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포로생활 捕虜生活
오후 신시(申時) 무렵. 고비사막의 뜨겁던 햇살이 머리맡을 조금 벗어났다.
모래 언덕배기 몇 곳은 그늘이 살짝 드리워지기도 한다.
사막 가운데에서 백 장제를 유지하며 남쪽으로 이끌리어가는 한 무리의 포로들.
벌써 7일째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물도 마음껏 마셔보지 못했다.
신발도 없는 맨발에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걸친 가죽옷들은 여기저기 해어져 거지꼴이다. 상거지 몰골이다.
벌써 5백여 리를 그렇게 이끌러왔다. 앞으로 일 천리(一千里)는 더 가야만 한다.
호송 군사들은 가차(假借) 없다. 인정사정(人情事情)이 있을 리 만무(萬無)하다.
“모두 일어난다, 앞줄부터 점호 시작”
“하나, 둘, 셋, 넷….”계속 이어진다.
먼 하늘에는 까마귀 몇 마리가 큰 원을 그리며 날고 있다.
무언가 냄새를 맡은 것이다.
“백 하나, 백 둘, 백 셋, 백 넷, 끝” 점호 담당 군사가 외친다.
“왜 두 명이 모자라지?”
“두 명은 쓰러진 채 숨을 쉬지 않습니다”
시검 담당 병사의 시검(屍檢)이 끝나자, 손과 발에 묶었던 밧줄을 풀어준다.
두 구(軀)의 사체 死體는 비로소, 이승의 신체구속 身體 拘束에서 해방되었다.
두 구의 시체는 그냥, 사막 한가운데 두고 바로 출발한다.
사막의 낮 기온이 너무 높으니 정오 전후 2 시진을 언덕배기 북동쪽 그늘에서 쉬었다가, 오후 이동 시간에 출발하는 것이다. 이제 술시(戌時)까지 또 걸어야 한다.
사람 무리들이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느새 까마귀와 독수리 떼가 사체 곁으로 날아든다.
어둠이 내려와 주위가 어두워져 앞 사람의 손가락이 희미하게 보일 때쯤,
“모두 제자리에 앉아 쉰다.”
호송 책임자인 백장 百長의 명령에 모두 그 자리에 앉았다. 술시가 되자 낮의 그토록 뜨거웠던 열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차가운 기온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차가운 밤의 북쪽 한풍을 막을 수 있게끔 북쪽 모래언덕을 등지고 남향으로 자리를 잡은 이곳이 오늘 야영지다.
“형은 보고 왔니?” 걱정스러운 어머니 알지의 물음에
“예 피곤해 보여도 괜찮아요, 어머니 걱정을 하는데요” 도리어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형의 안부를 전하는 윤이다.
이제는 ‘알지’도 ‘왕자’도 아무것도 아니다. 옆의 다른 포로와 똑같은 처지다.
포로로 잡혀 온 다음 날 알지와 왕자가 포승줄에 묶인 것이 안쓰러워 포승줄을 풀어달라는 청을 한 휴도왕의 충신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참수당하였다.
포로들 간에는 신분이 없다는 이유다.
이전의 신분은 포로가 되는 순간 모두 사라진다.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그 순간부터 왕도 장군도 병졸도 똑같은 하나의 포로고 노예인 것이다.
이전의 신분이나 계급은 물론, 아예 인격체 자체가 사라지고 없다.
포로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포획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처분이다.
포로끼리 이전의 호칭이 오가고, 또 신분 身分을 가린다면 이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호송자와 포로들이 대립하는 양상이 된다.
성질 고약한 호송 조장을 만나면 오히려 신분이 낮은 포로에게 윗사람을 때리고, 하대(下待)하도록 만들고, 이를 잘 따르는 포로에게는 상을 주기도 한다.
이전의 유대감(紐帶感)을 끊어 버리고 서로 간에 불신을 조장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단호하게 처분해 버린다.
이제 알지도 단순한 하나의 여자 포로요, 왕자도 일개 어린 포로일 뿐이다.
모두 한(漢)의 수도 서안(西安)에 끌려가 노예 생활로 생을 마감해야 할 운명이다.
남자아이의 기준선은 수레바퀴의 높이로 정한다.
일반 마차의 수레바퀴의 높이가 4자 정도가 된다. 일반 성인의 가슴에서 어깨높이 수준이다.
그러니 수레바퀴 옆에 세워 바퀴보다 키가 크면 성인으로 인정되고, 바퀴보다 적으면 아이로 판정한다.
일반적으로 14세가 되면 수레바퀴의 크기와 비슷해진다.
군 입대가 가능한 용사로서의 신체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제도 아직은 성인이 되지 못한 키 높이지만 어느 정도 덩치가 있으니까 남자 포로와 함께하고, 동생 윤은 더 어리니 밧줄에 묶지 않고 어머니가 속한 여자 포로 패에 함께 배속되어, 쉴 때는 병사들 눈치를 보며 잠시 이쪽저쪽 다닐 수 있는 조그마한 자유는 있었다.
모자간에 대화는 일상적인 내용 같아 보이지만 실은 양쪽이 모두 상당히 좋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아이와 체력이 약한 부녀자가 거친 사막을 7주야 동안 쉬지 않고 손과 발목 한 쪽 씩을 묶인 상태로 5백여 리를 이끌려 왔으니 그 고초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따라서 각자 후유증도 상당하다.
발바닥은 부르트고 온몸 여기저기 생채기투성이다.
몸은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두 눈은 아직 살아있다. 동족을 배반하고 적을 불러들여 아버지를 암살하고 아군을 유린한 곤야왕을 생각하면 억울하기 그지없다. 복수심만 불타오른다.
처음 3일간은 걸어가면서도 울고 누워서도 울다 지쳐 잠들었다.
비명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절차는 불구하고 시신 屍身마저도 돌보지 못하고, 자신은 힘없이 이렇게 적군의 포로로 잡혀 처량하게 이국 異國 땅으로 이끌러 가는 처지라니, 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나 어머니와 동생이 있고, 원수에 대한 복수심에 마음을 다잡아본다.
한 군(漢軍)들은 포로 호송(護送)을 하면서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서두르지도 않고, 빨리 가지도 않는다.
포로들의 호송 과정, 그 자체가 포로들을 길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섣불리 길이 든 포로가 성질을 부려 도착지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아니면 몸을 다쳐 앓아눕는다거나 하면 큰 손실이다.
그러니 성질은 주인 말을 잘 따르게끔 부드럽고 유순하게 개조 改造하되, 노동력을 상실하지 않을 만큼의 기력 氣力은 남겨 놓아야만 된다.
그러니 포로 이송로 移送路도 사막 중간이 아니라, 대체로 사막과 초원지대의 경계선에서 움직인다. 사막은 사막인데, 모래언덕 하나 정도만 넘으면 아쉬운 대로 풀이 조금씩 자라는 반 목초지를 이웃하고 이정표를 잡고 있다.
이유는 사막에서 제일 중요한 물을 확보하기 쉬운 것과, 포로들을 적당히 힘을 뺄 수 있게끔 기온변화가 적은 곳을 나름대로 선택한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냥 물을 주면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목이 마른 자에게 물을 주면 고맙다는 인사를 듣게 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분 區分 점이다.
또한, 감시하기도 편리하다. 목초지대 쪽만 감시하면 된다.
포로들이 아무리 다급하다 하더라도, 백골 白骨만이 기다리는 사막 방향으로는 도주 하지는 않을 터.
11. 노예생활
드디어 장안 長安에 도착하였다.
흉노의 왕족이나 귀족 출신 포로가 120여 명 되었는바, 이들은 모두 황궁 소속으로 배정되었고, 나머지는 전투에 참여한 군벌(軍閥)이나 대신들의 가속(家屬)으로 분산되었다.
일제와 윤은 황궁 마구간의 말을 돌보는 말 사역 事役 노예로 배정되었다.
드넓은 초원을 마음대로 마구 달리던 대 흉노의 태자와 왕자가 하루아침에 마구간의 말지기 노예가 되다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다른 일보다는 말과 함께하는 일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전까지 초원에서의 생활은 말은 잠에서 깨면, 바로 만나고 잠들기 전까지도 항시 함께하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일단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적은 사역 일이다.
다른 잡일을 담당하게 되면 늘 감시의 눈초리가 떠나질 않는데, 마구간은 조장과 책임자 한두 명뿐이며, 그나마 자주 자리를 비우는 편이라 간섭이 적어 다른 노예들에 비해 지내기가 수월한 편이었다.
그렇게 4년 정도 시간이 흘러가니, 일제와 동생 윤도 말 지기에 대한 업무처리가 상당히 숙달되었다.
때마침 황궁의 잔칫날이 다가와 잔치 연회 도중에 말을 전시하는 행사를 하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비상 체제에 들어간 마부 패들 긴장감이 팽팽하다.
보통 때의 서너 배나 열심히 마구간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말을 씻기고 닦고 정신이 없다.
드디어 행사 날 당일,
각자 말 배속 담당자들이 말 고삐를 잡고 황제 바로 앞에서 행보하게 된다.
일제도 다른 노예들과 같이 자신의 차례가 되자 말 고삐를 잡고 황제와 대신들의 앞을 행보하게 되었다.
다른 마부들은 멀리서나마 황제를 알현할 기회라 무척 신경을 쓴다.
황제 및 황후와 귀족들의 휘황찬란한 옷차림과 귀한 장식품, 고관대작 자녀들의 뛰어난 외모 등을 곁 눈길로 몰래 훔쳐보기에 정신이 없다.
그런데, 일제는 백마의 말고삐를 움켜쥐고 말과 같이 걸어가면서도 옆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가슴을 펴고 앞만 똑바로 바라보고 걸어간다.
그 모습이 한무제의 눈에 띄었다.
주위를 이리저리 바쁘게 곁눈질하며 걸어가는 다른 마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방금 백마와 같이 지나간 마부가 누구냐?”고 주위에 물어보니 잠시 후,
“흉노족 출신 휴도왕의 왕자 중 한 명”이라는 답이 왔다.
그러자 황제는 “즉시 데려와라”라고 명령을 내렸다.
행사 도중 갑자기 황제의 호출을 받자 마방(馬坊)은 긴장감이 흘렸다.
이때까지 이러한 전례(前例)는 없었다.
마방 책임자는 먼저 일제의 겉모습과 옷차림 세부터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행사 도중 실수나 결례한 점은 없었냐”고 마방 책임자는 물었지만, 일제로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리둥절하게 황제의 면전에 서게 된 일제.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너는 왜 자신이 이 자리에 왔는지 아느냐?”
“...”
머뭇거리는 일제. 답을 못하고 있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대답할 수가 없다.
“다른 마부들은 걸어갈 때 모두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가는데, 너는 어찌 주위를 살피지 아니하고 앞만 보고 걸어갔느냐?‘
그제야 본인이 호출당한 연유를 대충 짐작한 일제,
”저는 제가 맡은 본분인 말 사역과 말 전시에만 충실했을 뿐입니다, 주위의 일은 저와는 관계없는 사항으로 저는 제가 담당한 할 일만 하였을 뿐입니다” 또렷한 음성으로 당당하게 말한다.
이 말을 들은 한무제는 속으로 ‘당돌한 녀석이군, 그래도 자기 직분에 충실히 하는 젊은이로다’라고 생각하고는,
“오늘부터 자네는 노예가 아니라, 마방의 총책임자다.”라는 황명을 내렸다.
얼떨결에 비천한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고, 마방의 총책임자가 된 일제, 마방의 총책임자는 마방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특히, 황제와 황자들의 말을 직접 관리하는 것이 주 임무다.
본시 흉노의 언지산에서부터 말과는 친숙하였는데 4년 가량을 말 관리 업무만 담당하였으니 말에 관한 일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일제다. 그러니 마방의 총책임자로 업무를 관할하여도 손색이 없다.
어느 날 사냥을 하려 나서는 한무제는 자신의 말이 이전보다 더욱 튼실하며, 마상 주인의 뜻도 잘 알아듣고 깨끗이 잘 관리 되어있는 것을 보고 흡족하기 그지없다.
사냥을 마친 한무제는 일제를 불러 황제 자신의 최측근 근위병으로 발령 내렸다.
즉, 황제의 호위무사다.
파격적인 인사 발령이다.
이미 나이가 18세에 달하는 일제는 키도 일반인들보다 한 뼘 이상 더 크고 다부진 체격에 훤칠한 용모를 갖추고 있었다.
동이족(東夷族) 흉노의 타고난, 늠름한 체격이 왜소한 하화인 들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노예 출신으로서 이제 항시 황제의 곁에 가까이 있으며, 황제의 침실까지 드나들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른 일제, 황은 皇恩에 감사하며 담당 업무에 소홀함이 없다.
- 11. 元甫
첫댓글 노예들의 호송 과정이 눈앞에 그려지듯 보이네요.
일제의 앞날이;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