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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20717 주일오전예배/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악한 세대 |
성경 | 누가복음 11:27-32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누가복음 11:27-32)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녹취자료 |
오늘 예배를 통해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 충만의 응답을 받는 가장 축복된 예배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이 7월 17일이죠. 국가 제헌절입니다. 국가는 헌법에 기초해서 세워지고 헌법을 기초로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자, 하나님 나라의 헌법은 무엇일까요? 기록된 성경 말씀이 하나님 나라의 헌법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죠.
그러면, 성도는 모든 삶의 기준과 표준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하나님 말씀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헌법이 만들어지면 그다음에 후속법들이 만들어져요. 헌법과 같이 합해서 6 법이 있는데 상법과 민법과 형법을 만들고 형사소송법과 민사소송법을 만들어서 헌법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 구체적으로 만들죠. 그리고 대통령은 시행령을 만들어서 헌법을 또 적용하기도 하죠. 가끔 헌법 소원이 일어납니다. 바로 이 법이 헌법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내리면 그 법이 무효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최상위법이 무엇일까요? 성경 말씀이에요. 말씀이 헌법이라고 하면 모든 삶과 세상법까지도 어디에 맞춰야 할까요? 헌법에 기준으로 해서 맞춰야 해요. 위헌결정 내리고 헌법 따라가야 하는 겁니다. 성경에는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하나님의 명령이에요. 하나님의 헌법이라고요. 그런데 세상법은 어떻죠? 다니엘과 세 친구는 뭐 하도록 명령받았나요? 우상 숭배하도록 명령받았어요. 그래서 무엇과 싸우는 거죠? 하나님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 세상법에 위헌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의연하게 세상 법과 싸우는 거죠.
주기철 목사가 일제가 만든 신사 참배 법에 걸렸어요. 우상 숭배입니다. 주기철 목사는 어떤 내용을 잡았죠? 헌법에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 내용을 가지고 싸우는 겁니다. 신앙생활의 정신과 기준도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입니다. 헌법, 즉 하나님 만드신 성경의 가장 핵심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예수 믿으라는 거예요. 예수님 믿으라는 것이 헌법인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헌법을 지킨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 잘 믿는 것이에요. 신앙생활을 왜 실패하는 것인가? 헌법 놓쳐서!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우리가 사실 실패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디로 돌아가야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헌법인 하나님 말씀을 왜 주셨을까요? 국가의 법도 만든 목적이 있어요.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법을 만드는 거예요. 성경에도 똑같이 말씀합니다. 신명기 10:13 절 말씀보면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 말씀 주시는 것은 뭘 위해서? 너의 행복을 위해서 주시는 겁니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68절까지 있는데 1절에서 14절까지는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지키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만약에 이 말씀을 놓치면 나가도 저주받고 들어가도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말씀 잡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오늘 나에게 주신 영원히 변치 않는 헌법을 언약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의문이 생겨나요. 지금 여러분들이 성막에 가서 예배드립니까? 여러분들이 성막에 들어 피제사를 드리나요? 그들이 지켰던 절기를 우리가 지키고 있나요? 헷갈려요. 성경에는 법은 세 가지 법이 있어요. 도덕법이 있어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모든 법이 도덕법에 속하고요. 그다음에 의식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제사법이라고 하는 것은 제사에 관한 제도들을 법으로 정해놨어요. 그리고 시민법이라고 해서 하나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을 따로 만들어 놨어요. 근데 지금은 신정국가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적용시켜야 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법을 주셨을 때는 법의 정신이 있는 거예요. 제사는 오늘날 예배로 변형되었지만, 그 제사 속에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계획이 들어있거든요. 우리는 그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 뜻을 찾는 것을 두고 법의 정신이라고 제가 표현해보았습니다.
또 그때 시대를 반영한 법을 우리가 실정법이라고 하는데 좀 쉽게 예를 들어봅시다. 제8계명이 ‘도둑질하지 말라’고 했어요. 유대에서는 그걸 어떻게 적용하는 것인가 하면 도둑질하다 잡히면 4배를 배상하도록 해요. 자, 어떤 나라에서는 태형으로 두드려 패는 나라도 있어요. 곤장을 때리기도 하고 어떤 나라는 도둑질하면 손목을 자르기도 해요. 어떤 나라는 뭐 하는 것인가. 이마에다가 도둑놈이라고 새겨요. 종류가 달라요. 다른데 목적은 뭐죠? 도독질 하지 말라 하는 겁니다.
바로 우리가 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야 되는 것인가. 그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뭐라 말씀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지금 우리가 옛날 유대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는 것도 아닙니다. 시대는 변해도 말씀의 핵심의 내용은 법의 정신은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강단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 말씀을 뭐하라? 편집하고 설계하고 디자인하도록 깊이 묵상하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깨닫게 만들어 주는 것인가 그 말씀이 참된 의미를 내게 깨닫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2:9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좋은 것으로 눈으로 보아도 안 보여요. 귀로도 안들려요. 마음으로 생각해도 깨닫지 못한다고. 그러나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정말 깊이 묵상하게 되었을 때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뭘 원하시는 것인가를 뭐 한다고요? 우리에게 깨닫게 만들어주신다고 우리들에게 약속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받은 구원 취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인생이 힘들어져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뭘 잡아야 될까요. 오늘 오전 예배나 오후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 돼요. 그것도 누구한테? 내게 주신 음성으로 들어야 되고 그 말씀 뭐 하라고요? 깊이 묵상할 때 그 말씀이 내게 왜 온 것인지 그 말씀 목적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깨닫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1.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예수는 공생애 사역 중에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이런 방망한 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예수 놀라운 일들을 하셨죠. 아마 현장에서 예수님 앞에 은혜 받았던 한 여인 것 같아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해서 오늘 뭐라고 하는 것인가. 당신에 대한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예수 어머니를 칭송하는 거예요. 마리아를. 그랬더니 예수님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오히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예수님 사역 현장에 예수님과 동생들이 한번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래서 무리들이 당신의 엄마랑 동생들이 찾아왔다고 그랬더니 예수 뭐라고 대답하셨죠. 주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내 형제의 자매라고 말씀하셨어요. 혈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말씀을, 바로 헌법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계시록 1:3 말씀을 보면 이 여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걸 지키는 자가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런데 유대인들이 뭘 자랑할까요. 혈통을 자랑해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난 것에 무지무지하게 자부심을 가져요. 바울이 과거의 자기를 표현하면서 나는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의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는 기본이요 이것이 정통 유대인들의 큰 자랑거리였어요. 내가 아브라함은 후손이다. 혹시 모태신앙 있나요? 자랑하지 말아요. 모태신앙이 그게 축복의 근원은 아니요. 뭘 못 한다면? 내가 복음 못 누리면 모태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유대인들은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베풀라고 명하시죠. 그래서 할례를 받으면 아브라함의 권속으로 구원받았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선민의식을 갖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러나 성령이 뭐라고 말씀하죠. 혈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성경은 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죠? 성경의 핵심은 요한복음 5:39 보면 이 성경은 내게 대하여서 증거하는 것이다. 말씀을 껍데기로 받으면 우리가 큰일 나요. 말씀 속에 뭘 받으라고 요구하죠? 오직 예수는 누구다? 그리스도이다. 그분만이 그리스도이다. 이 언약잡는 것. 이게 말씀의 핵심이에요. 이거 잡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왜 실패하고 망했나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로 그리스도를 보냈는데 이게 누구 배척 하죠? 예수를 배척하는 것이거든요. 그래놓고 자기는 뭐라고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이죠. 이 사건 때문에 기록된 성경들이 바로 요한복음 8장의 내용이 그 내용이 주로 쭉 흘러가는 내용들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네가 아브라함의 자손 그 혈통이 너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도 나 보고 예수 믿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폭탄선언을 하죠. 바로 네 속에 예수 생명이 없는, 예수 안 믿는 네가 마귀 자식이라고.. 율법을 지켜 행하여서 구원 받는다는 여기에 빠진 바리새인들을 향하여서 너희들이 바로 마귀 자식이라고.. 혈통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그렇게 설명을 하죠. 세례요한은 혈통을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서 마태복음 3장 7절 이하에 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한다’라고.. 뭐 하지 말라? 혈통 자랑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2장 28절 이하를 보면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구원이 어디에 있다고요? 혈통으로, 부모가 예수 믿어도 자식도 예수 믿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구약성경이 재미난 표현을 합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더니 이빨이 시어져서. 그러면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빨이 시냐? 뭘 표현하고 있는 것인가 하면 구원은 하나님과 1대1의 관계이지 혈통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율법에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을 보면 하지 말라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 성도들은 하지 말라는 것은 죄 지은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하라는 것을 안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게 율법을 범한 줄을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은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원하시나요? 그러면 뭘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것이 무엇인지, 내게 무엇을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 것인지 뭐 하라? 이 말씀을 묵상하라고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죠. 그래서 제가 성시낭독으로 시편 1편을 선택을 했어요. 누가 복이 있는 자인가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서, 그냥 묵상이 아닙니다. 즐거워 하여서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그 사람이 형통할 것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바로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뭐 하라고 이야기합니까? 강단의 메시지를 듣고서 이 메시지를 뭐 하라? 편집하고, 설계하고, 디자인하라고 우리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을 뭐하라고요? 우리들에게 적용하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이 말씀을 왜 주신 것인가? 저는 성경을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이 메시지를 왜 주신 것인가요. 마지막 부분에 다시 나옵니다만은 하나님이 왜 요나를 보내 가지고 니느웨 가서 복음 전하게 만든 것인가요? 하나님은 계획이 다 있어요. 모든 말씀이 주어졌을 때는 그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다 들어있는 것이에요. 묵상할 때에 내게 뭐가 편집되게 만들어 주는 것인가 하나님의 계획이 편집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에요. 편집하는 거 가지고 내가 뭐합니까? 기도로 설계하고 내 속에 적용 시켜야 뭐가 이루어지는 거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뭐 하라고 이야기하죠? 디자인하고 설계하라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바로 순종할 때, 그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을 우리들에게 약속하고 있죠.
2.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자, 앞에 나왔던 본문과 여러분들이 계속 연관시켜서 보셔야 됩니다. 지난주 메시지가 뭐가 나왔죠? 예수님께서 귀신들려서 벙어리 된 자를 치료하니까 유대인들이 뭐라고 비방했죠? ‘저 귀신 들려가지고, 귀신의 왕 바알의 힘을 입어가지고 쫓아냈다’ 뭐 하죠? 예수의 놀라운 역사를 보면서도 예수는 안 믿으려고 그래요. 그러면서 뭘 구하는 것인가? 예수님 보고 당신의 메시아 되는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를 합니다. 지금까지 표적을 수없이 보여주었는데 표적을 또 보여 달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왜 요구할까요? 실제로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예수를 믿고 싶어서 표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를 트집 잡기 위해 가지고, 흠잡을 것이 없는가 싶어가지고 하는 거죠. 요즘 야당과 여당의 싸우는 걸 보면은 상대방이 아무리 잘해도 칭찬 안 해요. 배배 꼬아가지고 여당이나 야당이나 서로 흉보는 이것밖에 안 해요. 악한 동기를 가지고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는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내가 네게 보여줄 표적 자체는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 오늘 본문의 평형 구절이 되는 마태복음에서는 뭐라고 표현하는 것인가 하면 예수님이 바로 요나가 고기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인자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표적으로 말씀하기도 하셨죠.
사실 트집 잡으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것을 이야기해도 안 믿어요. 안 믿으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사실 예수님이 그동안에 얼마나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나요? 그걸 보고서 그 소문을 듣고서 마태복음 8장에 보면은 문둥 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오죠. 문둥 병자가 뭐를 듣고 믿음이 들어가졌죠? 예수님의 표적의 소문을 듣고서 찾아올 믿음이 생겨나진 거예요. 열 두해를 혈루 병 않던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도, 그전에 예수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들은 것도 아니에요. 예수님 하신 이 표적을 듣고서 지금 찾아온 것이란 말이거든요. 중요한 것은 우리 성도들이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갖고서 예배를 참석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 앞에 정말 서게 된다면 바로 마리아가 예수님 발체에 앉아서 그 말씀을 듣고 사모했던 그 마음으로 우리가 서게 된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언제 임할까요? 오늘도 똑같이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진짜 은혜받는 사람 또 따로 있어요. 누가 받을까요?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게 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다 들어 있어요. 참신 논쟁으로 850십 명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선지자를 죽이고 기도했을 때 3년 6개월 동안 가물었던 땅에 비가 내려지고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나졌어요. 그런데 전혀 변화가 안 일어나요. 이세벨은 독에 올라가지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죠. 이 상황 속에서 엘리야는 낙망 좌절하여 하나님 앞에서 뭐 하죠? 날 죽여달라고 하죠. 지금 뭘 모르죠? 왜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게 되는 것인지? 이 큰 역사가 이렇게 왜 안 되는 것인지? 뭘 모르죠? 이유를 모르는 거예요. 모르니까 나를 죽여달라고 지금 하나님 앞에 데모하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문제를 갖고서 예배드리러 들어오셨나요? 그 낙심한 엘리아에게 떡과 물을 주어 힘을 얻게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호렙산으로 가게 만들어서 세미한 음성을 듣도록 만들어주시지요. 여러분 어떤 문제를 가지고서 교회 오셨습니까?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세미한 음성으로 여러분들에게 답을 주시는 것이 그것이 예배란 말이거든요.
그러면서 누가복음 10장 21절 보면은 예수님의 감사가 나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여기서 지혜 있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의 성공자 자들입니다. 세상의 엘리트들입니다. 그리스도 없이도 적당히 자신의 노력으로 잘 살 수 있다고, 사단이 준 창세기 3장 6장 11장으로 성공한 세상 사람들입니다. 이를 두고 정말 어떻게 표현하는 것인가? 사단에게 사기당한 신자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들은 예수 믿어도 오직 그리스도가 잘 안돼요. 오직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 충만 사실은 안 잡아요. 없어도 살만하다고 생각하니까, 실제로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 앞에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요. 제가 집사 때 그랬거든요. 저는 ‘죽어도 목사 안 한다‘ 마음으로 굳게 결심했어요. 왜? 목사 되면 너무 고생하거든요. 나는 돈 많이 버는 1등 장로 되어가지고 멋있게 교회 섬기겠다. 뭐 하죠? 그 심보 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거죠? 오직은 싫은 거예요. 오직 싫고, 적당히 세상을 즐기고 누리면서 열심히 교회 그냥 다니면서 인정받는 장로 되고 싶은 그 마음이었어요.
정말 우리에게 무슨 말씀 하고 싶어 하시는 건가? 정말 오직 속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인데 이게 안 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는 거죠. 이와 같은 자들에게는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어도 진짜 귀한 것은 깨달아지질 않아요. 하나님께서 그 귀를 사실은 막아요. 왜 막을까요? 줘도 안 할 거니까. 내 마음에 들면 순종하고 마음에 안 들면 순종 안 할 거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진짜 왜 그런 겁니까? 안 주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 말씀 앞에서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에 순종의 의지를 갖고 말씀 앞에 설 때 진짜를 내게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찬송을 팔복을 일부러 찬송을 선택을 했어요. 뭐가 복인가요? 심령이 가난한 것이 복이에요. 애통하는 것이 복이에요. 화평케 하는 것이 복이에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복이에요. 왜 그런가요? 뭐가 가능한 거죠? 그것이 어린 아이의 심령입니다. 정말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한 순간도 주의 도움 없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그 마음으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요. 복음 놓치고 살았던 내 삶들이 그것이 너무 애통스러운 거예요. 현장을 바라보니까 이 복음이 없어 실패하고 망하는 자들이 있는데 여기에 관심 없이 살았던 그 자체가 뭐한 거예요? 그게 애통한 것입니다. 뭐가 화평케 하는 자입니까? 뭐가 여러분들 온유한 자인지 압니까? 온유라는 말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이 길들여 진 것을 우리가 온유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정말 그 말씀을 지켜 행하고자 하는 그 의지 속에서 말씀 앞에 서는 것, 그게 온유입니다. 그리고 뭐가 복이 있다고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는 한 순간도 주님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 상태 속에 지금 뭐 하신다고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합당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3.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요나서 내용 여러분 잘 아시죠?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 가서 복음 전하라고 그랬는데 싫다고 도망치다가 하나님이 고기 뱃속에 집어넣고 거기서 요나가 항복했을 때 다시 끄집어내가지고 다시금 니느웨 가서 복음 전화 했던 사건들이 보여지지요.
바로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마태복음 12장 39-40절에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무슨 표적을 주셨죠? 바로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온 것처럼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로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난 이 사건을 두고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표적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표적을 보고 예수 믿은 자들이에요. 여러분 물어봅시다. 예수 보셨어요? 이 천년 전에 예수님 계신 것이 믿어져요? 그분이 내 죄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거 믿어져요? 정신병에요, 여러분들이. 그게 어떻게 믿어져요? 본 적도 없는데. 그런데 우리가 믿어져요. 그게 표적이에요.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약속대로 죽었다 다시 살아나신 그게 믿어지는 거. 그 표적을 믿고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시는 것은 요나의 전도와 비교를 하면서 요나의 전도를 받았던 니느웨 사람들이 듣자 온 백성이 회개하고 왕까지... 심지어 짐승들까지 금식하며 회개하고 돌이켜서 그들이 멸망에서 해방 받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왜 얘기 했을까요? 예수님이 땅에 오셔서 이 땅에서 3년 6개월 동안 계시면서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서 예수가 그리스도요,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전부 다 보여주었어요. 그런데도 뭐 하는 것인가? 예수 배척하고 이단이라고 정죄해서 예수님 못 박아 죽였어요. 그걸 지금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만큼 하나님 앞에 특별하게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보면서 놀라운 것을 본 민족이 어디 있나요? 누가 홍해를 갈랐고 여리고가 무너지는 체험을 누가 했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이에요. 그런데 또 뭐 하는 거죠? 문제만 생기면 불평 원망하고 또 넘어지는 것입니다.
자, 오늘 이 메시지를 우리에게 왜 줄까요? 사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예요. 바로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예요. 여기 계신 분들은 복음메시지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에요. 10년 20년 동안 매 주마다 복음메시지 듣고 이 언약 잡아라, 미션 찾아라. 안 해요. 제가 무슬림에 가서 복음을 전하니까 한 무슬림 소녀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면 왜 이제 오셨습니까... 자기는 예수 믿고 싶어도 단 한 번도 복음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 안 믿었다고... 여러분 세계 교회가 사실 이 복음을 못 듣고 지금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천년 만에 회복된 이 놀라운 복음을 우리에게 날마다 듣게 만들어 주었는데 우리가 이 복음 듣고 세상 살리지 못하게 된다면 누가 우리를 정죄할까요? 세계 교회가 우리를 정지를 해요. 누가요? 무슬림 그 소녀가 우리를 정죄해요.
우리가 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러면 이 복음을 우리가 뭐 해야 될까요? 이제는 정말 이 복음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서... 여러분 지식으로 아는 복음은 내 것이 아니에요. 이 복음을 정말 여러분들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편집 설계 디자인할 때 오직 속으로 들어갈 때 내 인생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체험을 하면은 여러분들의 눈이 열려져서 세상이 왜 망하는지가 보여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주시는지 압니까? 내가 해야 될 미션을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통해서 내게 주시는 것이에요. 누가 복이 있는 자인 것인가요?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언약을 잡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고 그 언약을 통해서 미션을 찾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에요.
저는 말씀 묵상을 하면서 왜 하나님은 난데없이 요나를 통하여서 니느웨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셨을까? 아니 왜 생뚱 맞게 그동안에 한번도 전하라고 안했는데, 애 갑자기 요나보고 니느웨 가서 전하라고 했던 것인가? 그것을 하나님 앞에 질문하게 되었어요. 왜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어요. 요나가 복음을 전하고 난 이후에, 43년 이후에 그 니느웨가 있는 그 앗수르 나라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망해요.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이 포로로 잡혀 간다고요.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 가게 되졌을 때에 니느웨 성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 왔으니까, 나라 전체로 잡혀 왔지만은 니느웨 성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을 전부 환영하고 선대해 준 것이에요. 하나님이 요나 보고 왜 복음을 전하라고 이야기한 것인가? 망할 것을 미리 내다 보고 그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작업들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요나가 만약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도망 갔을까요? 안 가요. 아마 뛰어가서 열심히 니느웨 가서 복음을 전했겠죠. 그래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결국은 남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요나가 복음을 전한 것이 그 후에 일어날 민족의 재앙을 막게 되는 놀라운 일들에 이 요나가 쓰임 받았다는 그 말이에요. 이 복음이 세상을 살리는 것이에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잡혀 갔던 유대인들이 이제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서 디아스포라(흩어진 자)가 되지고 그들이 모이면 곳곳마다 무엇을 만들죠? 회당을 만들어요. 회당될 수 있도록, 만드는 그 기초 자체를 그 니느웨 성 사람들이 선대하고 장사 밑천 지원해주고 이래서 흩어진 것이에요. 그 이후에 사도 바울이 세계를, 아시아권과 중동을 다니면서 가는 곳곳마다 이들이 세우는 그 회당을 통하여서 다니면서 복음 운동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에요. 우리 눈에 보여지는 하나의 요나의 사건이지만, 그 배후 속에는 이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하나님이 요나를 가서 복음 전하게 만든 것이에요.
여러분이 한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이것이 그 이후로 얼마나 큰 일을 하는 결과로 오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 앞에 토달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정말 맞다면은 아멘!하며 그 말씀을 내가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쓰임 받게 되진다면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이 일 때문에 여러분들의 인생이 가장 형통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헌법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는가요? 직분을 자랑합니까? 교회를 오래 다닌 것은 자랑합니까? 모태신앙을 자랑합니까? 다 쓸데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정말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듣고 지키고 있는 것인가를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 이제 저희들이 매 예배시간마다 정말 주의 음성을 듣게 만들어 주옵시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만들어 주옵소서. 세대는 악합니다. 이와 같은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시대를 변화시키고 살릴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게 만들어 주옵시고, 이제는 강단의 메시지를 우리가 받고 이 말씀을 편집하고 설계하고 디자인하여서 정말 이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되게 만들어 주셔서 나의 삶을 통하여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에 나의 인생이 쓰임 받도록 하나님이 간섭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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