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을 만났을 때
김 세 지
친정 제사가 있던 날이었다. 남편은 따로 오기로 하고 아들과 먼저 나섰다. 부모님 댁에 도착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회오리 같은 길을 빨려들 듯 내려가면 너른 주차 공간이 나타난다. 띄엄띄엄 빈 자리가 알이 덜 찬 옥수수 같다. 마침 나란히 빈 두 자리를 눈여겨보고 앞서가는 작은 트럭을 뒤따랐다. 트럭은 내가 노리는 자리를 지나쳐서는 비상등을 켜고 통로 한쪽에 멈춰 선다. 혹시 차를 대려나 싶어 잠시 기다렸지만, 반응이 없다.
바쁘게 종종걸음을 칠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다. 트럭이 주차하려는 거라도 두 자리이니 문제없을 것 같다. 가까운 한 자리에 주차를 시작했다. 그러자 꿈쩍 안 하던 트럭도 옆자리에 차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좁은 공간에서 아슬아슬하게 움직이자니 연신 울려대는 경고음이 날카롭다. 주차를 마치고도 시동을 켠 채 잠시 기다렸다.
그때 트럭 운전자가 거칠게 열어젖힌 문이 내 차에 부딪히고 말았다. ‘문콕’ 사고다. 중년의 남자는 뭐가 부루퉁한지 잔뜩 응그리며 차에서 내린다. 뻔히 지켜보고 있는데도 남자는 부러 알은체도 하지 않는 눈치다. 차를 살피러 내릴 때까지만 해도 웬만해선 그냥 넘길 셈이었다. 이만한 일로 힐문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남자는 내게 대뜸 시비 걸듯 “뭐요?” 한다. “네?!” 황당하다. 남자에게서 ‘빌런’의 기운이 물씬 풍겨 온다. “방금 문 열다가 부딪치셨잖아요.” “좁은데 그럼 어떻게 내리냐! 한번 내려 봐라.” 내 차가 삐딱하게 세워졌나 보니 흠잡을 데 없다. “그럼 말씀을 하시지…. 시동도 안 끄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남의 차를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뭐 어쩌라는 거냐!” “뭐라고요?” 어처구니가 없다.
어지간해야 상대를 한다. 남자는 말문이 막힌 나를 향해 안전핀 뽑힌 소리를 수류탄처럼 퍼붓는다. 소금 친 미꾸라지처럼 부들거리며 토해내는 꼴을 똑바로 보고 있자니 ‘저이는 왜 저렇게 화가 난 걸까?’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난 모르겠으니까 법대로 하든지 알아서 해라.” 명대사를 남기고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퇴장했다.
까물까물하는 정신을 가다듬고 혹시 몰라 현장 사진을 몇 장 찍어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트럭에는 연락처 하나 남겨져 있지 않다. 남편에게 전화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뺑소니라며 경찰에 신고해 버리란다. 괘씸스러워 경찰을 부르려니 문콕 사건은 출동하지 않는단다. 개인 보험으로 처리하고 구상권을 청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안내한다. 흠집 좀 난 것 가지고 수리까지 하며 대응하고 싶지도 않고, 기다릴 부모님 생각에 더는 지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이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나의 억울함까지도….
제사를 다 지내고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문콕 빌런*’ 사건이 화두에 올랐다. 모두 어이없어했지만, 어찌하겠냐는 분위기다. 차도 그만저만하고, 운이 나빴거니 하고 잊어버리란다. 상대해 본들 진흙탕 싸움이 될 게 자명하지만, 생각할수록 못내 울화가 치미는 나와는 온도가 다른 듯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남편에게 원망스러운 내 시선이 꽂힌다.
고백하자면 내 안에도 빌런이 살고 있다. 허약한 구석을 귀신같이 파고들어 속삭인다. ‘남편은 내가 그 수모를 당했는데 화도 안 나나?’ 내 안의 불청객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스멀스멀 발동한다. ‘집요하게 찾아내서 처절한 복수를 해 줘야 하지 않나?’, ‘그러게 애초에 남편이 같이 왔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기껏 키워 놓은 키 삐쭉한 아들 녀석은 한번 내려 보지도 않고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니.’ 내 것이 아니라 부정하고 싶은 생각들이 울연히 일어난다. 반역의 소리는 점점 커지고 서운함도 몸집을 키운다.
공자는 나와 같은 나이를 불혹不惑이라고 했다지만, 나의 불혹은 아직 멀다. 난 여전히 유치하고, 쉽게 물들고, 작은 기운에도 나부낀다. 가시 같은 소리는 도깨비 풀처럼 잘 달라붙고, 잘 떼어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거친 속이 앙연하다.
도대체 일을 키워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수리비로 덤터기를 씌울 것도 아니고, 사과를 받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사람이었다면 애당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사건이다. 악역을 자처한 사람과 한판 붙으라고 남편 등을 떠밀 뻔했다. 나를 지켜주기를 바라면서, 정작 나는 가족을 위험에 빠트리려 했다니. 아들은 또 무슨 죄인가? 키만 컸지 아직 어린아이인데, 험한 상황에 노출된 아이가 괜찮은지 어른인 내가 먼저 살폈어야 했다. 소중한 이들에게 나도 빌런과 다를 바 없었다.
며칠 뒤 남편은 그날 찍은 트럭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관리실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차 번호로 조회를 요청하니 개인 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단다. 딴에는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경찰서에 다시 문의해 보겠다는 남편에게 괜찮으니 그냥 잊어버리자 하는 말끝에 더 이상 서운함은 남아 있지 않다. 은밀한 저의가 미안해지는 걸 보니 내 안의 소란은 다시 고요해졌나 보다.
불혹을 지나 지천명이 되면 이런 철없는 마음과 딴집살이할 수 있을까? 스쳐 가는 것에 훼방 받지 않고 휩쓸리지 않도록, 내 안의 철부지가 말썽 피우지 못하게 마음 매무새를 바지런히 가다듬으며 살아야겠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새삼 두렵게 다가온다.
살다가 빌런을 만나게 된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빌런이진 않은지 말이다.
*빌런(villain) : 창작물에서 악당이나 악역을 뜻하는 말이지만, 히어로 영화의 대중화와 함께 들어온 말이 한국식 용법으로 진화한 사례이다. 일상 속 민폐 캐릭터를 가리켜 조별과제 빌런(잠수), 헬스장 빌런(기구 독점), 회의 빌런(다 끝나고 딴소리) 등으로 활용되며, 최근에는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평범한 사람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괴짜’를 일컫는 말로 확장돼 냉면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을 ‘냉면 빌런’, 커피가 없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을 가리켜 ‘커피 빌런’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