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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七地와 染淨의 關係
解脫月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此七地菩薩이 爲是染行가 爲是淨行이니잇가 金剛藏菩薩이 言하시다 佛子야 從初地로 至七地히 所行諸行이 皆捨離煩惱業이니 以廻向無上菩提故며 分得平等道故라 然이나 未名爲超煩惱行이니 佛子야 譬如轉輪聖王이 乘天象寶하고 遊四天下에 知有貧窮困苦之人하야而不爲彼衆患所染이나 然이나 未名爲超過人位어니와 若捨王身하고 生於梵世하야 乘天宮殿하야 見千世界하며 遊千世界하야 示現梵天의 光明威德하면 爾乃名爲超過人位인달하야 佛子야 菩薩도 亦復如是하야 始從初地로 至於七地히 乘波羅蜜乘하고 遊行世間에 知諸世間煩惱過患하야 以乘正道故로 不爲煩惱過失所染이나 然이나 未名爲超煩惱行이어니와 若捨一切有功用行하고 從第七地로 入第八地하야 乘菩薩淸淨乘하고 遊行世間에 知煩惱過失하야 不爲所染하면 爾乃名爲超煩惱行이니 以得一切盡超過故니라 佛子야 此第七地菩薩이 盡超過多貪等諸煩惱衆하고 住此地에 不名有煩惱者며 不名無煩惱者니 何以故오 一切煩惱가 不現行故로 不名有者며 求如來智心이 未滿故로 不名無者니라
해탈월보살이 물었습니다. “불자여, 이 제7지 보살은 물든 행입니까, 청정한 행입니까?”
금강장보살이 말하였습니다. “불자여, 초지로부터 제7지에 이르도록 수행하는 여러 행이 모두 번뇌의 업을 떠나서 가장 높은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므로 부분적으로는 평등한 도(道)를 얻었거니와 그러나 번뇌를 초월한 행이라고는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불자여, 비유하면 마치 전륜성왕이 하늘의 코끼리를 타고 사천하를 다닐 적에 빈궁하고 곤란한 사람이 있는 줄 알면서도 그들의 걱정에 물들지 않지마는 그래도 인간의 지위를 초월하였다고는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만일 전륜성왕의 몸을 버리고 범천에 태어나서 하늘궁전을 타고 1천 세계를 보면서 1천 세계를 다닐 적에 범천의 광명과 위덕을 나타내면 그제야 인간의 지위를 초월하였다고 이름하느니라.
불자여, 보살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처음 초지로부터 제7지에 이르도록 바라밀다의 수레를 타고 세간을 다닐 적에 모든 세간의 번뇌와 근심을 알면서도 바른 도에 올랐으므로 번뇌의 허물에 물들지는 않지만 그러나 번뇌를 초월한 행이라고는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만일 일체 공용이 있는 행을 버리고 제7지로부터 제8지에 들어가서 보살의 청정한 법의 수레를 타고 세간을 다닐 적에는 번뇌의 허물을 알지만 거기에 물들지 아니하나니 그때서야 번뇌를 초월한 행이라 이름하리니 온갖 것을 모두 초월함을 얻은 연고이니라.
불자여, 이 제7지 보살이 탐욕이 많은 따위의 여러 가지 번뇌를 모두 초월하여 이 지위에 머물면 번뇌가 있는 이라 이름하지도 않고 번뇌가 없는 이라 이름하지도 않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번뇌가 현재에 행하지 아니하므로 번뇌가 있는 이라 하지도 않고, 여래의 지혜를 구하는 마음이 아직 만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번뇌가 없는 이라 하지도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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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七地)와 염정(染淨)의 관계(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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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월보살(解脫月菩薩)이 : 해탈월보살이
언(言)하사대 : 말하되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칠지보살(此七地菩薩)이 : 이 7지 보살이
위시염행(爲是染行)가 : 아직도 더러운 세속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
위시정행(爲是淨行)이니잇가 : 아니면 아주 청정한 행만 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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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 금강장 보살이
언(言)하시다 : 말하기를
불자(佛子)야 : 불자야
종초지(從初地)로 : 초지에서부터
지칠지(至七地)히 : 7지에 이르기까지
소행제행(所行諸行)이 : 행한 바 모든 행동들이
개사리번뇌업(皆捨離煩惱業)이니 : 다 번뇌에 사리했나니 7지까지는 번뇌업을 다 떠났다.
이회향무상보리고(以廻向無上菩提故)며 : 최고 높은 보리에 회향하는 까닭이니, 계속 끝없이 그쪽을 향하고 있다. 무상보리를 향하고 있다고 여기서는 봐야한다. 그렇게 회향하는 연고니
분득평등도고(分得平等道故)라 : 부분 부분으로 조금씩 조금씩 평등한 도를 얻는 까닭이니라.
연(然)이나 : 그러나
미명위초번뇌행(未名爲超煩惱行)이니 : 번뇌를 초월한 행이라고는 이름할 수가 없다.
재미있는 내용이 이 단락에 있다. 부처가 되고자 하는 마음도 번뇌다. 한 생각 일으키는 것은 모두 번뇌이기 때문에 설사 부처가 되고자 하는 한 생각을 일으켜도 번뇌인 것이다.
그래서 번뇌를 초월한 행위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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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전륜성왕(譬如轉輪聖王)이 : 비유하자면 전륜성왕이
승천상보(乘天象寶)하고 : 하늘의 코끼리를 타고서
유사천하(遊四天下)에 : 사천하를 주유하고 돌아다닌다. 막 날아다니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가고 싶은 데는 마음대로 간다. 그래서
지유빈궁곤고지인(知有貧窮困苦之人)하야: 빈궁한 사람 곤고한 사람 고생하는 사람 호강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다 안다. 그러나
이불위피중환소염(而不爲彼衆患所染)이나: 중환소염은 되지 않는다.
고생하는 사람들, 굶는 사람들, 병든 사람들 그 모든 입장을 다 안다고 해서 전륜성왕이 그들의 처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병도 안들고 굶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고 중환소염이 되지 않는다. 안 그렇겠는가? 예를 들어서 우리가 형무소에 가서 포교한다고 해서 형무소의 죄인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포교하러 갔지 죄 받으러 갔나?
연(然)이나 : 그러나
미명위초과인위(未名爲超過人位)어니와: 인위를 초과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사람의 경지는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물들지는 않았다.
아프지도 않고 병도 없고 가난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사람의 위치에 그대로 있다. 전륜성왕도 인간의 지위에 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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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왕신(若捨王身)하고 : 만약에 왕위를 버리고
생어범세(生於梵世)하야 : 범천 세상에 태어나서
승천궁전(乘天宮殿)하야 : 천궁전에 올라가서
견천세계(見千世界)하며 :천세계를 보고
유천세계(遊千世界)하야 : 천세계에 유행해서
시현범천(示現梵天)의 : 범천의
광명위덕(光明威德)하면 : 광명위덕을 나타내 보일 것 같으면
이내명위초과인위(爾乃名爲超過人位)인달하야 : 그때사 이에 이름을 사람의 지위를 초과했다고 한다. 비로소 천왕의 지위에 올랐다고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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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菩薩)도 : 보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이와 같아서
시종초지(始從初地)로 : 초지로부터
지어칠지(至於七地)히 : 칠지에 이르기까지
승바라밀승(乘波羅蜜乘)하고 : 바라밀의 수레를 타고
유행세간(遊行世間)에 : 세상을 유행함에
지제세간번뇌과환(知諸世間煩惱過患)하야 : 모든 세간의 번뇌 과환을 알아서
이승정도고(以乘正道故)로 : 바른 길에 오르는 고로
불위번뇌과실소염(不爲煩惱過失所染)이나 :번뇌 과실의 물든 바라고는 하지는 않는다. 초지부터 7지까지 그 정도 수행이된 사람이라면
연(然)이나 : 그렇지만
미명위초번뇌행(未名爲超煩惱行)이어니와 : 번뇌를 초월했다고는 이름하지 못한다. 왜냐 8지도 있고 9지도 있고 10지도 있고 등각 묘각도 있기 때문이다. 등각 묘각을 갖고 싶어해도 갖고 싶어하는 마음은 번뇌다. 그래서 번뇌를 초월했다고는 말못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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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일체유공용행(若捨一切有功用行)하고; 만약에 일체 유공용, 공용하되 함이 있는 행을 버리고
종제칠지(從第七地)로 : 7지로부터
입제팔지(入第八地)하야 : 제8팔지에 들어가서
승보살청정승(乘菩薩淸淨乘)하고: 보살의 청정한 수레를 타고
유행세간(遊行世間)에 : 세간에 유행함에
지번뇌과실(知煩惱過失)하야 : 번뇌 과실을 알기는 알지만
불위소염(不爲所染)하면 : 그 물들어진 바가 되지 아니하면
이내명위초번뇌행(爾乃名爲超煩惱行)이니: 그때 비로소 번뇌를 초월한 행이다 라고 이름할 수가 있다. 그쯤 되어야 번뇌를 초월했다고 할 수가 있다.
유공용과 무공용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더러운 세계라고 하는 것도 유공용이다. 그렇다고 무슨 악만 저지르는 세계는 아니다.
쉽게 표현해서 우리가 익숙한 상식으로 이해하자면 보시를 하되 상을 내면서 함이 있는 보시를 하는 것과 상을 안내면서 보시하는 것의 차이다.
상을 내면서 보시해도 수행은 된다. 그래서 상을 내더라도 보시는 많이 하라는 것이다.
상 안내면서 보시하기는 그렇게 어렵기 때문이다.
상을 안내면서 보시를 하는 것은 번뇌를 초월한 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7지와 8지의 관계다.
이득일체진초과고(以得一切盡超過故)니라 : 번뇌행을 초월했다고 이름한다. 일체를 다 초과함을 얻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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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제칠지보살(此第七地菩薩)이: 이 7지 보살이
진초과다탐등제번뇌중(盡超過多貪等諸煩惱衆)하고: 진초과 다탐등 무슨 관 무슨 관 하는 관법이 많다. 그런 모든 번뇌의 무리들을 초과하고
주차지(住此地)에 : 주차지에 머묾에
불명유번뇌자(不名有煩惱者)며 : 번뇌가 있는 자라고 이름하지 못하나니 번뇌를 초과해서
불명무번뇌자(不名無煩惱者)니 : 그러나 번뇌 없는 사람이라고 이름하지는 못한다.
하이고(何以故)오 : 하이고오
일체번뇌(一切煩惱)가: 일체 번뇌가
불현행고(不現行故)로 :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에
불명유자(不名有者)며 : 번뇌가 있는 사람이라고 이름하지 못하고
구여래지심(求如來智心)이 : 여래를 구하는 마음이
미만고(未滿故)로 : 아직도 만족하지 못했다. 8지 9지 10지 계속 올라가야 되니까 그러기 때문에
불명무자(不名無者)니라 ; 번뇌가 없는 사람이라고도 말하지 못한다. 참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생각하면 아주 재밌는 광경이다.
유공용과 무공용과 무주상 보시와 유주상 보시 그것을 우리는 알기는 알아야 된다.
예전에 운허스님께서 경전을 번역해서 책을 하나씩 하나씩 낼 때 그렇게 힘이 들었다. 나도 운허스님 밑에서 역경 연수원 생활을 했는데 연수원이 생기기 이전 해인사에 계실 때다.
그 때 우리는 운허스님을 맹자같이 점잖으신 분이라고 했다.
그런 스님이 출판에 돈을 시주하는 사람이 오면 버선발로 뛰어 내려가셨다. 어려운 시대에 경전을 번역해 놓긴 해 놓았는데 돈이 없어서 출판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출판할 돈을 댈 사람이 체면이고 뭐고 없이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라도 버선발로 뛰어내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젊은 우리 학인들이 보고 안보고도 상관이 없다.
그 어려운 시대에 그만치 그 시주에 감동을 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책을 내고 결국은 역경원을 차리고 하였다. 그런 것을 고마워하긴 하되 ‘내가 이렇게 스님 체면을 다 깡그리 버려 가면서 버선발로 뛰어간다’는 사실을 알기는 알아야 된다.
예컨대 우리가 번뇌를 있다 없다, 유공용이다. 무공용이다 하는 것을, 유주상 보시, 무주상 보시로 이해하는 것이 제일 쉽다.
새매가 토끼를 잡는데 매를 노리는 포수가 있다. 토끼는 안보이지만 매가 떠다니면 포수는 그 매를 잡는 것이 큰 소득이니까 활을 쏘아서 매를 잡으려고 한다. 토끼를 잡으려는 매가 있고 매를 잡으려는 포수가 있는데 그 포수는 허물이 또 무엇인가? 자기 옷이며 신발이며 모두가 물에 젖고 이슬에 젖고 있다. 그 사실을 포수는 모른다.
우리는 자기라고 하는 생각을 버리기가 아주 어렵다. 아상을 버리기가 그렇게 어렵다.
명색이 금강경에 달통했다는 덕산스님이 남방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라는 소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슨 외도가 그런 외도가 있느냐고 내가 가서 쳐부숴야 되겠다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것이 무슨 마음인가? 그것이 아상 아닌가.
자기가 금강경 통달했으면 통달했지 남방에서 무슨 말이 있든지 간에 그걸 가서 쳐부수고 자기를 자랑하겠다고 하는 자기 사상, 자기 주의 주장을 거기서 피력하겠다고 하는 것이 따지고 보면 아상이다.
가더라도 아상이 있는 줄은 알고 가야 한다.
‘나는 아직도 이런 아상은 있다. 아상은 내가 감출 수 없다’ 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가야 된다.
우리 어릴 때 상황인데 한창 그 때 경허스님 이후에 우리 한국불교가 자리를 좀 제대로 잡고 조선 말(末)을 거쳐서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 여기 저기서 생겼다.
선방에서 공부한다고 하는 소식도 많이 들리니까 공부 한 철 하고 나서 한소식을 한 스님들이 자기가 아는 것을 전국 선방에 편지로 문제를 써서 ‘여기에 답하시오’ 하고 보내는 것이 유행이었다.
자기가 한 소식 했으면 했지 그게 무슨 짓인가.
무(無)자를 깨달았으면 깨달았고 이뭣고를 깨달았으면 깨달았고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소식을 깨달았으면 깨달았지 깨달음 가지고 남하고 시험하고 누가 얼마나 아느냐 하고 꼭 씨름할 때 샅바싸움 하는 것 같이 하는 것은 전부 인아상(人我相)을 자랑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아상 자랑하는 것인데 그걸 모르고 편지를 보내면서 ‘여기에 답하시오’ 하는데 포수가 제 옷 젖는 것을 모르고 하늘만 바라보고 새 매를 잡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경우다.
그런 경우가 많다.
남방에는 무슨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외도가 있다는데 하고 북방의 어떤 스님은 돈오점수가 맞지 무슨 돈오돈수가 맞느냐 하고 그렇게 왈가왈부하는 것도 또한 인아상을 드러내는 일이다. 포수가 자기 옷 젖는 줄을 모르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선사들의 대화에서 그 선사가 이렇게 말했는데 내가 그것을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답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하고 법상에서 이리 자랑하고 저리 자랑하고 있는데 그런 것도 전부 인아상 드러내는 것이다.
샅바싸움이다.
우리나라 씨름이 참 좋은데 제일 보기 싫은 점이 샅바싸움을 하는 것이다. 특히 개선해야 된다. 샅바싸움 하지 않고 바로 가서 붙는 씨름이 이 세상에 또 있는데 아주 볼만하다.
그런데 우리 씨름은 샅바싸움 하는 데서 그만 보기가 싫다. 그래서 더러 퇴장도 당하기도 하고 거기에 무슨 벌점도 받고 하는 수도 생긴다. 그런 일이야 세속의 일이니까 말할 것도 없지만 공부한다고 하는 데서 자기가 뭔가 소식이 있다고 해서 그저 그것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경전을 안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이 있어도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샅바싸움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렇게 남이 알아주면 뭐 어떻고 안알아 주면 어떤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것을 섭섭해 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닌가’
하고 공자도 그런 마음을 냈거늘 불교공부를 하면서 샅바싸움하듯이 자기 공부한 자랑을 내세워야 되는가?
그런 것이 포수가 옷 젖는 소식을 모르는 일이다.
경전을 많이 보고나면 그러한 것이 해소가 된다.
옛날에 조실 스님이 법상에 앉아서 법문을 하려고 하는데 어떤 공부한 수좌가 한마디 걸려고 나오면 벌벌벌 떨면서 ‘백골이 만산이다, 흰 뼈가 산에 가득하다’ 또 ‘백골이 연산이다’라고 하는데 그때는 짐작을 못했는데 이런 것도 내가 나중에 보니 전부 서로 인아상을 다투는 소식이다.
나가서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것도 그렇고,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백골(白骨)이 연산(連山)이다’ 이렇게 하는 것도 전부가 인아상 싸움이다.
점잖은 사람은 그렇게 안한다.
불법에 제대로 원숙한 선지식은 그렇게 드러내지 않는다.
전부 각자 몫이고 각자 살림인데 알면 무엇하고 모르면 무엇하는가? 정말 궁금해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묻는 태도가 아니다. 그저 서로 겨루려고 하는 태도일 뿐이다.
불법은 겨룬다고 되고 안되고 할 일이 아니다.
여기에도 유와 무 유상과 무상이 유주상 보시 무주상 보시 의 이치와 똑같다. 옆길로 좀 많이 나갔는데 역시 원문하고도 연관이 된다.
7, 七地菩薩의 業淸淨
佛子야 菩薩이 住此第七地에 以深淨心으로 成就身業하며 成就語業하며 成就意業하야 所有一切不善業道의 如來所訶를 皆已捨離하고 一切善業의 如來所讚을 常善修行하며 世間所有經書技術을 如五地中說하야 皆自然而行이요 不假功用이니라 此菩薩이 於三千大千世界中에 爲大明師하나니 唯除如來와 及八地已上하고 其餘菩薩은 深心妙行이 無與等者며 諸禪三昧와 三摩鉢底와 神通解脫이 皆得現前이나 然是修成이라 非如八地에 報得成就니 此地菩薩이 於念念中에 具足修集方便智力과 及一切菩提分法하야 轉勝圓滿이니라
“불자여, 보살이 이 제7지에 머물러서는 깊고 깨끗한 마음으로 몸의 업을 성취하고, 말의 업을 성취하고, 뜻의 업을 성취하여 일체 선하지 못한 업으로서 여래가 꾸짖으신 것은 모두 여의었고, 일체 선한 업으로서 여래가 칭찬하신 것은 항상 닦아 행하며, 세간에 있는 경전이나 기술이나 제5지에서 말한 것들을 모두 자연스럽게 행하게 되어 일부러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니라.
이 보살이 삼천대천세계에서 크고 밝은 스승이 되나니, 여래와 제8지 이상의 보살을 제외하고 다른 보살의 깊은 마음과 묘한 행으로는 동등할 이가 없으며, 모든 선정의 삼매와 삼마발저와 신통과 해탈이 모두 앞에 나타나거니와, 그러나 그것은 닦아서 이루어진[修成]것이고, 제8지와 같이 과보로 얻은[報得] 것이 아니니라.
이 지위의 보살이 생각 생각마다 구족하게 닦아 모은 방편 지혜의 힘과 일체 보리의 부분법이 점점 더 원만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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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보살(七地菩薩)의 업청정(業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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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菩薩)이 : 보살이
주차제칠지(住此第七地)에 : 이 칠지에 머묾에
이심정심(以深淨心)으로: 깊고 깨끗한 마음으로써
성취신업(成就身業)하며 : 신업을 성취하며
성취어업(成就語業)하며 : 어업을 성취하며
성취의업(成就意業)하야 : 의업을 성취해서
소유일체불선업도(所有一切不善業道)의 : 선하지 않는
여래소가(如來所訶)를: 부처님이 꾸짖는 것을
개이사리(皆已捨離)하고 : 전부 다 버린다. 남이 싫어하는 것은 다 버린다는 뜻도 된다.
부처님이 꾸짖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남이 싫어하는 것은 나도 싫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도 싫다는 사실이다.
일체선업(一切善業)의 :일체 선업에 대해서
여래소찬(如來所讚)을 : 부처님이 찬탄하고 칭찬한다.
상선수행(常善修行)하며: 항상 잘 수행하며
세간소유경서기술(世間所有經書技術)을 : 경과 서와 기술들을
여오지중설(如五地中說)하야 : 5지 가운데서 그런 이야기 많이 있었다.
개자연이행(皆自然而行)이요 : 다 자연스럽게 행할 것이고
불가공용(不假功用)이니라 : 공용을 가자하지 않느니라. 그런것이 이 7지에 이르면 무공용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중생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그렇게 함이 없이 하는 행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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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보살(此菩薩)이 : 이 보살이
어삼천대천세계중(於三千大千世界中)에 ; 삼천 대천 세계 가운데서
위대명사(爲大明師)하나니 : 크고 밝은 스승이 되나니
유제여래(唯除如來)와 : 오직 여래와
급팔지이상(及八地已上)하고 : 그리고 8지 이상을 제하고는
기여보살(其餘菩薩)은 : 그 나머지 보살은
심심묘행(深心妙行)이 : 아름다운 행이
무여등자(無與等者)며 : 더불어 같을 이가 없다. 여래와 8지이상 8지 9지 10지 그리고 여래까지의 경우는 더불어 같을 이가 없다. 7지만 돼도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제선삼매(諸禪三昧)와 : 제 선과 삼매와
삼마발저(三摩鉢底)와 : 삼마발저와
신통해탈(神通解脫)이 : 신통과 해탈이
개득현전(皆得現前)이나 : 다 현전함을 얻으나 신통 해탈 삼매 삼마발저 선정 이런 것들이
연시수성(然是修成)이라: 닦아서 이루어진 것이다.
비여팔지(非如八地)에 : 8지에서
보득성취(報得成就)니 : 저절로 보는 그 과보 따라서 절로 오는 것이고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공용으로 오는 것으로 여기서 보는 것이다.
우리가 억지로 얼굴을 꾸민다고 오래가지 않고 나중에는 오히려 더 흉물이 된다. 저절로 생긴 대로, 내 살아온 대로가 과보 보(報)자 보(報)다. 그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인과관계로 되어 있는데 억지로 조작해서 오래 갈 리가 없다. 그것은 남의 눈을 속이는 것이다. 8지와 같이 과보를 저절로 성취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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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보살(此地菩薩)이 : 차 보살이
어염념중(於念念中)에 : 염념 가운데
구족수집방편지력(具足修集方便智力)과 ; 구족히 방편지력과 그리고
급일체보리분법(及一切菩提分法)하야 : 일체 보리분법을 닦아 모아서
전승원만(轉勝圓滿)이니라 : 더욱 더 수승하고 원만하게 하느니라.
8, 七地의 三昧
佛子야 菩薩이 住此地에 入菩薩의 善觀擇三昧와 善擇義三昧와 最勝慧三昧와 分別義藏三昧와 如實分別義三昧와 善住堅固根三昧와 智慧神通門三昧와 法界業三昧와 如來勝利三昧와 種種義藏生死涅槃門三昧하나니 入如是等具足大智神通門百千三昧하야 淨治此地니 是菩薩이 得此三昧하야 善治淨方便慧故며 大悲力故로 超過二乘地하야 得觀察智慧地니라
“불자여 보살이 이 지에 머무르면 보살의 잘 관찰하여 선택하는[善觀擇] 삼매와, 이치를 잘 선택하는[善擇義] 삼매와, 가장 수승한 지혜[最勝慧] 삼매와, 이치의 장을 분별하는 [ 分別義藏]삼매와, 실제와 같이 뜻을 분별하는 [如實分別義]삼매와, 지혜 신통의 문[智慧神通門] 삼매와, 법계의 업[法界業]삼매와, 여래의 수승한 이익[如來勝利] 삼매와, 갖가지 뜻을 갈무리한 생사 열반의 문[種種義藏生死涅槃門] 삼매에 들어가느니라.
이와 같이 큰 지혜와 신통의 문을 구족한 백만 삼매에 들어가서 이 지위를 깨끗하게 다스리느니라. 이 보살이 이 삼매를 얻고는 방편 지혜를 잘 다스려 깨끗이 하는 연고와 크게 자비한 힘으로 이승(二乘)의 지위를 뛰어넘어 지혜의 지위를 관찰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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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七地)의 삼매(三昧) : 제7지에서 얻는 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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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菩薩)이 : 보살이
주차지(住此地)에 : 이 지에 주하매
입보살(入菩薩)의 : 보살의
선관택삼매(善觀擇三昧)와 : 잘 관택하는 삼매와
선택의삼매(善擇義三昧)와 : 선택의 삼매와
최승혜삼매(最勝慧三昧)와 : 최승혜 삼매와
분별의장삼매(分別義藏三昧)와 : 분별의장삼매와
여실분별의삼매(如實分別義三昧)와 : 여실분별의 삼매와
선주견고근삼매(善住堅固根三昧)와: 선주 견고 근 삼매와
지혜신통문삼매(智慧神通門三昧)와 : 지혜 신통문 삼매와
법계업삼매(法界業三昧)와 : 법계업 삼매와
여래승리삼매(如來勝利三昧)와 : 여래 승리 삼매와
종종의장생사열반문삼매(種種義藏生死涅槃門三昧)하나니 : 종종 의장 생사 열반문 삼매에 들어가나니, 7지에서 이런 삼매가 성취된다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그러한 삼매에 들어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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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여시등구족대지신통문백천삼매(入如是等具足大智神通門百千三昧)하야 : 여시등 구족 대지 신통문 백천 삼매에 들어가서
정치차지(淨治此地)니 : 이 지위를 깨끗하게 다스리나니 닦나니
시보살(是菩薩)이 : 이것이 보살이
득차삼매(得此三昧)하야 : 이 삼매를 얻어서
선치정방편혜고(善治淨方便慧故)며 : 잘 방편 지혜를 다스려서 청정하게 하는 연고며
대비력고(大悲力故)로 : 대비력을 쓰는 고로
초과이승지(超過二乘地)하야 : 이승의 지위를 초과해서
득관찰지혜지(得觀察智慧地)니라 : 관찰지혜의 지위를 얻느니라.
9, 三業淸淨
佛子야 菩薩이 住此地에 善淨無量身業無相行하며 善淨無量語業無相行하며 善淨無量意業無相行일새 故得無生法忍光明이니라
“불자여, 보살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몸으로 짓는 한량없는 업의 모양 없는 행[無相行]을 깨끗이 하며, 말로 짓는 한량없는 업의 모양 없는 행을 깨끗이 하며, 뜻으로 짓는 한량없는 업의 모양 없는 행을 깨끗이 하므로 무생법인의 광명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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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업청정(三業淸淨) : 청정한 삼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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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菩薩)이 : 보살이
주차지(住此地)에 : 이 지위에 머묾에
선정무량신업무상행(善淨無量身業無相行)하며 : 선정 무량 신업 무상행 하며 무량 신업의 형상 상없는 행을 잘 청정하게 하며
선정무량어업무상행(善淨無量語業無相行)하며 : 선정무량어업무상행 신업무상행, 어업무상행 그다음에
선정무량의업무상행(善淨無量意業無相行)일새: 의업무상행 이런 것들을 잘 청정하게 한다.
신구의 삼업이 전부 한량이 없다. 신구의 삼업이 한량이 없는 것을 전부 깨끗이 청정하게 한다. 이 7지쯤 돼야 그걸 제대로 닦을 수 있다. 우리는 한참 마음 잘 내서 잘한다고 했는데 엉뚱하게 결과가 잘못되는 수가 부지기수다.
내 딴에는 말도 잘한다고 하고 행동도 잘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상대를 손해 보이기도 하고 상대가 오해를 하기도 하고 상대가 곡해해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선정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이다.
무량신업 무상행 의업무상행 그런데 무상행이라고 하는 말을 붙였으니까 신구의 삼업을 전부 무상 상 없는 행이라고 했으니까 이것이 열쇠다.
상없는 행이 무주상 보시다. 무주상이 열쇠다. 무얼 했다고 말로나 행동으로나 생각으로나 거기에 상이 붙으면 그만 문제가 생긴다. 그것이 열쇠다. 삼업청정이 중요한 이야기인데 선정이 참 어려운 것이다.
고득무생법인광명(故得無生法忍光明)이니라 : 그러므로 무생법인의 광명을 얻느니라. 생멸이 없는 진리의 광명을 얻는다.
‘신구의 삼업을 어떻게 작동하느냐?’ 하는 것이 ‘불법 광명을 우리가 어떻게 펼치느냐?’ 하는 열쇠다. 결국 불자가 신구의 삼업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다.
10, 二乘과의 差別
解脫月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菩薩이 從初地來로 所有無量身語意業이 豈不超過二乘耶잇가 金剛藏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彼悉超過나 然이나 但以願求諸佛法故로 非是自智觀察之力이어니와 今第七地는 自智力故로 一切二乘의 所不能及이니 譬如王子가 生在王家에 王后所生으로 具足王相하야 生已에 卽勝一切臣衆이로대 但以王力이요 非是自力이어니와 若身長大하야 藝業悉成하면 乃以自力으로 超過一切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初發心時엔 以志求大法故로 超過一切聲聞獨覺이어니와 今住此地하야는 以自所行智慧力故로 出過一切二乘之上이니라 佛子야 菩薩이 住此第七地에 得甚深遠離無行常行身語意業하야 勤求上道하야 而不捨離하나니 是故菩薩이 雖行實際나 而不作證이니라
해탈월보살이 말하였습니다. “불자여, 보살이 초지로부터 여기까지 닦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한량없는 업은 어찌하여 이승(二乘)을 뛰어넘지 못하나이까.”
금강장보살이 대답하였습니다. “불자여, 저 이승들을 다 뛰어넘었지마는 그러나 다만 모든 부처님의 법 구하기를 원하는 까닭이요, 자기의 지혜로 관찰하는 힘이 아니었거니와, 이제 제7지는 자기 지혜의 힘으로 하는 것이므로 모든 이승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마치 왕자가 왕의 가문에 태어나면 왕후가 낳았고 왕의 모습을 갖추었으므로 나면서부터 모든 신하들보다 수승하거니와 그것은 오직 왕의 힘이요 자기 자신의 힘이 아니지마는 만약 몸이 자라고 기예를 모두 이루면 자기의 힘으로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처음 발심할 때부터 대승법에 뜻을 두어 구하므로 일체 성문과 독각을 초월하였지마는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자신이 행하는 지혜의 힘으로 일체 이승들의 위를 뛰어넘느니라.
불자여, 보살이 이 제7지에 머물러서는 매우 깊고 멀리 여의었으며, 행함이 없이 항상 행하는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을 얻어서 더 높은 도를 부지런히 구하여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비록 실제를 행하지마는 증(證)하지는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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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二乘)과의 차별(差別)
*
해탈월보살(解脫月菩薩)이 : 해탈월 보살이
언(言)하사대 : 말하되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菩薩)이 : 보살이
종초지래(從初地來)로 : 초지로부터
소유무량신어의업(所有無量身語意業)이 : 한량없는 신업과 어업과 의업이
기불초과이승야(豈不超過二乘耶)잇가 : 어떻게 하면 이승을 초과하지 않는가? 이승을 초과하지 않을수 있는가? 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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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 금강장 보살이
언(言)하사대 : 말하기를
불자(佛子)야 : 불자야
피실초과(彼悉超過)나 : 그 사람들은 다 이승을 초과하긴 하지만
연(然)이나 : 그러나
단이원구제불법고(但以願求諸佛法故)로 : 모든 불법을 구하기를 원하는 까닭에
비시자지관찰지력(非是自智觀察之力)이어니와 : 자기의 지혜로 관찰한 힘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금제칠지(今第七地)는: 제 7지는
자지력고(自智力故)로 : 자기의 지혜의 힘인 까닭에
일체이승(一切二乘)의 : 일체 이승의
소불능급(所不能及)이니 : 소불능급이다. 일체이승의 능히 미칠 바가 못된다.
그러니까 6지까지는 유공용이기 때문에 이승도 넘볼 수가 있는데 그래도 이승하고는 다르다. 여기는 독립된 십지경이기 때문에 이렇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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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왕자(譬如王子)가 : 그것을 비유하자면 비여왕자가
생재왕가(生在王家)에 : 왕가에 태어났고
왕후소생(王后所生)으로 : 왕후의 소생이라.
구족왕상(具足王相)하야 : 그래서 왕상을 구족했다.
생이(生已)에 : 태어난 뒤에
즉승일체신중(卽勝一切臣衆)이로대 : 모든 신하들이 수천명이 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보다는 왕자니까 훨씬 수승한데
단이왕력(但以王力)이요 : 그것은 전부 왕의 힘이다. 왕의 힘때문에 여러가지 대신들 숱한 능력 있고 지모가 있고 활과 창과 칼을 잘 쓰는 장군들 그런 사람들을 다 누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비시자력(非是自力)이어니와 : 이것은 자력이 아니다. 왕의 아들이니까 꼼짝을 못하는 것이다.
약신장대(若身長大)하야 : 만약 몸이 장대해서
예업실성(藝業悉成)하면 : 기예와 업이 다 이루어질 것 같으면
내이자력(乃以自力)으로 : 이에 자력으로
초과일체(超過一切)인달하야 : 일체를 다 초월할 수 있듯이 그때는 능력을 다 갖추었으니까 그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온갖 중신들 신하들을 다 제압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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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초발심시(初發心時)엔 : 초발심시에
이지구대법고(以志求大法故)로 : 큰 법을 구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초과일체성문독각(超過一切聲聞獨覺)이어니와 : 일체 성문 독각보다는 뛰어난다. 초과한다는 말이다.
본래 보살의 발심은 성문 연각들 이 사람들의 발심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더라도 열반을 얻어서 윤회를 초월하고 이 세상에서 열반을 얻으면 그것으로써 끝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불환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그것으로써 최고를 삼지만 보살은 아니다.
‘나는 수생한다’ 생을 받아서 윤회해서 못다한 일들 다하고 못다한 원수도 갚고 사랑도 하고 일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중생제도도 하고 동고동락 하면서 살란다 하는 보살하고, 이 세상을 떠나서 완전히 ‘나는 이 세상하고 이별이다. 영원히 이별이다’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너무 여러 번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을 잘 알아야 된다.
아주 신조로써 가지고 있어야 된다. 일체 성문 독각을 초과하거니와
금주차지(今住此地)하야는 : 지금 이 지위에 머물러서
이자소행지혜력고(以自所行智慧力故)로: 자기가 행한 바 지혜를 쓰는 고로
출과일체이승지상(出過一切二乘之上)이니라 : 일체 이승의 상을 출과한다. 성문 연각은 다 지나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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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菩薩)이 : 보살이
주차제칠지(住此第七地)에 : 이 제 7지에 머묾에
득심심원리무행상행신어의업(得甚深遠離無行常行身語意業)하야 : 매우 깊고 멀리 떠나며 무행 상행하는 행이 없이 항상 행하는 신어의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어서 그러한 상태가 되어서
근구상도(勤求上道)하야 : 그보다 더 높은 도를 열심히 구해서
이불사리(而不捨離)하나니 : 사리하지 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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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보살(是故菩薩)이 : 시고로 보살이
수행실제(雖行實際)나 : 비록 실제를 행하지만, 진리를 행하지만
이부작증(而不作證)이니라 : 증득을 짓지는 않는다. 수행실제나 이부작증이다. 이것이 중요한 말이다.
실제를 행하기는 하지만 진리의 세계에 안주하지만 거기에서 꼼짝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만족으로 삼고 거기에 스톱하지 않는다. 부작증이라는 말 증득을 짓지 아니한다는 말이 그 뜻이다.
11, 入定
解脫月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菩薩이 從何地來하야 能入滅定이니잇고 金剛藏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菩薩이 從第六地來로 能入滅定이어니와 今住此地하야는 能念念入하며 亦念念起호대 而不作證일새 故此菩薩이 名爲成就不可思議身語意業하야 行於實際호대 而不作證이니 譬如有人이 乘船入海에 以善巧力으로 不遭水難인달하야 此地菩薩도 亦復如是하야 乘波羅蜜船하고 行實際海호대 以願力故로 而不證滅이니라
해탈월보살이 말하였습니다. “불자여, 보살이 어느 지ㅣ위로부터 능히 적멸한 선정에 들게 됩니까?”
금강장 보살이 대답하였습니다. “블자여, 보살이 제6지로부터 능히 적멸한 선정에 들어가거니와, 지금 이 지위에서는 생각 생각마다 들어가고 생각 생각마다 일어나면서도 증(證)하지는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보살을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불가사의한 업을 성취하고 실제를 행하지마는 증하지 않는다.’라고 하느니라.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감에 교묘한 방편의 힘으로 물의 재난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이 지위의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바라밀다의 배를 타고 실제(實際)라는 바다를 다니면서도 서원의 힘으로 열반에 매여 있지는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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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정(入定) : 정(定)에 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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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월보살(解脫月菩薩)이 : 해탈월보살이
언(言)하사대 : 말하되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菩薩)이 : 보살이
종하지래(從何地來)하야 : 어떤 지위로부터
능입멸정(能入滅定)이니잇고 : 능히 멸진정에 들어가는가, 멸정은 멸진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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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 금강장 보살이
언(言)하사대 : 말하되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菩薩)이 : 보살이
종제육지래(從第六地來)로 : 6지로부터서
능입멸정(能入滅定)이어니와 : 능입멸정이다. 6지부터 멸진정에 들어간다. 아라한들이 완전한 열반에 딱 들어가서 다시는 번뇌를 일으키지 아니하는 상태 그것이다.
금주차지(今住此地)하야는 : 지금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능염념입(能念念入)하며 : 순간순간 그 멸진정에 들어가며
역염념기(亦念念起)호대 : 또한 순간순간 일어난다. 이것이 중요하다. 순간순간마다 멸진정에 들어가기도 하고 순간순간 일어나기도 한다.
이부작증(而不作證)일새 : 그러나 증득을 짓지 아니할 새 거기에 딱 멈춰 버린 상태다. 소승들 성문연각들이 무여열반에 딱 들어가서 더이상 꼼짝달싹하지 아니하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그란데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염념입하며 염념기 한다.
탐진치 삼독의 번뇌의 불을 일으키기도 하고 끄기도 하고 끄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한다.
탐진치 삼독의 번뇌의 불길을 끄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소승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그 프로테이지가 얼마냐 하는 것이 문제다.
인위적으로 우리가 마지못해서 업에 떠밀려서 탐진치 삼독을 일으키느냐. 아니면 원력으로 어떤 방편으로 아니면 보살심으로 탐진치 삼독을 일으키느냐. 그것이 우리 힘으로는 좀 힘들기는 하지만 그러한 차이지 이미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을 보살의 경지에 이른다 하면 그것은 우정 보살의 원력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여기 염념입 염념기라고 했다.
소승들은 염념입 뿐이다. 순간순간 들어가버리면 끝이다.
일어나지 않는다. 소승들이 멸진정에서 왜 일어나겠는가?
자나깨나 멸진정을 얻으려고 죽으나 사나 고생고생 하면서 거기까지 올라와서 거기에 딱 도달했으면 더 이상은 안간다.
다시는 일으키지 않는다. 번뇌도 안일으키고 윤회도 안한다. 그리고 세상을 완전히 끝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승경전 특히 화엄경에서는 염념기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것이다. 멸진정에서 멸진정을 성취했지만 거기서 다시 일어난다. 그래서 이부작증이다. 증을 짓지 않는다라는 말은 거기에 딱 웅크리고 앉아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어날 때 일어나고 들어갈 때 들어가고 필요에 따라서 들어가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 그런 내용을 많이 강조했지만 이것이 대승불교가 소승불교 근본불교와 아주 크게 다른 점이다.
고차보살(故此菩薩)이 : 고로 차 보살이
명위성취불가사의신어의업(名爲成就不可思議身語意業)하야 : 이름이 명위 성취불가사의 신어의업하야, 불가사의한 신어의업을 성취한다. 소승들은 이것을 상상도 못한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몇 번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면서 그 갔다가 온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오는 것을 누가 보장하는가? 일왕래 등등의 말을 하는데 그것을 누가 보장하는가? 한 번 갔다 온다 두 번 갔다 온다고 하는데 갔다 온다는 말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아무도 보장못하는 말을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을 버젓이 믿고 있다. 그것도 사실은 본래 불교 이전에 바라문교에서 있었던 일생의 수행과정이다. 출가했다가 숲속에서 수행하면서 머물렀다가 다시 속가로 돌아와서 가정을 다 이루어 놓고 재차 출가하는 것이다.
그런 네 가지 단계가 있고 거기서부터 출발한 것인데 교리가 불합리한 쪽으로 너무 발달하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것을 다 이야기 하기로 하면 길어지지만 여기 나온 이 내용이 참 중요하다.
불가사의한 신구의 신어의 업을 성취한다. 그러니까 이쯤 되어야 한다. 어떤 한 곳에 빠져서 치우쳐 버리면 원만한 수행이 안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내용이다.
행어실제(行於實際)호대 : 실제를 진리를 행하되
이부작증(而不作證)이니 : 이부작증이니 증득을 짓지는 아니하나니 그러니까 실제와 방편 그것을 자유자재로 행한다는 말이다. 상을 낼 때는 내고 안낼 때는 안내고 안내기도 하고 내기도 하고 하는 것을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수행하고 육바라밀을 닦고 하는 것을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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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유인(譬如有人)이 :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승선입해(乘船入海)에 :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갔는데 배를 잘 저어서
이선교력(以善巧力)으로 : 선교력으로
부조수난(不遭水難)인달하야 : 수난을 당하진 않는다.
배를 잘 저으니까 파도가 좀 친다 하더라도 그 파도에 배가 엎어지거나 하진 않는다.
차지보살(此地菩薩)도 : 이 보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승바라밀선(乘波羅蜜船)하고 : 바라밀의 배를 타고
행실제해(行實際海)호대 : 실제 진리의 바다에 노닐되
이원력고(以願力故)로 : 원력이 있는 고로
이부증멸(而不證滅)이니라 : 그 멸을 증득하지는 않는다. 원력 때문에 보살은 실제 진리 속에 딱 갇혀 있지도 않고 거기에 웅크리고 앉아있지도 않고 ‘내가 이것으로써 끝이다. 이만하면 됐다. 내 소원성취 했다’ 이렇게 안한다는 것이다.
배를 잘 젓는 사람은 아무리 파도가 아무리 치더라도 파도에 휩쓸리지 아니하듯이 보살도 원력이 있기 때문에 그 진리 속, 열반 속에 멈춰있지 않는다. 실제는 열반이라는 뜻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열반이 소승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진리니까 소승들은 실제 속에 멈춰 있기를 좋아하는데 여기 보살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 이런 이야기가 여기에 여러 번 나왔다.
실제에 멈춰있지 않는다.
이런 것은 우리 수준에서도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한 가르침이다. 십지품의 수준이 우리하고 어떻게 적용이 될까 우리 삶에 무슨 적용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데 그게 아니다. 충분히 적용이 되고 우리 수준에 맞춰서 해석이 가능하고 활용이 또한 가능한 것이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박수소리)
하강례
철든 마음이 인사를 하지
대중공양이 많이 들어왔는데 그중에 초콜렛과 귤 공양이 겹쳤다. 커피와 견과류가 잔뜩 박힌 찰떡도 대중공양 받았는데, 다른 분들이 똑같이 귤과 초콜렛을 생각하시다니 신기했다.
선원 앞에서 큰스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 차 트렁크를 열고 150개나 되는 커피와 초콜렛 봉투를 내리시는 스님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
개인사진이 일일이 수록된 해인사 강원 역대 졸업생들의 주소록이 문수선원으로 도착했다. 큰스님이 아주 재미있게 보셨다.
“5회 졸업생 64년 5월 1일 졸업이다 해 놨네?”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셔서 모두 얼굴을 맞대고 큰스님의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거주지가 문수선원으로 되어있어서 다음날 연락해서 범어사로 바꾸기로 했다.
평소에 ‘내가 이름을 잘 기억 못해’ 하시면서 인사 오시는 스님들에게 자주 미안해 하곤 하셨는데 사진이 들어가 있어서 무척 마음에 드신 모양이었다.
무슨 이야기 끝에 아직도 인사가 어렵다고 왜 그런지 여쭤보았는데 큰스님도 젊은 시절에는 상당히 그런 것을 못하는 편이었다고 하셨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인사를 또 하게 돼. 살다보면 지나치게 과찬을 받을 때도 있고, 또 받아야 할 인사를 못받을 때도 있고. 꼭 똑같이 돌아가지는 않아. 그게 이제 나중에 받을 수도 있고, 그 전에 받았을 수도 있고 그래.”하셨다.
*
만발다 보살님이 오늘 몇 분이 왔는지 신발을 세서 130분 정도가 왔다고 알려주셨다.
참석인원을 신발로 센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서 깜짝 놀라자 큰스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제일 정확하지. 맨발로 오는 사람은 없으니까. 대개 후원에서는 신발을 세.”
*
118차 화엄산림을 거진 정리할 때쯤 ‘12월 13일, 남태령 정각사 송원(松園)스님이 입적’하신 소식을 인터넷 다음까페 염화실에서 보았다.
포천 법왕사에서 한 번, 남태령 정각사에서 한 번, 동국대학교 역경원장 취임식에서 한 번 큰스님과 함께 스님을 뵈었었다. 기억하는 내용으로 찾아보니 대원성님의 녹취로 두 분 일화가 고스란히 적혀져 있다. 남태령 정각사의 밝고 환한 방에 가득했던 無比라고 새겨진 표구된 글씨들, 단정하신 모습, 고우신 얼굴로 큰스님을 바라보고 손을 내미시던 모습, 2007년 4월 법왕사에서 큰스님은 벌써 이렇게 법문 중에 말씀하고 계셨었는데 알아듣지 못했었다.
[오늘 주지스님이 스님들을 소개를 했는데, 저희들이 미처 모르는 아주 큰 스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옛날 우리 조계종에서 총무원장을 지내셨던, 남태령 고개 정각사에 계시는 송원스님이 오셨어요.
60년대에 스님 다섯, 일반 불자 다섯 명 이렇게 10 명이 제2기 역경연수생으로 지냈습니다. 그 때 동문수학한 이후로, 저를 스님이 계시는 사찰이 어디든, 제가 1년에 한 번을 가든 안가든 항상 저를 그 사찰의 대중의 일원으로 제창을 합니다.
그때 우리가 어려울 땐데, 신도님들이 스님들에게 양말 공양 런닝셔츠 공양이 최상의 공양이었습니다. 제가 2년이나 3년에 한 번 스님께 가면, 그동안 들어온 대중공양이라고 하고 모아 놨다가 제 몫으로 줘요. 2년이 걸리고 3년이 걸려서 가도 대중의 일원으로 계산을 해서, 대중공양이 들어오면 모아 놨다가 주는 스님입니다. 법왕사 12주년 기념법회에 저의 사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이런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대로 뭔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들려드립니다.(염화실 공지방, 대원성님 녹취중 발췌)]
마음이 마음에게
보현의 인사 화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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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마음이 마음에게 보현의 인사 화엄의 사랑...가만히 되되어 읽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 오는 말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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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
@慧明華 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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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