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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산을 정복하라-경남산악연맹 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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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경남 23개 산악회 모여 결성 ··· 부산경남연맹 분리 승인 못받다 1980년 33개 단체로 독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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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경남산악연맹의 탄생과 히말라야 도전, 그리고 영광과 좌절을 극복하고 히말라야 등반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8000m를 오른 경남의 산 사나이를 소개한다. 경남 산악인들은 히말라야에서 한국 초등과 세계 초등의 숱한 등반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산악계에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특히 경남산악연맹은 히말라야 등반에서 대원을 거의 잃지 않고 각종 등반기록을 세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수많은 산악인들이 산을 오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산 속에서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그러나 좌절을 극복한 위대한 산악인들은 8000m 봉우리를 차례로 등정, 1950년 안나푸르나를 시작으로 1964년 마지막 남은 시샤팡마를 정복함으로써 14년 만에 8000m 14좌 정상에 섰다. 대한민국도 1960년대 초반부터 히말라야 정찰에 나섰으며 1977년 고(故) 실제로 대한민국 산악계 중심에는 경남산악연맹이 있다. 경남산악연맹은 1980년 비교적 늦게 탄생했지만 8000m 14좌 가운데 낭가파르바트(8126m), 안나푸르나(8091m)를 한국 초등했다. 특히 경남산악연맹은 경남산악연맹은 수많은 히말라야 등반에서 가장 적은 대원을 희생하면서 많은 성과를 낼 정도로, 탁월한 등반력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진주산악회가 1976년 5월 대한산악연맹 부산경남연맹에 가입하면서 경남산악연맹 창립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듬해 당시 진주산악회 진주산악회
1978년 3월 대한산악연맹에 부산경남연맹에서 분리 독립하겠다는 경상남도연맹 설립 승인 요청서를 제출했지만 승인받지 못했다. 1년 후인 1979년 4월 다시 승인 요청서를 제출, 부산경남연맹 이사회에서 조건부로 분리를 의결했다. 하지만 다른 산악회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5월 18일 대한산악연맹 이사회에서 경상남도연맹 창립에 대한 업무를 경남연맹창립추진위원회에 일임키로 의결했다. 그러나 부산경남연맹은 경남연맹 창설 준비에 참여한 29개 산악회를 모두 부산경남연맹에 가맹한 뒤에 분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분노한 경남연맹 추진위원회는 5월 20일 대의원 총회를 개최, 단독으로 설립을 추진키로 결의하고 33개 산악회를 중심으로 업무를 추진키로 결의했다. 경남연맹은 경남지역 산악운동을 활성화하고 자연보호운동 솔선 수범, 산악인 자질 향상과 산악인구 저변 확대를 기치로 3년여에 걸친 분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경남연맹은 경남산악연맹 분리 당시 가맹 산악단체는 33개로 다음과 같다. △진주산악회 △망경산악회 △진주시청산악회 △비봉산악회 △경상대학교교수산악회 △사우산악회 △삼천포산악회 △함양산악회 △마천산악회 △진주교직원산악회 △선학산악회 △서경산악회 △덕산두류산악회 △산청군청산악회 △산청산악회 △맥산등반클럽 △충무일요산악회 △산우산악회 △대성산악회 △통영산악회 △동양정기산악회 △대동공업산악회 △고성가야산악회 △하동하얀돌산악회 △경남은행산악회 △초마롱마산악회 △진주문화방송산악회 △산호산악회 △남해산악회 △비룡산악회 △경남일보산악회 △거창산악회 △삼현여고산악회 경남연맹 초대회장인 고(故) ●히말라야로 가는 산악인들 경남산악연맹의 해외원정은 1985년 히말출리북봉(7371m)을 시작으로 1985~1986년 한국동계가우리상카르서벽원정대(7134m), 1988년 다울라기리6봉-구르자히말원정, 1988~1989년 한국동계눕체웨스트원정대(7745m)에 도전장을 던졌다. 대한산악연맹 경남울산지부는 1986년 진주 마차푸차레산악회 가우리상카르원정대(대장 하지만 마차푸차레는 가우리상카르의 혹독한 폭풍과 폭설로 텐트가 눈속에 파묻히는 등의 악조건 속에서 세계 최초로 겨울철 초등을 만들어냈다. 1988~1989년 눕체북서봉동계원정대(대장 특히 이 등반은 극심한 동상에도 불구하고 세계 초등을 이뤄낸 것으로 한국산악사에서 가장 난이도 높은 등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남산악연맹은 1992년 운명의 산 낭가파르바트에서 위대한 등정으로 국내 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 8000m 14좌 완등을 목표로 활발한 등반을 펼치던 한국산악계는 낭가파르바트에 도전장을 냈지만 잇따라 실패하면서 산악인들에게 많은 좌절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92한국낭가파르바트원정대(원정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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