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마땅히...여길지어다 - 바울은 3:23의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후토스'('그와 같이')를 사용하여 '일꾼'이라는 것과 '비밀을 맡은 자'라는 두 가지의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서 '후토스'는 '그러므로', '그런즉', '이와 같이'등의 접속사로 사용되었으며 '로기제스도'('여기다')와 함께 쓰여 '하나님의 것'이라는 결론을 토대로(3:23) 새롭게 판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개역성경은 '마땅히'라는 말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일꾼된 것과 비밀을 맡은 자 된것의 당연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일꾼 - 여기서 '일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휘페레타스'는 본래 '노예'에 가까운 신분을 의미한다. 고대 전함에서 노를젓는 가장 하급 노예를 '휘페레테스' 라고 불렀는데 바울은 3:5에서 사용한 '디아코노이'('사역자들', ministers)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Barrett).
'휘페레타스'는 공관복음서에서도 '일꾼'이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으나(눅 1:2),행 13:5에서는 요한을 칭할 때 '수종자'라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하였다.특히 본절에서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할 것은 자신의 위치를 보다 겸손하게 나타내려 한 것 같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신분적인 지위에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노예적 개념은 오히려 바울의 지도자됨을 더 선명하게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비밀을 맡은 자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천국의 '비밀'을 나타내시고 다른 자들에게는 숨기셨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마 13:11). '비밀'이라는 말은 초대 교회 속에서 신성한 의식이나 성례전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Barrett)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관계된 엄밀한 지식이나 숨겨진 하나님의 경륜을 뜻하는 의미로 쓰여졌다(골 1:26,27;2:2). 특별히 임무를 받은 자들 외에는 숨겨진 것이기에 비밀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비밀을 맡은 자들에게는 '계시된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Lightfoot).
이런 의미에서 바울과 같은 당시의 지도자들은 '계시된 진리의 교사들'이라고 칭할수도있다. 한편 '맡은 자'를 뜻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무스'는 '오이코스'('집')와 '네모'('관리하다')의 합성어로서 한 집안의 행정 관리 및 재정을 맡아 관장하는 지배인 또는 관리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직분의 행정적인 면을 강조하여 마치 바울을 비롯한 지도자들을 교회의 행정관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울은 교회의 구성원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는 영적 청지기로서의 위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딛 1:7;벧전 4:10). '일꾼'이라는 단어는 가장 낮은 노예적 신분을 나타내는 반면 '맡은자'라는 단어는 중간 관리인, 또는 위엄과 권위를 가진 직분이라는 점에서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명은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Lenski).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구원의 신비,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아 알 수 없는 영적 진리를 그리스도께로부터 위임받아 전하는 일을 맡았다는 점에서 같은 직분임을 뜻한다.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바울은 지도자의 겸손과 권위를 동시에 강조한 후에 이에 덧붙여서 '히나'('...하기 위하여')가 이끄는 또 하나의 목적절을 제시한다. 어떤사본에는 '구하다'라는 동사가 명령형(제테이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너희는 충성을 구하라'는 뜻을 포함한다.
이렇게 해석하더라도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 보다 중요한것은 '충성'이 청지기의 필수 불가결한 자질이라는 점이다. '충성'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피스토스'는 문자적으로 '신실성이 발견되는 것'을 뜻한다. 청지기는 주인 앞에서 신실한 자로 인정받아야 하며 완전히 신뢰할 수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된다(Lenski), 특히 '충성이니라'에서 수동형 '휴레데'를 사용하여 나타낸 것은 '충성되다'라는 인정이 개인이나 인간들의 판단에 있지 아니하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청지기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뿐이며 자신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신실할 따름이다.
칼빈(Calvin)은 이와 같은 삶을 '건전하고 지혜로운 생각으로 양심의 순결성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본절에 사용된 충성의 의미는 구별된 몇몇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원리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따라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12:28;엡4:11,12;딤후1:11;벧전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