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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과 장자봉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스릴 넘치는 암릉산행과 장성8경의 하나인 남창계곡과 장성호, 더불어 주변의 자연경관을 바라보는 조망산행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일제가 ‘노령산맥’으로 왜곡한 우리 전통지리를 체험하면서 산경표(山經表)의 부활운동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산행 들머리 장성갈재는 호남정맥 내장산을 지나 순창새재에서 서쪽으로 갈려나온 영산기맥이 그 뿌리다. 전북 정읍 입암과 전남 장성을 잇는 고개로 동쪽은 시루봉을 거쳐 입암산(笠岩山)과 호남정맥 내장산, 서쪽은 방장산과 문수산을 지나 영산강을 가르며 목포 유달산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길목이다. 정읍 입암면의 소석현씨에 의하면 4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정읍과 장성을 육로로 넘나들던 고개였다고 한다. 전남 장성 방향의 목란마을에 목란이란 기생이 있던 주막에서 길손들이 묵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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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곳봉에서 본 장성호. 시루봉에서 송곳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조망 좋은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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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갈대가 많아서 갈재로 불렸으나, 일제 강점기에 노령(蘆嶺)이란 사생아 지명이 태어나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암 신경준 선생이 편찬한 산경표의 호남정맥이 일제에 의해 ‘노령산맥’으로 왜곡된 가슴 아픈 역사다. 전북의 노랫말도 “노령에 피는 햇살 강산은 열려…”로 시작된다. 어찌 276m에 불과한 노령이 호남지방을 아우르는 산줄기를 대변할 수 있는가. 하루빨리 노령은 갈재로, 노령산맥은 호남정맥, 노령역은 입암역으로 바꾸면 좋겠다.
정읍시 입암면의 지명과 입암산의 이름은 정상에 있는 갓 바위가 갓(草笠) 모양이라서 붙여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갓바위가 힘을 불끈 쓴 남근을 닮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입암면 주민들은 원래 시루봉은 5개 암봉 중에서 제일 높고 크다는 의미로 어른봉으로 불렸고 1봉인 애기봉은 가장 작은 봉우리라는 의미인데, 지도에 시루봉으로 잘못 나와 있다고 한다. 그동안 시루봉과 장자봉은 주변의 내장산, 입암산, 백암산 등의 위세에 눌려 명함도 내놓지 못했으나 최근 남창계곡에서 입암산과 장자봉을 종주하거나 갈재~시루봉~장자봉~할렐루야기도원까지 산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남창계곡은 수자원이 풍부해서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붐비고, 입구에는 장성호의 푸른 물이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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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루봉 오름길에 뒤돌아 본 서쪽의 방장산. 헬기장 가득 야생화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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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과 장자봉의 자연경관은 사계절 모두 좋으나 특히 가을단풍과 억새가 빼어나고, 성곽 부근에서 조망되는 정읍 쪽의 탁 터진 넓은 평야의 풍경도 좋다. 또 산세가 유순하고, 분지형이라서 겨울삭풍을 막아주어 겨울산행도 좋으며, 특히 눈꽃이 아름답다. 다만 장성갈재에서 시루봉의 겨울산행은 암릉과 산죽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이번 산행은 호남지리탐사회(회장 김정길)와 전주명품산악회(회장 감문규) 회원들이 최병옥·이경림 대장의 안내를 받아 1코스를 답사했다. 산행 들머리인 갈재에는 조국통일기원비와 남북정상회담기념비 그리고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랫말이 적혀 있는 비문이 있다. 산행은 이 비문 위로 올라야 한다. 등산객이 많지 않아서 초목이 울창한 숲길에 낙엽이 수북하다. 군부대 진지와 철탑을 지나면 눈앞에 동쪽으로 시루봉과 입암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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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루봉으로 이어진 암릉 구간. 애기봉부터 아슬아슬한 암릉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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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 아래로 호남고속도로 원덕터널과 전라선 철길이 지난다. 군부대가 철수해 버린 텅 빈 지하참호가 산꾼을 맞는다. 서쪽은 방장산이 손짓한다. 곧이어 사람 흔적이 없는 옛길 갈재(노령)에 닿는다. 두 번째 헬기장에 닿으면 동쪽은 애기봉을 비롯한 다섯 개의 암봉과 장자봉이 우뚝 솟아있다. 북쪽으로 입암산과 그 너머로 내장산이 고개를 살포시 내민다. 세 번째 헬기장 주변에는 멧돼지들이 땅을 파헤쳐 놓았고, 옛적을 숯을 굽던 숯가마터를 지나면 오름길이 시작된다.
다섯 봉우리 중에서 1봉인 애기봉은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업고 있는 형상의 암봉으로 훌륭한 조망대다. 서쪽은 방장산, 남쪽은 장성 새터마을, 호남고속도로 원덕터널, 북쪽은 입암의 들녘이 다가온다. 압도할 듯이 눈앞에 다가서는 2봉의 거대한 암봉은 북쪽으로 비탈길을 내려갔다가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와야 한다. 특히 갈재에서 시루봉 구간은 눈이나 비가 오면 자칫 계곡으로 빠지거나, 바윗길이 위험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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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봉도 암봉이라서 좌측으로 내려갔다 능선에 오르면 바위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등산로가 이어지며 4봉의 암릉에 닿는다. 5봉의 시루봉까지는 흙길이라서 편하다(장성갈재에서 2시간 소요). 이곳은 지도에 시루봉으로 나와 있으나 입암면 주민들은 어른봉(제일 큰 봉우리)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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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북쪽은 입암산으로 가는 영산기맥이고, 남쪽은 장자봉으로 가는 능선이다. 남쪽의 드넓은 장성 들녁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능선을 가면 곳곳이 조망대다. 산죽 길과 바윗길을 가면 장성의 원덕마을에서 장성호, 그리고 내장산, 백암산, 임압산, 방장산 등이 한눈에 잡힌다.
수려한 자연을 조망하다 보면 어느새 원덕저수지가 바라보이는 남쪽이 천인단애를 이룬 장자봉(562.2m)에 닿는다(시루봉에서 1시간 소요). 동쪽으로 장성호와 가인봉 너머로 호남정맥 내장산과 백암산, 북쪽은 입암산, 남쪽은 장성의 조산저수지와 조산마을이 한눈에 잡힌다. 지도에는 송곳봉을 장자봉으로 잘못 표기해 놓았다. 장자봉은 남쪽 방향에 장자마을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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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루봉 가는 길은 조망이 좋았으나 막상 정상은 나무가 많아 별 풍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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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선에서 본 장성 일대. 입암산에서 송곳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조망이 트이는 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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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묘소가 있는 조망대에서 원덕저수지와 마을이 다가오고 소나무 두 그루가 호위병처럼 서있다. 송곳처럼 뾰쪽하게 솟아 있는 암봉이 다가온다. 나무 사다리와 로프를 잡고 암봉을 오르면 송곳봉(490m)이다(시루봉에서 2시간 소요). 지도상에는 이곳을 장자봉으로 잘못 표기해 놓았다. 푸른 물이 넘실대는 장성호와 가인봉이 한눈에 잡힌다.
송림을 지나서 무명봉을 오르면, 갈림길에서 강릉유씨 묘소에서 북동쪽으로 가야 한다. 남쪽은 남창재를 거쳐 복룡마을로 가는 코스다. 할렐루야기도원과 남창계곡 입구가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로 가인봉이 손짓한다. 등산로가 약간 희미한 곳을 지나 내림길을 가면 남창계곡 입구에 닿는다(시루봉에서 1시간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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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 장성갈재~(2.8km)~시루봉~(2.3km)~장자봉~(2.3km)~송곳봉~(1.7km)~남창계곡 입구 할렐루야기도원 <9.1km, 4시간 소요>
○ 남창계곡 주차장~남문~(6.8km)~입암산~(2.0km)~시루봉~(2.3km)~장자봉~(2.3km)~송곳봉~(1.7km)~남창계곡 입구 <15.1km, 6시간 소요>
볼거리
남창계곡 백암산과 입암산에서 흘러내리는 여러 계곡이 전남대학 임업수련원 부근에서 모두 만나 남창계곡을 이룬다. 내장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을 만큼 계곡이 수려하며 곳곳에 물놀이를 즐길 만한 곳이 많아 여름이면 사람들로 붐빈다. 계곡의 백미는 몽계폭포 주변이다.
교통
○ 대중교통
광주~장성 간 직행버스 수시운행. 전주~정읍 간 직행버스 수시운행. 정읍~입암 간 고창 군내버스 수시운행. 입암~장성갈재 간 정읍콜택시 이용(063-533-3305). 정읍~장성 사거리(백양사역) 간 버스 1일 7회 운행. 장성사거리~남창계곡 군내버스 5회 운행. 정읍시내버스 (063-533-4101), 정읍터미널(063-535-6071), 장성군내버스(061-393-6820), 장성터미널 (061-393-2660)
○ 자가용
호남고속도로 내장산나들목~708번 지방도~입암산장~상부(새생명교회)~노령역~장성갈재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북이면 소재지~할렐루야기도원~남창골 주차장
먹을거리(지역번호 061)
대화관광농원(393-0303)에서는 사육한 멧돼지를 양념을 가미해서 구워 낸 바비큐가 별미다. 도토리묵을 별도로 제공한다. 민속식당(292-7644)은 장성에서 수확한 표고버섯에 각종 양념을 가미해 볶아 밥 위에 담아내며, 더덕과 함께 나오는 표고버섯과 산채백반이 일미다.
/ 글·사진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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