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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도우시는 예벤에셀의 하나님 삼상7:3-14
한 해를 보내면서 하는 말들이 지난해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나 세월은 참 빠르게 지나고 보면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2022년 2월에 발생했던 러시아가 우크라아나를 침공한 전쟁은 벌써 3년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전쟁중이지만 트럼프가 선거공약에서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하루만에 끝내겠다고 했음으로 곧 종식되리라고 봅니다. 이 전쟁말고도 이스라엘과 하마스 헤즈볼라와의 전쟁은 아직도 세계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가운데 국내적으로는 대통령탄핵과 총리탄핵과 행정안전부장관, 국방부장관등 등 줄탄핵으로 말미암아 경제상황은 어느 해보다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연말이면 배당을 바라보고 상승장면으로 마감하지만 코스피지수는 연초에 비해 -9.63%로 마감했고 원달라 환율은 외환위기때 수준인 1500원 수준으로 치솟고 있습니다. 또 부동산시장 마저도 매물만 쌓여만 가는 것만 봐도 지난해는 정말 다사다난하였던 한 해 였는데 새해는 지난해 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는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해를 주셨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만약 새해가 없고 매일 똑 같은 날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한 세상일까 하면서 새로운 한 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각자 꿈과 소원을 기대하면서 새해를 맞이하지만 성경은 해아래서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들에게 새해를 맞이한들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정말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새것이라는 말이 합당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떴던 해가 내일 다시 떠오르고 지난해 왔던 계절이 올해에도 다시 오리니 무엇을 가리켜 새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말 새것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 것만이 새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올 한해에도 우리들을 보호해주실 것을 믿으면서 한 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알프스 산맥에는 풀이 풍부하여 목동들이 그곳에서 양을 치는데 목동들은 하루 종일 양들이 풀을 뜯는 동안에 낮잠 자기도 하고 피리 불기도 하며 때로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양들을 급히 나무 아래로 피신시키기도 하며 어떤 때는 갑자기 나타난 맹수와 싸우기도하며 때로는 낭떨어지기에 떨어진 양을 구하기 위하여 고생도 합니다. 정말 다사다난한 하루를 지내게 되지만 해질 무렵이면 산 위에 있는 목동은 산밑에 있는 목동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치는 소리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주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으니 주님을 찬양합시다” 이 소리는 산 아래로 널리 퍼지게 되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다른 목동들도 그 소리를 듣고 “주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주께 감사합시다” 화답하면서 하산을 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합니다. 알프스 목동들에게 다사다난하였던 하루를 마감하는 구호는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입니다. 목동들이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나 우리들이 한해를 마감하는 것이나 어쩌면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하루를 도와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목동들을 생각하실 때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렇다면 우리들도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들을 도와주신 하나님을 찬양 감사드리면서 새해를 맞이해야 되지 않겠는가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를 히브리어로 에벤에셀이라 합니다.
1. 새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2024년의 한 해는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탄핵건수가 8건으로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로 입법내란에 의한 탄핵정국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야당의 줄탄핵으로 인해 국민피로도는 말로 다할 수 없으며 범죄자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그들이 한 줄탄핵은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정치였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는 말씀이 반드시 이 거대야당에 응하리라고 봅니다. 대통령과 장관과 대통령대행하는 총리까지 탄핵하는 탄핵내란을 보면서 한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파멸케도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2025년에는 우리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보시면서 우리들은 정치불안을 통해 이 나라를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새해에도 우리를 변함없이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1)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 드립시다(삼상7:12)
BC 1050년경만 하여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의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조상들인 블레셋사람들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받으면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땅도 뺏기고 추수를 하면 곡식도 뺏기고 하나님이 궤도 뺏기는 늘 불안한 상태에 있었는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삼상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마음을 다해 주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으로부터 고난받는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배반하고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이나 아스다롯(아세라)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알은 농사의 풍요를 보장해 준다고 믿었던 남신이며 아스다롯 즉 아세라는 다산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던 여신이다. 주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농사풍요도 자녀의 생산도 주관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족속들이 믿던 신들을 믿어야 잘 살게될 것이라고 하나님을 배반하면서 이와 같은 우상들을 섬겼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고 블레셋을 통해 징계하신 바로 그 때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가 된 사무엘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우상없애는 일로 우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20:3-5) 3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사무엘 선지자는 그동안 은밀하게 섬겨왔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는 미스바 성회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금식기도를 하면서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만 믿기로 다짐하자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삶에서 우상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서 성회를 가졌다는 소식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또 쳐들어왔으나 이번에는 그들이 전처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주 우리 하나님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삼상7:8). 사무엘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며 기도하였는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가 오는 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치면서 우박이 떨어지니 아무리 강한 블레셋 군대라 하더라도 혼비백산하여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을 추격한 그 곳에 돌로 기념비를 세웠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주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7:12)는 뜻입니다. 그 후 블레셋은 사무엘이 사사로 있는 동안은 다시는 쳐들어오지 못하였고 그 후에는 빼앗겼던 에그론에서부터 가드까지 회복하였습니다(삼상7:14). 우상숭배를 제거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우상을 얼마나 숭배할까요? 새해 첫날 산마다 일출보려고 모여드는 사람들이 수백만명도 넘는데 그들은 자신들은 태양신을 섬기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태양신 섬기는 자들이 새해 새벽에 일출보러 나가는 것입니다. 아니 교회다니면서 우상을 숭배한다고? 네 교회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우상은 섬기지 않더라도 어느 때보다 정말 많은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요일2:15).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세상의 쾌락이든 돈이든 자식이든 아내든 남편이든 그 무엇이라도 예수님보다 더 좋아하면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속에 위와 같은 우상들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나와 관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상들은 결국 “나”인 셈이다. 즉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더 기쁘게 하면 결국 내가 우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알고보면 오늘날 교회 안에 예수님을 믿어도 이런 “나”라는 우상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하나님은 이런 우상숭배자들은 천국 갈 수 없다.
(고전6:9-10)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토색(속여서 빼앗는,사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날 한국교회의 많은 목사들이 자신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자들일 뿐만 아니라, 모든 교인들도 거의 다 자기 자신들을 위해 살아가는 우상숭배자들로 만들어 주님의 교회가 마치 막장 드라마 보다 더 못한 강도의 소굴, 범죄의 집단으로 까지 타락했다는 참으로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예수님 믿고 구원 받아 천국 간다고 주구장창 외치는 그 목사나 그 교인들은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할지라도 빛 좋은 개살구처럼 막상 그들의 삶속엔 주님을 위한 삶은 온데간데없고, 모두 하나같이 주님보다 자신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중 시내산 밑에서 아론이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해 낸 하나님이다 하고 금송아지 앞에서 먹고 마시고 춤추고 즐기는 자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고전6:19-20). 우리 몸은 주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사셨으므로 우리 몸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진짜 믿는 성도는 사나 죽으나 주님을 위해 살아가라는 것이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빌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지금 한국교회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기 배를 신으로 섬기는 이런 우상숭배자들이 교회들 마다 가득차서 불신자들조차 교회가 이렇게 타락하였는가 할 정도이다. 주님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나를 살리고자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멸시천대 받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선물로 주셨는데 이런 망극한 은혜를 잊고서 우리가 그 분을 위해 살지 않고, 영원히 멸망 받을 불신자들처럼 산다면 우리들은 배은망덕한 자요 그 분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만들고 망령되게 하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죄인이 아닐 수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나를 구원해 주신 그 분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늘 울어도 그분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므로 이제 사나 죽으나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그런 성도들에겐 조심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2) 지난해 불순종했던 것들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으로 광야 40년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받으면서 전무후무한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예를 든다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을 뿐만 아니라 추격하는 애굽의 군대들을 수장 시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목이 말랐을 때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고 또 르비딤반석에서는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기적들을 체험하였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주셨고 옷이 헤지거나 신발이 닳지 않도록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에서 나왔다하면 원망과 불평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광야 마지막 정착지 시팀에서도 모압딸들과 행음하는 일까지 벌어져서 비느하스가 음행한 자들을 창으로 등을 꿰뚫어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와 같이 광야40년 생활은 감사할 줄 모르고 불순종만을 일삼던 세월이었습니다. 이 말은 그들 마음에서 원망과 불순종을 제거하는 데만 40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기사와 이적을 통해 그 백성들은 인도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몰랐고 불만만 내뱉었다는 것이다.
(민14:2-3)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으리랴! 우리가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으리랴! 3 어찌하여 주께서 우리를 이 땅으로 데려와 칼에 쓰러지게 하는가? 우리 아내와 자녀들이 탈취물이 되리니 우리가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하고
우리는 이런 불순종을 보면서 우리들은 무슨 일이 있든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와 같은 불평과 불순종으로 얼룩진 40년의 세월을 싯딤 땅에 묻어 버리고 정결한 심령이 되어서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과거의 옛 구습을 가지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역시 똑같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배신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요단강 물속에 있던 돌들을 취하여 길갈 땅에 기념비를 세우게 하였다.
(수4:20) 여호수아가 그들이 요르단에서 취한 그 열두개의 돌을 길갈에 세우고
마찬가지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2025년의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모든 불신앙적인 요소를 깨끗이 청산하고 다시는 지난날의 죄악과 잘못된 것들을 되풀이하여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요단강 돌을 가져다 마음속에 기념비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시간 지난해의 잘못된 습관들을 2024년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 묻어 버리고 다시는 지난날의 잘못된 죄악들을 되풀이 하여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를 하고 올해엔 하나님께 순종하고 감사하는 생활로 시작하는 한해가 되기를 믿습니다.
2. 항상 도우시는 하나님
(1) 내일도 도우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난해에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우리 모두들 엄청난 고생을 하였음에도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건강과 각종 사고로부터 보호해 주신 것에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말은 세상은 험악하게 변할지라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오늘도 도우실 것이고 내일도 도우실 것이고 올 한해에도 도우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도 도우셨고 광야 40년 동안도 날마다 만나와 물을 주셨고, 더울 때는 구름기둥으로 추울 때는 불기둥으로 도우셨던 하나님은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하신 말씀인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미스바에서 도우신 에벤에셀 하나님은 그 후 에그론, 가드까지 땅을 빼앗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미스바까지는 사막지대인데 에그론, 가드는 곡창지대로 이스라엘 땅 중에 가장 기름진 땅에 속하는 땅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도 도우시고 오늘도 도우시더니 내일은 더 좋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상 두 사람을 마음속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가시나무 불꽃속에서 모세를 만나주신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고래뱃속에서 요나를 구원해 주신 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실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에 불붙은 가시나무가 타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불이 이스라엘에 떨어져도 이스라엘을 태워버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 요나가 고래뱃속에 3일간 있었으나 고래는 요나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결국 토해내듯이 누가 이스라엘을 삼켜도 토해내고 말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굳건한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모세와 함께 하셨고 요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올 한해에도 우리들을 보호해주실 것이며 우리를 삼키려는 자들로부터 막아주실 것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돕고 내일도 도울 것이고 영원토록 도우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여기까지 우리들을 도우실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에 우리는 하루를 마감하는 목동들과 같은 감사의 찬양을 통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돕고 계시는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2) 매일 누구에게나 86400원을 공짜로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매일 하루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 24시간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다. 하루는 24시간을 초로 환산하면 1시간은 3600초이므로 86400초인데 돈으로 환산하면 86400원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돈이 매일 자기 통장계좌로 입금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기쁠까? 그러나 그 돈은 저축할 수 없으며 그날 밤 자정이 지나면 남은 돈은 자동적으로 소멸된다고 생각하자.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누구든지 그날 선물로 받은 그 하루를 함부로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고 매우 소중하게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말이 나와서 그렇지 시간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present)이므로 현재(present)를 선물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의 소중함은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를 것이다. 재수하는 학생에게 물어본다면 일년의 소중함을 알 것이다. 미숙아를 낳았던 산모에게 물어보면 한달의 소중함을 알 것이다. 선데이 주간지 편집자에게 물어보면 한주간의 소중함을 말하여 알려줄 것이다. 일용근로자에게 물어보면 하루의 소중함을 알 것이다. 이별을 하는 연인들에게 물어보면 한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방금 기차를 놓친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면 1분의 소중함을 알 수 있고스피드스케이트에서 은메달 딴 선수에게 물어보면 1초의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이처럼 사람마다 시간의 소중함이 다 다를 것이다. 그 귀한 시간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처럼 시간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지난 한해도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금년 한해에도 해와 달이 우리들을 상치 못하게 할 것이고 우리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가 변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이 전제조건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이는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잠4:23). 마음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거짓없이 주님께 드리는 마음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를 가리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