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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강해노트 (4-3)
온유한 자가 기업으로 받는 땅
히브리서에는 그 열조들을 포함한 믿음의 선진들이 어떤 땅을 소망으로 바라보며 살았는지가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히 11:8~10)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신기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던 땅에 거했는데 마음은 외방에 사는 것처럼 살았다. 그들은 믿음으로 ’이 땅은 그 땅이 아니구나‘를 알았던 것이다.)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땅과 성을 같은 것으로 이야기한다. [바벨 땅-바벨 성] / 이걸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경 전체는 다 그 이야기이다. / 우리에게 주어질 도성,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바라본 것이다.)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도 아브라함은 외방에 있는 것처럼 살았다. 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진짜 땅이 그까짓 가나안 성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가나안 땅도 역시 인간들이 만들고 인간들이 구축한 도성이다. 가나안은 어떤 것의 모형으로 주어진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지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어땠는지 보자.
(히 11:13~16)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야곱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갔을 때, 가나안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기가 돌아가야 할 본향으로 알았더라면 거기로 다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안 돌아갔다. 왜? 그 땅이 본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명기 11장에 그 땅의 특징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신 11:10) 10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그 땅은 하나님의 은혜로 통치되는 땅이다. 인간의 노력과 열심과 힘과 지혜로 운영되는 땅이 아니다. (가나안은 천수답 농사짓는 곳, 하나님이 주시면 먹고 안 주시면 못 먹는 땅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역시 자기들의 힘을 의지했다. / 하늘의 왕을 왕으로 취급하지 않고 이 세상의 왕을 원했다. / 신명기에서 말하는 땅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될 교회, 하나님의 도성,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말한다. / 그 땅이 여러분에게 반드시 기업으로 주어질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역사 속에서 온유로 밀려 내려가게 된다. / 온유한 성품, 온유한 기질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그런 도덕책, 성품 개조의 책이 아니다.) 이사야서로 가면 그 땅의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 65:17~19)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계시록에 보면 예루살렘이 백성이다.)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이 예루살렘, 새 도성을 바라보고 가나안 땅은 그 땅이 아니라고 했다.)
(사 66:22) 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을 모형으로 보여준, 바벨성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은혜로 건설되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이고. 그게 여러분이다. 그 땅이 성도에게 약속되고 있다. 그래서 바벨탑 사건 바로 뒤에 아브라함이라는 하나님의 택한 자가 등장하고, 그에게 하나님이 건설하시는 하나님의 땅이 약속된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내가 같이 거하는 ’땅=나= 교회‘이다.) / 율법주의, 유대주의에 의한 인간의 가능성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은혜의 도성이 완성되는 그 구원의 현실이 옛 땅의 부정이고. 새 땅의 도래이다.
구약에는 이러저러한 것을 지켜야 그 땅이 주어진다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 오늘 본문에는 ’복 있는 자여, 너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라고 선언되어 있다. 너희가 율법을 지키고 선한 삶을 살아야 땅을 준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었으므로 땅이 거저 주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 우리에게 거저 주시겠다고 하신 그 땅의 실체가 요한계시록에 잘 나와 있다.
(계 21:1~4)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교회,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신부 /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 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한다.)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땅과 왕과 백성 -> 창세기에서부터 줄곧 약속되어 있던 것이 계시록 21장에서 완료된다.)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애통, 가난, 사망 얘기이다. 역사 속에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다 경험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다 없어진다.) 요한계시록 전체가 멸망 받을 바벨론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대조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창세기에서도 [아담들의 도성 바벨성]과 아브라함에게 약속되는 [하나님의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대조되어 있다. / 계시록 18장에서도 바벨론이 완전히 멸망하고 19장부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펼쳐진다.
성경은 그 땅을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라고 묘사한다.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부터 당신이 다스리시고 거하실 거처인 교회를 약속하셨다. (유대주의, 인본주의 그리고 은혜가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어진다. 그게 역사이다.) 다시 에스겔서 36장으로 가보자.
(겔 36:24~25) 24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겠다는 새 언약을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물로 씻어서 정결케 하시겠다고 하신다(= 정결 예식). 하나님의 땅은 부정한 것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새 언약은 레위기의 유출병에 관한 규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레 15:1~8)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을 인하여 부정한 자라 3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함이 이러하니 곧 몸에서 흘러 나오든지 그것이 엉겼든지 부정한즉 4 유출병 있는 자의 눕는 상은 다 부정하고 그의 앉았던 자리도 다 부정하니 5 그 침상에 접촉하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6 유출병 있는 자의 앉았던 자리에 앉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7 유출병 있는 자의 몸에 접촉하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8 유출병 있는 자가 정한 자에게 침을 뱉으면 정한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여인이 월경을 하거나 지속적으로 유출병(하혈)을 앓을 때 율법이 그것을 부정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러한 자들과 닿기만 해도 모두가 부정한 것이 된다고 선언한다. / 그런 부정함을 물로 씼어서 깨끗하게 해야 한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새 언약이 주어지는 것이다. / 그런데 왜 율법은 여인들이 하혈하는 것을 부정하다고 하는가? 그 이유는 민수기에서 찾을 수 있다.
(민 35:33~34) 33 너희는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 34 너희는 너희 거하는 땅 곧 나의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함이니라
하나님의 땅에 타락한 인간의 피가 닿으면 땅이 부정해지기 때문이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만물 중에 가장 더럽고 썩은 것이 사람 안에 들어있는 마음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하나님의 땅에 흐르게 되면 그 땅이 부정해진다. 그것을 피로 모형해 주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부정한 자들을 물로 씻으라고 하신 것이다. 새 언약에서는 ’내가 고토에 들어가, 내 땅에 들어가 너희를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 / 하나님은 땅을 깨끗케 하시기 위해 부정한 피를 씻어 내신다. 땅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그 땅이 하나님의 신부인 교회이다. / 마태복음 9장에 그러한 유출병이 어떻게 구원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 있다.
(사람의 마음이 세상에서 제일 더럽다. 그게 피로 쏟아지면 땅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 땅에 피를 흘리면 안 된다. 이게 율법의 규정이다. 그래서 살인도 안 된다. 신약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는 것이 세례 이야기이다. 그게 ’너희의 마음을 잘라 낸다.‘는 것이다. 그게 할례이고,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 물로 깨끗이 씻는다는 것은 여러분을 아예 죽여 버리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죽는 것, 광야에서 죽는 것‘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자의 운명이다.)
(마 9:20~22) 20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율법에 의하면 혈루병 앓는 여자가 예수님을 만졌으니 예수님이 부정하게 되신 것이다.)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이 그녀의 부정을, 사망을 가져가셨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열두 해 혈루증으로 땅을 더럽히던 한 여인이 등장한다. 도저히 가망 없는, 죄만 쏟아내는 아담 군상의 모형이다. 그녀가 구원받겠다고 예수님의 옷을 만졌다. 피를 멈추게 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구원해달라고 한 것이다. -> 부정한 땅을 정결케 하는 것이 구원의 이야기이다. / 그녀가 예수님을 만지자 구원을 받았다.
(마 8:16~17)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께서 그 혈루병을 가져가 버리셨다. 바꾸어 말해 혈루병 앓던 여인이 예수를 믿고 그분을 만졌을 때 깨끗한 물로 씻김을 받은 것이다. 그 이야기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표로 나타난다.
(예수님이 여인의 유출병 부정함을 가져가셔서 이제 예수님이 부정한 자가 되셨다. 그러면 예수님이 피를 흘려야 되는데 그 피가 십자가에서 쏟아진 피이다. => 십자가 이야기. // 창세기부터 땅에 대한 이야기, 온유함에 대한 이야기는 십자가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게 레위기의 유출병과 연결되고, 또 예레미아 31장과 에스겔서 36장의 새 언약과 연결되어서 땅과 연결되고, 결국 십자가에서 결론지어진다. /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저주받은 자로 죽어야 할 자, 부정한 자로 선고받아 죽어야 할 자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그 피가 우리를 씻기신다. 우리가 깨끗이 씻겨져서 교회가 탄생되는 그 시점에 예수님의 피와 함께 물이 쏟아지고 우리가 씻겨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이 세상에서 새 생명의 창조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 새 생명의 창조는 피를 흘려 죽어야 하는 자들의 피를 쏟음으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현실, 새 창조의 현실로 완성되는 것이다. / 그래서 여인이 애를 낳을 때 물과 피가 함께 쏟아지는 것이다.)
(요 2:6)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 유대인들의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잔치가 끝났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거기에 결례(정결 예식)를 행하는 물을 담는 돌 항아리 여섯 개가 등장한다. 그 항아리에 담는 물이 바로 유출병이나 월경 등으로 부정해진 사람들이 몸을 씻는 물이다. / 그 항아리들이 비어 있다. 유대인들은 겉으로는 정결 예식을 행한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실제로 그들은 정결에 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 거기에 예수님의 피가 부어진다. 땅을 정결케 하기 위해 그 땅의 백성들을 씻어 내던 그 정결 예식의 물이 포도주 즉, 예수님의 피로 바뀌는 것이다. 바벨성이 무너지고 은혜의 성,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서는 것이다. //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신 것이다. 그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열두 해 혈루증으로 죄악의 피, 저주의 피를 철철 흘리며 하나님의 땅을 더럽히던 우리의 모습이 되셔서 예수가 죽으셨다. 그 저주의 피가 흐르는 곳에 정결의 물이 함께 흐른다.
(예수님의 피가 포도주로 되어 여섯 개의 항아리에 채워지고, 예수가 일곱 번째 항아리로 서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잔치가 벌어진다. 그게 어린양의 혼인 잔치이다. / 요한계시록에서 내가 물로 너희들을 씻겨 내 땅에 데리고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피로 너희들을 씻어 내가 너희와 함께 거하는 [내 땅, 내 나라, 교회, 너희들]을 반드시 창조해 내고야 말 것이라는 새 언약 하에서의 새 창조의 메커니즘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에도 피와 물이 흐른다. 부정한 피, 더러운 피가 흐르는 곳에서 물이 함께 나옴으로써 새 생명이 창조된다. 그게 구원이다. 그렇게 해서 땅이 정결케 된다. 그렇게 해서 교회가 창조된다. 거기에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다. 그게 부정함이 제거된 하늘의 땅이다. 그게 성도이다.
(이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 안에 담겨 있는 엄청난 내용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땅을 이미 기업으로 받은 자들이다.)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구원의 현실을 아는 이들이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서 요동치 않고 언약만 바라보며 가는 그 상태를 온유라고 한다.
(시 46:1~3)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이게 구원받은 자들의 온유이다. 이 세상의 땅은 수시로 흔들리고 요동친다. 그때에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언약의 현실을 붙들고 요동하지 않는 믿음 그 믿음이 온유이며, 그게 하나님의 정결한 땅이 된 교회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