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전 읽기]
《앙굿따라 니까야 》제5권『아홉의 모음』[제4장 대 품] <소[牛] 경>
바위가 울퉁불퉁 돌출한 산을 걷는 데 능숙한 산악의 소 같은 비구 ➀
2.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현명하고, 영민하고, 들판을 잘 알고, 바위가 울퉁불퉁 돌출한 산을 걷는 데 능숙한 산악의 소가 있다 하자.
그 소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전에 가 본적이 없는 방향으로 가 보리라.
전에 먹어 보지 못한 풀을 뜯어 먹으리라.
전에 마셔 보지 못한 물을 마셔 보리라.'라고.
그가 앞발을 확고하게 잘 내려놓은 뒤 뒷발을 들어 올린다 하자.
그러면 그는 전에 가 본 적이 없는 방향으로 갈 것이고,
전에 먹어 보지 못한 풀을 뜯어 먹을 것이고,
전에 마셔 보지 못한 물을 마시게 될 것이다.
또 그 곳에 서서
'나는 전에 가 본 적이 없는 방향으로 가 보리라.
전에 먹어 보지 못한 풀을 뜯어 먹으리라.
전에 마셔 보지 못한 물을 마셔 보리라'라고 생각했던 그 장소로 안전하게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 산악의 소는 현명하고 영민하고, 들판을 잘 알고, 바위가 울퉁불퉁 돌출한 산을 걷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비구가 있어 현명하고, 영민하고, 들판을 잘 알고,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 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 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무는 데 능숙하다.
그는 그 표상을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짓고, 바르게 확립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을 가라앉히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물리라'고.
그러면 그는 아무 어려움 없이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히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계속>
《앙굿따라 니까야》 제5권
『아홉의 모음』[제4장 대 품]
<소[牛] 경(A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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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경은 현명하고, 영민하고, 들판을 잘 알고, 바위가 울퉁불퉁 돌출한 산을 걷는 데 능숙한 산악의 소의 비유로 9차제증득을 설하신 중요한 경입니다.
여기 우둔하고, 어리석고, 들판을 모르고, 울퉁불퉁 돌출한 산을 걷는데 서투른 소가 있는데,
그 소가 뜻을 내어 또 다른 생소하고 낯설고 험한 들판으로 가서 풀을 뜯고 물을 마시려 해도 걷는데 서투르다면 뜻대로 되지 않듯이,
초선에 서투른 자가 그보다 더 험한 제2선에 든다는 것은 기대난망입니다.
초선에 들어 머무는데 서투르면 제2선에 머물고자 해도 머물 수 없게 됩니다.
아니 초선에도 머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소는 현명하고 영민하고 들판을 잘 알고 울퉁불퉁 돌출한 산을 걷는 데 능숙하다면 새로운 곳으로 가서 풀을 뜯고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아 갈 수 있듯이,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 버리고,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 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무는데 능숙한 사람은
초선이라는 표상을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짓고, 바르게 확립하면 제2선에 들어 머물 수 있는 법입니다.
어리석고 우둔하여 서투른 소와 헌명하고 영민하여 능숙한 소의 능력 차이는 실로 큰 법입니다.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통찰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수행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따라서 통찰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서투른 수행자가 되고 능숙한 수행자 되는 법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 그리고 안전을 잘 챙기시면서 자애와 연민이 함께한 넉넉한 마음으로 즐거운 화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백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