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집 리모델링·빈땅 활용 신축
- 커피숍 게스트하우스 공방 등
- 다양한 형태의 영업시설 조성
- 수익금 함께 적립하고 분배
- 정부 지원금 모두 끊긴 뒤에도
- 주민들이 공동자산 운영하며
- 재생사업 이어가는 게 관건
- 조직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게
- 짧은 뉴딜 사업기간 늘려주고
- 공모 방식 주민 의견 반영 필요
부산 중구 대청동 산복도로 자락에 자리 잡은 ‘금수현의 음악살롱’. 도시재생 사업인 산복도로 르네상스의 일환으로 2013년 조성된 주민 커뮤니티 문화시설이지만 2016년부터 지금까지 중구 문화시설관리사업소가 운영하고 있다. 설립 후 시 예산이 지원되던 2016년까지만 해도 민간 단체가 위탁을 받아 운영했으나 지원금이 끊긴 후 자립이 불가능해지자 구가 운영을 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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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서구 아미동에 위치한 주민 공동자산 기찻길커피숍(왼쪽)과 영도구 부평동 주민 공동자산 깡깡이안내센터 전경. 두 공동자산은 정부·지자체의 사업 지원이 끊긴 후에도 주민조직이 주축이 돼 자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호걸 기자 |
이곳에서 약 500m 떨어진 ‘밀다원시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비슷한 시기에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지역민을 위한 거점 시설인데, 처음부터 중구노인복지관이 위탁 운영했다. 문학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름과는 달리 이곳의 주된 역할은 노인일자리 지원이다. 중구 관계자는 “건물 신축 후 카페,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기능과 함께 노인일자리 지원센터도 겸하게 되면서 공모에 응한 곳이 현재 위탁 운영 기관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 도시재생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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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서구 아미동의 한 빈집. ‘돌집’으로 이름 붙은 이 곳은 지역 공동자산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박호걸 기자 |
도시재생 사업과 지역 주민의 공동자산(커먼즈·Commons)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물리적 환경 개선과 지역 주민의 공동체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도시재생 과정에서 주민들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할 거점시설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공동자산은 커피숍, 마을회관, 게스트하우스, 주민쉼터, 공방 등 다양한 형태로 조성된다. 빈집을 리모델링 하는 경우도 있고, 빈 땅을 활용하거나 빈집을 허물고 새로 짓기도 한다.부산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업인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과정에서 조성된 시설만 50곳이 넘는다. 또 다른 도시재생 사업인 행복마을 만들기, 도시재생뉴딜사업 역시 지역 거점시설 조성이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다.
통상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되면 예산과 활동가가 투입된다. 특히 도시재생 사업 이전에 이미 탄탄한 주민 조직이 있었던 곳은 지원을 받는 동안 향후 공동자산을 운영해 나갈 주체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수월하다. 실제로 사업이 완료된 후에도 각종 사업을 벌이는 영도 깡깡이예술마을의 경우 도시재생 사업 대상지로 지정되기 이전에 이미 대평동주민회가 조직됐었고, 이들이 보유하던 자산도 있었다. 현재 이곳에는 깡깡이 생활문화센터 등 다수의 거점시설이 조성됐는데, 주민회가 주축이 돼 운영한다. 문화센터 조성 부지 역시 주민회가 소유했던 자산이다.
문제는 정부·지자체의 지원이 모두 끊긴 뒤 발생한다. 주민들이 자생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활동가가 떠나고 지원금이 중단되면 애써 만든 공동자산을 가꾸고 보살필 사람도, 운영비도 없어 문을 닫는 상황에 봉착하는 것이다.
공동자산을 만들기 이전 과정도 중요하다. 지속성을 유지하려면 어디를 어떤 형태로 조성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에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경제협동조합 전중근 이사장은 “도시재생 과정에서 커먼즈 활용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벨기에 겐트시 사례를 보면 주민들이 주축이 돼 커먼즈를 시민자산화 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은 수평적인 입장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 부산의 도시재생 사업에서 커먼즈를 확보하고 운영하는 과정을 보면 관 주도가 대부분이다. 아래에서부터 의견이 수렴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미동에서 희망을 찾다
지난 5일 오후 서구 아미동 산복도로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기찻집커피숍’. 30~50대 주부 예닐곱 명이 주먹밥을 만들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2013년 조성된 주민 공동자산이다. 아미·초장동 지역 엄마 모임인 아미맘스를 주축으로 하는 아미골협동조합이 운영을 맡고 있다. 아미맘스 손정미 대표는 “여기는 원래 쥐 소굴에다 누가 목을 매달았다는 소문이 돌 정도의 흉가였다. 이 곳을 마을 주민이 함께 쓰는 공동자산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엄마들이 하나같이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 현재의 모습으로 리모델링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산중턱에 카페가 들어서고, 수년째 명맥을 이어온 원동력은 아미맘스의 활동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학원 차량도 운행되지 않는 산복도로 동네에서 방과후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맡아주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결성된 아미맘스는 젊은 엄마들이 패기와 열정을 담아 봉사활동에 나서는 등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카페 운영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산꼭대기에 있으니 하루 매출 1만 원 올리기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엄마들을 움직였다. 각자 자신의 장기를 찾아 제과제빵 자격증, 바리스타 자격증 등을 따면서 실력을 키웠다. 엄마 모임의 강점을 살려 학교를 집중 공략해 판로개척에 나서면서 서서히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현재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 활동 등으로 월 900만 원 가량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아미골협동조합 곳간에 쌓이고, 일부는 회원들의 인건비로 쓰인다.
도시재생 전문가인 대통전수방 홍순연 부코디네이터는 “아미동의 사례를 보면 기존 활성화한 주민 공동체가 존재한 것, 즉 ‘선행적 조직의 존재’가 성공비결로 분석된다. 선행적 조직이 원하는 것을 지원하면 주민 동기 부여와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최근 또 다른 공동자산이 생겼다. ‘우리집 1호’로 이름 붙여진 곳인데 동네 사람들이 아무나 와서 사용할 수 있는 집이다. 아미맘스 손 대표가 소유했던 2층짜리 집을 공동자산으로 내놓았고, 동네 주민들이 함께 쓰고 관리한다. 이와 더불어 ‘돌집’으로 이름 붙은 지역 내 빈집 한 곳도 커먼즈로 변신을 준비 중이다.
■공동자산, 제대로 운영하려면
도시재생 사업의 지속성 확보는 부산시는 물론이고 정부에게도 고민거리다. 무한정 사업비를 투입할 수 없는 만큼 지원이 중단되더라도 유무형의 공동자산을 유지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사업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이 같은 고민을 사업 과정에 녹였다. 이 사업은 주거복지와 삶의 질 향상, 공동체 회복 등을 위해 정부가 2022년까지 매년 100곳, 모두 500곳을 선정해 도시재생 예산을 지원한다. 대상지역 면적 등에 따라 5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며 선정되면 국비 50%, 시비와 구비 각각 25% 비율로 예산이 투입된다. 현재 부산은 2017년 12월 북구 구포동 등 4곳이 선정된 데 이어 2018년 7곳, 2019년 상반기 2곳이 대상지로 결정됐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이전 사업과 다른 점은 사전에 거점시설, 즉 공동자산의 운영 방안을 심사한다는 점이다. 부산시 김정일 도시재생뉴딜팀장은 “행정기관도 이전 도시재생 사업의 한계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뉴딜정책은 이를 보완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주민 참여와 역량을 강화해 정부 지원이 끊긴 후에도 지속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 도시재생 사업에서 공동자산을 만들고 운영할 때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그중에는 사업 기간이 짧은 점과 공모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공동자산의 조성과 운영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지만 공모에 선정되고 나서야 예산이 지원되는 현재 구조에서는 주민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적다는 것이다. 또, 주민 조직이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에만 해도 수년이 걸리는 만큼 사업 기간을 늘려 운영 조직의 역량을 충분히 끌어올린 후 공동자산을 조성할 수 있도록 사업 기간을 더 길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홍순연 부코디네이터는 “거점시설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는 많은 도시재생 사업자들의 공통된 고민”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관 소유가 아니라 주민이 직접 소유권을 갖는 주민자산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송이 박호걸 황윤정 기자
※ 공동기획: 국제신문·부산참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