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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가 뱀으로 변함(8-10)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과 사명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어려움과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큰 일을 준비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귀 기울이며 그분의 뜻을 따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8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8-10)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다시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믿음과 순종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팡이를 던지라고 명하십니다. 순종하면 지팡이는 뱀으로 변할 것입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고 실제로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습니다(10). 여기서 모세는 아론이 든 자신의 지팡이를 ‘너의 지팡이’로 칭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이며, 모세가 들 때는 모세의 지팡이, 아론이 들 때는 아론의 지팡이로 기능합니다. 여기서 ‘뱀’의 히브리어가 ‘나하쉬’가 아닌 ‘탄닌’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애굽 술객들의 술수로 변한 뱀도 ‘탄닌’입니다(12). ‘탄닌’이 어떤 동물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는 ‘나하쉬’가 아닌 ‘탄닌’이 사용된 이유를 독자들에게 뱀의 이미지를 더욱 섬뜩하게 만드는 문학적 효과를 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주석가들은 에스겔 29:3에서 바로의 별명이 ‘바다 가운데의 탄닌(큰 악어)’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 단어를 해석합니다. 바로가 ‘탄닌’으로 상징화되고 있기에 의도적으로 이 단어가 사용된다는 뜻입니다. 이 지팡이가 ‘탄닌’으로 변한 것은 하나님께서 ‘탄닌’마저 자신의 손으로 부리는 존재이심을 보여주며, 따라서 바로도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있다는 사실을 바로와 신하들 앞에서 시연하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애굽인들은 나일강의 악어를 악어 신 ‘세베크(Sebek, 혹은 소베크[Sobek])’로 숭배하였고, 이 악어 신은 바로의 힘과 권세를 상징했습니다. 이 첫 번째 기적은 재앙의 징벌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열 가지 재앙 목록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이 기적의 목적은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에게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승리하다(11-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과 악이 우리를 압박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분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가진 지팡이, 즉 우리의 믿음과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권능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11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3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11-13)
바로는 아무런 당황한 기색 없이 수하의 현인들과 마법사들을 부릅니다. 현인은 왕의 국정 파트너로서 자문단이었을 것이며, 마법사들 역시 아마 마술과 점술에 능하여 신통력을 부리는 제사장들로 왕에게 신의 계시나 점괘를 전해주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요술’은 어떤 속임수를 쓴 신비한 기술일 수 있습니다. 이 애굽 술객들의 실명이 신약에 등장하는데, ‘얀네와 얌브레’입니다(딤후 3:8).
아마 이들 이름은 전승을 통해 유대 문헌에 전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바로의 호출을 받은 애굽 마법사들은 아론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뱀에 최면을 걸어 뻣뻣해진 뱀을 들고 와 현장에서 최면을 푸는 기교를 부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중에 물을 핏빛으로 변하게 하고 개구리 재앙을 흉내 낸 것으로 볼 때, 그들의 마법을 속임수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속임수였든 실제적인 마법이었든지 간에 모세의 대리인 아론과 바로의 대리인 마법사들이 대결하는 형국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므로 사실 아론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표한 아론의 지팡이가 애굽을 대표한 술객들의 지팡이를 삼킨 이 사건은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애굽, 특히 고대 상(上) 애굽의 수도인 ‘룩소르(Luxor)’ 지역의 유적지에는 신전과 바로의 동물 무덤 벽화에 무수히 많은 뱀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뱀, 특히 코브라는 바로의 왕관에 장식될 정도로 중요한 신이었습니다. 코브라는 바로와 애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바로의 지팡이를 삼킨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바로의 권능을 완전히 집어삼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여전히 완고하여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는 고집을 부립니다(13).
첫 번째 재앙 : 나일강이 핏빛으로 변하다(14-25)
세상의 힘과 권세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십니다.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실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의 계획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용기를 가져야 하며,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1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15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16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17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19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20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21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22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23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24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25여호와께서 나일 강을 치신 후 이레가 지나니라(14-25)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나일강의 물이 핏빛으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대로 지팡이로 나일강을 치자 물이 핏빛으로 변하고, 애굽의 마법사들이 이를 흉내내지만 오히려 재앙을 악화시킵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 기적을 보고도 마음을 완고하게 유지하며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1) 피 재앙을 하달하시는 하나님(14-19)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완강합니다. 바로의 고집을 표현하는 동사들이 세 가지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 날 아침 나일 강변에 가서 다시 바로를 만나라고 지시하십니다(15). 바로가 아침부터 무슨 목적으로 나일 강변으로 나갔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자주 아침에 강변 산책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앞서 요청했던 동일한 요구 사항을 전달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도록 내보내달라는 요구입니다(16). 이것을 허락하지 않은 대가로 이제 애굽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할 것입니다. 그때에 바로는 그분이 여호와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물이 변한다는 것은 강물이 핏빛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강물이 피로 변한 결과 강이 썩어 악취를 풍깁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인에 의해 신으로 숭배된 나일강을 악취가 나게 만드신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애굽 온 땅에서 악취가 나게 하십니다(8:10). 나일강뿐 아니라 애굽의 모든 물이 핏빛이 될 것입니다(19). 이것은 강(나일강), 운하(나일강 지류들), 못, 호수를 포함합니다. 19b절의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는” 문자적으로 ‘나무들과 돌들 안에’입니다. 나무와 돌은 우상의 재료이므로, 이것은 애굽의 모든 우상들도 이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카수토(Cassuto)는 애굽에서 매일 아침 우상들을 물을 부어 씻었는데, 그물들마저 핏물로 변해 우상들에게 부어졌다고 해석합니다. 카토는 이 경우 전치사 ‘베’는 ‘~안에’ 보다는 ‘위에’(on)로 해석된다고 말합니다. 애굽의 모든 물, 특히 나일강이 핏빛으로 변하는 재앙은 사실 애굽의 생명수를 없애는 무서운 재앙입니다. 나일강은 애굽의 축복이었다. 그 물은 식수였을 뿐 아니라(21), 농사와 과수를 위한 농업용수였으며, 나아가 물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수산물의 공급원이었습니다(21). 따라서 애굽의 젖줄인 나일강이 썩는 것은 커다란 재앙이 되었습니다.
(2) 나일강이 핏빛으로 변하다(20-25)
모세와 아론이 명령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물을 치자, 물이 갑자기 핏빛으로 변했습니다. 나일강의 고기들이 떼죽음하여 물에서 악취가 풍기자 애굽인들은 더 이상 그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강물 외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애굽 온 땅의 물이 피로 변했습니다(21).
바로는 이번에도 자신의 마법사들을 동원해 모세의 기적을 따라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강물을 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이 실제 마법사들을 통제하는 악령에 의한 기적인지, 아니면 그들이 몰래 빨간 염료를 강에 푸는 방식으로 또 다른 고도의 속임수를 썼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 핏빛으로 변하지 않은 강물이 남아 있을까요? 카수토는 아론이 지팡이를 뻗지 않은 방향의 물이 멀쩡했다고 이해하며, 애굽의 술객들이 그 남은 물을 핏빛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술사들은 어리석게도 재앙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더욱 어리석게도 바로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참고로 핏빛 강물은 적조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일강 상류에서 홍수가 발생할 때, 상류의 황토가 쓸려 내려와 강물이 붉게 보이게 되고, 이때 하천의 부영양화로 인해 적조 현상이 발생하여 수많은 물고기가 떼죽음하며 악취가 발생합니다.
고대 근동의 여러 문헌에서도 이러한 적조 현상으로 보이는 강물의 변화에 대한 언급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한 후 7일 동안 이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숫자 ‘7’은 익히 아는 대로 완전수이며, 따라서 7일은 이 재앙의 완전한 성취를 뜻할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시고 인간의 완고함을 경고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의 마음이 완고해져 그 경고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고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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