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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책 강제철거 후 멈춰진 삶, 개발지역피해자증언대회 열려
“강제퇴거금지법도 제정돼야겠지만 제일 인간 모멸적인 게 인권침해, 얼굴에 대놓고 가래침 뱉는다거나 장사 못하게 가게 안에서 쇠파이프 쿵쿵 치면서 끌고 다니면, 당해보지 않고서는 상상 못합니다. 두들겨 맞고 늑골 부러지고 팔 부러진 적도 있어요. 그런데 (육체적 폭력보다) 인간 모멸적인 건 참지를 못해요. 주거권, 생존권 빼앗기고 먹이사슬에 얽혀있는 관청들, 직접 당해봐야 실감 나지 정말…….” (신곡마을 철거민 조규승 씨)
용산참사 이후 4년이 지났다.
2009년 1월 19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에서 용산 재개발 정책에 반발하며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다섯 명에 경찰 한 명, 총 여섯 명이 숨졌다. 용산참사는 이명박 재임 동안 일어난 가장 비극적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여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곳은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은 빠지고 관리처분인가가 무효 되면서 사업은 지연되었고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2007년 이후 부동산 경기는 하락하고 있으나 뉴타운 환상이 (거품을) 떠받들고 있는 상황의 정점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2009년 용산참사”라면서 “그 후 개발 실체가 드러나고 폭로되면서 거품이 꺼져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사무국장은 “그러나 이미 곳곳의 집, 가게가 철거되고 마을이 파괴된 상태에서 개발이 멈춰져 현재 그 누구한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이 용산참사 이후에도 (도시 곳곳에서) 용산처럼 진행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뉴타운 바람이 일면서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었으나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개발이 중단되면서 조합은 해체됐다. 부서진 삶터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 후 상대할 조합도, 시공사도 없어 시청과 구청에 찾아갔으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라는 답만을 되풀이해 들을 뿐이다.
“상대자가 없다는 것, 우리가 제일 애매한 부분이 바로 그거예요. 시공사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사는 부도나고. 관할 관청은 조합 해체됐는데 누구하고 상대하라는 건지. 그렇다고 시청 직원들 멱살 잡고 싸울 수도 없는 거 아닙니까. 조합이라도 빨리 설립되면 무슨 요구라도 한 번 해볼 건데 요구할 상대가 없으니깐. 그게 제일 고민이에요.” (신곡마을 철거민 조규승 씨)
이러한 상황에 처한 내곡동 헌인마을, 부천 중3동, 김포 신곡마을 철거민들이 입을 열었다. 가게와 집은 이미 헐렸으나 차마 떠날 수 없어 남겨진 사람들이다.
‘개발지역피해자증언대회 - 무대책 강제철거 그 이후 개발지역 세입자들의 멈춰진 삶을 이야기하자’가 17일 늦은 2시 국회 의원회관 신관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폐허 된 내곡동 헌인가구단지, “처음엔 장사 매우 잘 됐죠”
내곡동 헌인마을은 가구공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1989년부터 가구 관련 일을 하다 1997년경 헌인마을 가구공장을 인수받게 되어 이곳에 정착한 철거민 강아무개 씨는 처음엔 장사가 꽤 잘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2008년 8월 강제철거가 진행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자연스레 매출은 감소했다. 그러나 당시 철거되지 않은 가게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철거시기 이뤄진 화재와 반파 흔적, 지역의 불안정한 분위기 탓에 여전히 찾아오는 손님은 뜸하다.
헌인마을은 2009년 개발계획고시,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가 이뤄졌으나 시행대행사인 우리강남PFV의 재무구조악화,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의 자금난으로 개발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즉, 현재 공사는 진행되지 않은 채 이자비용증가로 토지 원가만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헌인마을PF 사업부지 3.3㎡당 평균 가격은 2006년 당시 750~800만 원이었으나 현재는 1,400만 원정도로 올랐다.
헌인가구단지의 또 다른 철거민 김상철 씨는 철거문제로 “인생에 구멍이 났다”라며 “(현재 헌언가구단지에 머무르며 싸우고 있는) 우리 세 사람에게 신경 써주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지주, 관청은 자기네 사안이 아니라며 급급히 책임회피만 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김 씨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떠날 수 없다”라면서 “우리를 내쫓으려고 해도 이곳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어 우린 떠날 수도 없고 어디 가서 생활할 수도 없는 처지다. 세 사람이 처절하게 지역을 사수하며 투쟁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부천 중3동, 삼성 상대로 올해부터 다시 싸워야
부천 중3동은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래미안아파트가 들어오기로 한 곳이었다. 2011년 2월부터 본격적인 철거가 이뤄졌으나 현재 공터로 남아있다.
중3동으로 1996년도에 이사 온 후 15년 이상을 같은 집에 살며 집주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던 김명희 씨는 철거문제로 집주인과 심각한 관계 악화를 겪었다.
“15년 이상을 살아서 집주인하고 정말 언니, 동생 할 정도로 잘 지냈는데 막판에 우리가 이사 안가니 조합은 주인을 압박하고 주인은 우리를 압박하고, 이런 문제들 때문에 사이가 멀어졌죠. 돈이 정말로 사람 관계까지 하루아침에 원수로 만드는구나. 그때는 그게 가장 싫었어요.”
오랫동안 공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으나 지난 12월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입장을 밝혔다.
“민간업주다 보니 지주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개발할 수 없는 지역이에요. 세입자들한테 전혀 대책이 없는 곳이죠. 삼성이 마지막 한 명 남은 지주랑 법정싸움 중인데 싸움이 끝나는 대로 사업 바로 시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마 올해 안에 다시 개발이 진행될 것 같은데 삼성물산 상대로 지역 안에서 싸워 생존권을 되찾겠습니다.”
이러한 민영개발 중심의 재개발에 대해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박래군 집행위원장은 “1980년 중반부터 기존 공영개발 중심에서 민영개발 중심으로 개발이 바뀌었다”라며 “공영개발은 정부가 추진하는 것으로 후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에 책임소재를 물을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정부에 화살이 돌아가자 민영개발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민영개발로 조합 대 세입자 싸움이 되면서 정부는 뒤로 빠졌다”라면서 “민간에서 개발하는 거라 세입자는 보상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받고 쫓겨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버티면 용역에 의해 폭력적으로, 강제로 쫓겨나면서 억울함에 피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포 신곡마을, 빚내서 공장 세웠는데 시설비 보상 누가 해주나?
김포 신곡마을은 2006년경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부도난 시행사 새날이 땅을 사들이기까지 총 세 차례의 권리이전이 있었다. 시행사 새날은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었으나 부지가 넓어 시행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다 결국 직접 시공하려 했으나 자금난으로 부도가 났다. 새날의 부도와 조합 해체로 현재 신곡마을은 개발이 중단된 상태다.
신곡마을에는 주택과 함께 공장지대가 있었다. 이곳에서 공장을 운영했던 세입자들은 공장 설치 시 들었던 설비투자비 등으로 손해가 너무 커 이주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조규승 씨 또한 그 중 한 사람이다.
“10년 전 기계 가격이 하나당 3천만 원이었어요. 이사 온 지 2년도 채 안 됐는데 이사 가랍니다. 이 시설비를 어떻게 할 건가, 공장 시설비가 걸립니다.
물건 주는 원청업체에서는 기계를 보지도 않고 물건을 주진 않기 때문에 기계를 준비해놓고 영업해야죠. 그러니깐 기계 보러 실사를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 환경이 이렇게 부서지고 반파되어 있으니 실사에선 무조건 퇴짜 맞죠. 영업 실적 떨어집니다. 공장지역 재개발엔 정말 애로사항이 많아요.”
이어 조 씨는 “빚을 내서 기계를 사기 때문에 3개월 지나면 경매처분에 들어간다”라며 “영업실적이 눈에 보이게 뚝뚝 떨어져 자금을 못 갚아 다 빼앗기고 처음 12개였던 기계는 현재 4대 남았다”라고 토로했다.
토지주택 공공성 우선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해
오늘날 주택정책에 대해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유영우 상임이사는 “토지주택의 공공성을 우선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라며 “이를 위해 주택정책은 재산권 중심에서 거주권·주거권 중심으로, 소유자 중심에서 거주자 중심으로 하는 수요자 중심 공급체계로 전환되고 제도도 이러한 방향에서 개선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유 상임이사는 “각종 재개발은 이익 극대화를 중심에 둔 재개발 조합과 민간건설업자 주도의 사업에서 공익성이 실현되는 공공사업으로 바뀌어야 하며, 도시정비 원칙을 재산권 중심에서 주거권 중심으로 전환하고, 추진 주체도 소유주에서 세입자를 포함한 거주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라면서 “대규모 철거방식에서 공동체 복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포함된 도시재생사업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유 상임이사는 “주거권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로 규정하고 강제퇴거 시에는 적절한 대책을 강제한 강제퇴거금지법과 주거복지에 대한 기본 이념을 정하고 쾌적한 주거생활에 관한 국민의 권리를 명시한 주거복지기본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증언대회는 용산참사4주기범국민추모위원회, 국회의원 정청래, 윤후덕, 장하나, 오병윤 주최로 열렸으며, 고 이상림 열사 아내이자 용산참사로 구속된 이충연 씨의 어머니 전재숙 씨와 용산참사로 구속되었다가 작년에 4개월 남기고 가석방된 김재호, 김대원 씨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