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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의 삐딱한 이야기 3 입니다.
손오공의 삐딱한 이야기 3
1. 동생 만난 이야기
사부님을 모시고 서쪽으로 가는 길에 좋은 길동무가 생겼습니다. 저팔계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법명이 ‘오정’인데 오정 보다는 ‘팔계’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가끔 얄미운 짓도 하지만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여자만 보면 참지 못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갑니다. 심부름 시키면 으슥한 곳에서 졸다가 돌아와서는 태연하게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 팔계와 제가 다투면 사부께서는 언제나 팔계 편을 듭니다. 그럴 땐 더 얄밉지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은 먹는 것, 자는 것 그리고 이성을 찾는 것이지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세 가지 욕망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 제 동생 저팔계입니다. 그럼 동생을 만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서쪽으로 가다가 오사장국 국경에 있는 고로장에 이르렀습니다. 고씨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고로장입니다. 이 마을 고태공의 집에 요괴가 살고 있었습니다. 요괴는 고태공의 데릴사위인데, 성은 저가, 이름은 강렵으로 저강렵입니다.
저강렵이 처음 고태공의 집에 왔을 때는 준수한 청년으로 일도 잘 했습니다. 고태공은 기특하게 생각하고 막내딸 취운과 혼인시켜 데릴사위로 삼았습니다. 강렵이 데릴사위가 된지 여러 달이 지나자 이상하게도 얼굴이 돼지 모양으로 바뀝니다. 게다가 안개를 타고 다니는가 하면 모래도 뿌려 고로장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고태공은 용하다는 법사를 청해 물리치려 했으나 오히려 강렵에게 저항도 못해보고 물러납니다.
고태공의 집에서 하루 묵기 위해 들렀다 이런 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구미가 당겼습니다. 요괴 쫓아내는 일이 제 전공 아닙니까. 그런데 막상 그놈을 만나고 보니 안면이 있습니다. 천궁에서 은하를 다스리는 천봉원수였습니다. 어느 날 서왕모가 베푸는 연회에서 술에 취해 요지연의 궁녀를 희롱하다 벌을 받아 하계로 쫓겨난 것이지요. 그놈은 성질이 급해 그만 들어간다는 것이 임신한 암퇘지의 자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돼지의 탈을 쓰게 된 것이지요. 그래도 전생에 닦은 공덕이 있어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서천에 경을 가지러 가는 삼장법사를 호위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고태공의 집에서 데릴사위 노릇을 하며 삼장법사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살님으로부터 ‘오정’이라는 법명도 이미 받았다고 합니다. 제 법명이 오공 아닙니까. 저는 첫 제자이고 오정은 저보다 뒤에 입문한 두 번째 제자니 자연히 저의 동생이 된 것입니다. 사부께서는 오정이란 법명 대신에 ‘팔계’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습니다. 성이 저가이니 저팔계가 됩니다. 많이 들어보셨지요? 오훈삼염을 먹지 말라는 뜻으로 팔계라고 지었다고 하셨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훈삼염을 불가나 도가에서 꺼리는 음식입니다. 먹는 음식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성격이 다르듯 말입니다.
그런데 팔계라는 이름 뒤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제팔 ‘아뢰야식’이라는 뜻이지요. 아뢰야식은 아주 깊은 무의식 세계이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앞으로 자주 보시겠지만 팔계의 엉뚱한 행동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인간 무의식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팔계는 미련하고, 게으르고, 음식을 보면 참지 못해 덤벼들고, 틈만 나면 자려고 하고, 게다가 여자만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작정 달려가 덤빕니다. 고태공의 사위로 있을 때도 오훈삼염을 먹지 않았지만 부인은 옆에 두고 있었습니다. 팔계의 이런 성격을 이해하면 인간의 본성을 좀 더 쉽고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서유기 원문에는 부인과 함께 사는 도사를 ‘화거도사’라고 합니다. 불속에서 산다는 의미지요. 법화경의 ‘삼계화택’의 비유와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삼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입니다. 욕계는 욕망의 세계이며 색계는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 무색계는 정신적인 세계를 뜻합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삼계인데 이 삼계가 불타는 집처럼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 가운데 가장 큰 불이 핵무기 아닙니까. 이 불을 이용해 전기를 일으켜 유용하게 쓰고 있지만 잘못 다루어 문제가 생기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불과 함께 산다는 것도 음미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저강렵은 팔계라는 애칭을 가지고 출가해 저와 함께 사부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가게 됐습니다. 막상 떠나려니 팔계도 허전하고 서운한가봅니다. 떠나면서 장인인 고태공 더러 아내 취란을 잘 보살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제가 허튼소리 말라며 핀잔을 주자 팔계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형님, 허튼소리가 아닙니다. 만약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스님도 되지 못하고 아내마저 잃게 됩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지는 꼴은 되기 싫습니다.” 듣다 못한 사부께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출발하자.”고 하십니다.
미래는 기대와 함께 두려움이 있습니다. 누구나 일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합니다. 보험이라도 들어두어야 그나마 안심합니다. 팔계도 앞날이 불안하니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려는 생각인가 봅니다. 사람에 따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배수진을 치기도 합니다. 보험과 배수진은 서로 반대지만 미래의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은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서쪽에 도착하면 두려움은 스스로 사라집니다. 그 서쪽은 어떤 곳일까요?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해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다시 서쪽을 향해 출발하겠습니다.
2. 평생의 교훈을 얻다.
한 달 정도 걸어 오사장국의 경계를 벗어납니다. 저 멀리 큰 산이 보입니다. 사부께서 모두 조심하라고 하시자 팔계가 나서서 말합니다. “저 산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부도산이라고 하는데 산중에 오소선사가 수도하고 계십니다. 저도 뵌 적이 있습니다.”
부도는 ‘붓다’를 한자로 음역한 것입니다. 부도산은 부처산이란 뜻입니다. 부도란 석가모니 부처님을 뜻하기도 하고 부처님이나 고승의 사리를 모신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소선사가 수도하고 있는 곳으로 가니 선사가 나무에서 황급히 내려와 맞이합니다. 사부가 예를 올리자 팔계도 나서서 인사를 드립니다. 선사는 팔계더러 어떤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인지 묻습니다. 팔계가 그간의 일을 이야기하자 선사께서는 길은 멀고 위험한 곳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부께 반야심경 한 권 주면서 어려울 때 이 경을 읽으면 재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도 함께 합니다.
현장 스님의 인도 기행문인 ‘대당서역기’에도 반야심경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당서역기에는 현장스님과 반야심경에 얽힌 신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3. 삼장법사의 모델인 현장스님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의 모델인 당나라 현장스님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장 스님은 602년 중국 하남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먼저 출가한 형을 따라 낙양 정토사로 출가합니다.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세워지자 스님들은 혼란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현장 스님도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경전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불경의 오역이 많았기 때문에 연구하는데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현장 스님은 불경의 원전을 보기 위해 인도로 갈 결심을 합니다. 당나라 초기에는 국경 지방에 전쟁이 많았기 때문에 여행이 어려울 뿐 아니라, 나라에서도 여행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스님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627년 국경을 넘어 인도로 갑니다.
진주, 난주를 거쳐 옥문관을 지나서 고비 사막을 지날 때 오랑캐의 손에 죽임을 당할 뻔 했는데 관세음보살을 염하여 목숨을 건졌습니다. 고창국을 지날 때는 국왕 국문태가 현장의 법력을 알고 고창국에 머물기를 간청했으나 돌아 올 때 반드시 들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여행을 계속합니다.
고창국은 중국 신장성 투르판 지역입니다. 지금은 사막화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 옛 고창국의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현장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카슈미르 지방을 지날 때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어떤 절에서 하룻밤을 묵게 됩니다. 스님을 불러도 인기척이 없어 절 안을 살펴보니 노스님 한 분이 앓아누워 신음하고 있습니다. 온 몸에 부스럼이 나고 고름이 터져 아주 처참한 모습입니다. 현장이 입으로 고름을 빨아가며 정성껏 간호하니 노스님은 며칠이 지나자 원기를 회복합니다. 현장의 간호에 감동한 노스님은 현장에게 반야심경을 가르쳐 줍니다.
서유기에서는 삼장이 오소선사로부터 반야심경을 전수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장이 노스님으로부터 반야심경을 전해 받고 기뻐하는 사이에 절도 스님도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무착 스님이 오대산에서 노인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을 만난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착각인지 환상인지 현장은 여기서 특별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현장은 여행을 하면서 어려움이 있으면 반야심경을 외우며 극복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인도의 갠지스 강가에 이르러 도둑들에게 붙잡힙니다. 도둑이 목에 칼을 들이대는 위급한 상황에서 현장은 반야심경을 외웁니다. 잠시 후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회오리바람이 불자 도둑들은 모두 도망을 가고 현장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18년에 이르는 오랜 여행 끝에 현장은 641년에 불경 640질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옵니다. 현장이 가지고 와서 번역한 불경은 1335권에 이릅니다.
현장 스님과 관세음보살, 그리고 현장스님과 반야심경은 인연이 깊습니다. 서유기에서 관세음보살님은 현장스님(삼장)을 서쪽으로 인도하며 고비 때마다 나타나셔서 많은 도움을 줍니다.
4. 요괴가 서쪽으로 가는 길을 안다.
사부께서는 오소선사로부터 반야심경을 전수받아 깊은 뜻을 깨치고 게송을 짓습니다.
사부님의 게송입니다.
법은 마음에서 생기고 또한 마음에서 없어진다.
생멸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네 스스로 판별하라.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있거늘 하필 남의 말을 들으랴.
오직 수행을 쌓아 쇳덩이에서 피를 짜낼지어다.
허공으로 코를 꿰어 무위의 나무에 매어 두어라.
도둑은 아들이 아니니 마음과 법이 모두 잊히리라.
스스로 속이지 말고 주먹으로 먼저 치라.
마음을 내면 마음이 없고, 법을 내면 법 또한 없어진다.
사람과 소가 안 보일 때 하늘빛은 맑아지리.
가을 달 둥글어 피차를 분간키 어렵다.
이 게송은 사부께서 반야심경을 통달하고 깨침의 문을 열었을 때의 경지를 읊은 것입니다. 사부께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점 신령스런 빛이 자연스레 몸에 스며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지식들의 게송을 읽으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까닭 없이 좋습니다. 대승 법문은 귓가를 스치기만 해도 그 인연이 아주 크다고 합니다. 훈습이란 말이 있습니다. 냄새가 옷에 배어든다는 뜻입니다. 아무 냄새가 없는 종이에 향을 싸면 향냄새가 배어들고 고기를 싸면 비린내가 배어드는 것입니다. 선지식의 말씀이나 게송을 가까이 하면 우리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훈습되니 부지런히 읽고 외워야겠습니다.
사부께서는 이미 경전에 대한 소양이 있기 때문에 한 번 듣고도 모두 외웁니다. 오소선사는 ‘이 경이야말로 수행의 근본 원리이자 부처로 가는 문’이라고 합니다. 선사께서 반야심경을 전하고 둥지로 올라가려하자 삼장이 붙들고 앞일에 대해 묻습니다. 선사는 웃으면서 게송으로 대답합니다.
가 닿지 못할 곳은 아니로다. 내 말을 명심하라.
산이 높고 물도 깊어 장애도 많고 요마도 많다.
구름이 머무는 절벽 만나더라도 두려워마라.
아슬아슬한 바위를 지날 땐 모로 발붙이고 지나가거라.
흑송림 길에선 부디 조심하라. 요사스런 여우가 길을 막으리라.
요괴는 도성 안에 우글거리고 마왕은 산속에 가득 찼다.
동헌에서 호랑이가 지사 노릇하고
늑대는 낭청에서 주부 노릇 한다.
사자와 코끼리는 왕이라 자칭하고
호랑이와 표범은 저마다 임금이라 한다.
멧돼지는 짐을 지고 가다 물도깨비 만나고
나이 많은 돌원숭이도 성을 발칵 낸다.
그들에게 길을 물으라.
그러면 서천으로 가는 길 훤히 알 것이다.
저는 심통이 나서 힝 하고 코웃음 치며 사부님께 빨리 가자고 하니, 사부님은 뭔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계십니다. 그 사이 선사는 금빛으로 변하더니 까마귀 둥지 위로 올라가버립니다.
금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고 옥토끼는 달을 상징합니다. 또 부처님을 금까마귀 즉 금오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금오산은 부처님 얼굴 모습을 닮았기 때문에 불면산이라고도 부릅니다. 금오산 위로 해가 지면 아주 장엄합니다.
사부께서 위를 보고 절을 하시는 틈에 저는 여의봉으로 오소선사가 머무는 둥지를 마구 찔러댔습니다. 그러자 몇 만송이의 연꽃과 아름다운 구름이 피어오릅니다. 저는 바다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까마귀 둥지로 이어진 등나무 줄기는 당겨지지 않습니다. 씩씩거리는 저를 보고 사부께서는 왜 고약한 짓을 하느냐고 나무라십니다. 선사가 우리 형제에게 욕을 했다고 하자 사부께서는 욕이 아니라 서쪽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셨다고 하십니다.
저도 둥지 위를 바라보니 연꽃과 오색구름이 둥지를 감싸고 있습니다. 저는 마음을 고쳐먹고 사부님을 모시고 동생 팔계와 함께 서쪽으로 갑니다.
금까마귀 둥지에서 반야심경이 나왔습니다. 이 반야심경으로 삼장은 많은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반야심경을 모르는 불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눈으로, 귀로 얻은 반야심경이기 때문에 영험이 적습니다. 금까마귀 둥지에서 얻은 반야심경이라야 살아있는 진짜 반야심경입니다.
5. 길을 알려주는 사람들
걷고 또 걷고 끝도 없습니다. 오늘도 어느덧 해가 지고 어스름이 덮이려고 합니다. 마침 사부께서 인가를 보시더니 하룻밤 묵고 가자고 하십니다.
벌써 허기진 팔계가 냉큼 나섭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저도 배가 고파요.
우선 어느 집이든지 찾아가 밥부터 먹어야겠습니다. 힘이 생기면 짐 지기도 한결 수월할 테지요.” 제가 보기에도 한심스러워 벌써 집을 그리워하느냐고 면박을 주니 구시렁거립니다. “형, 자꾸 욕하지 말아요. 형처럼 적게 먹는 사람과 같을까. 난 며칠 동안 늘 배가 고팠다는 걸 알기나 하고 그래?”
둘이서 티격태격하자 사부님도 한 말씀하십니다. “오능아, 집 생각이 자꾸 난다면 어디 출가한 중이라고 하겠느냐? 집을 잊지 못한다면 넌 이 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그만 돌아가라는 사부님의 말씀에 팔계는 납작 엎드려 사죄합니다. “사부님, 형의 말은 듣지 마세요. 형은 사람을 깔봅니다. 전 불평한 게 아닌데 형은 내가 불평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전 생각나면 숨김없이 말하는 우둔한 사람입니다. 배가 고프기에 어느 집에 들러 밥을 먹으면 좋겠다고 한 것뿐인데 형은 제가 집 생각한다고 꾸짖었습니다. 전 보살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사부님께도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러기에 사부님을 모시고 꼭 서천으로 가고 싶습니다. 전 절대로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저 나름으로는 열심히 수행하는 것인데 어찌 출가한 중 같지 않다고 하십니까?”
사부님이 그만 됐으니 일어나라고 하시자 팔계는 일어나 구시렁거리며 짐을 지고 부지런히 뒤따라 걸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집 대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팔계는 자신이 우둔하기 때문에 생각나면 숨김없이 그대로 말한다고 합니다. 욕심이라이 것도 체면 없이 불쑥 나타나 난처할 때가 많습니다. 욕심을 억제하는 것이 수양이라고 합니다. 교양을 갖추기 위해 많은 수양을 해야 합니다. 사회생활을 부드럽게 하자면 필요한 교양을 갖추면 되지만 교양으로는 생사를 해탈할 수는 없습니다. 수행을 해야 생사의 꿈에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서쪽으로 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길을 잘 알면 이 자리가 바로 서쪽이지만 길을 잘못 들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이 서쪽으로 가는 길입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노인 한 사람이 대나무로 만든 침상에 기대 앉아 염불을 하고 있습니다. 사부님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노인은 황급히 일어나 답례를 합니다. 사부께서 우리는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가는 사람들이니 하룻밤 묵고 가게 해 달라고 하자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합니다. “못 가십니다. 못가요. 서천에 경을 구하러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꼭 경을 구할 생각이 있거든 동쪽으로 가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서쪽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이 노인은 왜 동쪽으로 가라고 하실까요? 그렇다면 동쪽에도 경전이 있을까요? ‘동쪽이다’, ‘서쪽이다’하는 것은 인간이 필요에 따라 나눈 것입니다.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야 서천 뇌음사에 이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겨우 서천 문턱에 이를 수 있습니다. 깊이 잠들어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은 어지간한 소리에는 깨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몽일 때는 스스로 깨어납니다. 앞에는 많고 많은 악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몽들이 서쪽으로 가는 길을 안내합니다.
첫댓글 재미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