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 관계에 대한 뉴스와 그 여파에 대한 기사들로 안팎이 시끄러운 요즘이다.
올해로 우리나라는 광복 74주년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광복절이 8월 달력의 빨간 숫자로만 반기는 날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찜찜하던 차에, 초등 고학년이 된 딸아이와 친구를 데리고 영화관에 갔다. 실은 얼마 전 포스터를 보고나서,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영화가 있었다. 마음과는 달리, 단숨에 달려가 보기보다는 망설여졌던 영화. 극장에서도 하루에 한 번 밖에 상영하지 않는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을 보았다.
“나이는 구십 사세, 이름은 김복동,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입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이 첫마디가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 번 할머니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들려온다.
영화 ‘김복동’은 1992년에 위안부피해자로 증언한 김복동 할머니가 27년간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 과정을 담고 있다. 전 세계를 돌며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고 전쟁 없는 세상, 전쟁 중 성폭력피해자 없는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생전의 모습들이 담담하게 그려졌다.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왜 사과를 하지 않느냐”는 말씀에 마음이 무너졌다. 병마와 노환에 스러지기까지 피해자를 넘어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활동가로 끝까지 싸우는 모습들을 보며 영화상영 내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일본정부의 거짓말과 만행,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 없는 ‘위안부합의’에 대해 무효를 외치는 여학생들의 울부짖는 모습, 거동도 힘드신 몸을 이끌고, 외국으로 나가 강연을 이어간 할머니의 투쟁. 그리고 아베의 망언과 철거되는 소녀상들...참으로 말도 안되는 일들이 여전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분과 수치심이 섞여 큰 숨을 연거푸 쉬어도 가슴이 답답했다. 차라리 할머니가 큰소리로 욕하고 통곡하고, 소리라도 치셨으면 후련했을까....시름깊은 주름살과 굳은 표정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비보들을 묵묵히 듣고 계시다가 시위로 붙잡혀간 여학생을 보며 “너네가 왜 붙잡혀가. 그러지마” 쓸쓸히 말씀하시는 모습에 눌려있던 마음들이 잘게 찢기는듯 아팠다.
이번 주면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가 1403번째란다. 난 김복동 할머니를 세 번 뵈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에서 할머니를 처음 뵈었을 당시만 해도 이렇게 1000회를 훌쩍 넘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날 따라 유치원에 가지 않고 엄마를 따라나서겠다던 아이 손을 잡고, 수요시위에 처음 갔을 때, 해외동포, 외국인 여행객 등 여러 참가자 중 무척 인상 깊었던 참가자가 있었다. 역사 선생님과 이제 막 수능을 치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었다. 할머님들께 자신들의 편지를 젖은 목소리로 낭독하던 학생들이 참 기특해보였다. 그리고 그런 역사 선생님이 아이들 곁에 계심에 부러웠다. 그리고 나서 2년 후 겨울,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가까이에 가서 이야기해야 하는 김복동 할머니와, 영하 20도를 육박하는 매서운 추위에 소녀상 철거를 막고자 비닐천막에서 농성을 하는 노란 조끼 여학생들을 보았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우는 엄마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딸아이는 자신이 영화 속 할머니를 만났던 기억이 없다. 다만 사진 속에서 천진하게 웃으며 ‘일본은 사죄하고 배상하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는 팻말을 들고 있는 어릴 적 사진 속 하루로만 기억할 뿐이다. 영화 마지막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나왔을 때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용이 다 이해가 가지 않지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광복절에 영화를 보고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먹먹한 가슴이 가시질 않는다.
살아있는 증거들이 있음에도, 일본정부는 여전히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강제 연행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또한 합의문 이행이라며 소녀상 철거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되려 우리나라를 비난하고 있다. 지금의 중학생과 고등학생 86%가 ‘일본군위안부’에 대해서 모른다는 기사를 보았다. 평화와 인권에 대한 교육대신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걸까? 어른이 되고 보니, 진실 앞에 마주해서 옳은 일인줄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거나, 오랫동안 그 일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할머님들의 27년이라는 그 세월 속 외침과 용기가 자꾸 마음을 찌른다.
김복동 할머님을 비롯해 생존하고 계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소원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로 더 이상 ‘위안부할머니’가 아닌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남은 여생을 살고 싶은 것, 다시는 전쟁으로 인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실을 알리고 싶은 것 뿐이었다. 인권운동가나 평화활동가도 좋지만 “나이는 구십사세. 이름은 김복동, 노래를 좋아하는 대한민국 할머니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소개할 그 날을 그토록 고대하셨을 할머니..부디 이제는 아픔없는 곳에서 꽃처럼 나비처럼 자유하시길, 그리고 이젠 그냥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로 남겨진 그 이름 석자 ‘김복동’과 함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어떻게 마침표를 찍는지 지켜봐주시길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전주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