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담이설 (才談異說 )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일찍이 유행한 말의 유희(遊戱) 를 두고 김삿갓을 빼고서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와 관련해서는 하도 우스운 말, 우스운 일화가 많으니 그 세계에서는 단연 일인자가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많은 사람이 모여사니 우스운 말,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하는 말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중에는 일노일로(一怒一老 ), 일소일소(一笑一少)라는 말은 지은이는 몰라도 기막힌 표현으로 몸에 엔돌핀이 돌게 하지 않는가 한다. 즐거움을 선사하는 묘약이 아닐 수 없다.
해방직후 일이라고 한다. 미군정의 어느 고문관이 부산에 도착하여 경부선 열차를 타고 상경하게 되었다. 그런데 진풍경이 벌어졌다. 쳐다보는 사람마다 손을 내밀어 감투밥을 먹이는 게 아닌가. 영문을 모르는 고문관, 당연히 통역관에게 물었겠다.
"저게 무슨 뜻이지요?"
난감해진 통역관. 순간 기지를 발휘하여 둘러 댔다. 당신을 환영의 뜻이라고. 그러자 기분이 좋아진 그 고문관은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마주 나온 환영객에게 다짜고짜로 예의 그 줌통을 내미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본 환영객들은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포복졸도 하게 한다.
때는 당나라 어느시기. 길을 가던 한 행인이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열심히 일하는 말을 뒤에서 가혹하게 채찍질을 했다. 그걸 보고 "왜 그러냐?" 물었다.
그러니 대답이 "자고로 말이란 쉬임없이 부리지 않으면 일을 열심히 안합니다. " 그 말에 그는 탄식하듯 한마디 내뱉었다.
한다. 옛날 김삿갓이 어느 고을을 지나다가 서당(書堂)을 발견하고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인기척을 했다. 그런데도 훈장이라는 "야 시발로마"
한자로 쓰면 행할 施, 죄罰, 일할勞, 말馬 해서 '벌을 받고 일하는 말이구나'가 된다. 욕이 아닌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는 김삿갓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김삿갓이 어느 고을을 들리니 글을 그르치고 있던 훈장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이었다. 심기가 불편해진 김삿갓, 즉석에서 일갈했다.
'學生 諸未十(학생 제미십)/ 先生 來不謁(선생 내불알'
욕같지만 풀이하면 학생은 채 10명이 안되는데 선생은 아는 척도 않구나 라는 말이 된다. 생활 속에서 듣기 거북한 말중에 섬놈이라는 것도 있다.
전에 얼굴이 검어서 우적(牛賊)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를 들은 그가 듣기가 사나우니 축은(丑隱)이라 하라고 했다는 말도 있듯이, 어떤 섬사람이 자꾸 ‘섬놈 섬놈’하니까 듣기가 싫어서 " 이왕이면 듣기 좋게 도자(島者)라고 하시오” 했다든가 어쨌다든가 이야기도 있다.
말의 유희는 내가 벽촌에서 살면서도 더러들었다. 4,50년대는 정규학교 보다는 인근 서당을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에 어쭙잖은 실력으로 문자를 쓰는 것이 유행이었다. 장가드는 신랑을 다루는 풍속이 있었는데 문자로 질문을 했다.
“행거마 하처거(何處去)인가 여쭈어라. “
이렇게 말하여 '뉘댁으로 가는 행차‘ 라고 하면 통행세를 받는다는 구실로 담배를 받는데, 이때 파랑새 한 갑을 내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북천(北天)비안(飛雁)도 쌍쌍행(雙雙行" 이렇게 외쳤다.
그 무렵 사랑방에 은밀히 나돌던 음담폐설 한 토막.
'多毛孔闊(다모공활)하니 必有過人之跡(필유과인지적) 이로다.' 즉 음모가 무성하고 옥문이 열렸으니 누가 지나간 자국 아니냐는 것. 그에 댓구 또한 재미 있다.
"春溪楊柳(춘계양류)는 不雨濕(불우습)하고 秋園黃栗(추원황율)은 無蜂開(무봉개) 하다오."
즉, ‘봄 냇가 버들은 비가오지 않아도 습하고 가을 정원의 밤을 벌이 쏘지 않아도 열린다는 뜻인데 이것이 다른 이설로 떠돌기도 한다.
南山春草(남산춘초)는 不耕長(불경장)하며 北林黃栗(북림황율)은 知時破(지시파라.)' 라는 것이 그것이다. ‘남산의 봄 풀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고 북쪽 익은 밤은 때가 되면 벌어 진다’는 것.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인지 모르나 그것은 거기서 거기, 오십보 백보가 아닌가 한다. 이와 비슷한 얘기로는 강간(强姦)을 당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비슷한 것이 전한다.
어느 날 간음을 한 여인이 재물을 탐하여 강간을 당했다고 관아에 신고했다. 신고한 당사자는 원님 앞에 불려 나와 문초를 당했다.
"정말 꼼짝없이 당했단 말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그 말을 듣고 원님은 미리 준비해 놓은 칼집을 들고 나와 칼을 빼어들고는 여인에게 건네주면서 들고 있는 칼집에 넣어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칼집을 움직였다.
"왜 넣지를 못하느냐?"
여인은 애만 쓰다가 포기를 하고 말았다. 자꾸 움직이니 집ㄷ어 넣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 원님이 크게 꾸짖었다.
"에이, 고얀지고, 남녀의 이치가 이런 것이거늘 어찌 강간을 당했다고 하느냐." 명 판결을 내렸다. 한데 이런 얘기는 세르반데스의 동키호테에도 등장한다. 강간을 당했다는 여인에게 농부산초는,
"억울하게 강간을 당했다면 그대는 남자가 지니고 있는 금은보화를 받아서 갖도록 해라"고 한다. 그러자 상대 남자는 펄쩍 뛰는 건 당연지사.
"아닙니다. 그 말은 거짓말입니다."
이에 산초는 남자에게 그렇다면 여인에게서 다시 빼앗아서 가지라고 한다. 그러자 여인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몸부림을 친다. 그 바람에 실패로 돌아가자 산초는 명 판결을 내린다.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너는 남자에게 금은보화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남자를 쓰러뜨리면서 지켰지 않느냐. 그러면서 어찌 강간을 당했다고 하느냐?“
유사한 얘기가 동서고금을 넘나들어 퍼져 있음은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일이다. 그래서 세상은 도처춘풍(到處春風)이 아닌가 한다.
웃고 사는 일은 별로 없는 세상에서 진한 해학과 유머는 청량제가 아닌가 한다. 되도록 생활이 고달프고 힘들수록 웃으며 살아갈 일이다. 우스갯소리는 실로 생활에 활력을 주는 명약이 아닌가 한다. (2003)
첫댓글 월간문학 발표.
강간사건의 원님과 농부산초의 판결은 솔로몬의 지혜에 버금가는 내용이네요. 미투사건이 100%진실은 아닐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강간사건의 원님 판결은 시사점이 많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