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훈화 “사랑”
2022. 11. 21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인가 모르게 친밀하고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아낍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싫어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는 ‘내가 당신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함께 하고 싶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도움을 줄 수 있다’라는 내면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랑으로 인해서는 우리는 어느 때는 내가 제일 싫어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면서 함께 할 때도 있고, 만약 내가 좋아하는 것이 같다면, 함께 하는 시간이 더욱 더 배가 되는 경우도 느끼게 된다.
인간적인 사랑이 때로는 기적과 같은 일을 이룰 때도 있다. 그와 더불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보다 더욱 더 은혜롭다는 체험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보통 인간적인 사랑. 남녀의 관계에 있어서 연인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동료와 친구간의 사랑과 같은 인간적인 사랑은 ‘에로스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이와는 다른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에 대해서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차이는 극명히 다르긴 하지만, 두 사랑의 의미는 동일하게 기적과 같은 일을 만들어 낸다. 자식을 위해서 부모가 모든 것을 희생하며 기쁘게 봉헌하는 것처럼, 또한 하느님께서는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것. 굳이 비교를 한다면 주님의 사랑은 인간적인 에로스적인 사랑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결코 주님의 사랑을 넘어설 수 없고, 그분의 자비하심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사랑은 모든 이에게 지극히 완전하시고,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을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들 스스로가 나약함을 느끼거나, 힘들고 지칠 때, 또는 즐겁고 기쁘고 감사할 일이 있을 때에도,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주일의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십자가 제대 위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봉헌‘하심으로써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 보여주셨다. 그러한 주님께 감사드리며, 한 주간을 주님께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