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가 어디 따로 있겠나!
솔향 남상선/수필가
저녁을 먹고 바람을 쐬러 산책길에 나섰다. 밤거리를 걷다 보니 예서제서 크리스마스트리의 오색찬란한 광채가 번쩍이고 이따금씩 들려오는 캐럴송이 마음을 가볍게 해 주고 있었다. 보민이, 순이네 집에서도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네댓 살 된 꼬마들이 들떠 있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날을 기다리며 고사리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날짜를 헤아리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한 밤 자고서도 어제 폈던 그 손가락을 또 꼽아보며 산타가 오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기뻐하는 동화 속 세상 같은 그 순수 마음이 현실로 영글어 가고 있었다.
산타 선물 얘기를 하다 보니 골동품 추억이 떠올랐다. 12월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면 이집 저집의 꼬마들이 산타 할아버지 선물 얘길 해가며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잘 줄 몰랐다. 나 역시 그런 동심세계에서 한 몫을 한 주인공이었다. 잠들기 전에 어머니 버선이나 신던 양말까지 머리맡에 놓고 잤던 골동품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산타(Santa Claus)는 성탄절 전날 밤 어린이의 양말에 선물을 넣고 간다는 노인으로 4세기경 미라(Myra)의 주교였던 성인 니콜라스(Saint Nicholas)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그 이름이 어린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인물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쓰이고 있다.
한국효문화진흥원 근무 중인데 전화가 왔다. 평상시 전화연락을 하고 지내던 서용선 제자였다. 76학년도 덕산고등학교 졸업생이니, 이순(耳順)과 고희(古稀) 중간 쯤 된 할머니라 불러도 될 것 같다. 전화 내용은 이렇다. 같은 반이었던 서울 사는 유필래, 인천 사는 고재란, 서울 사는 서용선이 벼르고 별러 평시 보고 싶어하던 나를 11월 10일(목) 찾아오기로 했으니, 시간 좀 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고 싶어하던 고 3때 담임했던 제자들이라 기다리겠다고 했다.
기다리던 10일(목)이 박두했다. 할머니가 되어 나타난 근 50년 전의 제자들!
예나 지금이나 모범생으로 예쁘게 가슴 따뜻하게 사는 제자들이 대견스러웠다. 내가 가르치지 못한 인생교훈을 나에게 주고 있었다. 감개가 무량했다. 서용선, 유필래, 고재란, 꽃봉오리가 터질까 말까한 그 청순하고 풋풋했던 고교 시절도 있었으련만 이제는 아들딸에 손주까지 있는 할머니들로 잔주름이란 인생 계급장을 달고 나타난 거였다. 견우가 직녀를 만나는 기분이 되어 출석부 번호순으로 호명하며 포옹으로 맞아 주었다.
3번 서용선! 48번 유필래! 54번 고재란!
출석 부르듯 호명하며 포옹으로 체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고교 시절엔 호명만 하는 출석 부름이었지만 인생계급장을 달고 있는 덕분이었던지 옛날에 하지 못했던 포옹까지 해주며 번호 순으로 호명을 했다.
얼마 전에 다녀간 제자들은 승용차로 왔다갔는데, 이번 제자들은 열차로 서대전역까지 와서 영업용 택시를 타고 온 거였다. 얘길 들어보니 꽤 값이 나가는 좋은 승용차를 가지고 있었지만, 원거리 운전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괜히 허세 부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가 싫어 승용차를 안 가지고 왔다는 거였다.
그립고 보고 싶었던 제자들!
얼굴만 보여줘도 즐거움이요 기쁨이었을 텐데, 정성에 사랑이 넘치는 선물들을 가지고 왔다. 내가 전립선암 환자라는 소식에 걱정이 됐던지 암에 좋다는 건강식품과 화장품치고는 좀 값이 나간다는 HERA HOMME란 화장품을 선물로 들고 왔다. 제자들이라기보다는 친정아버지를 챙기는 딸들과 같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행복이 어디 따로 있다던가!
기쁨이 어디 족보가 있는 것일까!
같이 늙어가는 제자들이 인천, 서울, 각지에서 찾아와 차 한 잔이라도 나누고, 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정담 나누고 서로를 걱정해 주는 것이 행복이고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산타 같은 제자할머니들이 벗이 돼 찾아온 모습을 보니 논어의 구절이 실감났다.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니 불역낙호(不亦樂乎)아.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나는 세상 제일 행복한 사람이요, 세상 제일가는 부자란 생각이 들었다.
서용선, 유필래, 고재란 같이 즐거움, 기쁨을 주는 산타 같은 제자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와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있으니 이만하면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 따라 <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이라.> 말한 타고르가 더욱 위대해 보인다. 전천후 산타 같은 제자들이 나를 온혈가슴으로 행복하게 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산타가 어디 따로 있겠나!
11월 10일 찾아온 서용선, 유필래, 고재란 제자는 나한테 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선물을 하고 갔다. 단순히 만나는 즐거움이 아니라 나를 행복감으로 살게 해주고 교직생활의 자부심이 즐거움, 기쁨이 되는 선물을 남기고 갔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근 50년 만에 찾아온 서용선, 유필래, 고재란 제자가 나에겐 만년산타가 아닐 수 없다. 계절 관계없이 늘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처럼 나도 타인을 기쁘게 하는 전천후 산타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산타는 예쁜 아이, 미운 아이, 가리지 않고 모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잘 생겼거나 못 생겼거나 미추에 상관없이 어린이 그 누구에게도 기다림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연말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어린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른이라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은 선물받기를 좋아한다. 산타는 선물로써 모든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살게 한다. 또 산타는 모든 사람을 즐겁고 기쁘게 해 주고 있기에 기다림의 대상이 된다.
어쩌면 산타는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듯이 널리 베풀고 살기에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랑을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서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라 했다. 산타 제자들을 보내는 마음이 너무 아쉬워 대전의 명물 성심당 제과 소보로 빵과 꿀 한 병씩을 들려 보냈다.
산타가 어디 따로 있겠나!
서용선, 유필래, 고재란 제자처럼
나도 다른 사람의 전천후 산타로 가슴 따뜻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음수사원(飮水思源)하며 사는 천연기념물을 보낸 느낌이다.
첫댓글 우리의 산타 남상선선생님!
산타를 닮은 가슴 따뜻한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우리들의 가슴은 사랑의 솜 이불을 덮은듯... 포근하고 아늑했습니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포근했던 기억을 우리는 잊지 않겠지요.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만을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