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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태권도 시범단의 수업이 있는 인천 부평구의 한 태권도장. 헤어스타일이 비슷비슷한 데다 도복까지 맞춰 입은 20여 명의 어르신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이 짐짓 낯설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르신들이 하는 태권도 시범이라고 하니 어린이들이나 젊은 선수들보다는 아무래도 부드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도장 전체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기합소리 한방에 그 생각은 꽁무니를 빼고 사라진 지 오래다.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얍!”하는 기합소리는 정말 이들이 60세도 훨씬 넘은 어르신들이 맞는지 다시 한 번 단원들의 얼굴을 확인하게 만든다. 마음 좋은 옆집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윤여호 단장도, 일단 연습이 시작되면‘호랑이 단장님’으로 변신한다.“ 왜 이렇게 동작이 무뎌요! 다리를 좀 더 높이 뻗으세요!”“힘이 없어 보입니다. 더 힘있게 하세요!”라며 단원들에게 끊임없이 긴장을 불어넣는 윤여호 단장의 우렁찬 목소리에 단원들의 동작 하나하나에도 힘이 실린다. 이렇게 긴장으로 가득한 연습 중간 중간, 방향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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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을 혼동하는 할머님들의 모습이 보일 때면 함께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며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연습의 하이라이트는 바로‘격파’다. 어르신들, 그것도 여성이지만 젊은이들 못잖은 기합소리와 함께 힘 있게 내지르는 주먹에 송판이 산산조각 나 버린다. 비단 송판뿐 아니라 젊은 태권도 선수들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기력이다. 할머니 태권도 시범단의 반장을 맡고 있는 백성숙 어르신은 송판 10개를 격파 하는 것도 문제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1999년 4월 발대식을 갖고 운영되기 시작했으니, 이제 꼭 10년이 된 할머니 태권도 시범단. 원래 노인대학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체조 등을 가르치던 윤여호 단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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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태권도를 배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1987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범교육을 시작했다. 어르신들에게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이 배우는 태권도를 똑같이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은 오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윤 단장은 적잖은 노력을 쏟았다. 아무래도 신체 활동에 제약이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품세와 태권 체조를 직접 개발했고, 일정 나이 이상이 된 어르신에게는 격파 등의 심한 운동을 제한하며 어르신들이 혹여 다치는 일이 없도록 늘 주의를 기울인다. 이런 윤여호 단장의 노력 덕분에 어르신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즐겁게 태권도를 즐기고 있다. 2000년에 태권도를 시작해, 지금은 공인 2단의 실력을 자랑하는 백성숙 어르신은 사실 처음 3년 동안은 태권도를 한다고 해서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동작 하나하나도 힘들고 몸도 더 아픈 것 같아 태권도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태권도로 직장암도 극복해 낸 지복여 회장과 윤여호 단장의 격려가 계속 태권도를 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목 디스크로 수술도 받았고, 몸무게도 제법 많이 나갔어요. 그런데 태권도를 꾸준히 하니 목에 있던 혹도 없어지고 몸무게도 18kg나 줄었죠. 무엇보다 기합을 넣으면서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게 가장 좋아요.” 분홍빛 립스틱을 곱게 바른 수줍은 인상의 강순례 어르신도 태권도를 할 때만큼은 180도로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얌전한 성격인데 어떻게 태권도를 하냐며 주변 사람들이 신기해 할 정도라고. 하지만 매일매일 어르신을 괴롭혔던 신경성 위염도 그로 인해 생겼던 불면증과 우울증도 모두 태권도를 통해 말끔히 씻어 냈다며 활짝 웃어 보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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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넘게 함께 운동을 하며 국내 여러 지역을 비롯해 중국, 태국 등 해외로까지 나가 태권도 시범을 펼치고 계신 어르신들. 신문이나 잡지 인터뷰는 물론이고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하는 등 그 동안 갈고 닦은 태권도 실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하 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시범단의 활동이 여러 곳에 알려지면서 인천과 경기도 지역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문의하는 어르신들이 제법 많이 있다. 하지만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아 이들을 다 포용할 수 없는 상황. 여건만 된다면 여러 지역에서 어르신들께 태권도를 지도하고 싶은 것이 윤 단장의 바람이다. 또 지금은 할머님들만 계시지만 할아버님들과도 태권도를 함께 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또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2014년 개최되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할머니 태권도 시범단의 태권도 시범을 선보이고 싶어요. 우리 할머니 태권도 시범단의 시범을 통해서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한층 더 높이고 싶습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윤 단장이 직접 개발한 태권체조로 연습을 마무리하는 어르신들의 면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몸의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까지 함께 가꿔 가는 할머니 태권도 시범단 어르신들. 이들의 우렁찬 기합 소리가 유유히 흐르는 세월쯤은 가뿐히 물리치고도 남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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