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목섬산책길에 태균이가 산책을 거부하면서 기다렸다는 듯 제 휴대폰 속 캘린더를 펴서 보여줍니다. 캘린더 일정에 적혀있는 내용, 바로 어제는 태균이 아빠의 생일이었습니다. 제 휴대폰 카톡이나 문자 등의 내용을 자주자주 체크하길 좋아하는 태균이가 캘린더까지 체크하는 줄 어제 알았습니다.
케익을 사야된다고 부득불 주장하는 태균이 때문에 대부도 파리바케뜨까지 가서 케익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아빠 생일을 축하하는 것보다는 '생일=촛불켠 케익'을 공식화한 결과일지라도 성의를 다해 박수를 치며 엄마가 부르는 생일노래에 장단을 맞춥니다. 정작 주인공은 현장에 없지만 영상으로 찍어 아빠한테 보내주었습니다.
농사 15년차, 이제는 거의 선수가 다 된 농사꾼처럼 이것저것 가꾸어놓은 농작물들이 주체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습니다. 올해는 더 풍성해져서 마늘 양파는 곧 수확을 앞두고 있고 파, 얼갈이, 총각무, 시금치, 상추와 쌈채들, 깻잎 등등 매주 처리를 해도 넘쳐납니다. 다 태균아빠의 작품입니다.
그 작품들을 버리지않고 잘 활용해주는 것이 최고의 예의인 듯 해서 제주도에 가지고 갈 생각으로 차곡차곡 김치들을 담가서 쌓아놓고 있습니다. 저는 잘 가꾸어준 농산물 감사하게 먹고 있다는 사진으로 생일선물 퉁쳤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더니 갑자기 사과를 안먹으려고 하는 완이 때문에 사과까지 갈아넣고 밭에서 막 뽑아온 대파까지 듬뿍넣어 버무려본 총각김치가 맛들면 끝내줄 듯 합니다.
스스로 올해부터는 지공도사가 되었노라고 자책하듯 짧막한 답변이 전부 다이지만 저에 대한 질책의 의미도 있어 가슴이 뜨끔합니다. 10여년간 발달학교 한다고 참 많이 자금 지원요청을 했던 세월들이 있는지라 되갚을 세월들이 있을지 아득한 것은 사실입니다. 지공도사란 지하철 공짜로 타는 노령으로 진입했다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풍자적으로 표현한 신조어입니다.
희망은 포기하는 것보다는 언제나 마음 속에 풍성히 가꾸어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 긍정 열정이 아직은 머리에 가득하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평가는 아직 세월이 더 필요하겠지요. 그런 와중에 저녁 무렵, 영흥도를 일부러 찾아준 도예지공 대학선배... 간만에 멋진 분을 만나 길지 않지만 속내 드러낸 대화를 진솔하게 나눈 것 같습니다.
선배만나고 와서 태균이에게 설명을 해주니 도예 다시 해보자는 엄마말에 연실 도예빚는 제스츄어로 반응을 해보이는데, 일이 잘 되길... 좋은 또다른 방향들이 제시되길 바라게 됩니다. 태균이의 명성 따위에는 전혀 관심없습니다... 단지 중증자폐 청년일지라도 의미있는 일들을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많은 자폐부모님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태균이와 저의 역할은 충분합니다.
이제서야 태균이 전시회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세간의 평가와는 무관한 마음으로 준비해 나갈 것들에 대한 구상들이 만들어집니다. 태균이가 좀더 발전하고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태균이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보다는 엄마가 배우는 것이 훨씬 낫다는 조언은 맞습니다. 무엇이 되었든간에 결국 끝까지 도와줄 수 있는 건 '엄마표'이니까요.
첫댓글 아, 태균씨 작품들이 넘 멋집니다. 태균 아버님 농사 수준이 놀랍습니다. 저희도 텃밭농사 지어보니 그냥 심기만 한다고 되는게 아니더라요. 아빠의 생신을 도저히 패스할 수 없는 태균씨의 마음에 찡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