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져버린 시절. 어떻게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은 그리움이 되고 '향수(노스탤지어)'가 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만큼 그리워할 수 있는 추억이 많아진다는 뜻인 것 같다. 그때는 불편하고 힘들었던 상황도 돌아보면 그리움이고 추억으로 남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이야기한다. 그때가 좋았다고.
스마트폰 하나로 집안에 있는 가전기기를 제어하고, 인터넷만 있으면 방구석에서 전 세계 곳곳을 생생히 볼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인데, 왜 우리는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할까. 그건 바로 그 시절에 남겨진 추억 때문이다. 어떠한 편리함도 대신할 수 없는 추억 말이다. 지금보다 더 젊었고 순수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추억은 아름답고 애틋하다.
20년 전 쯤이었다. 한여름 시내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당시에는 버스에 에어컨은 없는데다 늘 사람이 많았다. 버스 스피커로 나오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다. 경제 프로그램인 듯 했다. 앞으로 정보화 시대를 전망해달라는 아나운서 말에 전문가가 이렇게 답변했다. "이제 곧 휴대폰으로 은행업무를 보는 시대가 올겁니다" 나 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하던 아나운서도 놀랬는지 "그게 가능해요?"라고 되물었다. 나도 전문가의 말에 적잖이 의심이 든건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핸드폰으로 돈을 입금하고 출금하지? 통장이 핸드폰에 들어가나?"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올 생각이지만, 기술의 진보라곤 '짤순이(빨래를 손으로 빨면 짜주기만 하던 기계)'에서 '세탁기'정도의 변화만 생각하던 시대였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우주여행도 가능해진 시대에 아마 언젠가는 타임머신 또한 개발될 것이라 생각되지만, 타임머신이 없더라도 잠시나마 추억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서울 중심가에 있다. 종로 경희궁을 나오면 오른쪽에 있는 돈의문 박물관마을이 그것이다.
그시절에는 필름 한 롤을 다 채워야 사진 인화가 가능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포스터. 쥐를 잡는다고?
한양도성 서쪽 성 첫 동네, 1960년대판 사교육 골목
원래 돈의문 박물관마을이 있던 이 곳은 공원으로 조성될 뻔했었다. 2003년 돈의문 일대가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서울시는 한양도성 서쪽 성문안 첫 동네라는 역사적 가치를 위해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6080세대의 추억이 남아있는 아날로그 감성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서쪽 큰 문, 서대문이라는 이름으로 1396년 처음 세워졌지만, 1413년 경복궁의 지맥을 해친다는 이유로 잠시 폐쇄됐었다. 1422년 현재 정동 사거리에 새롭게 조성되었고, 이때부터 돈의문에 '새로운 문'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돈의문 안쪽 동네를 '새문안골, 새문안동네'로 불렀다. 1915년 일제는 도시 계획을 위해 돈의문을 철거하였고 돈의문은 서울 사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이야기로만 남아있는 문이 됐다.
특이하게도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새문안 동네에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과외방이 성행했다. 1960년대판 목동이나 대치동 과외 골목이라고 볼 수 있었다. 소수의 학생들을 가르치던 일명 쪽집게 과외방인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열만큼은 그대로였다. 주변에 서울고, 경기고 등 명문학교가 있었고 광화문과 종로2가 일대에 유명입시학원이 많아 사교육의 적정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다수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옮겨가고, 과외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서서히 사그러들었고 1990년대 초부터는 식당골목으로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
누구나 가슴에 추억 하나씩은 품고 있다
박물관 마을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새문안극장이 보인다. 영화 포스터가 없던 시절, 일일이 붓으로 영화 간판을 그렸던 때였다. 예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영화 간판 화가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간판 한개를 그리기 위해 며칠이 걸린다고 했다. 사진찍고 바로 인화까지 할 수 있는 시대인데, 그 시절에는 참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1층은 70년대풍 영화촬영장이 재현되어 있고 2층은 옛날 극장 매표소가 설치되어있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미리 카드와 통신사 할인까지 받고 모바일티켓을 구입하지만, 그때는 무조건 사람이 직접 줄을 서서 표를 구입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극장 주변에는 늘 암표 장수가 한명씩 있었다. 큰 맘먹고 극장에 왔는데 매진돼 돌아갈 바에는 웃돈을 주고라도 암표를 사려는 이들이 많았다. 매표소를 보니 조조할인이 900원이다. 나에게도 익숙치 않은 금액이지만 900원에 영화 한편을 보던 시대였구나. 300원짜리 웬디스 햄버거, 200원짜리 팝콘도 정겹기만 하다.
조조할인티켓이 900원이던 시절
'레트로' 흐름은 MZ세대에게는 새로운 유행이지만, 그 때를 살았던 이들에게 레트로는 추억과 젊음 그 자체다. 회색자개 장롱이 있는 방에 엄마는 재봉틀을 돌리고 아이들은 두꺼운 목화솜 이불을 덮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던 모습은 6080세대 누구나에게 남아있는 기억의 한 조각이다. 교과서는 언니부터 동생까지 대물림됐고, 형제가 많은 집은 나무 책상 사용 시간을 정해 돌아가면서 앉아있곤 했다. 불편했던 기억대신 그리움이 더 많이 남는걸 보니, 나도 이제 올드한 세대가 됐구나 미소가 나온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오면 도란 도란 이야기꽃이 풍성해질 수 있는 곳이다.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고 세대간 소통이 필요하다면 와보면 좋을 장소다.
70년대 흔한 안방 풍경
그때는 화려한 꽃무늬 가전제품이 참 인기였다
머리결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던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