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卷58 志 卷第12 地理 3 북계 안북대도호부 영주 연주
燕州 (연주)
本高麗密雲郡【一云安朔郡】. 光宗二十一年, 更今名, 爲知州. 成宗十四年, 爲防禦使. 恭愍王十五年, 陞 延山府.
밀운군은 광종21년 지주로 이름을 바꾸고 성종14년 방어사로, 공민왕15년 연산부로 하였다.
고려초기의 燕山이 이후 지명 이동이 되면서 공민왕 이후 元에 밀려 요녕성 連山으로 바뀐것으로 보인다.
※ 조선초에 고려사 수찬시 지리지 초기지명을 한반도로 이동된 지명으로 혼합시켜 후대에 혼동이 되도록 하였다.
예) 고려하북 燕山이 동일음 延山으로, 또 요녕성 連山으로, 조선초 이후 평안도 어느 위치에 延州를 만들고 고려 燕山으로 이치시킴. (강동6주도 같은 이치로 이동됨)

위가 원래 운중의 위치이다.
雲州 (운주)
本高麗雲中郡【一云古達化鎭】. 光宗時, 爲威化鎭. 成宗十四年, 稱雲州防禦使. 高宗十八年, 避蒙兵, 入于海島. 元宗二年, 出陸, 寓于嘉山西村, 隷 延山府. 恭愍王二十年, 復立郡. 別號雲中【成廟所定】.
운중군은 광종때 위화진으로, 성종때 운주방어사로, 고종18년 몽고를 피해 바다로 들어가다. 원종2년 뭍으로 나오다.공민왕때 운중으로 하다.
성종때 연산부(延山)는 밀운군에 위치하였다가 원나라때 동령로에 속하기도하였다. 조선때 현 평안도 연주로 바뀌다(신증동국여지승람 참조)
고려사에 광종때 락릉에 성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낙릉이라는 지명은 한반도에 없고 산동에 위치한 고유지명이다. 따라서 하북과 산동으로 내려오는 지역을 현종때까지 고려가 차지했던 지역으로 추정된다.
오대말 후당에서 왕건이 활약하고 이후 건국하면서 고려초 운중(雲州)을 차지했던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성종과 현종시기 거란과의 전쟁은 하북에서 일어났던것으로 확인된다. 알려진 것과 달리 燕.雲16주에 관한 오대(後漢,後晉,後梁)와 거란과의 영토 주도권은 이들보다 고려가 처음부터 차지했던것 아닌가 생각된다. 공민왕때에는 요녕성 連山으로 이동한것으로 추정된다.
운영자.
첫댓글 거란이 후진의 건국을 도와준 대가로 연운16주를 차지했는데, 그 지역은 산서성 남부지역으로서 연주, 운주 등이 포함되어 있지요. 그 중에 연주는 전국시대 연나라가 있었던 계현으로서 단나라 때에는 유주대도독부가 있었던 현 산서성 둔유현으로 추정되고 운주는 한나라 대 운중우로서 현 산서성 홍동현 인근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규주는 헌원과 치우가 전쟁을 했다는 탁록으로서 현 산서성 진성시 인근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탁록은 한나라 때 지명으로 유주 상곡군 탁록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