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트 히치콕, 1963년 3월 9일,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과 신작영화 <새> 시사회를 열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worldcelebrity/history/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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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스펜스의 대가, 스릴러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알프레드 히치콕은 지치지 않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무엇보다 히치콕은 현대 영화가 요구하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아 올린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오락적 요소와 예술적 요구를 손쉽게 결합시킨 듯한 인상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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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영화를 대표하는 또 다른 인물인 장 뤽 고다르는 히치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명한 화가들처럼 그에게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 이어 다음 그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가 꽃 한 송이를 영상에 담으면 그것은 곧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미지와 이야기를 이처럼 자연스럽게 담아낸 인물이 영화사에 또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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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 3월 9일. 뉴욕현대미술관에서는 특별한 회고전을 겸한 시사회가 열었다. 그것은 한 영화감독의 세계를 조명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영화 감독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프랑스의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인 프랑수아 트뤼포가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히치콕과 대화를 나눈 것에 자극을 받았다. 미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히치콕 감독이 프랑스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것에 질투를 느낀 셈이다. 그는 <에스콰이어>지에 실을 목적으로 히치콕과 장시간 인터뷰를 나눈다. 이 기사는 미국 사회에 히치콕을 조명하는 큰 자극을 주게 되었고, 뉴욕현대미술관은 히치콕에 대한 회고전을 개최하기로 결정한다. 히치콕은 3년 전에 개봉한 <사이코>의 대대적인 흥행 이후 본격적인 예술가로 대접받기에 이른 것이다. 회고전에 참여한 히치콕 부부와 <새>에서 멜라니 역할을 맡은 티피 헤드런은 <새>의 시사회와 개봉에 맞추어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뉴욕, 워싱턴 D.C., 보스턴, 필라델피아, 시카고 등 많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현지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였다. 같은 해 5월에는 티피 헤드런과 함께 칸 영화제에 방문했다. 히치콕은 칸이 개최된 1949년 이후 종종 이 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영광을 누려왔다. 이번에는 개막일 밤에 레드카펫을 밟았다. 당시 히치콕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지대했다. 히치콕이 참여한 텔레비전 시리즈와 프랑소와 트뤼포의 책이 어우러지면서 그의 영화는 지적인 영화비평의 관심이 되었고, 세계 각지에서 칸 영화제를 찾아온 저널리스트들이 앞 다투어 그 앞에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무엇보다 전작 <사이코>의 대대적인 흥행 뒤 3년 만에 선을 보이는 신작 영화 <새>는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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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의 <새>를 보면서 떠오르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질문 중의 하나는 새는 어째서 여주인공 멜라니(티피 헤드런)를 비롯하여 인간들을 공격할까 하는 것이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새가 등장하는 장면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전작 <사이코>에서 노먼 베이츠가 박제된 새와 함께 화면에 제시되는 장면이다. 박제된 새의 형상은 모텔을 떠나지 못하는 베이츠를 가리키는 동시에 베이츠가 살해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 다른 걸작인 <현기증>에서도 새와 관련된 사항을 찾아볼 수 있다. 스카티를 속이기 위해 주디가 변장한 여인의 이름은 ‘마들렌 엘스터’이다. 그런데 엘스터라는 이름은 독일어로 ‘앵무새’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주디가 흉내 내는 마들렌은 앵무새라는 이름과 잘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새의 등장은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뿐 아니라 영국 시절에 만든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보타주>에서 새가 등장하는 장면은 악당 스티비가 운영하는 극장에서 제시된다. 극장의 스크린에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한 편이 상영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 바로 ‘새’이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펼쳐지는 새의 드라마는 스티비가 처할 죽음의 운명을 알리는 일종의 예고편이다. <사라진 여인>과 <자마이카 인>에서는 히치콕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커플들이 서로 티격태격할 때 퍼덕거리며 우는 새들을 함께 등장시켰다. 청과물상의 아들로 태어난 알프레드 히치콕이 조류에 대한 특별한 공포를 지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새는 불길함의 전조로 혼돈과 죽음을 예고하는 하나의 상징물처럼 그의 영화에 스며있다. 무엇보다 히치콕 영화에서 불길함은 아주 중요하게 다뤄지는 요소이다. 그는 일상의 평온한 휴식 공간을 어느 순간 살인과 핏자국으로 뒤덮어 버린다. 여기에는 인간들 사이를 오가는 미묘함이 있다. 이웃집 남자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창>의 제프처럼, 삼촌의 정체를 알게 되는 <의혹의 그림자>의 조카 찰리처럼, 남편을 의심하는 <의혹>의 아내처럼 가장 친밀하게 느껴지는 이웃, 가족, 부부 사이에 의혹의 시선을 보낼 때 인물들을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히도록 만들어 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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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의 영화가 자주 살인과 죽음을 다루다 보니 그를 다루는 전기 작가들은 특별히 그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패트릭 밀리기건의 전기는 “그에 관해 쓴 글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정반대로, 히치콕은 사랑이 넘치는 대가족의 일원이었고 평생 가족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히치콕의 대가족은 그를 ‘앨프’나 ‘앨피’라고 불렀다.”고 설명한다. 또한, 히치콕의 어린 시절에 관한 유명한 일화인 ‘아버지가 아들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인근 파출소 철장에 가뒀다’는 에피소드도 여러 모로 변형됐다고 지적한다. 인터뷰에 따라 히치콕이 4살 때 경험한 것이 되기도 하고, 11살 때 경험한 것이 되기도 한다. 히치콕은 이 경험을 근거로 자신이 평생토록 체포와 감옥과 경찰에 대한 공포를 지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영화를 보면 체포, 감옥, 경찰에 대한 공포는 꽤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히치콕의 외할아버지가 경찰관이었으며, 히치콕 가족에게 경찰은 꽤 친숙한 존재였다고 설명한다. 그의 영화처럼 친숙함이야말로 심리적인 공포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이를 ‘낯익은 두려움(Uncanny)’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 히치콕의 영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 ‘낯익은 두려움’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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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의 이름은 영국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알프레드(Alfred)는 큰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고, 가운데 이름인 조지프(Joseph)는 어머니가 믿던 아일랜드 카톨릭 신앙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히치(Hitch)는 영국의 국왕들 중에 사자왕 ‘리처드’에서 파생되었다. 리처드라는 이름은 ‘딕(Dick), 릭(Rick), 힉(Hick)’ 등으로 변형되어 대중들 사이에 쓰였다. 그리고 마지막 철자인 콕(cock)은 ‘~의 아들’을 뜻했다. 그런데, 유머의 소유자인 히치콕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히치라고 합니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이이서 “콕(cock)은 없습니다.”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영어로 콕은 남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속어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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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1920년 영화사에 입사하여 자막 디자인 일을 시작으로(당시는 무성영화 시대여서 자막의 그래픽적인 효과가 중요했다), 미술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와 조감독 등의 일을 보게 된다. 그는 당시 유럽 최고의 제작시인 독일의 우파(UFA) 스튜디오를 경험해 보기도 한다. 1925년에 독일 뮌헨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감독할 기회를 부여 받는다. 그것은 <쾌락의 정원>이라는 작품이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히치콕의 영화 세계는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보자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행보를 따라 다섯 단계로 구별해 보는 것이 히치콕의 행보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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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기는 <39계단> 이전의 영국영화들이다. 무성영화가 다수 포함되어 있는 이 작품들은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 스타일이 엿보이며, <하숙인>(1926)이 가장 유명하다. 두 번째 시기는 <39계단>(1935)에서부터 <자마이카 인>(1939)에 이르는 영국에서 만든 작품들이다. 주로 스크루볼 코미디에 등장하는 티격태격하는 커플들이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우연히 서로 얽힌 남녀가 모험을 함께 하면서 사건을 해결하고 커플이 되는 것에 성공하는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시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자로 유명한 셀즈닉 형제와 계약을 맺고 그들과 함께 미국에서 함께 한 일련의 작품들의 시기이다. 셀즈닉 형제가 제작한 대표작인 <레베카>(1940)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제작한 <의혹의 그림자>(1943)에는 여주인공의 입장을 따라가면서 강박관념에 의해 고통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여주인공들의 의혹이야말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관점 중 하나이다. 네 번째는 셀즈닉 형제와 결별한 후 히치콕의 대표작들로 알려진 미국 영화를 만들어내는 시기이다. 히치콕은 스튜디오가 지닌 고도의 조직성에는 의존했지만, 제작자들의 간섭에는 반발했다.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확보된 이 시기는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난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열차의 이방인>(1951)을 비롯해 <이창>(1954), <현기증>(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사이코>(1960), <새>(1963) 등이 포함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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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작품들의 주요한 특징은 남자주인공들이 오해를 받거나 정신분열증에 걸려 있거나 이웃이나 여인에 대한 집착과 광기를 보여주는데, 대부분 모성으로부터 억압받은 남성적 인물이 주인공이다. <사이코>의 노먼 베이츠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니>(1964) 이후에 만든 말년의 작품들이 있다. 이 시기의 영화는 대부분 크게 평가를 받지는 못하지만 <마니>에 대해서는 후대 평론가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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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영화의 키워드로 가장 유명한 것은 ‘오해’, ‘오인’, ‘오명’과 같은 말들이다. 히치콕 영화는 오해 받은 주인공이 혐의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드라마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의혹의 그림자>, <사이코>, <열차의 이방인>에서 볼 수 있는 ‘더블’에 관한 접근들도 흥미롭다. <열차의 이방인>의 첫 장면은 색이 다른 두 개의 구두를 따라가면서, 열차 안에서 마주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 때야 비로소 두 인물의 얼굴이 화면에 제시된다. 여러 형식적 실험을 즐기는 히치콕의 영화는 이러한 스타일 때문에 ‘순수한 영화’를 지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고스란히 영화 형식으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노력은 예술 영화 감독 못지않은 스타일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현대인의 일상적 공간을 클로즈업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이코>의 예를 통해 설명해 보자.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욕실에서 일어나는 살인 장면일 것이다. 샤워 살인 장면은 70개 정도의 리듬 있는 쇼트(shot)의 편집을 통해 영화 예술의 매력을 증명한다. 그런데 형식적인 것을 넘어서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것은 바로 변기를 가까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전의 대중영화에서 화장실은 ‘금기’의 장소였다. 인간의 은밀함을 담고 있는 화장실을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서 변기에 물이 내려가는 모습을 클로즈업한다는 것은 <사이코> 이전에는 없던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마리온이 훔쳐 온 돈을 계산한 종이를 찢어 변기 물에 내리는 장면은 ‘배설’이라는 인간의 기묘한 쾌락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무의식 저편에 있는 욕망을 훔쳐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강렬함은 노먼 베이츠가 마리온을 훔쳐보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후 히치콕의 화장실은 후배 감독들에 의해 영감의 성소가 되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도청>의 한 장면에서 변기에서 핏물이 넘치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그것은 배설하는 변기가 아니라 구토하는 변기의 이미지라고 할 수가 있다. 올해 아카데미를 석권한 대니 보일 감독은 <트레인스포팅>의 초반 장면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하는 마약 중독자가 변기 속으로 아예 들어가는 상황을 연출한다. 그것은 변기 속 태아의 이미지인 동시에 변기에 관한 가장 강렬한 상상력 중 하나를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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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과의 대화>라는 빼어난 인터뷰 집을 쓴 트뤼포 감독은 “잉그마르 베리만의 시대에 영화가 문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나는 알프레드 히치콕을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포우와 마찬가지로 불안의 예술가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책을 통해 히치콕을 현대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불안은 히치콕이 매혹된 세계이기도 하다. 1974년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히치콕을 위한 파티에 건강 문제로 참석하지 못한 히치콕은 미리 준비한 답사장면을 필름으로 보내왔다. 그것은 곧 공식석상에서 히치콕이 남긴 마지막 인사가 됐다. “안녕하세요. 사람들은 물에 빠졌을 때 자신이 그 동안 살아온 생애가 눈앞에서 번쩍거린다고 합니다. 나는 발을 적시지 않은 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어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내가 잘 다뤘던 주제는 살인입니다. 그러나 내 영화에서 살인은 주로 집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간결하고도 가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부엌 식탁이나 목욕탕에서 말이죠. 무엇보다도 나는 여러분들이 살인은 매혹적이고 즐길 만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을 확신합니다. 희생자에게조차 그렇습니다.”
히치콕이 살인이라는 말을 강조했지만 그의 무의식적인 핵심은 ‘가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살인을 당하는 인물들은 모두 편안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 의해 능욕을 당했다. 히치콕 미학의 대변자였던 평론가 로빈 우드는 히치콕을 가리켜 현대의 세익스피어라고 칭송을 보냈다. 하지만 히치콕 무대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을 위한 무덤이 아니라 평온하고 안온한 저녁 식탁이다. 그 안온함 속에 담긴 불안의 표정은 히치콕의 영화를 여전히 현대적으로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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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 서스펜스의 거장>(패트릭 맥길리건 지음, 을유문화사)은 국내외에서 출간된 히치콕에 관한 두툼한 전기이자 꼼꼼한 기록물이다. 미국 내에서도 2003년에 출간된 저작인 만큼 그 동안의 여러 전기물을 아우르는 입장과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여 정본이라 할 수 있는 전기를 만들어 냈다. <히치콕과의 대화>(프랑수아 트뤼포 지음, 한나래)는 한 감독에 대한 꼼꼼한 인터뷰인 동시에 히치콕의 작품에 관한 주요한 통찰들을 고루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집인 탓에 가독성이 높다는 장점도 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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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영화감독이 자신이 존경하는 영화감독과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서 두 거장의 목소리가 긴장감 넘친다. <히치콕>(도날드 스포토 지음, 동인)는 원제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예술>이다. 스포토는 스스로 동반서라고 언급하는 히치콕의 전기 <천재성의 이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생애>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초고가 끝날 때쯤 히치콕은 마지막 영화 <가족의 음모>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내의 번역서 중 그의 작품을 전반적으로 다루면서도 개괄적인 사항과 각 작품의 특성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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