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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성운 교수, 파리 개인전 열어
노스텔지어 담은 프랑스 풍경을 주제로 작품 12점 전시
서양화가 김성운(삼육대 문화예술대학) 교수는 9월 15일부터 20일까지 파리 라빌라데자르 갤러리에서 두 번째 파리 개인전, 통산 16회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노스텔지어 담은 프랑스 풍경'이라는 주제로 열리며, 김 교수가 연구년을 맞아 1년 동안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면서 그린 풍경화 12점이 전시된다.
그는 프랑스의 ‘노스텔지어’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독특한 조형어법인 ‘사선으로 내리는 빛’을 적용하고 프랑스의 전원 풍경에 그가 즐겨 그리는 한국의 소 대신 프랑스의 젖소, 말, 오리, 백조 등을 그려 넣었다. 또한 그림의 바탕에는 프랑스어 'NOSTALGIE'를 은닉시켜 두었다.
그밖에 프랑스적 향수를 일으키는 고동색과 상아색, 치즈 색, 포도의 보라색, 밀의 노란색 등을 사용하였다.
그의 서양화에는 동양화의 세필도 적용하였는데 작가는 "동서양이 같이 예술적 공감을 나누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번 전시가 동·서양 예술 교류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시가 열리는 라빌라데자르 갤러리는 추상화의 아버지인 세잔과 점묘파의 창안자 폴 시냑 등이 작업했던 건물로, 전시 소식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에게 안내된다.
머니투데이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5090305407492774&outlink=1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50736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news/articleView.html?idxno=90903
베리타스알파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46562
노스텔지어 담은 프랑스 풍경을 조우하다
김 성 운(화가, 디자인학 박사)
노스텔지어(nostalgia)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질병이 아니라 팍팍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고 활력을 주는 비타민과 같은 존재다. 화가들은 예술 활동을 통해 과거 기억에 근거한 고향의 심상을 작품에 투영하여 감정을 표출한다. 고흐는 네덜란드의 조그만 고향마을 쥔더르트(Zundert)를 항상 그리워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에 있는 풍차를 생각하고 몽마르트르의 갈레트 풍차를 그렸다. 그리고 샤갈은 항상 고향 비테브스크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을 그렸다. 나도 향수를 자극하는 포근한 한국 고향의 소 그림을 즐겨 그린다. 나는 지난 6월 파리에서, 한국에서 제작한 작품‘고향회귀의 노래’로 개인전을 열어 프랑스인들로부터 많은 공감과 호응을 얻었다.
나는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프랑스에서 1년 간 연구년을 보내면서 우연히 인상파들의 고향, 그들이 활동했던 주 근거지인 파리 근교의 전원마을인 루브시엔(Louveciennes)에 정착하게 되었다. 루브시엔 주변에는 르노와르, 모네, 시슬리, 피사로, 드가, 모리스 등이 직접 그렸던 그림 현장이 즐비하다. 그들이 직접 화구를 들고 나가 그렸던 그림 현장은 세느 강을 끼고 인상파의 섬, 뤼에이 말메종, 부지발, 마를리, 라셀레 생클루, 샤투섬 등 곳곳에 산재해 있다. 나는 인상파 화가들이 야외 이젤을 펴 놓고 그린 현장을 빠짐없이 답사하고, 그들이 거주했던 생가와 아뜰리에, 가족 이야기들을 꼼꼼히 연구했다.
나는 인상파들의 그 그림들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몽마르트르 미술관, 영국의 내셔널갤러리, 벨기에 왕립미술관 등을 찾아서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인상파들이 거쳐간 몽마르트르, 생제르망, 생라자르역, 퐁투와즈, 오베르, 지베르니, 루왕, 르브와르, 도빌, 투루빌, 옹플뢰르, 에트라타, 몽생미셀, 리용, 프로방스, 아를, 툴루즈, 스트라스부르, 크루니, 안시, 꼴마르 등을 추가 탐방했다. 나는 거기서 인상파들이 나타내려 했던 프랑스의 ‘고유한 품성’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철학자 헤르더는“대지, 암석, 식물 등 풍토의 차이가 주민의 고유한 품성의 차이를 만든다.”고 했고, 철학자 헤겔은 “모든 민족은 그들의 가장 드높은 생각들을 예술 안에 담는다.”라고 했는데, 나는 프랑스 인상파들의 그‘고유한 품성’내지는 ‘드높은 생각’이 바로‘노스텔지어’인 것을 본 것이다.
나는‘프랑스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화’를 그리기로 작정했다. 사실 프랑스에 오면 누구나 붓을 들고픈 욕구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인상파에 대한 일련의 연구 과정에서, 생생한 자연현장을 보면서 더욱 풍경화의 매력에 크게 동했다. 나는 이방인의 시각으로 그린 프랑스의 전원 풍경에다 내가 즐겨 그리는 한국의 소 대신 프랑스의 소, 말, 오리, 백조들을 그려 넣었다.
나는 프랑스 전국여행을 통해 독특한 풍토를 마음속에 축으로 삼아 숙소인 루브시엔과 현장에서 거의 매일 신들린 듯이 붓을 들었다. 나는 프랑스적 향수를 일으키는 브라운색과 젖소들이 공급하는 프랑스 치즈색,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를 연상시키는 보라색, 밀을 연상하는 노랑색 등을 적용하였다. 그림의 바탕에는 공히 프랑스어 ‘NOSTALGIE’가 ‘NOS’, ‘TAL’, ‘GIE’로 행을 바꿔 은닉시켜 두었다. 이것은 함의된 조형적 필요에 의해서 묘사되기도 하고 배경에 슬쩍 감추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조형적 특징인 ‘사선으로 내리는 빛’인 점선을 대입한다. 나의 특이한 선묘는 ‘프랑스의 빛’이며 폭우 없이 언제나 잔잔히 내리는 프랑스의 비다. 그림은 아스라이 부유하듯 2중, 3중 막이 있는 것처럼 화면이 겹친다. 나는 이 회화 어법을 ‘기억의 입체화’라고 명명한다. 나는 이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노동에 가까운 엄청난 반복 붓질로 겹쳐 칠했다. 그림의 마지막 단계로 가는 점선은 동양화의 세필로 그었다. 그리고 세월의 흔적과 벽화의 특징을 도출하기 위해 나이프로 깎아냈다.
서양화용 물감은 부드러운 동양화 붓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나는 물감을 알맞게 희석하여 나타냈다. 나는 서양화가이면서 동시에 동양인이다. 동양풍의 서양 풍경화, 그야말로 동·서양 예술혼의 습합이다. 나의 풍경화를 통해 동서양이 같이 예술적 공감을 하는 지구촌의 한 가족이 되었으면 한다.
화가 김성운은 대한민국 서울의 삼육대학교 문화예술대학의 정교수이다. 그는 미술 명문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시각문화융합디자인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성운의 작품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하였다. 그의 작품은 미국 의회도서관에 9점이 영구 소장되어 있고, 올해 6월에 프랑스 파리 퐁데자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과 작년에는 일본 도쿄전에서 큰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서울, 파리, 도쿄에서 개최한 개인전 16회와 미국, 일본, 중국 등 국내‧외 단체전 210회, 논문 25편, 저서 3권이 있으며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심사위원, 세계미술연맹 수석 부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시섬문인협회 수석 부회장, 문화마을협회 이사, 프랑스한인과학기술협회 정회원으로 예술·인문·과학의 융합연구 활동도 병행 중이다. 그는 현재 연구년으로 파리 근교 루브시엔느에서 작품 제작과 인상파의 유적지들을 직접 찾는 연구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벨기에, 이태리 등에서 초대전을 기획하고 있다.
Sung Woon Kim, Paysages de la nostalgie. France, 2015.
Très souvent, l’œuvre des peintres trouve sa source dans les souvenirs – qui sont images et émotions – de leur pays natal. Ainsi Vincent Van Gogh a-t-il vécu dans la nostalgie de son village de Zundert aux Pays-Bas, et il se rappelait notamment les moulins de son pays, d’où sa prédilection pour ce motif.
J’éprouve la même nostalgie pour la campagne coréenne où je suis né. Le matin, les paysans emmenaient bœufs et vaches travailler ; quand elles revenaient des champs le soir, nous, les enfants, nous passions du temps avec elles, elles étaient nos compagnes de jeu ; c’est pourquoi il m’est souvent arrivé de les peindre. Au mois de juin de cette année, j’ai exposé des tableaux, peints en Corée, sur la nostalgie de l’enfance : le motif des vaches y apparaissaient toujours. J’ai été touché de voir que malgré toutes les différences qu’il peut y avoir entre les souvenirs d’enfance des Français et mes propres souvenirs, ils partageaient, devant ces toiles, un peu de la nostalgie que j’avais voulu y mettre.
Pendant l’année sabbatique que je viens de passer en France, le hasard a fait que j’ai habité à Louveciennes, une petite ville proche de Paris, située dans une partie de l’Île-de-France qui a joué un grand rôle dans la naissance de l’Impressionnisme. Renoir, Monet, Sisley, Pissarro et Degas, attirés par la beauté de la campagne, avec ses vergers, ses ciels, et la Seine toute proche, y ont peint nombre de leurs toiles. On peut suivre leurs traces tout le long du fleuve, à Rueil-Malmaison, La Celle-Saint-Cloud, Bougival, Chatou, Marly. Après avoir vu leurs œuvres à l’Orangerie, aux musées de Montmartre et d’Orsay, ou à la National Gallery de Londres, j’ai visité d’autres villes qu’ils ont aimées, et me suis rendu parfois sur les lieux mêmes où ils avaient planté leur chevalet. J’ai pensé au philosophe Herder, qui affirmait qu’une bonne part des particularités des hommes était déterminée par la terre, le sol, les plantes où ils vivent. À sa suite, j’ai eu le sentiment de comprendre une part du caractère français, qui explique aussi l’extraordinaire popularité des Impressionnistes : la nostalgie des paysages.
Admirant les villes et les campagnes que les Impressionnistes avaient sous les yeux en peignant leurs toiles, j’ai ressenti le besoin de renouer avec la peinture de paysage que j’avais délaissée depuis dix ans. Je n’ai pas dessiné seulement des vaches comme je faisais en Corée, j’ai ajouté des chevaux, des cygnes, des canards et j’ai campé avec mon regard d’étranger des paysages bien français. J’ai utilisé les bruns, couleurs de terre, pour rendre les nuances des maisons, des murs et des toits ; le violet pour évoquer le vin, le jaune pour le blé, et pour les ciels des beiges et des ivoires inspirés des nuances que prennent les mille fromages de ce pays ! En filigrane de mes toiles, j’ai écrit le mot de nostalgie, sur trois lignes pour qu’il ne soit pas immédiatement reconnaissable ; encore est-il parfois presque effacé.
Les lignes obliques caractéristiques de ma manière représentent ici à la fois la lumière de la France et ses pluies douces et bienfaisantes. Sur mes toiles, je peins toujours plusieurs couches pour exprimer les trois dimensions de nos souvenirs. Puis, pour exprimer la marque du temps qui passe, je travaille au couteau la surface de mes toiles, découvrant les couches inférieures, comme quelqu’un qui s’efforcerait de faire remonter ses souvenirs à la surface de la mémoire.
Au moment de finir mes tableaux, j’utilise les pinceaux très fins empruntés à la technique des peintres coréens. Mais ces pinceaux, conçus pour peindre à l’encre sur de minces feuilles de papier, se prêtent difficilement aux matériaux – peintures et toiles – de la peinture occidentale, si bien que j’ai dû diluer les couleurs à l’extrême.
Cette conciliation entre les deux techniques correspond à ma nature de peintre coréen peignant « à l’occidentale ». J’ai tenté, à travers ces paysages occidentaux de style oriental, de réaliser une délicate harmonie entre les deux traditions.
J’ose former le vœu que mon exposition permette à chacun de ressentir cette mystérieuse empathie qui devrait unir tous les enfants de la Terre, la grande famille des hommes.
Sung-woon KIM
Né en 1958 à Geochang en Corée du Sud, il a obtenu sa maîtrise à l’Université Hong-ik de Séoul et son doctorat en design à l’Université de sciences et de technologie de Séoul.
Il a à son actif 16 expositions personnelles (galeries Pont des Arts à Paris, Pam-a au Japon, galerie-journal de Cho-sun etc.) et a participé à 210 expositions collectives en Corée et à l’étranger.
Il a publié 25 articles et 3 ouvrages.
Jury de “Korea Modern Art”
Premier vice-président de la Fédération mondiale de l’art (World Art Federation http://www.waf.or.kr/)
Vice-président de la Société coréenne d’art graphique
Premier vice-président de l’Association des écrivains Sisum
Ses œuvres sont conservés à la bibliothèque du Congrès aux États-Unis, à l’Université Sahm-yook, à la banque industrielle de Corée, à la galerie Pam-a (Japon), etc.
Il est actuellement professeur au département de design et d’art de l’Université Sahm-y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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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합니다. 늘 대성하시길--
축하드립니다.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축하드립니다. 건안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축하합니다,늘 건강하고 더욱더 정진하시길,,,
김성운 선배님의 이력과 업적이 대단하군요~~~대성의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