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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언
오늘 말씀은 목마름과 관련이 있으므로, 성령의 생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은 역사하는 방법에 따라 성령의 불, 성령의 생수, 성령의 바람, 비둘기 같은 성령, 보혜사 등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함을 받습니다 (요일 1:9). 엄청난 복음입니다.
→ 그런데,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 우리들의 모든 저주까지도 지고 가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우리들의 가난도, 슬픔도, 질병, 불행까지도 다 대신 지고 가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축복이 보따리째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인생의 목마름까지도 거두어 가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쳐야할 “내가 목마르다”를 대신 외치고 계신 것입니다.
▶ 이 목마름을 예수님을 통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인생 살면서 내내 목마름의고통속에서 살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가서도 불꽃 가운데서 목마름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1) 우리들의 목마름은 두가지가 있는데, 먼저 육신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실제로 육신의 극심한 갈증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외침이 목마름의 외침이 아닙니까? 물과 피를 다 쓷아져 나오니 그 입은 바싹 바싹 말라갔을 것입니다. 시편 22장에서는 예수님의 갈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22: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입이 입천장에 붙은 것은 말을 못할 때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목이 바싹 바싹 말랐을 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애 4:4)
■ 금식을 해 보셨습니까? 물을 얼마나 귀한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물까지 마시지 않는 금식을 3일간 해 보았는데, 양치질할 때에 그 양치질 물이 달았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대부분 10일 안에 죽습니다. 물론 모세의 경우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받을 때에 물도 마시지 않고 40일 금식을 몇 번했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초자연적인 상황속에서의 일입니다.
물을 마시면서 금식을 하면 40일까지 갑니다. 십자가 형벌은 물과 피를 흘려서 서서히 고통 가운데서 죽게 만드는 극형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런 육신의 목마름을 통하여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 육신적인 목마름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살면서 우리들이 필요한 육신의 양식을 포함하여 모든 것들이 아닙니까? 이런 것들을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영적 목마름이 해결되면 이 육신의 목마름은 채워짐에 상괸없이 대부분 해결됩니다. 그래서 영적 목마름 해결이 더 중요합니다.
2) 두 번째로 예수님은 우리들의 영적인 목마름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영,혼,육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육의 양식 뿐만 아니라 영혼의 양식도 먹어야 삽니다.
영혼의 양식으로 ① 말씀을 먹어야 살고, 영적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② 성령이 생수를 마셔야 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령의 생수에 대한 말씀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 말씀을 듣지 못하는 말씀의 기갈 시대가 옵니다 (아모스 8:11)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그리고 성령의 생수를 먹지 못하는 기갈이 있습니다.
영적 가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 물질은 넉넉한데, 영적 생수는 반대로 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까요. 물질과 지식이 풍부하여 지적이고 이성적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잘 못사는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부분적으로 성령의 역사가 더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교회가 많이 문을 닫고, 이제 미국교회, 한국교회도 만만치 않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는 증거입니다 (살전 5:19)
→ 요엘서 2장의 말씀처럼 종말에 대추수를 위하여 성령을 남녀 노소 부어질 날도 있을 것입니다 (욜 2:28-29). 그러나 지금은 생수의 기갈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목마름을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우리들의 목마름이 해갈되지 않습니다.
구원도 성령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고 무조건 누구나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삶을 살아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치 물을 찾아 우물을 파듯이 해야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수를 우리들의 의지, 믿음에 상관없이 강권적으로 부어주실 때도 있습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정된 반석을 치니 갈라진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출애굽기 17: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백성들은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고 다투었지만 물을 주신 것입니다 (출 17:1-7). 광야라는 특수한 환경이기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 그런데, 그들이 40년 광야 생황을 거의 마칠 무렵, 모압경계 “브엘”에 도달했을 때에는 그들이 우물물을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민 21:16]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17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18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오늘처럼 포크레인도 없고, 삽조차 제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규와 지팡이로 팠습니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으로 마침내 물이 솟아나서 “브엘” 우물을 얻은 것입니다.
→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물을 파야햐는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영적인 생수, 곧 성령을 받기 위해서 영적 우물을 파는 방법이 성경에 몇가지 나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① 찻째는 기도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간절히 10일 동안 기도했을 때에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행 2:1-4)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② 그리고 로마 백부장 고넬료처럼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이 베드로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행 10:44).
③ 그리고 안수를 받을 때에 성령의 생수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안수할 때 12명 정도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행 8:15-17)
[행 8: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2)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④ 그리고 성령을 받고자 하는 간절한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성령의 생수를 얻기 위하여 우물물을 파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성령의 생수가 그 배에서, 그 속에서 흘러나온다고 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왜, 굳이 배에서 생수가 터진다고 했을까요? 하늘에서 부어진다고 해도 될텐데말입니다.
① 먼저는 우리들의 마음의 성전이 있음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고 ② 그리고 우리들 마음속에서 성령의 생수가 터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배에서 생수가 터지도록 마음 밭은 갈고, 파고, 돌을 골라내고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우물을 파는 일입니다.
■ 좋은 마음의 땅은 금방 생수가 터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밭도 좋지 않은데 금방 생수가 터졌다면 자칫 사탄이 주는 영적 건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영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오염된 건수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이 들지만 암반 깊숙이 깊게 파들어가서 암반수를 얻어야 합니다.
→ 바위와 같은 굳은 마음에서 생수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낙심말고 중단말고 더 깊게 파셔요, 좀 인내하고 계속 파세요. 물이 조금 나오다가 더디어 솟구치는 생수가 터질 것입니다. 그러면 반석에서 솟아나는 영적 암반수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가물어도 생수가 끊어지지 것입니다. 암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반석에서 나오는 물이 진짜입니다.
▶ 그래서 출애굽 광야에서도 반석에서 생수가 터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맨 땅, 사막 모래밭에서 나오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석에서 나온 물은 이땅의 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에서는 이 물을 신령한 음료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 물이 모세의 지팡이로 침을 당한 “갈라진 반석”에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민 20:1, 셀라). ↔ 추르는 그냥 반석, 암반
이것은 십자가에서 찢으지신 예수님을 통하여 생수가 부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생수를 얻기 위해서는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서 생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바위같은 자아가 깨어져야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생수가 얻어지지 않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므로(마 11:12) 침노하듯이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기만 하면, 나를 통해서 주변 사람들도 사는 것입니다.
그 물이 흘러나가 처음에는 발목이 잠기고, 다음에는 무릎이 잠기고, 다음에는 허리까지, 마침내 헤엄칠 만한 물이 될 것입니다 (겔 47:3-12)
그러면 물이 흐르는 곳마다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 생수가 여러분들도 살리고, 가정도 살리고, 교회도 살리게 됩니다
■ 아가서에 있는 술람미 여인은 이 우물을 판 여인입니다.
그는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했습니다.
[아가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우물과 샘이 덮히고 봉해졌기에 오염되지 않는 물로서 순결한 술람미 여인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많이 마셔라” (아 5:1)
솔로몬은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으므로, 우리 주님께서 생수가 터진 우리들을 통하여 다른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그 생수를 먹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수를 마시기 위하여 그에게 사람들이 몰려 오는 것입니다.
덮은 우물, 봉한 생이 된 술람미 여인은 그래서 솔로몬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의 신부가 되고자 하면 먼저 내 안에 생수가 터진 우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령의 생수입니다.
■ 물론, 우리들 뱃속에 생수가 터졌다고 해서 그 근원이 우리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의 생명수 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흘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했다 (눅 4:18, 행 1:8), 성령이 내렸다(요 1:33, 행 8:16), 하나님이 성령을 주셨다(요 3:34), 성령이 오셨다(요 16:13), 성령을 부어주셨다(행 10:45)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 우리속에는 자체적으로 생수의 근원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아야 하는 것임니다.
→ 마치, 출애굽 광야에서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는 것과 같습니다.
광야 반석에서 어떻게 그 많은 생수가 나옵니까? 200만명과 그 가축들이 먹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성경은 “바위를 쪼개어 큰 물을 내시며”(사 75:15),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사 78: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강같이 흐른 이 물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강, 생명수 강에서 흘러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음료 (헬, 프뉴마티코스 브로마)인 것입니다 (고전 10:4) 이 땅의 음료가 아니고 하늘에서 주어지는물이라는 것입니다. .
우리들 배에서 터지는 생수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갈라진 반석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수를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육신이 갈라져야 합니다.
■ 저는 이 말씀을 오래동안 묵상하면서 “하나님 내 배에서 하늘의 신령한 성령의 생수가 터져나오게 하소서”를 날마다 기도합니다.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복락의 강수이기 때문입니다 (시 36:8)
→ 생수가 터진 증거는 환경의 변화 여부에 상관없이 ①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그리고 ② 에덴동산에서의 기쁨과 같이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기전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4대강의 생수를 마시면서 기쁨 가운데 살았습니다. 에덴은 “기쁨”이란 뜻이 있습니다. 생수가 터지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치원으로 들어갑니다.
→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창 17:5), 사래가 사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창 17:15)
아브라함과 사라는 히브리어 기존 이름에서 “하” (h)한자 더 들어갔습니다. 이 “h”는 호흡, 성령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터지면 그 인생이 새로운 복된 삶으로 변화되는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 좋은 성령의 생수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외친 “내가 목마르다”가 그 증거입니다. 그것도 값없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 이 생수를 먹고 삽니다.
[계시록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시록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그런데 이 땅에서도 성령이 임하면 맛보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4대강이 그 증거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흘러나가는 4대강의 의미를 보면 분명해집니다.
3. 에덴동산은 원래 4개의 강은 뻗어나가 대륙을 적시고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그 물을 먹고 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모든 큰 도시는 강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있습니다.
에덴에 있는 4대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먹는 자들이 받는 복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성령의 생수를 먹는 자의 복인 것입니다.
[창세기 2: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아마 에덴의 4대강은 모든 민족이 먹을 수 있도록 사방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 4대강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 비손(히, 피숀)은 넘쳐 흐름을 의미하는데, 정금이 있고 베델리엄, 호마노 보석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러 있어서 이러한 축복이 넘쳐 흐른다는 것입니다. 비손 강수를 마셔야 하겠지요? 그래야 재정도 풀립니다.
→ 기혼(히, 기혼)도 터져 나옴을 의미하는데 구스 땅을 둘렀습니다. 구스는 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땅입니다. 여기에 생수가 흘러가서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이 강수를 마시면 죽은 자, 죽은 사업장, 죽은 가정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 힛데겔(히, 힛데켈)은 빠름, 급류를 의미하는데,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습니다. 앗수르는 “한 걸음, ONE STEP”을 의미하므로 겨우 걷는 자가 급류처럼 빨리 걷게 되는 축복인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걷지 못하는 자가 급히 걸을 수 있는 회복의 축복인 것입니다.
걸음마 신앙을 벗어나고 앉은 뱅이가 일어나 걷고 싶으면 이 강수를 마시면 됩니다.
→ 유브라데(히, 페라트)는 좋고 비옥함을 의미하는데, 이 강은 큰 강입니다. 아브라함도, 셀라의 아들 에벨도, 야곱도 이 강을 건넜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히브리인이라고 합니다 (강을 건넌 자)
이 강물을 마시는 자마다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되는데 이전보다 더 좋고 비옥한 삶일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 에덴동산의 4대강의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날 에덴의 4대강은 두 개의 강만 확인이 됩니다.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입니다. 티그리스강이 힛데겔로 보고 있습니다.
▶ 이것은 오늘날 영적 생수가 많은 곳에서 말라버린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서 흘러야할 강을 많이 잃어버린 모습입니다.
이 잃어버린 4대강을 마음의 땅에서도 찾아야 합니다. 영적인 4대강입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가능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명수 강수를 마실 때까지 말입니다.
4.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과 같은 우리들은 예수님을 만나야 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과 같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정말 목 말랐던 여인입니다.
대낮에 조상 야곱이 준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고 나와야 했던 여인입니다.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요 4:6), 오늘날 낮 12시인 것입니다.
그래도 해갈이 안됩니다. 매일 또 물을 길러러 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들 조상들의 삶의 방식, 옛날의 신앙으로는 더 이상 해갈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구약 모세의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또 여러 남자를 만나 살아보았지만 여전히 인생의 갈증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을 바꾸어도, 아내를 바꾸어도 안됩니다. 오직 예수 신랑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이 임하십니다. 생수가 부어지십니다. 그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복은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사마리아 여인은 그런 생수를 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하여 예수님을 통하여 갈증이 끝나게 된 것입니다.
▶ 사람들은 자꾸만 생수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다른데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우상들은 우리들에게 생수를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의 지혜와 노력으로도 안됩니다.
→ 이사야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8: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실로아는 실로암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소경이 눈을 뜬 그 실로암 연못인 것입니다 (요 9:7-11). 사람들은 급히 흐르는 물을 좋아합니다.
급히 성령을 받기를 좋아하고, 굉장한 쇼킹한 성령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꾸 이상한 물을 찾아 다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강하고 급하게 임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천천히 흐르는 물고 같습니다. 이슬처럼 적시는 것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하늘의 이슬”의 복을 간구했습니다(창 27:28), 이슬처럼 천천히 역사하여 느끼지 못할 정도로 때로는 안 계신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람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르말리아의 아들(베가왕)을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강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서는 생수의 그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을 가두지 못한 다른 웅덩이를 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스스로 다른 웅덩이를 팠다는 것입니다.
그 웅덩이는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내 스스로 인생의 갈즈을 해결하고자 하는 인본주의적인 신앙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 안에서 하지 않으면 터진 웅덩이입니다. 그냥 다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돈도 건강도 모든 축복이 새어 나가는 것입니다.
목이 마르십니까? 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답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들의 목마름을 지고 가신 예수님께로 오시면 우리의 갈증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예수님께로 나아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초청입니다.
[요한복음 7:37] 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사야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값 없이, 돈 없이 마실 수 있습니다.
초청했다는 것은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 이런 생수를 그 누구도 우리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바 없습니다. 그리고 줄 수도 없습니다. 그 생수는 영생수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갈증을 해소하는 영적인 신령한 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은 7: 38]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런 생수를 마시고 이 땅에서도 에덴동산의 4대강의 축복을 누리시고 마침내 하늘 생명수를 마시는 영원한 삶이 주어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