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 스튜디오 반 극단 동양레퍼토리 공동제작 노경식 작 김도훈 예술감독 김성노 연출 이우천 협력연출의 두 영웅
공연명 두 영웅
공연단체
작가 노경식
예술감독 김도훈
연출 김성노
협력연출 이우천
공연기간 2016년 2월 19~28일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관람일시 2월 21일 오후 4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노경식 작, 김도훈 예술감독, 김성노 연출, 이우천 협력연출의 <두 영웅>을 관람했다.
노경식(1938~) 작가는 1936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남. 1950년 남원용성국교(41회) 및 1957년 남원용성중(3회)을 거쳐 남원농고(18회, 남원용성고교의 전신)졸업. 1962년 경희대학교 경제학과(10회)를 졸업하고 드라마센타 演劇아카데미 수료.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철새> 당선. 한국연극협회 한국문인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및 이사. 한국 펜클럽 ITI한국본부 한국희곡작가협회 회원. 서울연극제 전국연극제 근로자문화예술제 전국대학연극제 전국청소년 연극제 등 심사위원. 추계예술대학 재능대학(인천) 국민대 문예창작대학원 강사 및 <한국연극>지 편집위원.'남북연극교류위원장'등 역임. 주요수상 :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한국연극예술상(1983), 서울연극제대상(1985), 동아연극상 작품상, (1999) ‘대산문학상’(희곡) 수상, (2003) ‘동랑유치진 연극상’ 수상, (2005) ‘한국희곡문학상 대상’ (한국희곡작가협회), (2006)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9) ‘한국예총예술문화상 대상’ (연극) (2015) 한국연극협회 자랑스러운 연극인상 등을 수상했다.
2004년-2012년 <노경식희곡집>(전7권)/ 연극과인간, 2004년 프랑스희곡집 <Un pays aussi lointain que le ciel> (‘하늘만큼 먼나라’ 외), 2011년 <韓國現代戱曲集 5> (일본어번역 <달집> 게재)/ 日韓演劇交流센터, 2013년 <압록강 이뿌콰를 아십니까> (노경식 산문집)/ 도서출판 同行, 2013년 <구술 예술사 노경식>/ 국립예술자료원, 역사소설 <무학대사>(상하 2권) <사명대사>(상중하 3권) <신돈>/ 문원북.
공연작품으로는 1971년 <달집> 국립극단/ 명동국립극장, 1982년 <井邑詞> 극단 민예극장/ 문화회관대극장(아르코), 1985년 <하늘만큼 먼나라> 극단 산울림/ 문화회관대극장(아르코), 1994년 <징게맹개 너른들>(뮤지컬) 서울예술단/ 예술의전당 대극장, 2005년 <서울 가는 길>(佛語번역극) 파리극단 ‘사람나무’/ 대전문화예술의전당, 2013년 <달집>(日語번역극) 東京극단 ‘新宿梁山泊’/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16년 <두 영웅> 극단 스튜디오 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외 40여 편을 발표 공연했다. <두 영웅>은 노경식 작가의 등단 50주년 기념공연이다.
연출을 한 김성노는 홍익대학교, 방송통신대학교, 경기대학교 공연예술학 석사출신으로 <리틀 말콤>, <등신과 머저리>, <에쿠우스>, <검정고무신>, <홍어> <아버지> <두 영웅>등 활발한 연출활동을 이어오며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상, 동아 연극상 작품상, 서울연극제 연출상 등을 수상하고 '신춘문예 단막극 제', '아시아연출가전', '연출가포럼' 등 기존 사업과 더불어 '한국연극100년 시리즈', '차세대 연출가 인큐베이팅' 등 신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오고 한국연출가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서울연극협회 산악대 대장으로 활약한 건강하고 훤칠한 미남인 중견 연출가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두 영웅>은 사명대사(四溟大師)와 도쿠가와 이예야스(德川家康,とくがわ いえやす) )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의 귀국문제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치하의 일본막부(日本幕府)의 정치적 상황을 그려낸 역사극이다.
유정(惟政, 1544년~1610년)은 조선 중기의 고승, 승장(僧將)이다. 속성은 임(任),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송운(松雲), 당호는 사명당(泗溟堂), 별호는 종봉(鍾峯), 본관은 풍천이며,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법명인 유정(惟政)보다 당호인 사명당(泗溟堂)으로 더 유명하고, 존경의 뜻을 담아 사명대사(泗溟大師)라고 부른다. 승려의 몸으로 국가의 위기에 몸소 뛰쳐나와 의승(義僧)을 이끌고 전공을 세웠으며 전후의 대일 강화조약 등 눈부신 활약은 후세 국민이 민족의식을 발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순안에 가서 휴정의 휘하에 활약하였고 휴정이 늙어서 물러난 뒤 승군(僧軍)을 통솔하고 체찰사 류성룡을 따라 명나라 장수들과 협력하여 평양을 회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함께 경상도 의령에 내려가 전공을 많이 세워 당상(堂上)에 올랐다. 1594년에 명나라 총병(摠兵) 유정(劉綎)과 의논하고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1562~1611)가 있는 울산 진중으로 세 번 방문하여 일본군의 동정을 살폈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와의 문답이 희대의 명언으로 남았다. 가토가 "조선의 보배가 무엇"이냐 묻자 유정은 "조선의 보배는 조선에 없고 일본에 있다"고 했다. 의아해진 가토가 그 보배가 무엇이냐고 묻자 유정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머리를 보배로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가토가 놀라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 명언은 일본에도 널리 퍼져 유정이 포로 석방을 위해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인들이 "이 사람이 보배 이야기를 했던 그 화상인가?"라고 입을 모았다고. 당시 일본에서도 유정의 이 문답이 널리 퍼졌던 모양이다. 왕의 퇴속(退俗) 권유를 거부하고, 영남에 내려가 팔공(八公)·용기(龍起)·금오(金烏) 등의 산성을 쌓고 양식과 무기를 저축한 후 인신(印信, 도장이나 관인)을 되돌리고 산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였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수 마귀(麻貴)를 따라 울산의 도산(島山)에 쳐들어갔으며, 이듬해 명나라 장수 유정을 따라 순천예교(順天曳橋)에 이르러 공을 세워 종2품 가선대부(架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다만 이 와중에 노쇠한 스승 휴정 대신 사명당이 전국 승려들의 우두머리처럼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본 이순신이 그를 탄핵하기도 했다.
1604년(선조 37년) 국서를 받들고 일본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만나 강화를 맺고, 포로 3천 5백 명을 데리고 이듬해 돌아와 가의대부(嘉義大夫)의 직위와 어마(御馬, 임금이 타던 말)를 하사받았다.해인사에 홍제존자비(弘濟尊者碑)가 있다. 이 비석은 불교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데, 무려 2백년 만에 세워진 고승 비이기 때문이다. 승려의 묘비라고 할 수 있는 고승비는 태조 연간에 세워진 것을 제외하고 15,16세기 동안 단 하나도 건립되지 못 하였는데, 사명당을 기점으로 우후죽순처럼 고승비가 세워져 19세기까지 고승비 170여개가 세워졌다.저서로는 《사명당대사집》, 《분충서난록》이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とくがわ いえやす)1543~1616)는 일본센고쿠·아즈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이자 정치가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향토 삼 영걸로 불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사망 이후 1600년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을 지휘하였으며, 승전 이후 에도 막부를 개창하여 첫 쇼군(1603~1605)이 되었다. 1605년 3남 히데타다에게 쇼군 직을 물려준 다음에도 오고쇼의 자격으로 슨푸에 머무르며 정치에 참여하였다. 사후에는 닛코 동조궁에 묻혔으며, 도쇼다이곤겐(東照大権現)이라는 시호를 얻었다.
이에야스는 마쓰라의 센류에 제시된 시에서 묘사된 것처럼 "인내의 귀재"로 평가 받는다.이에야스는 어린 시절에 부를 여의고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겪었으며, 계속 복종을 강요당해왔다. 하지만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히데요시에게 철저히 복종하며, 임진왜란 도중에도 영지만 지키며 신중히 대처하였다고 평가받는다. 때문에 이에야스의 삶은 일본에서 여러 소설과 책, 드라마, 영화, 연극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일본 사람들은 그를 늘 ‘일본의 10걸’로 선정하면서 존경하고 있다 반면 에도 시대 서민들 사이에서는 천하 통일의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며 '살쾡이 영감'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여 상반되는 평가를 가지고 있다.
이에야스가 남긴 명언을 소개하면,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감과 같다. 서두르지 말라. 부자유를 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부족함이 없다. 마음에 욕망이 일거든 곤궁할 적을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함의 기반이며, 분노는 적이라 여겨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일을 모른다면 몸에 화가 미친다. 자신을 책할지언정 남을 책하지 말라. 부족함이 지나침보다 낫다."(人の一生は重荷を負て遠き道をゆくがごとし。 いそぐべからず。不自由を常とおもへば不足なし、 こころに望おこらば困窮したる時を思ひ出すべし。堪忍は無事長久の基、いかりは敵とおもへ。 勝事ばかり知りて、まくる事をしらざれば、害其身にいたる。おのれを責て人をせむるな。 及ばざるは過たるよりまされり.)
무대는 배경 가까이 세자 높이의 단이 좌우로 놓였을 뿐 다른 장치는 없고, 배경막에 막부 건물 오사카 성 같은 당대 일본 고성의 영상을 투사해 시대적 역사적 상황과 극적효과를 높인다. 의상 또한 고증을 거친 듯 조선병사나 서민들의 옷, 장수복식과 승려의상에서부터 그리고 당대 일본복식과 쇼군의상 등이 관객의 눈길을 끌고
장면변화에 따른 음향효과 또한 박력감을 느껴 관객을 공연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부분조명으로 장면변화에 대응하고 배경에 흩날리는 나뭇잎의 영상 역시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오영수, 김종구, 남일우, 권성덕, 이인철, 이호성, 정환금, 문경민, 고동업, 신현종, 최승일, 배상돈, 장연익, 민경록, 노석채, 조승욱, 오봄길, 장지수, 양대국, 임상현, 김대희, 김춘식, 김민진, 박소현, 이 준 등 출연자들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창출은 관객을 도입부터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극적 감상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오영수의 사명당(泗溟堂)과 김종구의 덕천가강(德川家康) 이인철의 풍신수길(豐臣秀吉) 역은 3인의 발군의 기량과 탁월한 성격창출에 따르는 명연으로 관객의 감상안을 부추기고 대미에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장연익의 히로사와 역과 노석채의 혜구 역도 2인의 성격창출에 따르는 호연과 함께 기억에 남는다.
기획 이강선 문경량, 분장감독 박팔영, 분장지도교수 한지수, 분장팀 남주희 안정민 강다영 이서영 순현정 성정언, 무대감독 송훈상, 무대 민병구, 영상 황정남 장재호, 음향 김경남, 음악감독 서상완, 조명 김재억, 조명팀 오정훈 이한용 김병주 박수빈, 의상디자인 김정향, 동작지도 이광복, 그래픽디자인 아트그램, 사진 박인구, 조연출 최윤정, 인쇄 동방인쇄공사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합하여, 한국 문화예술위원회와 스튜디오 반 그리고 극단 동양레퍼토리의 노경식 작, 김도훈 예술감독, 김성노 연출, 이우천 협력연출의 <두 영웅>을 명화 같은 명작 역사극으로 탄생시켰다.
2월 21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