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42】 7
10) 열 가지 다 설할 수 없는 이익
此菩薩의 所獲得과 所成就와 所趣入과 所現前과 所有境界와 所有觀察과 所有證入과 所有淸淨과 所有了知와 所有建立인 一切法門을 於不可說劫에 無能說盡이니라
“이 보살은 얻은 것과 성취한 것과 나아간 것과 앞에 나타난 것과 가진 경계와 가진 관찰과 가진 증득과 가진 청정과 분명히 아는 것과 있는바 건립과 온갖 법문을 말할 수 없는 겁에도 다 설할 수 없느니라.”
▶강설 ; 열 번째는 보살이 법계에 자재한 삼매에 머물면 열 가지 다 설할 수 없는 이익이 있음을 밝혔다. 즉 얻은 것과 성취한 것과 나아간 것과 앞에 나타난 것 등등이다.
11) 한량없는 모든 삼매를 다 아는 이익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住此三昧에 能了知無數無量無邊無等不可數不可稱不可思不可量不可說不可說不可說一切三昧하나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물면 수 없고, 한량없고, 그지없고, 같을 이 없고, 셀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모든 삼매를 분명히 아느니라.”
彼一一三昧의 所有境界가 無量廣大하니 於境界中에 若入과 若起와 若住의 所有相狀과 所有示現과 所有行處와 所有等流와 所有自性과 所有除滅과 所有出離인 如是一切를 靡不明見이니라
“저 낱낱 삼매에 있는바 경계가 한량없이 광대하거든 저러한 경계에 들어가고, 일어나고, 머무는 일과 거기 있는 형상과 나타내는 일과 행(行)할 곳과 평등하게 흐름과 제 성품과 없애는 것과 뛰어나는 것인 이와 같은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는 것이 없느니라.”
▶강설 ; 열한 번째는 보살이 법계에 자재한 삼매에 머물면 다시 한량없는 모든 삼매를 다 아는 이익 얻음을 밝혔다.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물면 수 없고, 한량없고, 그지없고, 같을 이 없고, 셀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모든 삼매를 분명히 아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낱낱 삼매는 경계가 한량없이 광대한 등을 다 밝게 본다.
<4> 비유를 들어 밝히다
佛子야 譬如無熱惱大龍王宮에 流出四河호대 無濁無雜하며 無有垢穢하야 光色淸淨이 猶如虛空이어든 其池四面에 各有一口하야 一一口中에 流出一河호대
“불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무열뇌(無熱惱) 연못의 큰 용왕의 궁전에서 네 강이 흘러나오는데, 흐리지도 않고 잡란하지도 않고, 더러움이 없고, 빛이 깨끗하기가 마치 허공과 같으며, 그 연못의 사면에는 각각 한 개의 어귀가 있고, 낱낱 어귀마다 강이 하나씩 흐르느니라.”
▶강설 ; 모든 삼매를 원만하게 구족한 보살이 세상에 출현하여 보살이 하고자하는 佛事를 마음껏 지을 때 그 광경이 어떠할까? 무엇으로 표현하면 만족한 표현이 될까? 어떤 비유를 들어야 그 광경이 환하게 드러날 수 있을까?
모든 삼매를 원만히 구족한 보살은 이제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할 준비가 완전하게 갖추어졌다는 뜻이다. 그 상태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으나 간략히 말한다면 마음에는 지혜와 자비가 원만하게 갖추어졌고, 그 지혜와 자비로써 중생들을 교화하는 데 필요한 네 가지 걸림이 없는 변재[四無礙辯]를 방편으로 하여 사방으로 그 지혜와 자비의 물을 마음껏 흘려보내어 온 세상 중생들을 흠뻑 적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이 보살이 세상을 향하여 불사를 짓는 일을 청정하고 시원하여 뜨거운 대지를 청량하게 적시는 네 개의 큰 강에 비유하여 보았다. 네 개의 큰 강의 근원은 무열뇌(無熱惱) 연못의 큰 용왕의 궁전에서 시작한다. 혹은 무열(無熱) 연못이라고도 한다. 뜨거운 열기가 없는 무열(無熱) 연못이란 보살의 지혜와 자비의 마음이다. 곧 보리심(菩提心)이며 불심(佛心)이다. 보살의 보리심과 불심에서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네 개의 강물은 혼탁하지도 않고, 잡란하지도 않고, 더러움이 없어 그 빛이 투명하기가 마치 가을 하늘과 같다.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네 개의 큰 강물은 보살이 중생들의 뜨거운 번뇌의 열기를 식힐 사무애변(四無礙辯)에 비유하였다. 사무애변이란 사무애지(四無礙智)ㆍ사무애해(四無礙解)라고도 한다. 마음의 방면으로는 지혜라 하고, 그 지혜를 드러낼 입의 방면으로는 변재라 한다.
첫째는 법무애(法無礙)로서 온갖 부처님의 교법에 통달한 것을 말한다. 둘째는 의무애(義無礙)로서 온갖 교법의 요의(要義)를 아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사무애(辭無礙)로서 여러 가지 말을 알아 통달치 못함이 없는 것이다. 넷째는 요설무애(樂說無礙)로서 온갖 교법을 알아 갖가지 중생의 종류들이 알아듣기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를 경전은 무열 연못과 네 개의 강물에 비유하면서 넉넉하게 설명하고 있다.
於象口中엔 出恒伽河하고 獅子口中엔 出私陀河하고 於牛口中엔 出信度河하고 於馬口中엔 出縛芻河하며
“코끼리 어귀[象口]에서는 항하강[恒伽河]이 흘러나오고, 사자 어귀[獅子口]에서는 사타하(私陀河)강이 흘러나오고, 소 어귀[牛口]에서는 신도(信度)강이 흘러나오고, 말 어귀[馬口]에서는 박추(縛芻)강이 흘러나오느니라.”
강설 ; 무열 연못에서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어귀[口]들은 각각 코끼리, 사자, 소, 말 등으로 표현하였다. 코끼리의 어귀에서는 항하강이 흘러나오고, 사자의 어귀에서는 사타강이 흘러나오고, 소의 어귀에서는 신도강이 흘러나오고, 말의 어귀에서는 박추강이 흘러나온다. 이 사대강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곧 네 가지 걸림이 없는 변재이다.
其四大河流出之時에 恒伽河口엔 流出銀沙하고 私陀河口엔 流出金剛沙하고 信度河口엔 流出金沙하고 縛芻河口엔 流出瑠璃沙하야
“네 큰 강들이 흐를 적에 항하강 어귀에서는 은모래가 흘러나오고, 사타하강 어귀에서는 금강(金剛)모래가 흘러나오고, 신도강 어귀에서는 금모래가 흘러나오고, 박추강 어귀에서는 유리모래가 흘러나오느니라.”
▶강설 ; 사대강에서 물이 흘러나올 적에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래들이 함께 흘러나오는데 모두 은모래, 금강모래, 금모래, 유리모래들이다. 네 가지 변재에서 설해지는 이름답고 미묘한 법문의 내용들이다.
恒伽河口는 作白銀色하고 私陀河口는 作金剛色하고 信度河口는 作黃金色하고 縛芻河口는 作瑠璃色하며 一一河口가 廣이 一由旬이요
“항하강 어귀는 흰 은빛이요, 사타하강 어귀는 금강 빛이요, 신도강 어귀는 황금빛이요, 박추강 어귀는 유리 빛이며, 낱낱 강의 어귀는 너비가 한 유순이니라.”
▶강설 ; 사대강의 어귀마다 각각 아름다운 빛을 띠었으니 희 은빛과 금강 빛과 황금빛과 유리 빛이다. 낱낱 어귀의 너비는 지름이 1유순인데 1유순은 14, 4K라고 한다. 네 개의 어귀 너비가 각각 14, 4K라면 그 근원인 무열 연못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아래의 경문에 둘레[周圍]가 50유순이라고 하였다. 또 종광(縱廣)이 50유순이라고도 하였다. 50곱하기 14,4는 720K다. 이것은 둘레나 지름이다. 전체 면적은 대강 계산하여 남북을 합친 우리나라 전체면적과 비슷하다. 또 각각의 어귀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양은 1초당 몇 톤이나 될까. 이와 같이 큰 네 개의 어귀에서 아름답고 청량한 물이 흘러넘쳐서 온 세상과 온 우주를 흠뻑 적신다. 즉 무수한 보살들이 네 가지 걸림이 없는 변재로서 이 세상 어리석은 중생들의 미혹을 남김없이 걷어내는 광경이다.
其四大河가 旣流出已에 各共圍遶大池七帀하야 隨其方面하야 四向分流호대 澒涌奔馳하야 入於大海라
“그 네 강의 강물이 흘러나와서는 제각기 큰 연못을 일곱 번씩 돌면서 흐르고 그 방면을 따라 사방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도도히 흘러넘치면서 큰 바다로 들어가느니라.”
▶강설 ; 또 그 네 개의 강물은 흘러가면서 강의 근원인 무열(無熱) 큰 연못을 일곱 번이나 돌아 네 방향으로 도도히 흐르면서 큰 바다로 들어간다. 이 광경은 마치 우주의 소용돌이와 너무나 똑 같다.
다시 정리하면 무열이라는 큰 연못이 있고 그 연못에서는 네 개의 어귀가 있어 네 방향으로 강물이 흐르는데 각각의 강물이 다시 무열 연못을 일곱 바퀴나 돌아 큰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근래에는 우주에 대한 연구가 많이 발전하여 이 지구가 속해있는 우주가 소용돌이를 돌면서 유지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많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