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가고 가을이
최 화 웅
태풍 ‘솔릭’이 지나간 자리에 물안개 피고 바람 불며 장대비가 쏟아졌다. 존 오크너의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더불어 나는 2018년 여름과의 별리(別離)를 나누었다. 지루한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여름도 이제 다 지나갔다. 영원한 것은 없나보다. 8월말부터 9월초에 걸쳐 부산과 경남 일원에서는 다양한 콘서트를 통해 새로운 계절, 가을을 맞았다. 비를 뿌린 8월 마지막 주말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아트뱅크코레아 창립 20주년 기념음악회의 존 오크너(John O'coner) 리사이틀에 갔었다. 부산 공연 사흘 뒤에는 투석치료를 끝내고 옛 직장동료 곽 마르꼬 부부와 함께 창원으로 향했다. 낙동강 하구에는 오랜만에 맑은 하늘에 석양길이 아름답게 펼쳐졌고 저만치 김해평야 위로 유나의 해맑은 표정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창원 용지호수에는 연꽃이 만발하고 둘레길 따라 지난 추억이 아롱졌다. 백제 계삼탕과 아보가토커피를 나눈 뒤 저녁 7시 30분 성산 아트홀에 올라 국내 최대 편성의 창원시립교향악단이 마련한 특별기획 연주회 ‘거장과의 조우’에서 존 오크너를 다시 만났다. 그를 만난 것은 아트뱅크코레아 김문준 대표의 배려 덕분이었다.
‘피아노의 시인’ 존 오크너는 1947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더블린은 시인 예이츠와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고향이고 지난 날 유럽 취재 때 기네스흑맥주를 실컷 마시며 슬픈 아일랜드의 역사를 더듬었던 곳이기도 하다. 리피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더블린에는 영국 성공회와 가톨릭신자들이 입으로는 평화를 반복하면서 실제로는 역사적 갈등과 교리에 따라 팬스를 치고 등을 돌린 채 돌아서서 옹졸하게 살아가는 곳이다. 올해 일흔두 살의 나이로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존 오크너는 객석을 향해 농익은 연주로 인생을 풀어 나갔다. 부산공연에서 하이든의 소나타와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존 필드(John Field) 3개의 야상곡과 베토벤 소나타 13번 ‘비창’을 연주하고 창원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존 오크너와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 첼리스트 송영훈의 협연으로 흔히 트리플 콘체르토라고 일컫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3중 협주곡을 연주했다. 장엄하고 서정적인 선율이 싱그럽게 다가와 우리를 압도했다. 2부는 김대진의 지휘로 창원시향과 존 오크너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했다. 화려한 스케일, 호쾌한 타건 넘어 심오함과 데리케이트한 서정이 큰 감동이었다. 존 오크너를 보면서 지난날 피아니스트 한동일을 떠올렸다.
베토벤은 괴테와 실러와 공감한 혁신가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부르짖던 프랑스 혁명의 시대정신을 이어받았다. 존 오크너의 손은 베토벤의 뒤를 좇듯 스타인웨이의 타건을 통해 서정적 선율과 거침없는 감정을 풀어놓았다. 거장들의 연주회는 연잎 위에 구르는 빗방울처럼 영롱한 선율이 우리의 호흡을 멈추게 했다. 1, 2부의 예고된 연주가 모두 끝나고 객석에서 박수가 끊이지 않자 몇 차례 커튼콜에 응해 쇼팡의 녹턴과 스크리아빈의 왼손을 위한 녹턴 두 곡을 연주했다. 그는 26살 때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1위를 차지하고 디터 베버와 빌헬름 캠프를 사사했다고 한다. 그는 런던 심포니, 로얄 필하모닉, 비엔나 심포니, 프랑스 내셔널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카네기홀, 링컨센터, 케네디 센터 같은 유서 깊은 홀에서 두루 연주했다. 존 오크너는 마스터클래스와 세계 유수의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비 갠 9월 첫 주일 오후 아내와 김해로 향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가을하늘의 새털구름 사이로 사랑의 추억이 언뜻 언뜻 스쳤다.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한 해반천변을 따라 김해문화의 전당을 찾았다. 가을 정취가 흐르는 옛 가야의 왕도에서 조수미 콘서트가 열렸다. 사위와 딸의 티켓 예약으로 조수미 콘서트에 나섰다. 가을장마 끝에 옅은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푸른 하늘이 반가웠다. 카라얀은 조수미를 두고 “신이 내린 최상의 선물”이라고 했고 플라시도 도밍고는 “조수미가 최고 역량의 소프라노라는데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빈 메타는 “100년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한 금세기 최고의 콜로라투라의 주인공 조수미와 함께 무대에 오른 것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콜로라투라(coloratura)라는 말은 누구나 낼 수 없는 가장 높은 음역의 맑은 소리를 내는 여자 성악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세계 음악계가 평가하는 조수미의 경쾌한 몸놀림과 창법이 달콤하고 서정적이며 완벽한 호흡과 테크닉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김해 문화의 전당 마루홀은 3층 높이에 1503평이 넘는 규모로 1층에 오케스트라 피트와 휠체어석 10 자리를 포함한 846석, 2층 휠체어석 6 자리를 포함한 323석, 3층 295석으로 휠체어 10석을 포함 모두1,480석으로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벽면에 설치된 르네상스풍 발코니석은 1층 80석, 2층 68석, 3층 74석 등 모두 222석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겼다. 전석 매진으로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 앞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관객을 홀리는데 부족 함이 없었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최영선이 지휘하는 KNN방송 교향악단의 오페라「루슬란과 루드밀라」서곡 에 이어 샤를 르코크의「파리에서의 멋진 나날들」과「선구자」,「세빌리아의 이발사」중에서 ‘나는 거리의 만물박사’와 바트 하워드의 ‘나를 달에 데려다 주세요’ , 오페라「투우사」중에서 ‘엄마’ 등을 노래하고 2부에서는「아리랑 광시곡」연주에 이어「가고파」,「꽃구름 속에」를 노래하고 뮤지컬 배우 윤영석과 함께「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중에서 ‘오늘밤’과「미션」중에서 ‘넬라 판타지아’ 오페라「라 트라비아타」중에서 ‘아, 그대였던가...언제나 자유롭게’ 등을 열창했다. 마지막 앵콜곡으로「그리운 금강산」을 자신의 피아노 반주로 노래할 때는 청중들이 열광했다. ‘들녘에는 가을의 기별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그 좋은 시절, 그 가을이 선율을 타고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첫댓글 국장님 초가을 밤의 음악회 너무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좋은 시간 가지신 것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몬씨, 다들 편안하시죠?
저만치 있던 가을이 가까이 다가와 보입니다.
부디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