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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신앙의 출발점, ‘세상’이 그 종착점- ‘떼이야르 드 샤르댕’ 사상 연구자 정태옥 선생 인터뷰
제천 산골짜기, 이름도 아름다운 곳 ‘별수아골’에서 과학과 종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만났다. 50여 년간 ‘떼이야르 드 샤르댕’ 사상을 연구해온 정태옥 선생은 종교가 스콜라철학에 기반을 둔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일원론으로 세상 만물을 인식하고 성경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원론으로 세상 만물을 인식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하면 정말 이천 년 전 예수가 했다는 말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믿자니 의심스럽고, 안 믿자니 불경스러워 혼란스런 신앙을 이어가던 이들이 만나 과학과 종교, 그리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신성국 신부)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의 프로필을 보니 신학, 지질학, 고생물학을 연구했고 소르본 대학에서 포유류 진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지질학에도 큰 업적을 남기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업적입니까?
▶ (정태옥 선생)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북경원인의 발견’입니다.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여 리 떨어진 석회암 동굴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30만 년 내지 40만 년 전에 생활했던 인류의 조상들이 살았던 주거지가 발견됐고 거기서 ‘불’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동물 중에 불을 사용했던 유일한 동물이 인간입니다. 한 가족이나 씨족의 사회성은 불을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따라서 불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인류의 의식 수준이 진화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됩니다. 그 전까지는 번개 등의 자연발화가 많았습니다.
불을 사용해 고기를 구워서 익혀 먹으면 질기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지금은 불에 구워 살균작용까지 생각하는데 그때는 불에 굽고 나면 부드러워지니까 우선 먹기가 좋았을 겁니다. 또 불을 사용하면서 활동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털이 점점 없어지다 보니 추워서 가죽을 입었는데 불을 통해 온기 있는 생활을 하다 보니, 더 추운 곳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샤르댕 신부님이 이것을 발견했을 때가 1927년도, 20세기 초반이니 인류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진화론에 거부감을 많이 느끼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절 불을 사용한 흔적이 있는 주거지를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충격적인 발견이었습니다.
- 그 당시 샤르댕 신부님께서 지질학, 고생물학자로서 참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 선생님께서는 언제 처음으로 샤르댕 신부님을 접하셨습니까?
▶ 진화론을 처음 학문적으로 얘기한 사람은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 1744-1829년)’입니다. 프랑스 생물학자인데 그 당시만 해도 광물학, 식물학, 동물학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마르크가 식물학과 동물학을 합해서 생물학으로 처음 명명한 사람입니다. 이분은 찰스 다윈처럼 자연관찰을 통해 진화를 인식한 것이 아니라 동물학자, 식물학자로서 화석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찰스 다윈이 이글호를 타고 다닐 때는 라마르크가 쓴 ‘동물철학’ 이라는 책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중학교 1학년 생물학 시간에 라마르크에 빠졌습니다. ‘용불용설’, 즉 동물은 스스로 계속해서 사용하면 진화한다, 기린이 목이 길어진 이유는 높은 나무의 잎을 먹으려는 의지가 있어서 계속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생물 선생님께서 이런 라마르크의 설을 얘기했을 때 가슴에 확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샤르댕보다 라마르크를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잘 알고, 가르침을 많이 받았던 외국 신부님이 한 분 계십니다. 지대건, 메리놀의 제임스 데피노 신부입니다. 이 신부님은 1958년도에 뉴욕에서 서품을 받고 바로 우리나라로 오셨습니다. 이분께서 신학교에 다닐 때 샤르댕 신부님이 뉴욕에 유배돼서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아마 그때 지 신부님께서도 샤르댕 사상을 알았던 모양인데 그때까지 우리한테는 한마디도 안 해서 몰랐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골에 살고 농대를 다녀서 자연의 진화와 자연의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진화에 관심이 많던 대학 1학년 때, 지 신부님께 샤르댕 신부에 대해 아느냐고 물으니 잘 안다고 하는 겁니다. 그때 지 신부님께서 그와 관련한 책을 다 사주셔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 찾아보니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1951년 미국 뉴욕 ‘웬느 그렌재단’의 상임연구원으로 초청받아 가서 인류학 연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1955년에 미국에서 별세하셨습니다. 약 5년간 미국에서 마지막을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
▶ 제가 대학 다닐 당시 대구교구 이문희 대주교가 프랑스에서 서품을 받고 청주 내덕동 주교좌성당 보좌신부로 부임했습니다. 그 당시 이문희 대주교의 아버지가 국회의장을 지냈는데 국회의장 아들이 신부가 돼서 오니 가톨릭대학생들이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문희 대주교가 샤르댕 사상에 관한 책을 번역했습니다. 아버지인 국회의장 이효상 씨 이름으로 인간의 현상, 신의 영역 등 네 권의 책을 번역해서 내기도 했습니다. 이문희 대주교를 비롯해 그 당시 샤르댕 신부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콜라 신학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그 범위 안에서만 샤르댕을 해석해 놓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 스콜라신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샤르댕을 이해하다보니 한계가 많았다는 말씀이군요.
▶ 그 후로도 몇 분이 더 계셨습니다. 프랑스에서 샤르댕을 공부하고 왔지만 돌아와서는 번역만 했을 뿐 그 사상에 대한 해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앞이 캄캄했습니다. 스콜라 철학의 기본은 ‘존재론’입니다. 창조, 존재론, 이원론, 영혼과 육신, 선과 악, 하늘나라와 세속 등 샤르댕 신부님은 스콜라철학을 제일 싫어했습니다. 분리를 시켜 놓았기 때문이지요. 우리 성당은 성(聖)과 속(俗)이 분리 돼 있습니다. 성당 안에서는 성이고, 바깥은 속이라고 하니까 분리된 신앙생활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제가 실제 샤르댕 사상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유물론,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유물론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이것이 일원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서양사고는 전부 이원론이었는데 마르크스는 물질을 중심으로 해석한 일원론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학교, 성당, 가족 세 군데밖에 몰랐습니다. 그러다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여러 분야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친구들을 보니 가톨릭 신자들보다 인간적이고 실천적인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죠. ‘이게 도대체 뭔가, 우리 교회가 세계에서 최고의 도덕적인 집단인 줄 알았더니 우리는 그냥 말로만 떠들지 진짜 공장에 가서 힘든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구나’ 싶었습니다.
세상 고통에 함께 동참하고, 활동했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칼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신봉하는 것을 보고 마르크스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안에도 한계점이 있지만 지금까지 조로아스터교에서 시작된, 이원론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근 이천 년간 서양인들의 사고를 지배했는데 이것이 마르크스에서 깨지기 시작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일원론입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통해서 세상을 일원론으로 보기 시작하니 샤르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그렇다면, 샤르댕은 마르크스의 일원론과 관점은 좀 다르겠지만 일원론적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공통되네요?
▶ 스콜라 철학은 인간을 영혼과 육신으로 완전히 분리한 이원론입니다. 육신은 죽지만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영혼이 저승에서 머문다는 사상은 고대인들부터 전해온 영생관입니다. 수십만 년 전에 인류도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저승에 간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주변에 꽃과 같이 묻곤 했습니다. 그런데 물질의 생성과 소멸현상으로 세상을 해석하다 보면 영혼이라는 존재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종교가 환상, 관념이라고 하는데 진화론을 공부하면서 무생물에서 유기질이 나오고 유기질에서 생명과 생물이 출현한 과정을 보면 유물론이 맞습니다.
무생물인 우라늄은 우라늄을 나을 수 없습니다. 무기물질은 자기 개체의 존속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생물은, 가령 코스모스는 겨울엔 얼어 죽지만 씨앗에 자기가 자라나고 크는 정보를 다 넣어 남겨놓습니다. 겨울 동안 개체로의 성장은 없어지지만 정보는 살아있습니다. 봄에 다시 자라나고 태어납니다. 생물에서는 죽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생물에서는 개체의 존속이 불가능하지만 생물에서 개체는 정보를 통해 즉, DNA 정보를 통해서 연속시킬 수 있으니 생명은 무기물질을 획득한 불멸성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불멸성’을 모르니까 ‘영혼’으로 본 것입니다. 물론 유물론자들은 ‘DNA프로그램’이라는 정보의 또 다른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한계점이 있는데 스콜라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비물질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멸성이라는 것은 ‘개체의 연속성’이지 비물질 세계로써 종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세계입니다.
사실, ‘부활사상’도 이집트에서 제일 먼저 나왔습니다. ‘미라사상’입니다. 그 당시 파라오들은 죽으면 영혼은 다시 하늘나라로 가지만 언젠가는 이 세상에 부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라를 만들었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것이 저승이 아니라 현세입니다. 저승이 더 좋은 세상이면 왜 부활사상이 생겨 현세로 돌아온다고 했을까요. 부활사상은 현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는 오랜 시간 동안 ‘현세’,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질없는 세상’, 우리가 가야 될 세상은 저 세상, 저승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세상은 다 죄악 덩어리, 천국을 저 위에 만들어 놓고 강조하다보니 신자들에게 ‘현세’라는 것은 부정적으로 인식됐습니다. 열심한 신자일수록 세상을 바꾸는 노력, 악을 없애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악한 세상이라 사회참여나 정의의 문제, 행동에 대한 신앙인들의 의무와 책임은 강조가 안 됐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신학에서는 ‘사심판’개념이 있습니다. 죽어서 저승사자가 영혼을 데리고 염라대왕한테 갔을 때 잘했으면 천당에 가고, 잘못하면 지옥에 가고, 그 중간에 있는 사람은 연옥에서 보속하고 천당으로 간다는 이 ‘지옥’, ‘천당’, ‘연옥’ 개념이 이미 조로아스터교 교리입니다. 가톨릭 전통신학이 아닙니다.
저승에 살고 있다가 하느님의 완성된 세상이 오면 천당에 있던 영혼들은 부활하고 지옥에 갔던 영혼들은 완전히 소멸한다는 이 가톨릭 정신이 조로아스터교 이론입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을 해석한 것입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철학으로 예수님을 해석한 것이지 스콜라철학이 예수님의 기본정신은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3일 만에 부활합니다. ‘3일’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죽은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도 ‘삼일장’을 하지 않습니까, 삼일이면 ‘썩은 시체’가 됩니다. 완전히 썩은 생물이 살아났다는 것은, 결국 인간은 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정신정보의 연속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할 것이라고 했던 말은, 코스모스가 스스로 죽음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인간에 와서는 씨앗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가톨릭에서 ‘타락한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창조신학에서부터 왔습니다. 그러나 ‘원죄론’부터 히브리인들의 것이 아닙니다. 창조신화는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에 살던 원주민에게 구전되던 이야기가 수메르인들에 의해 점토판에 ‘길가메시 서사시’라고 기록됩니다. 거기 보면, 이름은 다르지만 창조설화와 노아홍수 이야기가 똑같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론에 유배를 가서 그곳 사람들이 갖고 있던 설화 길가메시 서사시를 창조설화에 기록한 것입니다.
- 그렇다면, 스콜라 철학 세계관과 히브리인들의 구원관이 다르다는 말씀입니까?
▶ 히브리시대 때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고 형제자매냐’ 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로써는 매우 놀랄 이야기입니다. 유대종교는 혈연중심, 가족중심, 씨족중심 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똑같습니다. 가족이 떠나면 다 끝나는 줄 알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누가 내 형제자매냐’ 했던 것은 혈연, 씨족, 가족을 뛰어넘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모습을 보이는데,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따듯하게 품어주는 모습과 ‘평화를 주러온 게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라고 말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톨릭에서는 한쪽만 봅니다. 모든 종교가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한쪽만을 강조하니 교회에 오면 아늑하고 따듯하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 정 선생님 말씀을 제 나름대로 해석하면, 교회가 개인구원만을 강조하지 말고 그것을 넘어서 나라와 민족, 세계평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령,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으면서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은데, ‘나만 눈감으면 내 마누라 내 자식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을 위해서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도둑질한다는 생각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깨라고 예수님께서는 당시 히브리인들을 질책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전 세계적으로 전해져 남아오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리스도교는 이미 끝났을 것입니다.
- 그런데 왜, 21세기 지금도 그런 사상에 머물러 있고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까?
▶ 사회주의 활동이 일어나고 르네상스 계몽주의가 일어났을 때, 교회는 그것을 연구하고 포용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트리엔트 공의회 때 완전히 문을 닫았습니다. 죄스러운 타락한 세상, 교회만이 구원할 수 있다면서 세상과 단절하고 더 고립된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자비로운 하느님의 집이다’라고 말합니다. 교황 요한23세 때 바티칸 제2차 공의회를 하면서 ‘세상은 자비로운 하느님의 집이다’라고 해 놓았는데 한국 가톨릭은 아직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교회는 자비로운 하느님의 집’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신앙의 출발점인 것은 맞지만 종착점은 ‘세상’에 있습니다. 샤르댕 신부님은 세상이 생긴 시작부터 과정을 보면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연구하고, 그러면서 왜 진화했는지 무엇 때문에 진화했는지 중점을 뒀습니다. 여기에 샤르댕 진화론의 핵심이 있습니다.
- (기자) 샤르댕을 이해하기 위해 마르크스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난 사회주의 실천가들에 의해 마르크스를, 유물론을 접하다보니 샤르댕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씀이네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학이 다시 보이고 예수님 말씀을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요?
▶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는 예수님을 매우 사랑했는데 그의 소설을 보면 ‘부활’이나 ‘전쟁과 평화’앞에서 매우 인간중심적입니다. 이분은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픽션(허구)으로 보았고 그 가운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한 것을 따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글자 하나 바꾸면 큰 죄악인 줄 알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메소포타미아에서 창세기 설화가 나온 것은 지질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의 사하라 사막 지중해 넘어 이베리아 반도부터 서북쪽으로 시베리아까지 제트기류가 흐르는 곳입니다. 현재의 사하라사막, 아라비아사막, 이라크사막, 중앙아시아로 오면 데칸고원에 고비사막까지, 만 년 전만 해도 여기가 낙원이었습니다. 숲은 아니었지만 낙원이었습니다. 지금 그 모래 속에 석유가 나오는데 이 석유란 것이 식물과 동물을 박테리아가 먹고 싼 ‘똥’입니다. 식물이 탄화된 게 ‘석탄’이고, 어떤 박테리아가 그것을 먹고 싼 똥이 ‘석유’입니다. 그래서 ‘똥개’라고 웃을 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박테리아가 싼 똥으로 문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천만 년 전만 해도 울창한 숲이었습니다.
일만 년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웠던 초원지대가 몇십만 년 전부터 점점 줄어드는 것, 지구가 점점 건조해지고 사막화되는 과정이 수만 년간 구전돼 옵니다. 그 과정에서 창조설화가 나오고 그것을 지질학자들이 발견한 것이지요.
가톨릭에서 말하는 구약에서부터 신약까지 모든 학문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재해석, 재정립하지 않으면 가톨릭은 존재위기를 겪을 것입니다. 유대교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종교로 나아가야지 우리끼리만 나눠선 안 됩니다.
-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샤르댕 사상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저 같은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 우리는 지금까지 스콜라 철학에 충실했던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교회는 다닐수록 답답한 게 많습니다. 믿자니 미신 같고 안 믿자니 불경죄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샤르댕 사상을 공부하다보면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샤르댕 신부님이 이 사상을 잘 정립해서 정리해 놓은 것이 아니고 전체 테두리만 해 놓았습니다. 젊은이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공부하면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도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샤르댕 신부 소개문을 보니, ‘과학과 종교의 조화를 꾀하고 나아가 우주의 미래를 예시함으로써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계로부터 예언자적인 신학자, 신화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떼이야르 드 샤르댕’을 다시 조명하고 부활시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며 시대적 소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교회 내적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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