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음성신문(주) 2023.12.4.
변나영 음성가정(성)폭력상담소장
성폭력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대부분 피해자는 여성이다.사회적으로 만연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이어진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고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에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대처를 문제시하거나 여성의 ‘행실’의 문제로 보는 왜곡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남녀의 성역할이 불평등하고 소위 가부장제적 문화의 특성이 강한 사회, 집단에서 가정폭력.성폭력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차별과 폭력이 발생한다. 또한 법과 제도의 문제도 폭력 재생산의 원인이 된다.
가정폭력이 발생해도 가정은 지켜져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주변인들과 당사자조차 신고를 꺼리게 하고 판사는 가해자에게 마땅한 형량을 내리지 않는다.
성폭력은 제도화된 폭력 문화, 차별적 성 인식, 상품화된 성, 가정 및 학교의 교육 부재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왜곡된 여성 재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잘못된 성폭력 사건의 보도나 재현은 자칫 피해자가 술을 먹고 늦은 시간 그곳에 있었기에 결국 피해자 스스로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피해자가 되었고 그 책임은 피해자에게도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는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미디어 관계자들의 성인지감수성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는 강간죄와 유사 강간죄로 인정받으려면 형법 제 297조, 제298조에 의거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에 이르는 폭행 또는 협박’이 존재해야 한다. 즉 강간죄의 성립 요건을 매우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설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법조항은 법원에서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동의했는가”를 묻지 않고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는가”를 물으며 피해자에게 피해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이는 성폭력 가해자의 60.9%가 아는 사람이며 직장내 성폭력 사건의 78%가 상급자나 관리자인 점을 감안한다면 물리적 폭행이나 협박 보다는 상급자의 존재만으로 또는 권력 남용이 묵인되는 분위기만으로도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19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접수된 강간 상담 사례를 보면 성폭력 피해 사례 1,030건 중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 사례는 71.4%에 달하고 있으며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행사된 피해 사례는 28.6%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강간죄의 구성 요건이 “폭행 또는 협박”여부가 아니라 “동의 없이” 또는 “명백한 동의없이 ”등으로 “동의”여부를 중심으로 규정하도록 이미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항이며 이는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성별간 불평등을 포함한 위계 속에서 약자의 입장에 놓인 사람의 상황과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피해자를 한 사건으로 놓고 보면 한명의 개인이지만 그는 그녀는 분명 어떤 사회적 집단의 구성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집단은 어떤 성격을 가졌고 피해자는 그 집단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권력 관계속에 놓여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폭력의 발생구조와 피해 맥락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성인지감수성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가 변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성폭력 문제, 이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예방 및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 정책 ,문화, 구성원들의 인식 등 사회 전반의 변화와 개선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성폭력에 대한 편견(偏見)없는 시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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