 큰 바가지에 물을 떠가지고 정노인 뒤를 따랐다. 정노인은 향미가 떠온 물을 물뿜이에 쏟아서 두 손으로 받들고 화초에 하나하나 신경을 기울이며 물을 뿌렸다. 이십여 번 그렇게 물을 주노라면 팔과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참아 가며 물을 주고 있을 때 향미가,
“할아버지, 제가 혼자서 물을 주면 안 되나요?”
하고 말했다.
정노인은 그렇게 말하는 향미의 마음올 이해할 수 있었다. 늙은 몸올 쉬게 해주고 싶어하는 심정―그러면서도 화초에 관한 일을 남에게 시키려 하지 않는 정노인의 마음을 건드릴 수 없어하는 심정이었다.
“네가 물을 주면 화초들이 더 좋아하겠지.”
정노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물뿜이를 저 주세요.”
“다음부터!”
정노인은 물뿜이를 향미에게 넘겨 주지는 않았다. 이때까지처럼 화초에 대한 애정을 독점 안 해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향미에게 일을 시키고 나면 자기는 심심해진다. 심심해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팔과 허리가 약간 아프지만 그것은 능히 참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정노인은 비록 칠십이라 해도 허리가 굽거나 활동에 지장이 있을 만큼 기력이 없지는 않았다.
물을 끝까지 다 주었을 때 향미가,
“그럼 내일부터 제가 물을 줄게요.”
하고 정노인의 허락을 구했다. 그때,
“그러렴.”
정노인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향미가 아닌 딴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절대로 허락지 않았을 것이다. 향미가 물을 주고 자기가 옆에서 거들어 주면 그 또한 아름다운 풍경일 것 같았다.
정노인은 젊었을 때 과수원을 꿈꾼 일이 있었다. 빨간 사과가 열렸을 때 자기는 나무 위에 올라가 한알 한알 그것을 딴다. 그러면 아래서 사랑하는 여자가 그것을 한알 한알 받아 구럭에 넣는다. 일년 동안 힘들여 일한 보람을 가장 흐뭇하게 느낄 것이다.
지금 과실 대신 화초에 줄 물을 자기가 떠다 준다. 그 물을 향미가 받아 화초에 뿌려 준다.
평생 꿈을 이루어 본 적이 없는 정노인의 마지막 꿈.
저녁을 먹었다. 요즘 정노인은 식사도 전보다 많이 한다. 즐거움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녁 뒤에 향미와 같이 뒷산으로 산보 가는 일은 무엇보다도 즐거운 일이었다. 저녁식사를 끝내자 정노인과 향미는 규칙적인 일처럼 뒷산으로 올랐다. 거기서 그들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산보도 산보려니와 이야기를 하기 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내년 봄에는 중학교옐 들어가는 거지? 삼 년만 지나면 고둥학교엘 갈 것이구. 고등학굘 졸업하면 어떤 대학엘 가지?”
그날은 이런 이야기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건 아직 생각 못 해봤어요.”
“그래, 바쁘진 않다. 그래두 차차 생각해야 할 일이지.”
“대학엔 꼭 가야 하나요?”
“꼭 가야 한다는 법은 없어두 남만큼 배울 건 배워야지. 그래아 자기가 살아갈 걸을 찾게 되는 거 아니냐?”
“여자두 따루 살아갈 길이 있나요?”
“그럼 여자라구 시집가는 것만이 전부냐? 시집 안 가구두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 전 대학엘 꼭 가겠어요.”
“대학을 졸업한다구 반드시 결혼 안 한다는 것두 아니야.”
“그래두…….”
“그래― 천천히 생각하자.”
아직 결혼 이야기를 들려 줘야할 나이가 아니다. 정노인은 그 이야기를 일단 중지하고,
“노을을 봐라. 예쁘지?”
화제를 돌렸다.
“참 예쁘네요. 낮에두 좀 있었으면…….”
“밤낮 봐서야 예쁜가?”
“예쁜 거야 언제 봐두 예쁘지요:”
“그런 게 아냐. 무어나 늘 보면 싫증이 나는 법이야.”
“그럼 할아버지는 화초를 매일 보시면서두 왜 언제나 좋아하시죠?”
“속과 겉이 똑같으니까 그렇지.”
“속과 겉이 같지 않은 것두 있나요?”
“대개가 그렇다. 그 중에서도 사람이 더하지.”
“사람은 왜 그렇죠?”
“본시부터 죄를 쓰구 나와서 그런 거야.”
“무슨 죈 데요?”
“남을 속이려는 죄.”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두 그런 죄를 쓰구 나왔을까요?”
향미는 자기 부모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자기를 버리고 어디로 도망 간 부모님.
“잘 모르기는 하지만 네 부모도 그렇겠지!”
“죄를 쓰고 나오면 자식을 버리나요?”
작년, 향미는 부모를 따라 여행을 떠났다. 사이가 좋지 않아 찌푸린 얼굴만 보이며 살아오던 부모들이 어째서 여행할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경주엘 간다고 떠나 ○시에서 하룻밤을 잤다. 여관방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찌푸린 얼굴을 하고 별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따로따로 나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정노인은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향미에게 과거의 일을 회상하지 못하도록 길가에 있는 들국화를 꺾어 주며,
“냄새 좋지? 한번 맡아 봐라.”
하고 이야기를 딴 데로 돌렸다.
향미는 조그만 송이가 다닥다닥 붙은 들국화를 코에다 대고 심호흡을 하듯 냄새를 맡고,
“정말 좋아요.”
정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정노인밖에 다른 것은 생각지를 않는다는 듯이.
“우리 저기 가서 앉을까?”
정노인은 소나무숲이 있고 그 앞에 반듯하게 앉아 있는 두 개의 무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다리 아프셔요?”
하면서도 향미는 정노인을 따랐다. 그리고 무덤 앞 잔디 위에 앉자,
“할아버지, 오늘은 그 뒷이야길 해주세요. 두 번째 부인하구두 헤지셨다죠?”
하고 말했다.
“그래, 해주지. 그렇지만 시시한 이야기야.”
정노인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방 뒤 정노인은 만주에서 벌었던 많은 재산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고국에 돌아왔다. 돌아오자 그는 일본 사람들이 쓰고 살던 적산집을 몇 채나 차지했다. 적산 가옥을 점유하는 사람은 반역자라고 한편에서 떠들었지만 그는 적의 가옥을 차지하는 것이 반역적 행위라고 생각지 않았다. 일본 사람 때문에 일생을 망쳐 버린 생각을 하면 내버리고 도망 간 그들의 집에다 불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스물두 살 때 정노인은 3·1독립만세사건을 겪었다. 선봉에 섰던 것은 아니었지만 덩달아 대열의 뒤를 따라다니며 만세를 불렀다. 그뒤 많은 사람이 일본 경찰에 학살당하는 것을 보자 그는 만주로 도망갔다. 잡히기만 하면 자기도 죽고야 말 것 같았던 것이다.
만주에서는 돈버는 것만이 일이었다. 금지하는 척하면서도 방임해 두는 아편 장사를 시작했다. 돈이 잘 벌렸다. 그래서 번 돈으로 땅을 샀다. 나쁜 장사를 안 하고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8·15해방이 되었다.
정노인은 재산을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토지는 적산이라고 전부 뺏겼던 것이다. 그때는 한국 사람이 일본인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이래저래 일본 사람 때문에 망했다. 그런 정노인으로 일본인의 재산을 차지하는 데 반역자란 마음이 들 까닭이 없었다.
어쨌든 일본인의 집을 몇 채나 차지했던 탓으로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결혼을 했다.
만주에서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여자와 결혼을 했다. 사십 넘은 나이였지만 가난한 집 처녀와 결혼을 하고 별일이 없이 지냈다. 나이의 차가 많았지만 가난한 집 딸이고, 학식도 없다는 점에서 불평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정노인은 어떠한 상태에서든지 사랑을 하게 되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상태에서보다도 불완전한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더욱 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부인의 가난한 친정집까지 원조해 주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즐겁게 핵주기 위해서는 돈도 아까운 줄 몰랐다. 장사를 하여 자립해 보겠다고 할 때는 장사밑천도 주었다.
정노인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는지 아내는 정노인을 정성껏 섬겼다.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진심과 진실이 사랑을 이룰 때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집에 있는 현금이 그가 모르게 축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자기 모르게 돈 가져갈 사람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정노인은 외출할 때마다 현금을 세어 놓곤 했다. 일제시대 그는 관청이나 금융기관을 신뢰하지 않던 버릇이 있어 그때까지 현금을 은행에 예금할 줄 몰랐다.
그런데 외출했다 돌아와서 현금을 다시 세어 보면 적지 않은 돈이 축나 있었다. 누가 왔다 간 사람이 없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때로 찾아왔던 사람의 이름을 대기도 했지만 의심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노인은 아내를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외출하는 척하고 집 밖에서 망을 보았다. 아내가 외출복을 입고 나갔다. 그 뒤 아내에게 종일 집에 있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내는 가긴 어디를 가느냐고 딱 찹아뗐다. 그런데 현금도 얼마간 없어졌다.
하루는 아내의 뒤를 밟았다. 사직동 어떤 집으로 가는 것이다. 그뒤부터 그는 돈을 아내가 모르는 데 감추어 두었다. 그랬더니 아내는 며칠 동안 외출을 안 했다. 외출을 안 하면서 돈 감춘 곳을 알아내려고 꾀를 쓰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루는 쌀을 사게 돈을 달랬다. 정노인이 사온다니까 그런 것을 왜 남자가 사오느냐고 짜증을 부렸다. 자기가 쌀을 사오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앞에서 돈을 꺼내게 하고 동시에 돈 감춘 곳을 알아내려 함이었다.
정노인은 지는 척하고,
“도적이 많아서…….”
혼자 중얼거리며 다락으로 올라가 덮지 않는 이불 속에서 돈을 꺼내 쌀값을 주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돈을 거기 놔둔 채 외출을 했다가 돌아왔다. 돈이 또 없어졌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정노인은 아내의 멱살을 잡고 숨을 쉬지 못하도록 졸라매며 죽여 버린다고 위협했다. 아내는 자기가 도둑년이냐고 반문했다. 도둑년하고 같이 살았느냐고 대들기도 했다. 그는 도둑년을 사랑했다는 자기가 슬퍼져서,
“누가 도둑질했다구 그랬어? 필요한 데가 있으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니까 어디 썼는가 그걸 알려는 거지.”
하고 말했지만 아내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직동에 사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미 조사를 다 한 것처럼 묻자 그때야 더 숨길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지 전부터 아는 남자라고 대답했다. 정노인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물었다. 아내는 그런 태도에 용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결혼하기 전부터 사랑했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도와 준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실을 전부 알자 그는 아내를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것이 지금부터 이십 년 전의 일이다.
“그분 지금두 살아 있나요?”
이야기를 다 들은 향미의 물음이었다.
“모르지, 알구 싶지두 않구…….”
“그 뒤에는 다시 결혼을 안 하셨나요?”
“안 했다. 여자가 무서웠다.”
“여자가 전부 그럴라구요?”
“글쎄, 그럴지두 모르지. 세상 인심이 강박해질수록 진실된 사랑이란 것이 드물구, 그렇게 되면 자연 산다는 것이 두려워지는 거야. 내가 운이 나쁜 사람이라면 셋째 넷째 여자두 다 마찬가지가 될 거 아니냐?”
“그런데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 가운데 어떤 분이 그래두 생각이 나세요?”
“글쎄, 첫째 여자는 나보다 학식이 좀 많았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한 어떤 남자를 좋아하다가 제 발루 나갔다. 그러니 나를 경멸하구 간 여자가 아니겠니? 그러니 생각하기두 싫지. 그런데 두 번째 여자는 내가 내보내서 그런 건지, 그렇지 않으면 가난한 애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진실된 것이란 생각에서 그런지 어쨌든 그 여자가 아직 머리에 남아 있다.”
“우리 아주머닌 좋은 여자죠?”
향미가 이번에는 난데없이 정노인의 누이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좋은 여자지. 남편이 싫다구 이혼하잘 때 도장을 찍어 주구는 지금까지 그 남편만 생각하며 살구 있으니까. 아마 지금이라두 그 남편이 자기를 찾아오리라 믿구 있을 거다.”
“그럼 아주머니하구 결혼을 왜 안 하셔요?”
“에이, 오빠하구 동생하구 결혼하는 법두 있냐?”
“다 같이 외짝이구 또 같은 집에서 살면서…….”
“그래두 그건 안 되는 거야.”
정노인은 향미가 다시 말을 못 하게 못을 박았다.
“할아버지.”
향미가 정노인을 부르고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왜?”
“내가 커서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게 결혼하지 마셔요.”
향미가 이런 말을 할 때 정노인은 적이 놀랐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애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하고,
“그래라. 나두 그걸 바라구 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가슴이 쓰린 것을 느꼈다. 지금 자기가 향미를 사랑하는 것은 향미의 장래가 아니다. 오직 향미의 현재를 사랑하는 것이다. 향미가 철이 들고 여자로서 성숙하게 되면 그땐 자기 옆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도 뻔한 일이다. 그런데 향미는 철이 없기 때문에 장래에 대한 일을 장담하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난 대학에 안 갈래.”
향미는 왜 자꾸만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왜?”
“할아버지 첫번째 부인처럼 되면 어떡해?”
정노인은 향미의 볼을 꼬집으며 빙그레 웃을 뿐 말을 안 했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하는 말.
정노인은 현재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남아 있는 것은 죽음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 하나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 죽음을 평화스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향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사람을 평화스럽게 할 수 있다. 평화를 등지고 살아온 자기로서 마지막 소원이랄 수 있는 죽욤 앞의 평화.
그런데 향미는 자기가, 언제까지나 살아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자기를 즐겁게 해줄 것만 생각하고 있다.
“가자 ―”
정노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향미도 들국화 가지를 들고 걷기를 시작했다. 사슴처럼 깡총깡총 뛴다. 산꼭대기에도 오를 것 같고 하늘에도 오를 것 감았다. 이때까지 한 이야기들은 전부 잊어버리고 속에도 겉에도 때가 하나 없는 솜처럼 둥실둥실 떠오를 것만 같은 향미였다.
“같이 가―”
앞섰던 향미가 뒤돌아서 이번에는 정노인을 향해 깡총깡총 뛰어왔다. 행복 같은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마중 나오는 것 같았다.
정노인 앞에 와서도 향미는 선 자리에서 깡총깡총 뛰었다. 즐겁기만 한 모양이었다.
정노인이 그미의 손을 꼭 잡고 뛰지를 못하게 했다. 그리고는 혼자서,
‘이 순간에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같이 있음으로 해서 즐거울 수 있는 이 순간. 그것은 순수한 것이요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즐거움 속에서 죽는 것보다 더 평화스러운 죽음이 있을까?
‘이 자리에서 화석이 되어 버렸으면…….’
지금의 감정이 조금도 건드려짐 없게 고통스런 병에 걸리지도 않고 그냥 굳어 버렸으면……˙.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다면 인간은 그리 슬프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노인은 죽음을 갈망하는 마음만으로 또 내일의 삶을 위하여 이 밤을 편히 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잠을 자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을 때 누이동생이 마당에 있다가,
“뭘 그리 늦게까지 산보하세요?”
혼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생각해 줘야 하지 않느냐는 투로 말했다.
“응! 이야길 좀 하느라구.”
그때 향미가 쪼르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숙제할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너무 정을 주지 마세요. 언제 누가 와서 데려갈지두 모르는 앤데…….”
누이동생이 충고의 말을 했다. 오빠를 위한 진심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 그 애 부모가 살아 있는만큼 언제 와서 찾아갈지 모르는 일이다. 정을 쏟아 놓았다가 그런 일을 당하면 슬픔만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노인은,
“내버리구 간 사람들이 찾으러 올라구?”
하고 누이동생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사 그런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을 생각하면서 향미와의 거리를 멀리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내일 그미의 부모가 찾는다 해도 그 순간까지 그미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사 부모를 따라간다고 해도 향미를 생각하는 마음에만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세상 일을 누가 알아요. 핏줄은 핏줄 아네요.”
“그래두 좋아.”
“오빠두…… 세상 맛을 다 보시구두 또 정을 남한테 주려구 그러세요?”
“글쎄 나두 모르겠다. 없는 줄 알았던 정이 어디서 또 생겨났는지?”
“뭣 땜에 여기루 와서 이렇게 사시죠?”
“세상의 정을 떠나서 살려구 왔어. 그렇지만 지금 나에겐 죽음만 남아 있어. 그 죽음을 평화스럽게 갖기 위해 사는 거야. 그것뿐야.”
정노인은 서울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올 때 자기 인생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했었다. 아내 문제뿐 아니라 돈벌던 일도 모두 그릇된 인생의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옳지 않게 돈벌던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
“살 때까지뿐이에요. 죽으면 모두가 그만인걸!”
“사는 것이 죽는 거구 죽는 것이 사는 거야. 죽기까지 우린 삶과 죽음올 구별할 수 없지 않니?”
“죽어두 남는 것은 남지 않아요? 그런 것두 생각하며 살아야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분명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정노인의 귀에는 남아 있을 자기와 재산 문제 같은 것을 생각해 보았느냐 하고 묻는 것처럼 들렸다.
자기가 죽으면 은행에 저금해 둔 돈 삼백만 원과 이 집이 누이동생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향미가 자기의 애정을 독차지하고 있다는데 그 상속에 대한 불안감이 일어난 것이다. 정노인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누이동생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
역시 형제간의 애정이라는 것은 순수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애정 이외에 불순한 무엇이 깃들어 있다.
‘모든 재산을 향미에게 주라.’
이런 유언을 해버리리라.
그는 속으로 생각한 것을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있다가 죽기 직전 저금통장을 향미 이름으로 바꿔 놔도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숙제하는 향미를 지키고 있다가 자리를 깔아 누이고야 자리에 누웠다.
누웠지만, ‘내가 커서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게 결혼하지 마셔요’ 하던 향미의 말을 생각했다.
철없는 애의 말이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하는 말이었다.
진정으로 자기를 즐겁게 해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과거가 너무나 외로웠다눈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어린애의 애정이 지금 과거의 외로움을 일소해 주고 있다. 이럴 수도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을 못 이루고 있을 때 갑자기 향미가 흐느끼는 것 같았다. 확실히 울음 소리였다. 잠 속에서 가위에 늘린 모양이었다. 정노인이 그미의 몸을 흔들며 가위에서 깨어나게 했을 때,
“엄마! 어디 가 있었어?”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했다.
“향미야― 향미야.”
정노인이 안타까이 울음을 계속하는 향미를 마구 흔들었다. 그때야 향미는 눈을 떴다. 그러나 눈을 뗬다가는 다시 감으며 정노인을 외면했다.
“무슨 꿈을 꿨니?”
정노인이 그미의 어깨를 뒤쳐 자기에게로 향해 누였다. 그때야 향미가,
“할아버지 !”
하며 벌떡 일어나 정노인에게 안겼다. 그리고는,
“무서운 꿈을 꿨어요.”
하는 것이었다.
정노인은 향미가 자기 엄마와 만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하지 않는 심정을 꼬집어 주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섭섭했다. 거짓말, 그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향미가 평소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던 것만은 사실이다. 자기 애정에만 만족하지를 못하고 어머니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탓할 수 없다. 그래서 그미를 베개에 누이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어머니를 그리워할 나이에 그립다는 말도 못 하고 사는 어린애. 정노인은 자장가라도 불러 주고 싶었다. 향미를 잠재우는 동안 그는 옆방에서 자고 있는 누이동생이 이런 인생을 알기나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정노인은 ○시로 갔다. 매달 한 번씩 나오는 은행 이자를 타기 위함이었다. 지난달 받은 이자로 살림을 하다가 남은 돈을 달리 저금한 뒤 이달 이자를 타가지고 향미가 다니는 학교로 갔다.
학교로 찾아가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이날만은 담임선생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와이샤쓰와 넥타이를 사들고 향미의 담임선생님을 만나 수고한다는 감사의 말을 한 뒤 향미가 중학교도 ○시에서 다니겠다고 하더란 말을 전했다. 자기가 보내기 싫어서 안 보내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달라는 뜻이었다.
○시에는 남자 중고등학교가 둘, 여자 중고등학교가 하나밖에 없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그런만큼 여학교의 실력도 알 만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 있는 집에들은 서울로 가는 것이 보통인 것처럼 생각되고 있다. 애들뿐 아니라 국민학교 선생들까지 그렇다. 그런만큼 담임선생은,
“장래를 생각하셔야 할 텐데요.”
정노인의 재고를 요구했다.
“글쎄, 그 애가 여기서 공부를 하겠다구 고집하는군요.”
정노인은 입장이 거북했다. 아무리 향미의 의사라고 그것을 강조해도 듣는 사람이 그렇게 듣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꾸 변명하기도 싫어,
“더 권유해 보겠습니다.”
하고는 향미의 하학을 기다려 향미와 함께 거리로 나갔다.
정노인은 향미를 데리고 며칠 전 맡긴 그미의 양복을 찾으러 양장점으로 갔다. 국민학교 학생에게는 지나치리만큼 고급 천에 눈부신 빛깔이었다. 그러나 정노인이 상점에서 싸구려 옷을 사주기가 싫어 직접 양장점엘 가서 골라 준 첨이라 향미는 무조건 좋아했다. 정노인은 향미가 좋아하는 것이 보기 좋아 색 옷을 입은 채 집으로 가자고 했다. 향미가 싫다고 할 리가 없다. 헌 옷을 싸들고 새 옷 차림으로 걸어갈 때 정노인은,
“꼬까틀 입으니까 더 예뻐 뵈누나.”
하면서도 누이동생을 생각했다. 어린애에게 그런 좋은 옷이 뭐가 필요하냐고 반드시 핀잔을 줄 것이다. 그러나 누이동생의 핀잔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향미가 좋아하고 또 내가 좋아하면 그뿐이 아니냐 하는 마음이었다.
“정말?”
예쁘다는 말에 향미는 더 즐거운 무양이다.
정노인은 향미가 그리 예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예쁘지 않아도 귀여워할 수가 있다. 귀여워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거짓말! 할아버지두 거짓말을 할 줄 아셔.”
“내가 왜 거짓말을 하니? 예쁘니까 예쁘다는 거지. 그럼 넌 네가 예쁘지 않다구 생각하니?”
“예쁘지두 않은데 할아버지가 절 좋아하시는 게 이상스러워요.”
“글쎄, 난 네가 예쁘지 않다구 생각한 적은 한 번두 없다.”
정노인은 예쁘고 안 예쁜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박색이 되어 남 대하기를 싫어할 정도라면 향미가 자기를 더 따르리라는 것을 생각한다. 사실 그는 여러 번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작년에 제가 이 길을 걸을 때두 예뻤을까요?”
향미가 작년 거지 꼴을 하고 정노인 집을 찾던 그때를 회상하는 모양이었다.
“그때두 예뻤지. 그러니까 내가 너를 보자 집에 같이 있자구 그랬지.”
“그때 할아버지를 가르쳐 준 사람에게 감사하구 싶어요. 누군진 알 수 없지만…….”
“거야 쉬운 일이지. 내 찾아줄까? 바로 아랫동네 사람이라면서.”
“네.”
“참, 그때 그 사람이 뭐라구 할아버지 이야길 했다지?”
“시내 사람들이 밥두 잘 안 주구 무섭기만 해서 시골을 찾아간다구 갔더니 어떤 아저씨가 할아버지 이야길 하며 찾아가 보랬어요. 가족이 없는데다가 어린애가 하나두 없으니 친절하게 해줄 거라구.”
“나이는 몇 살쯤 되어 보이던?”
“마흔 살두 넘었을 것 같아요.”
“알았다, 내가 가서 찾아볼게. 사람이란 감사할 줄을 알아야 하는 거야.”
“선물두 사가지구 갈래요.”
“그래라. 내가 사줄게.”
정노인은 향미가 더욱 좋았다. 어리면서도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일인가?
향미가 자기를 따른다. 좋아한다. 그러는 것들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 만큼 진실한 애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오 리 길을 걸었다. 그 동안 향미가,
“할아버지가 매일 학교까지 와주었으면 좋겠네.”
이런 말도 했다.
“정말 그럴까?”
정노인은 그랬으면 좋을 것 같았다.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스런 일인가? 그런데,
“그건 안 돼요. 할아버지두 일을 하셔야지.”
향미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너하구 같이 있는 것이 나의 일 전부가 돼두 좋아.”
정노인이 어린애 같은 말을 했다.
“안 돼요. 남들이 욕할걸요. 바보라구…….”
“왜 바보야?”
“혼자 학교에두 못 다녀 할아버지하구만 다닌다구…….”
“그럼 어때?”
“싫어요.”
싫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손톱만큼도 향미가 싫다고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래라.”
그들이 집 가까이까지 이르렀을 때였다. 향미가 바깥마당에서 빨갛게 매달려 있는 감나무를 보고,
“감은 언제 먹게 되나요?”
하고 물었다.
“서리 올 때 먹는다. 그 전에두 따서 침시를 만들면 먹을 수 있지.”
“빨리 익어서 따먹었으면…….”
그때였다. 마당에서도 한참 되는 곳까지 나와 있던 누이동생이 향미를 보고,
“옷이 그게 뭐냐?”
정노인이 예상했던 대로 타박을 시작했다.
“어때서 그래?”
정노인이 그미의 입을 막으려 했다. 그런데도,
“국민학생은 국민학생다운 옷을 입어야지.”
“얼마 안 있으면 중학생인데 어때? 내가 고른 것이니까 딴소리 마라.”
누이동생은 입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도대체 오빠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표정뿐이 아니었다. 정노인과 향미의 뒤에 처져서 물끄러미 뒤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드는 것이었다. 정노인은 그러는 누이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상할 것이 무엇인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해주기 위해 상대방의 위치에 서서 동등한 감정을 가지는 것이 무어 그리 잘못된 일인가? ˙
노인은 애들올 사랑하는 데도 노인의 위치에 서서 자기 본위의 감정만 표현해야 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당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다음날 아침 향미를 학교에 보낸 뒤 정노인은 동쪽으로 삼 마장쯤 떨어져 있는 ×부락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향미와 약속한 사람을 찾기 위함이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고 할 때 어떤 부인이 찾아왔다. 사십이 채 못 되어 보이는 도회지 여자였다.
안마당까지 들어온 그 여자는 주인을 찾는 대신,
“이 댁에 김향미라는 애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정노인은 육감으로 그 여자가 누구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래서 생각할 여유를 갖기 위해,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고 그 여자의 신원을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누이동생이 가운데 나서서,
“향미 어머니 되시는 분이세요?”
향미가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 학교에 갔습니다.”
누이동생이 경박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향미를 데리러 온 사람을 반가워하는 심정이었다. 질투가 섞인 그 심정이 모든 산통을 깨뜨리고 만 것이었다.
정노인은 그 여인을 푸대접할 수가 없게 되었다.
“들어오시지요.”
그 여인을 방 안으로 안내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여자가 향미를 버리게 된 동기부터 들었다. 그러면서도 정노인은 그 여자가 향미를 찾아왔지만 당분간 향미를 그냥 자기 집에 맡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런데 여인은 그것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십이삼 년을 사는 동안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할 생각올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 남편에게는 좋아하는 여자가 따로 생겼고 자기에게도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 그래서 이혼하기로 합의를 한 뒤 마지막으로 여행이나 같이 할 예정으로 경주를 향해 떠났다. 그러나 하룻밤 ○시에서 묵는 동안 낭만적인 계획이 지나친 장난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 경주까지 채 가기 전에 그 계획을 포기하고 각자 자기 갈 데로 가기로 했다. 다만 문제는 향미였다. 누가 데리고 가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싸웠다. 각기 새 짝을 갖고 있는 만큼 향미는 누구에게나 방해되는 존재였다. 여자가 먼저 여관을 떠나 버렸다. 그뒤 남자도 향미 모르게 ○시를 떠났다.
그런데 사랑하는 남자에게 갔을 때 상황이 달라졌다. 이때까지 총각인 줄 알았던 남자에게 부인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를 동거생활하면서 본부인과의 이혼을 요구했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에게 속았다는 분한 마음에서 그 남자와도 헤어졌다. 그리고는 당분간 혼자 살기 위해 취직을 했다. 취직생활을 하자 향미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 이제 ○시를 찾아왔고, ○시에서는 국민학교를 전부 찾아 헤매다가 저녁 늦게야 향미의 거처를 알았다. 그래서 지금 향미를 만나기 전 오랫동안 길러 준 분들의 양해를 우선 얻고 학교로 갈 채비라는 것이었다.
정노인은 무엇이라고 할 말이 없었다. 향미의 친어머니에 틀림없는 사람이 향미를 데려가겠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할 말이 없으면서도 정노인은 왜 빨리 죽지를 못했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일을 당하기 전에 죽었다고 하면 자기는 소원했던 대로 생을 끝낼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럼 지금 학교루 가서 그 앨 데리구 가겠습니다.”
여인이 정식으로 정노인의 승낙을 요청했다.
“좋두록 하십시오.”
정노인은 향미가 쓰던 물건들을 전부 줘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여인이 새삼스럽게 인사를 했다. 그 인사에 아무 대답도 안 하자 여인이,
“그새 돈두 많이 쓰셨을 텐데요. 그 은혜는 차후라도 꼭 갚겠습니다.”
송구스러운 태도로 머리를 숙였다.
“그런 말씀은 마시오. 내가 준 것이 있다면 마음이었소. 그것은 은혜루 생각할 그런 것이 아니오.”
정노인은 은혜라는 말이 너무나 세속적이어서 싫었다. 은혜라는 말로 보상될 수 있는 마음이었다면 향미에게 향했던 모든 마음을 송두리째 뽑아 내던지고 싶었다.
정노인은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서울 가면 편지를 잊지 않겠습니다.”
정노인은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담배만 태웠다. 한 대를 태우고는 계속해서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향미를 기다리며 연속 담배를 피우던 그때의 마음하고는 완전히 다른 마음이었다.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되 처참한 마지막이다. 이런 생각만이 가슴을 채웠다.
“향미의 옷들을 전부 싸라.”
그는 담배를 빨며, 그리고 시선은 엉뚱한 데 두고 누이동생에게 말했다.
“애가 속올 많이 태워 드렸지요?”
“…….”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찾아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
“방학 때에는 같이 놀러 오겠어요.”
“…….”
모두가 정노인과는 관계없는 말 같았다. 그래서 아무 대꾸도 안하고 있는데 여인이,
“오눌루 서울엘 가야겠어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정말 할아버지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핸드백 속에서 돈을 꺼내 놓았다. 물론 많지 않은 것이었다.
“여비가 좀 남을 것 같아 마음 표시루 드리는 겁니다. 올 때 아무 것두 사오지를 못해서…….”
여인이 미안해하며 자기의 정성 이라는 것을 보이려고 애썼다.
“도루 넣으시오.”
정노인이 엄격하게 말했다. 은혜라는 말이 세속적이어서 불쾌했던 것이지만 내미는 돈에는 모욕감까지 느꼈던 것이다.
“적어서…….”
“적구 많구가 문제 아니오. 돈으루 평가되기가 싫어서 그러는 거요. 어서 넣으시오.”
“그래두 제 성의를…….”
“어서 넣으라니까요.”
정노인은 여인이 자기 손으로 돈을 집어넣게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난 뒤에에야.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하고는 바깥마당으로 나가 감나무의 감을 따기 시작했다. 반 키쯤 나무에 올라가 큰 것을 골라 가며 감을 한알 한알 따고 있을 때 정노인은 자기가 굉장히 높은 나무에 올라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래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땅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떨어지면 죽올 것 같았다.
‘떨어지자.’
향미가 먹고 싶어하던 감을 따며 죽는다면 자기는 행복할 것 같았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나왔는지 누이동생이 나무 밑에서,
“딴 걸 이리 주세요.”
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만 따라는 것인 모양이었다.
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감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마당까지 나온 여인에게 감을 주며,
“향미가 먹고 싶어하던 감이오. 침시루 만들어 먹이시오.”
할 때 정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피잉 돌았다. 그리고는 향미를 잘 기르라는 말이라든가 여인에게 잘 가라는 딸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인이 돌아가자 그는 얼마 동안 자리에 누워 있었다.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나무 전정하는 가위를 들고 나가 나뭇가지들을 전정하기 시작했다. 아직 전정하기에는 조금 이른 때였지만 무엇이라도 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남은 것은 껍질뿐이다. 그 껍질마저 잘라 주는 사람은 없는가?
좌우간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놀렸다. 움직이지 않고는 배겨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위로 코스모스를 한아름 잘라다가 꽃병에 꽂기도 했다.
봐줄 사람도 없는 꽃이란 생각이 들 때 장미 가지를 잘랐다. 장미가시가 손을 찌를 때 아픔을 느끼고는 그래도 자기가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살았다는 것에 대한 귀찮음을 느꼈다.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뜻밖에도 향미와 그녀의 엄마가 나타났다.
그를 보자 향미는 달려와 안기며 소리를 내어 울었다. 향미의 울음소리가 이때까지 참고 있던 그의 슬픔을 터뜨렸다. 그도 향미를 안고 등을 쓸면서 울었다.
“왜 왔냐? 그냥 가지 못하구…….”
정노인은 일생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울음을 마음껏 울었다.
“할아버지.”
향미도 오열을 했다.
“향미야 ― ”
그는 향미를 더욱 힘주어 안았다. 순간 그는 또 죽고 싶었다. 향미를 안은 채 죽고 싶었다. 사람은 죽고 싶은 때 복잡한 수속 없이 그냥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정노인은 죽어지지 않는 자기 목숨을 슬퍼했다.
“가라. 가야지.”
죽지 못하는 것은 결국 이 말을 해야 하는 숙명 때문일까.
“할아버지 ― ”
향미는 간다는 말도 안 간다는 말도 못 하고 정노인을 부둥켜안기만 했다. 누이동생이 그녀를 끌어내지 않았다면 언제까지나 안고 있었을 것이다.
정노인도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가야 하는 사람은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가자.”
그는 향미의 손을 끌었다. 혼자는 차마 떠나가지 못할 향미다. 손을 잡고 배웅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들길을 걸으며,
“보구 싶던 엄만데 가서 잘 살어.”
정노인은 냉정을 되찾은 듯 향미를 달래기도 했다.
이 마장쯤 걸었을 때 정노인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어서 가라.”
작별인사를 했다. 정거장까지만이라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슬픔을 당해 낼 것 같지가 않았다.
“할아버지.”
발버둥을 치며 울었지만 향미는 자기 엄마 손에 끌려 걷기를 시작했다.
정노인은 한 손에 감 보자기를 들고 한 손은 엄마 손에 잡힌 채 뒤를 돌아보며 걸어가는 향미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잠시 뒤에는 풀밭에 앉아 점점 작아 가는 그들의 뒷모습에 또 눈물을 흘렸다.
향미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 마중 나가 앉아 있던 곳이었다.
이제는 마중할 사람도 없어졌다.
정노인은 갑자기 죽음이 무서웠다. 평화스럽게 찾아오기를 기다리던 그 죽음이 무섭게만 생각되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삼중당,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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