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가 쓴 엣세이다.
천문학자가 하늘을 보지 않는다면 그럼 무엇을 보는 것일까 ? 의문이 일었다.
남들이 보기에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 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 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년 걸릴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 '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글귀에 마음이 이끌렸다. 저자는 자연스럽게 우리 학창시절때 품었던 하늘에 대한 별자리 그리고 지구과학 시간에 선생님으로 부터 들었던 지구의 역사를 생각나게 하며 지질학적 공부와 함게 대학교때 맛을 보았던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떠 올리게 했다. 그는 말미에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가 달에 계수나무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그것을 꿈꾸어 왔던것이 결국은 달에 아폴로를 쏘게 만들고 보이저 1호 2호를 보내게 되었다고 ...
나는 마지막 그말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강한 충격을 느꼈다. 스토리텔링하고 꿈꾸고 간절히 바라면 실지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이 그 말속에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어떻게 해서 천문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별자리를 관찰하기 위해 보현산 천문대에 어떤 연구를 했고 또 교수로서 학생들을 대할때 의 태도가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교양과목에 수강할때 취직이 되어서 수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학점을 달라고 하는 학생으로 보내는 편지는 가슴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논문저자를 기입을 할때 저자 한사람을 기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으로 기입을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유가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내는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인류인 것이다.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탐사 자료를 전 인유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래서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다.
눈시울이 앞을 가려 다음 환자를 보는데 힘이 들었던 순간 이었다.
그녀의 일기속에 나온 글이다.
일기 속에는 두려워 하는 내가 있다 . 졸업할 수는 있는 걸까 두려웠고,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웠다. 어쩌면 졸업 후의 더 큰 두려움을 유예하기 위해 수료생의 고뇌에 천착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 주리라는 것을.
다시 새로움을 향해 떠나야 할때, 크기를 가능할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찿아간다.
과가의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토닥여주고, 쓰다듬어주고, 따뜻한 밥 한술 먹인 뒤 과감히 등 떠밀어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준다. 여러 길로 갈라진 평행우주 속 용감히 떠난 나와 용감히 남은 나, 모두를 찬양한다. 그렇게 또 한발 내디는 연습을 한다. My the force be with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