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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저와 함께 사역했던 전도사님의 사역입니다.
성탄 인사와 함께 사역 편지가 첨부되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분도 있음을 확인해 보십시오.
비행 청소년들과 삶을 나누며”
서울가정법원수탁교육원
해뜨는마을 원장 이직자
어느 국가에서든 청소년들은 대체로 그 사회와 가정의 상태를 반영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혼율이 점점 증가하면서 정서적. 신체적으로 버려진 수많은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피시방. 노래방. 찜질방 등으로 전전하는 청소년들이 11만여명이나 되고 있다. 가정이 깨어짐으로 청소년들의 탈선과 범죄는 날로 심각해져 가고 따라서 청소년들의 비행은 지능화, 집단화, 흉포화 되어가고 있는 실정에 놓여 있다. 이들은 가정에서 부모들의 중독과 학대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받은 상처입은 영혼들이다.
나는 그동안 교회 사역을 하다가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YM가정상담과정을 하고 돌아와 흥분된 마음으로 새 사역지를 구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2005년 이곳 해뜨는마을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서울가정법원. 의정부. 춘천지방법원에서 위탁한 비행청소년들을 교육, 교화시키는 곳으로 내가 찾던 사역지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러나 박 수일 목사님의 적극적인 콜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질 않아 하나님앞에 잠잠이 머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이곳에 오지 않으려고 하는 나의 내면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교회로 가면 사역을 통해 인정받을 수 있을텐데 이곳은 대상이 비행청소년인데다가 재정 또한 어려운 곳이라 가려고 하지 않는 나를 보게 되었다. 사역지를 구하는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앞에 올바르지 못하였다.
1995년부터 우리나라의 범죄예방을 위해 좋은 자리를 다 내어 놓고 사재를 털어 황무지를 일구어 2,000여명의 비행청소년들을 교화시키며 살아오신 목사님의 삶에 비해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바라봐주는 장미꽃을 피우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관점일 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름 없는 풀꽃이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하나님이 보실때는 다 동일하게 아름다운 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는 아름다운 장미꽃을 피우기보다 호젓한 산속에 추운 겨울을 이기고 나온 노오란 민들레 꽃 한송이를 피우기로 선택하였다.
이곳에 와서 만난 아이들은 부정적 사고와 공격적인 행동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재판을 받고 온 아이들을 첫날 입소상담을 하면 “나는 별로 큰 잘못이 없어요. 공범은 나갔는데 난 억울해요! 친구땜에 그랬어요! "나는 아무리 해도 변하지 않을꺼예요! 라고 소리치며 울거나 화를 내었다. 대부분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거나 또 새아버지. 새엄마와 살거나, 보육원에 맡겨져 살다가 온 아이들도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환영 받고 부모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할 그 자리에 부모의 학대와 방치. 거절감으로 인해 분노가 쌓여 시시때때로 폭발하는 아이들이었다. 그 분노로 폭력. 절도. 무면허로 폭주하며. 사기. 성폭행, 방화 등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이곳에 오는 것이다. 이곳 아이들은 자기보호 본능이 뛰어나 자신의 잘못을 말해 주어도 부인하거나 합리화시키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3개월이 지나니 아이들에게 쏟는 에너지에 비해 별로 나아져 보이는것이 없는 것 같아 허탈해졌다. 그래서 "목사님!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변화 되었을까요? 라고 물으니 "그래도 한 영혼의 변화를 위해서라도 이 일을 해야 합니다! 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울타리도 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사랑해 주어도 그런 마음은 전혀 모른 채 종종 도망간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시며 고생하시는 목사님은 괘씸하고 화가 나실텐데도 기다려 주고 용서해 주시는 모습은 정말 예수님을 닮은 마음이셨다. 이로 인해 이곳에서 용서란 ‘이론’이 아닌 ‘삶의 실제’가 되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예전에는 “오래 참는것”이 사랑의 장식어로 그냥 첫 머리에 넣은 것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오래 참는것이 사랑에 있어 우선순위라는 것을 삶으로 경험하며 배우게 되었다.
하루는 진수가 입소한지 5일만에 도망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와 준 것이 고마워 소년원에 보내지도 않고 연장도 안하고 용서해 주었다. 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었다. 조금만 아프다고 하면 왕복 1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한주에 2번씩이나 병원에 데려갔다. 또 따로 불러서 먹을 것을 주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잘 생활하라고 타일렀다. 그런데 앞에서는 잘하는 척 하면서 뒤에서는 계속 아이들을 때리고 옷을 뺏고 군림하는 행동으로 벌점은 매 주 높아져만 갔다. 어느날 밤에는 새로 들어온 신입을 시켜 동네 가게에 가서 담배를 훔쳐오게 하였다. 그날 아침예배를 마친 후 모든 관물함을 일제히 검열하였다. 진수 관물함을 열어보니 많은 옷들과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 혹시나? 하고 정돈된 옷들을 앞으로 끌어내고 뒤로 손을 넣었다. 그곳에서 담배 3갑이 나왔다. 진수는 계속 부인하며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여 수갑을 채웠다. 진수는 벌떡 일어나더니 수갑 찬 손으로 창문을 내려쳤다. 이젠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소년원으로 송치하기로 마음 먹었다. 소리지르며 울고 있는 진수에게 “진수야! 너를 사랑하는데도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몰라주니? 라고 하니 진수는 “내가 아버지 사랑도 모르고 엄마 사랑도 모르는데 어떻게 원장님 사랑을 알겠어요? 난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죽으려고 약먹고 손목 끊고 했단 말예요. 난 죽어버릴꺼예요! 세상에서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단 말예요! 라고 하며 울부짖었다.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진규를 바라보았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무장경찰 두사람이 아이들 생활관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나는 진수를 소년원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백차를 돌려 보내고 진규를 다시 끌어 안았다.
5년전 2월에는 받아주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들을 사정 사정하여 3명을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등록금과 교복. 체육복을 맞춰주고 아침마다 먼저 밥을 먹여 차비와 용돈을 줘서 학교로 보냈다. 2주가 지난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였다. “원장님! 빨리 학교로 와 보셔야겠습니다. 아이들 세명이 다 없어졌습니다! 아이들은 반이 다 다른데 한꺼번에 사라졌다고 하는게 아닌가! 너무나 황당했다. 나는 하던 일손을 멈추고 학교로 달려갔다. 각 각 세분의 담임선생님들을 만나 간곡하게 선처를 부탁하였다. 또 며칠이 지나니 이제는 훈육지도 선생님이 호출하여 학교로 갔다. 선생님은 학교 아이들이 쓴 건의사항을 여러장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학생들이 우리아이들에게 폭력. 담배심부름. 갈취. 절도 등의 피해를 본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비행청소년을 아들로 둔 어머니로서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며칠 후 저녁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한명이 오지를 않았다. 밤새 가슴을 조리고 기다리던 다음날 아침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우리 딸이 한 반에 있는 남자 친구라고 치킨가게로 데리고 와서 건넛방에 자게 해 주었어요. 그런데 아침이 되어 가게에 나가보니 어제 저녁 금고안에 넣어 둔 150만원이 없어졌어요! 그 아이가 해뜨는마을에 산다는데 지금 어디있어요? 정말 말이 안 나왔다. 공부할 기회를 주기 위해 어렵게 학교를 보냈는데 절도와 도주까지 ..... 결국 학교로 부터 세 아이의 학적부를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몇 달 후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원장님! 지금 저는 너무나 많은 후회를 하고 있어요. 저에게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 제가 해뜨는마을에 있을때는 그곳이 얼마나 좋은곳인지 몰랐어요. 지금 저는 소년원에서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고 있어요. 나가면 꼭 찾아뵐께요. 이 사건은 아이들에 대한 기대에 큰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진심으로 간절하게 훈계를 해 주어도, 또 필요한 것들을 주어도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때 뿐인 것 같다. 진표도 그랬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올바로 인지하고 교정할 수 있도록 간곡하게 타이르는 말에 눈길을 피하며 마음깊이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싸우고 때리고 생활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할 때마다 훈계하고 타이른다. 5번째의 반성문을 쓰게 되었을 때 자신도 염치가 없었는지 자기 이름 옆에 피 묻은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진표는 5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여 보육원에 맡겨졌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학교가 끝나면 보육원에서 운영하는 차 공업사로 가서 한달에 200대 이상 세차를 하고 10만원을 받았다. 원장님은 저축해 주겠다고 하며 그 중에 만원만 진표에게 주었다. 그렇게 살던 진표는 중2때 보육원을 가출하여 싸우고 남의 돈과 물건을 뺏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뺏은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서 밤중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협하며 신호와 차선을 무시하고 역주행하는 스릴을 즐겼다. 그러면서 무면허. 폭력. 공갈. 갈취. 사기 등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그러다 소년원을 들어갔지만 나온 후에도 똑같이 돈을 뺏어 팔에 칼라 문신을 하고 술과 담배에 절여 살면서 낮에는 자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반복하다가 이곳에 들어왔다. 하루는 진표의 일기를 보았다.
오늘 아침 승기와 싸우고 있는데 말리는 아이들을 때리고 벽과 문을 주먹으로 쳐서 손목이 부러져 금방 부어 올랐다. 선생님은 바로 나를 데리고 응급실로 가셨다. 다른곳에서 싸웠을때는 수갑을 채우고 때렸는데 해뜨는마을에서는 5번이나 싸웠는데도 그때마다 반성문만 썼다. 다시는 싸우지 말라고 타이르시며 아무런 벌도 주지 않고 용서해 주니 이상했다. 지금까지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어 정말 이상한 생각이 든다. 아니, 용서해 주는 척 하다가 언제 소년원으로 보낼 것만 같아 두려웠다. 2주일전에 사감선생님이 사라졌다. 원생들이 선생님께 반항하고 대들고 말을 듣지 않아서였다. 원장님께서는 그동안은 선생님께 반항하고 생활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소년원으로 송치한다는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며 원장님이 잘못했다고 하셨다. 이제부터는 꼭 약속을 지킬것이라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광고를 하셨다. 그런데 며칠 후 나는 또 다른 원생에게 욕설을 하며 폭력을 하려고 하였을 때 원장님이 오셔서 몸싸움까지 가려던 사태는 끝이 났다. 이번만큼은 정말 소년원으로 갈 것 같다. 원장님이 대엽아! 그동안 네가 많은 잘못을 하여도 다 용서해 주었는데 또 그러니? 너는 너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려고 하니? 하셔서 "소년원으로 가겠습니다“ 고 하였다. 원장님은 진표야! 나의 목표는 너를 소년원에 보내는 것이 아니야! 네가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사는 거야! 그동안 너는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겠니? 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릴때부터 부모님께 버림받고 살았는데 이 세상에 누구를 믿어요?!! 저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안 믿어요!! 라고 소리쳤다. 원장님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그래!! 대엽아! 정말 그렇겠다! 정말 아무도 안 믿어졌겠다! 그래.... 원장님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아시는듯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셨다. 참 이상했다. 나는 20년동안 한번도 이런 대접을 받아 본적이 없기에 더욱 의심은 깊어져만 갔다. 원장님은 다음날 ”아무리 생각해도 대엽이를 소년원에 보낼수가 없습니다. 내가 한 약속을 지키기 못했기 때문에 원장직을 내려놓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수갑을 차고 1시간동안 성찰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셔서 나는 깜짝놀라 제가 소년원으로 가겠습니다“ 라고 하니 원장님은 수갑을 차셨다.
나는 그때 난생처음으로 한줄기 믿음이라는것이 밑바닥에서 피어오르는것 같았다.
목사님도 항상 따뜻한 사랑으로 대해 주시고 추가건이 또 8건이나 있어 퇴소하면 바로 체포되어 교도소로 가야 하는데 바쁘신데도 나를 데리고 검찰청으로 가서 조사를 받고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또 지난 생일날에는 목사님께서 선물을 주시고 원장님, 선생님들이 생일 잔치를 열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소중한 존재로 대우 받아본 경험들이 건강한 자아상을 형성한다. 그래서 성장할 때 접촉은 너무나 중요하다. 가족상담가 “ 버지니아 새티어”는 한 인간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4번,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8번, 그러나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12번의 허그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허그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경직된 자세로 두팔을 늘어트린 채 그냥 서있거나 또는 어색하게 피한다. 한번은 기현이 아버지가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면회를 왔다. 아버지에게 기현이를 안아주라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만히 서 있었다. 나중에 면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다시 한번 안아주라고 강권하니 엉거추춤 하며 억지로 흉내만 내었다. 그 주간 기현이의 저널에 “이 주간의 좋았던 일” 에 “아버지가 면회를 오셨다. 그런데 나를 처음으로 안아 주어 너무나 행복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상점을 받아야 외출을 갈 수 있는 규칙을 깨고 영수는 벌점이 높은데도 이가 아프다고 하여 치료차 외출을 보내 주었다. 그런데 들어올때 마다 반입 금지된 사탕을 몰래 가지고 들어와 다른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니코틴 중독이 설탕중독으로 가기 때문에 바깥에서 피우던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 다들 사탕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외출갔다가 온 영수의 소지품을 확인해보니 역시 사탕이 가득 든 봉지가 나와 아버지에게 돌려보냈다. 다음날 생활관에 가니 준영이는 “원장님은 사람차별 하잖아요! 기분나쁘게! 라며 항의했다. 어떤일로 차별 받는다고 느끼냐고 물어보았다. 남수는 사탕가지고 들어왔는데도 원장님이 허락해 주고 재승이도 어저께 외출 갔다 와서 사탕을 애들에게 다 나눠 주었어요. 그런데 저는 돌려보냈잖아요? 라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준영아! 너가 그동안 외출갔다 올때 마다 사탕을 몰래 가지고 들어온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너에게 한번도 말한 적이 없어! 몇 번 계속되어서 오늘은 작정하고 돌려보낸 거야! 너는 벌점이 많아서 외출을 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여러번 외출을 보내 주었으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는 커녕 사탕 못가지게 했다고 항의하면 앞으로는 외출을 보내지 않을께! 그러면 불평거리가 없을게 아니야!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오히려 불평하니! 라며 나무랐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얼마나 요구가 많은가? 얼마나 불평이 많은가? 죄로 인해 마땅히 영 벌 받을 나를 구원해 주신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 감사하기보다 다른 것을 더 요구하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회개의 눈물이 흘렀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종종 아이들과 똑같은 나의 모습을 보게 하신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아이들을 위해 나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갈수록 그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하시려는 계획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하셨다.
아이들이 반복해서 생활규칙을 어기고 문제를 일으켰을 때 네가 그랬느냐고 물으면 철저하게 거짓말로 방어벽을 높인다. 아무리 아이들을 사랑하고 존중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하나님, 저는 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아이들이 예배와 찬양을 통해, 또한 강의와 상담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던 아이들이 잘못을 고백만 하면 용서받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는 과정에 함께 서 있으면서 낙심되었던 마음은 다 날아 가버리고 벅찬 기쁨과 보람이 밀려온다.
그래! 힘들어도 어려워도 이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 이유야! 아이들이 조금만 변화가 되어도 뛸듯이 기쁨이 솟는것 같이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그러시겠지!
그동안 가정에서 잘못 양육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며 마음대로 살아온 아이들이지만 한 생명 한 생명이 너무나 귀중한 존재들이다. 드루몬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때 가장 멋진 순간들! 그리고 가장 진실하게 살았던 순간들은 사랑으로 무엇인가를 했을때이다” 라고 했다. 이들이 먼 훗날 청소년기를 추억할 때 방황하던 10대에 해뜨는마을에서의 삶이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오늘도 황폐한 아이들의 밭에 돌을 골라내고 사랑과 진리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