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11년 차 초등교사 A씨는 작년부터 USB 녹음기로 수업 전 과정을 녹음했다고 한다. 일부 학생이 수업 중 욕설을 했는데, 이를 지적하자 "왜 우리 아이를 지적하느냐"는 학부모의 민원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보디캠과 교실 CC(폐쇄회로)TV 설치도 고려했지만, 학생 인권 침해 요소가 있어 포기했다. A씨는 "본인 목소리가 들어가면 녹음을 해도 불법이 아니기 떄문에, 나를 지키기 위한 차선책으로 선택했다"며 "학부모에게 고발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고 했다.
교권이 추락하고 학부모가 교사를 고발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일선 교사들이 수업 전 과정을 녹음하는 등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전에는 악성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교사들이 그랬다면, 최근엔 다수의 교사들이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이런 경향은 더 강화됐다고 한다.
서울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남성 교사 B(27)씨는 수업 시간 내내 자신의 PC에 있는 녹음 프로그램을 켜두고 있다. 특히 여학생과 단둘이 교실에 남아있는 경우에는 본인만 나오도록 '셀프캠'을 켜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B씨는 "억울하게 추행 문제로 징계를 당한 동료 교사들의 사례를 많이 들어왔다"며 "제자들과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성추행 신고에 대비해 찍어둔다"고 했다. 통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비로 녹음 기능이 있는 사무실 전화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울시 강동구에서 근무 중인 여성 초등교사 C(25)씨는 2년 전 2학년 남학생이 자신의 가슴을 수차례 누르는 일을 겪었다. C씨는 "보디캠이라도 설치하고 싶었지만, 도리어 초상권 문제로 학부모에게 고소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 그냥 넘어갔다"며 "앞으로는 아이들과 만날 때마다 녹음기를 켜놔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부 교사단체에서 나오고 있지만, 학생 사생활 침해 문제로 반대하는 이들도 많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향후 법정에서 CCTV 촬영물이 증거 자료로 채택될 수는 있지만, 외부 유출 우려도 있고 교권 침해를 막을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고 했다.
서울교대 장혜원 교수는 "무너지는 교권을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기 떄문에, 교사들 사이에는 언제든지 자신도 당할 수 있는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며 "녹음과 녹화는 교사들의 최후의 순단인 셈"이라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 23년 8월 9일 신지인 기자, 김아인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