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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 3호분 벽화-주인공 초상> {B:안악 3호분}의 서쪽 곁방 서벽에 있는 이 그림은 주인공인 듯한 인물의 의젓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실내에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한 듯 커튼이 둘러쳐진 곳에 가부좌를 틀고 있다. 어깨는 좁고 양 무릎은 넓게 그려져 안정된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주인공의 옆에는 종이를 펴들고 무언가를 보고하는 듯한 사람과 붓을 들고 적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주인공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을 가장 크게 그리고, 그 옆의 남자들은 조금 작게, 또 시중을 드는 여자들은 더욱 작게 묘사하여 신분의 차이에 따른 스케일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드리운 커튼이나 주인공의 옷 주름에는 흔히 {B:태서법}(泰西法)이라고 하는 서양식 {B:음영법}에 해당하는 주름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중국과 서역을 통한 서양과의 문물 교류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뿐 아니라 주인공의 앉은 자세나 주변의 장식들은 불교 문화의 영향을 짙게 풍기고 있다 <안악 3호분 벽화-부엌> <안악 3호분 벽화-고깃간> <안악 3호분 벽화-차고> {B:안악 3호분}의 동쪽 곁방 북벽에 있는 이 그림은 주인공이 생전에 생활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생활을 보여주는 이러한 풍속화는 회화적인 가치는 물론이고 생활상을 밝히는 생활사 자료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깔끔한 {B:맞배지붕}의 기와 모습이나 {B:치미} 장식의 모습, 우리에게도 눈익은, 부엌에 걸린 시루 등에서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고깃간에는 돼지, 소와 함께 개고기처럼 보이는 고기도 걸려 있는데 이 그림은 우리 음식 문화 전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고기를 거는 고리는 오늘날에도 푸줏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고리 모양이다. 부엌 앞에는 예부터 사람과 가장 가깝게 지낸 동물로 동서양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개도 두 마리 그려져 있어 풍속화적인 재미를 더해주며 더욱 실감나게 그들의 생활을 엿보게 해준다. <안악 3호분 벽화-우물> {B:안악 3호분} 동쪽 곁방 북벽에는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여인네들과 방앗간, 마구간이 그려져 있다. 우물은 우리가 얼마 전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정(井)자 모양이며, 물을 길어올리는 데 긴 막대에 추를 매달아 균형을 이루는 도르래와 비슷한 기구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물가에는 물이 담긴 물동이가 놓여 있으며, 긴 수조도 보인다. 방앗간에서는 디딜방아로 곡식을 찧고 있고, 마구간에는 말이며 소며 여러 짐승들이 있다. 마치 생전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하다. 이는 죽어서도 살아서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고자 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간결한 필치로써 나타내고자 하는 사물을 정확히 묘사하는 솜씨가 또한 놀랍다. <안악 3호분 벽화-대행렬도> {B:안악 3호분} 주실 회랑 석벽에 그려진 이 행렬 장면은 마치 군인들의 행렬처럼 질서정연한 모습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 판석 위에 석회를 쓰지 않고 직접 그린 벽화로 먹선이나 채색이 활달하고 선명하다. 이 장면은 약간 위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그렸는데, 그 구도에 있어서 상하 종대의 질서정연한 배치를 보이나 중간에 약간씩 흐트러짐도 보인다. 이는 고대 회화에서 흔히 보이는 수법으로 장엄한 행렬 장면을 생생하게 실제 장면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생전의 중요한 행사 장면인 듯하며 각양 각색의 깃발을 든 여러 사람들 가운데 수레를 탄 인물도 보인다. 이 수레를 탄 인물이 이 무덤의 주인공인 듯하다.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아 빗물이 스며 흘러내린 자국이 지금 이 벽화를 보는 우리들을 가슴 아프게 한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 유산을 보호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쳐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쌍영총 차마인물도>〈차마인물도〉는 쌍영총이라는 고분의 통로 벽에 그려진 벽화이다. 쌍영총은 전실(前室, 앞방이라고도 함)과 시신이 놓인 현실(玄室, 널방이라고도 함)로 가는 통로에 두 개의 기둥, 즉 쌍영(雙楹)이 놓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통로의 양벽에는 소가 끄는 수레의 행렬과 무장을 한 인물들의 행렬이 그려져 있다. 모두 깔끔한 필치의 검은 묵선과 빨강, 파랑, 노랑의 엷은 채색으로 표현되었다. <무용총 무용도> 무용총은 지금은 중국 땅인 길림성 집안현의 여산 남쪽 언덕에 있는 고구려의 벽화 고분이다. 이 고분은 직사각형[장방형]의 앞방과 시신을 안치하는 정사각형[방형]의 널방, 그리고 이 두 방을 연결해주는 널길로 이루어진 두방무덤[二室墳]이다. 이 무덤에는 두 방과 널길, 천정 등에 인물, 풍속, 〈{B:사신도}〉 등이 그려져 있다. 그 중 널방의 동벽에는 남녀가 대열을 짓고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 때문에 무용총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무용도〉는 열네 명의 무용수와 악사가 상하로 그려져 있다. 중앙에는 춤을 추는 다섯 명의 무용수가 그려져 있고, 앞에는 춤을 지도하는 듯한 무용수와 아래쪽에는 가락을 넣는 일곱 명의 악사가 있다. 이들은 소매가 길고, 흰색 바탕에 검은 점무늬나 황색 바탕에 붉은색 점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있어서 화려한 패션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무용 장면은 움직임의 표현에 역점을 둔 것으로 서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약간씩 흐트러지게 배치하고 있다. 뒤로 뻗은 두 팔의 묘사에서는 표현상 어색함도 보이지만 한민족 특유의 어깨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무악(舞樂)을 즐기는 우리 민족의 낙천적인 감성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지금은 이슬맺힘[結露] 현상으로 많이 훼손되어 제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 <수렵도>무용총의 〈수렵도〉는 활달하고 힘찬 고구려인의 기상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무용총의 널방 서쪽에 그려진 것으로, 큰 나무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는 소가 끄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고, 왼쪽에는 사냥 장면이 전개된다. 사냥 장면은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쓴 다섯 명의 말 탄 인물이 활시위를 힘껏 당기며 사슴과 호랑이를 쫓고 있는 모습이다. 산과 산 사이를 쫓고 쫓기는 말 탄 인물과 동물들은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어서 거친 자연 속에서 뻗어나가는 고구려인의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사냥 장면의 발달된 표현력에 비하면 산이나 나무는 도안화되어 배경 역할만을 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산은 단순히 굵고 가는 선으로 상징적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산은 흰색, 그 다음 산들은 빨간 색, 가장 멀리 있는 산들은 노란 색을 쓰고 있어서 고대인들의 채색법을 알 수 있다. 또한 나무는 가지와 잎이 마치 고사리처럼 어색하게 표현되어 나무다운 맛이 없다. 이는 당시 회화에서 산수화에는 무관심했던 사실과 연결되는 것으로서 이러한 배경의 단순화가 오히려 사냥 장면의 운동감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부분> <부분> <각저총 씨름도>각저총은 무용총과 같이 길림성 집안현 여산 남쪽 기슭에 있는 고구려의 벽화 고분이다. 구조는 직사각형[장방형]의 앞방과 시신을 안치하는 정사각형[방형]의 널방, 그리고 이 두 방을 연결해주는 널길로 이루어진 두방무덤[二室墳]이다. 각저총의 벽화는 여러 생활 모습을 담고 있는데, 묘 주인의 실내 생활 장면을 중심으로 〈씨름도〉와 〈차마인물도(車馬人物圖)〉, 〈수목도(樹木圖)〉가 그려져 있다. 이 씨름 그림으로 인해 씨름무덤, 즉 한자로 각저총(角抵塚)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씨름도〉는 흥미로운 풍속화 중의 하나인데, 새가 앉아 있는 나무 아래에 맞붙어 씨름하는 두 명의 씨름꾼과 심판인 듯한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무 아래에는 두 마리의 개가 그려져 있고 하늘에는 추상적으로 표현된 구름이 그려져 있다. 두 선수가 띠를 잡고 씨름하는 모습은 오늘날 씨름하는 모습과도 흡사하다. 그런데 이 씨름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은 매부리코에 눈이 부리부리한 서역 계통의 사람 모습이다. 아마도 이 무덤의 주인공이 생전에 외국에서 온 사람과 힘겨루기라도 해서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렸지 않았나 생각된다. <5괴분5호묘 해의 신>고구려 고분 벽화는 대략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초기인 4, 5세기 무렵에는 주로 고분 주인공의 생활 장면이 주를 이룬다. 중기인 6세기 무렵에는 풍속화적인 장면 묘사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불교 사상의 영향으로 불교적인 요소가 많이 눈에 띈다. 그러다가 후기인 7세기 무렵에는 도교적인 영향으로 무덤을 소우주로 생각하고 많은 별자리며 해와 달 등 천상의 모든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오괴분은 후기에 속하는 고분으로 무덤의 형태는 간소해지면서 천상 세계를 나타내는 해와 달 등이 매우 선명한 색채로 그려져 있다. 해를 나타내는 붉은 원 안에는 다리가 세 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가, 달을 상징하는 노란 원 안에는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고대 신화에서 본래 태양은 부상나무라고 하는 나무에 열 개가 달려 있었다. 열 개의 태양이 번갈아 뜨게 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뜨자, 가장 활을 잘 쏘는 예라는 사람을 시켜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다. 그러자 한 개의 태양만 남아서 지금처럼 알맞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태양이 떨어진 곳을 보니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가 화살을 맞고 죽어 있었다고 한다. 태양의 신을 그린 이 벽화는 고구려인의 끝없는 우주적인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벽면을 이루는 화강암에 직접 그린 것으로, 천 년이 넘은 오늘에도 색채가 무척 선명하고 표현이 아름답다. <5괴분5호묘 달의 신>예쁜 여인을 일컬어 월궁(月宮)으로 간 {B:항아}(姮娥)라고 했던가. 달을 이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이고 있는 달 속에는 아름답던 항아가 변한 두꺼비가 있고 여신은 불꽃같은 날개에 꼬리가 달린 반인 반수(半人半獸)로 표현되어 있다. 이 오괴분 벽화는 7세기의 전형적인 양식에 따라 〈{B:사신도}〉가 네 벽면에 그려져 있고, 천장의 받침돌에는 일월신(日月神)과 농사의 신, 철을 다루는 신, 바퀴를 만드는 신 등 설화성이 풍부한 여러 신들과 나뭇잎 문양 등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이 달의 신은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를 이고 있는 해의 신과 마주 보는 형태이다. 주변에는 나무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선녀들이 있고, 천장의 중앙에는 왕을 상징하는 황룡(黃龍)이 있다. 선명한 색채와 힘찬 선묘(線描)로 고구려 문화의 활달함이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이다. <5괴분5호묘 학을탄 신선>오괴분의 벽화에는 천상을 상징하는 일월성수(日月星宿)뿐 아니라, 나무 위로는 구름이 떠 있고, 그 사이로는 학이나 용을 탄 신선(神仙), 주악천녀(奏樂天女) 등 도교 사상(道敎思想)을 반영하는 여러 신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그 표현이 자못 자연스럽다. 그 가운데서도 학을 탄 신선은 선명한 색채를 사용하여 매우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흰 날개를 펼쳐 신선을 등에 업고 날아가는 학이나, 노란 색 깃을 댄 갈색 옷에 흰 모자를 쓰고 그 학을 타고 가는 신선의 모습에서 우아하고 세련된 필치와 색채 감각을 느낄 수 있다. 1,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안료를 만들어 썼던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강서대묘 현무도>강서대묘가 있는 평남 남포의 삼묘리는 크고 작은 3기의 묘가 있어서 삼묘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 묘를 각각 강서 대묘, 중묘, 소묘라고 부른다. 이들 고분은 고구려 후반기인 7세기 경에 조성되었다. 이때는 도교의 영향으로 무덤에는 〈{B:사신도}(四神圖)〉가 주제가 되어 네 벽을 채우는 경향이 있었다. 사신은 네 방위를 맡은 신으로 상징적인 동물로서 표현되는데, 동쪽은 청룡(靑龍), 서쪽은 백호(白虎), 남쪽은 주작(朱雀), 북쪽은 현무(玄武)가 그려진다. 그 중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훌륭한 구도와 선명한 채색으로 여러 〈사신도〉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이다. 이 현무도는 달리는 거북의 몸을 뱀이 휘감고 있는 모습으로, 거북이나 뱀의 세부 표현도 사실적일 뿐만 아니라 이들이 이루는 유연한 듯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고구려인의 힘이 느껴지는 걸작이다. <강서대묘 청룡도(참고도)> <강서대묘 백호도(참고도)> <백호도(송산리 6호분 벽화)> <강서대묘 주작도> <천마도>〈천마도〉는 말이 진흙길을 달려 갈 때 말 탄 사람의 발에 진흙이 튀지 않도록 말의 배 부분에 대는 장니(障泥)라는 말 장식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 장니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었으며, 채색을 써서 그림을 그렸다. 장니를 사용한 말이 천마처럼 잘 달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지 달리다 못해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신라시대 회화 작품으로 몇 안되는 귀중한 예이며, 천마총(天馬塚)이라는 이름은 이 〈천마도〉의 발견으로 인해 경주 황남동 155호분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천마 그림은 이후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장례와 관련된 곳이 많다. 이는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실어 나른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것이다. <의본 외대방광불 화엄경 변상도(뒷면)> <(앞면)>〈대방광불 화엄경 변상도(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는 화엄경을 쓴 경전과 함께 발견된, {B:사경}(寫經)의 표지 그림으로 그려진 변상도(變相圖)이다. 변상도란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한 것을 말하는데, 두루마리나 책의 첫부분 또는 끝부분에 그려 놓기도 하고, 삽도 형식으로 장마다 그림을 그리고 경전을 쓴 경우도 있다. 이 변상도는 황룡사의 법사였던 연기(緣起)가 발원하여, 754년에 시작해서 755년에 완성된 것이다. 불교 회화에 많이 등장하는 보상화 문양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B:신장}상이 있는 표지가 있고, 뒷면에 {B:비로자나불}과 {B:보현보살} 등 여러 보살이 있는 변상도가 있다. 감색 종이에 금물과 은물로 그렸는데, 훼손이 심하여 전체의 모습을 잘 볼 수는 없으나 {B:보상화문}과 신장을 그린 선은 매우 힘차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인다. 신라시대 불교 문화의 화려한 한 면을 보여준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