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수정본” (2019년도 강원문학 원고)
잔영殘影
月下德 김 영 칠
그 마을은 차도 다니지 않는 외진 산골동네였다.
읍내를 벗어나니 풀 섶이 무성한 산길이 나왔다. 구불구불 휘어진 비탈길, 그 위에 다람쥐가 뛰어놀고 산새들의 노래도 내려앉았다. 바깥세상과 이어진 유일한 통로, 헤아리기 어려운 세월의 발자국을 따라 그렇게 한참을 올랐다.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산세를 보니 태백준령이 남으로 힘차게 달려오다 예서 가지를 치고 부드럽게 둥지를 틀었다. 그 혈처穴處 같은 숨터가 양기를 열어 놓은 곳, 거기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초가집들이 모락모락 전설을 피워 올렸다.
잰걸음으로 고개를 내려왔다. 오밀조밀한 다랑이와 작은 밭뙈기들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도랑을 건너 한 모롱이를 돌아가자 꽤 큰 고가古家가 나타났다. 지붕은 빛이 많이 바랬고 몸체는 다소 우중충했지만, 어우러진 자연풍광은 색조가 자못 아름다웠다. 마당 가장자리에 나지막하게 둘려진 토담과 화초가 눈길을 끌었고, 뒤꼍 대나무숲은 마디마디 곧은 기개를 뿜어내는 모습이 그지없이 당당했다. 그런가 하면, 길 건너 저만큼 비껴선 은행나무는 천만 잎이 진황眞黃 빛깔로 찬란한 향연을 펼치고 있으니, 나는 그 청향淸香에 취하여 천 리길 노독을 잊은 듯했다.
오늘따라 이 집이 왁자지껄하다. 방에서는 어른들이 두런두런하고, 마루에서는 아낙네들 웃음이 자지러진다. 잠시 뒤 별채에서 기별이 왔다. 별채는 본체에서 조금 떨어진 뒤꼍에 있었는데, 아담하면서도 호젓한 분위기였다. 집 둘레의 대나무 숲은, 그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과 바람의 조화가 어떤 신비함을 자아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반들반들한 자연석 댓돌과 낮은 툇마루, 처마 밑에 걸려있는 조그마한 현판 ‘일지당逸志堂’은 또 무엇인가?
한껏 궁금증을 안고 막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김 서방! 머리 조심하게”하고 장인어른이 큰소리로 말씀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머리를 숙였다. 머리를 숙였기에 망정이지 뻣뻣이 세웠더라면 아마 내 얼굴은·····.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왜 이렇게 낮게 지은 걸까?
방 안의 앉음새도 위계가 있었다. 윗자리를 중심으로 집안 분들이 좌정한 다음, 젊은 신참인 나는 맨 말석에 앉았다. 그런데, 대부분 낯이 익었지만 상석의 노인은 그날 처음 뵈었다. 약간 마른 체형에 구부정한 허리, 깊게 박힌 주름살과 둥근 테 안경, 백발로 가려진 머리와 수염, 더욱 눈에 띄는 것은 흰 두루마기에 조그만 갓을 쓴 차림새였다. 그의 앞에는 서안書案이 하나 놓여있고, 옆과 뒤의 서가에는 오래된 책들이 가득 쌓여있다.
흡사 시골 훈장을 연상시키는 이 존장 어른, 사실 나의 처조부 되는 분인데, 시봉侍奉은 집안 법도에 따라 큰아들인 처 백부의 몫이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내 결혼 때는 뵙지 못했다가 신행 인사를 겸해 찾아뵙는 자리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조부는 9순이 가깝도록 궂은일은 전혀 모르고 평생을 글만 읽은 분이라 했다. 그리고 별채는 조부의 전용 거실로, 집안의 대소사 논의나 이웃의 길흉사와 연관한 일들을 풀어주시느라 늘 바쁘시다는 귀띰 이었다. 문지방이 높으면서 문이 작은 이유는, 누구나 들고 날 때 머리를 숙여서 겸손 하라는 뜻이라 했다.
나는 장인이 시키는 대로 조부에게 절을 했다. 인사를 드리자 조부가 말씀을 하셨다.
“아이야! 어서 오니라. 참 반갑다. 낯선 곳 오니라 고생했다. 그래 여까지는 얼마나 되노?”
“예! 할아버지. 천 리가 좀 넘습니다”
“천 리? 아따 혼 났구마. 욕봤다”
그리고는 아무 말씀이 없이 수염만 쓰다듬었다. 이때 처숙부 되는 이가 문중의 내력과 집안사람들을 소개했다. ‘우리 가문은 본관이 금령金寧으로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 선생을 중시조로 모신다. 충의공은 단종조의 충신이며 학자셨다. 우리는 충의공의 26세손으로 규奎자 항렬을 쓴다’는 등등, 장황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간단히 인척들 소개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구태여 복잡한 족보 얘기까지 꺼낸 것은, 아마 집안이 모인 김에 문중의 결속을 당부하고자 하는 속뜻도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런 일이 생전 처음인 나는 마냥 지루하고 고단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주 편안한 자세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조부도 가끔가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말씀을 했는데, 한마디 한마디에 품격이 배어 나왔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가 이렇게 조근조근하고 다정하게 이루어지다니. 나는 여태껏 이런 깍듯한 예절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은 휴전선 지역으로 살벌한 긴장이 밤낮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나는 전란으로 집안이 풍비박산되어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었다. 편모를 따라 월남한 뒤, 줄곧 거친 세상을 살아온 내 눈에는, 이런 반듯하고 살가운 장면들이 경이롭게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날 밤, 낮에는 비록 낯선 일들로 힘들었지만, 저녁은 ‘백년손’답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다만 밤늦도록 이어진 약주 자리에서, 술이 약한 나는 마지막 시험대(?)를 통과하느라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장인상으로 선영에 갔던 길에 모처럼 큰댁을 찾았다. 신혼 때 간 뒤로는 처음이었다. 오랜만의 방문이어서 마음은 옛날 추억으로 방망이질했다. 옛날의 그 정겨운 모습들은 남아있을까? 투박하고 무뚝뚝 하지만 뚝배기처럼 구수하게 맞아주던 이들은? 숨돌리던 고갯마루와 조붓한 마을 길은? 할아버지의 별채며 대나무숲과 은행나무는?
그런데, 막상 마주한 모습들은 첫걸음부터 내 기대를 산산이 갈라놓고 말았다. 무자비하게 산을 깎고 뭉개서 곧게 편 고갯길, 펜션들이 점령해버린 산비탈, 수종갱신으로 발가벗겨진 마을 뒷산, 싸늘한 촉감의 시멘트길, 그리고 곳곳의 폐가들····. 모두가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낯설고 생소하기까지 했다.
큰댁에 들어서니, 여기도 세월의 굴곡진 그늘이 음침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지붕에는 퇴락의 먼지가 가득 내려앉았고, 안마당은 잡풀로 뒤덮여 폐가처럼 보였다. 손질하는 이가 없어 듬성듬성 무너진 토담은 볼썽사나웠다. 문밖의 은행나무와 뒤란의 대나무숲은 어딘지 썰렁했고, 조부가 거처하던 별채도 보이지 않았다. 이웃의 일가붙이도 다 가버렸고 자식들도 모두 대처로 나갔다. 갑자기 질식할 것 같은 적막과 비애가 엄습했다. 내가 마주한 이 슬픈 현상은 우주 순환의 하늘 이치인가? 영고성쇠의 인간사인가? 아니면 급격한 시대변화의 물결 탓인가?
지금 이 집을 지키는 이는 9순의 큰어머니 한 분, 극도로 노쇠한 데다 병고로 거동조차 불편하셨다. 간신히 기척은 해도 이미 예전의 그 단아한 모습은 아니었다. 방안에 너부러진 살림 가지, 천정의 거미줄과 벽면의 곰팡이, 개수대에 담긴 채 그대로인 밥그릇은 언제 자셨는지?
그것을 보는 순간, ‘울컥’하고 가슴이 메었다.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정겨운 영혼들의 아름다운 숨소리, 이를 시샘하듯 매정하게 거두어간 세월의 매정함이 마냥 원망스러웠다. 이 세상에 다시없을 소중한 인연을, 이제는 공허 속에 묻어야 하는 무상함이 한없이 슬프기만 했다. 외로운 백발의 한숨이 땅으로 잦고, 고가의 쓸쓸한 그림자가 서글픈 잔영殘影을 길게 길게 그렸다. 돌아 나오는 내 발걸음이 마냥 휘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