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장자에겐 은혜 혜자 혜자라는 벗이 있었다. 벼슬을 하며 잘 지내는 혜자는 벼슬을 하지 못하는 천재 장자가 늘 부담스런 존재였다. 이 혜자에게 장자는 이런 비유를 말한다. "원추라는 새는 남쪽 바다를 출발하여 북쪽 바다로 날아 갈 때,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먹구슬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단맛이 나는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는 벼슬은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혜자에게 안심반 비판반으로 "마침 썩은 쥐를 얻은 솔개의 옆을 원추가 지나가게 되었는데, 솔개가 원추를 올려다 보면서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네" 하였다. 그러면서도 둘은 오래 우정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솔개가 우리집 뒷뜰의 담을 찾아와 앉은 것이다. 어쩐 일인가? 하늘을 날거나 농로를 지날 때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에는 익숙한데, 우리집 담엔 왠 일인가? 참 영험스럽다. 고작 그 이유를 들라면 그 까닭은 내게 있다. 나에게는 비밀스러운 소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이다. 내가 다시 태어 날 수 있다면 말이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매가 되고 싶다. 매가 되어 높이 날라 멀리 멀리 훠이 훠이 다녀 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도 침침한 이 눈이 아니라 부모님이 주셨던 20 20 시력으로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노숙자가 한 유지의 도움으로 원룸을 얻게 되었다던가, 누가 놓고 간 현금 봉투로 딸년 수술을 받게 되었다던가, 혹은 방황하던 술주정꾼이 새 삶을 사작했다던가. 아니 애초에 아무도 서로의 도움이 필요 없는 사회, 모두가 다음 끼니와 옷과 잠 잘 곳 걱정을 하지 않는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이다. 샬롬! 샬롬! 을 쉽게 외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말하자면, 모든 시민들에게 소속 사회의 건강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 샬롬을 보고 싶기 때문에 매가 되고 싶은 것이다.
오늘 매를 보니 장자의 매가 생각난다. 내가 매가 되었을 때, "그" 매는 나인가 아니면 장자의 "솔개"인가? 그 매가 나일까 매일까? 또는 반반씩? 다시 말해서 매처럼 보고 날고 나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그 매는 인간의 두뇌를 가질까, 장자의 솔개의 뇌를 가질까? 만약에 매로 태어나면 세세만년 매로만 살게 되는 것인가? 우리 이 집 위를 날 때 저 아래에 꾸부정히 벽을 집고 걸으시는 노모, 손자를 위해 치킨 팦 파이를 만드는 아내, 손자들이 아는 유일한 한국어를 "할아버지!"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고향의 길목의 친구들을 알아보려나? 그매는 나인가?
그매는 "매대로 살겠지?" 하고 있는데 이 매는 제 몸보다 두배는 더 커 보이는 두 날개를 펴고 훌쩍 날라 오르고는 왼쪽 담에 섰는 두 큰 전나무들 밑으로 날라가선 내려 앉는다. 나는 그 곳에 해먹을 달고 손자를 얹혀 놓았으면 했던 곳이다. 그 담 밑은 토끼가 드나드는 길목이다. (20 11 28)
64회 김훈
첫댓글 . . . 김훈 목사님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매처럼 넓고, 멀리, 깊게 바라보는....
깊은 뜻을 알려주시는 좋은 글들을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