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구서역 3번 출구는 집으로 가는 길이다. 세상 길을 돌아 찾아든 곳이 하필 어릴 적 살던 동네와 이웃인 구서동, B 대학교가 있는 장전동과 앞뒤로 나란하다. 세월 따라 사라졌다는 논밭 자리엔 우뚝우뚝한 아파트와 즐비한 자동차와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구슬치기 고무줄놀이 땅따먹기로 아이들 소리가 왁자하던 울퉁불퉁한 골목길 같은 건 이제 없다. 어쩌면 몸보다 마음이 더 바쁜 현대인에게 지나온 길은 그리움이라는 과거일 뿐, 길도 달라지고 사람들도 변한다.
나의 귀가는 보통 일정한 코스다. 지하철역 출구를 나와서 E마트를 들렀다가 아파트 동네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을 향해 수직 이동한다. 거대하게 쌓아 올린 콘크리트 건물의 층층 칸칸 보금자리 중에 한 칸이다. 코앞의 지하철역과 밤늦도록 문을 열어 두는 대형마트의 편리함은 이 동네에 나를 묶어 두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차갑도록 매끈한 시멘트 도로는 익숙한지, 오래다.
그렇더라도 구서역은 왠지 푸근하다. 미지의 길이 부르는 설렘이나 긴장감 대신 목적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느긋함이 있어서일 게다. 역에 도착하면 달큰한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편안한 느낌에 빠진다. 역과 마주 보고 위치하여 3번 출구에서 가게 안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옷집 ‘야시’는 나를 맞아 주는 첫 번째 반가움이다. 반짝거리는 액세서리 몇 점들과 가방과 옷가지들을 오밀조밀 갖춰 놓은 주인은 내 초등학교 친구다. 그녀를 닮은 아담한 가게에 동네 손님들이 제법 드나드는 것도 보기 좋지만, 옛 추억의 한 페이지와 더불어 그녀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 한쪽이 따스해진다.
옷가게 옆으로 줄지은 간판들이 갖은 표정으로 귀갓길을 확인시켜 주는 것도 반갑다. 신세계부동산, 태곤한의원, 조커 노래방, CU 편의점, SK 대리점을 돌아 명성약국 그리고 길 건너 E 마트 앞 광장에는 간혹 낮술에 젖은 남자가 출몰하여 비틀거리는 길 위에서 빌어먹을 세상이라며 삿대질을, 해 대기도 한다. 지난여름엔 온몸에 땟국을 둘러쓴 실성한 여자가 혼란한 정신만큼 헝클어 붙은 머리로 벤치에 앉아 있기도 했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삶은 만만찮은 것이리라.
연방 스치는 자동차 소리와 분주한 발길들 틈에 아슬아슬한 착지도 있다. 환한 유리 벽과 알록달록한 간판을 내세운 상점들과는 대조적으로, 아주머니들이 펼친 몇몇의 난전들이다. 얼어붙는 추위든 무더위든 아랑곳없이 역 출구에서부터 띄엄띄엄 길 가장자리를 따라 앉아 가게 보자기를 풀어 놓았다. 무릎 앞에 차려 놓은 상품이라는 것이 고작 천 원, 이천 원 하는 푸성귀들로 상추 부추 파 고구마 줄기, 호박잎 무더기가 지난한 삶처럼 오종종하다. 모두 손톱이 닳도록 손질한 것들이다. 세 개 만 원 받는 ‘황금 잉어 빵’에 시린 생을 굽고 서 있는 포장마차 아주머니도 작년 겨울부터 합류했다. 그들은 복잡하면서 즉흥적인 디지털 도시의 달리는 시간을 잠시 붙들어 놓고 오래된 향수 한가락씩을 피워낸다.
그 이질적인 풍경이 어색함보다 정겨움으로 다가온다면 아무래도 아날로그적 성향인가. 부산하게 떠다니는 세상 길을 거꾸로 돌려 어느 돌담길 바람 소리 잔잔한 시간 속에 놓아 보고픈 내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 과일 장수 아주머니는 왜 보이지 않는 걸까. 한 주일을 넘기고도 며칠째다. 역 출구에서 첫 번째 자리인 그녀의 가판대엔 철 따라 사과 배 감 키위 등이 차려졌었다. 사람 좋은 웃음까지 덤으로 팔았는데, 그녀는 어디로? 어떨 땐 아주머니의 넘치는 웃음이 부담스러워 슬며시 눈길을 피하기도, 했던 나는 괜히 찔끔한다. 바늘 끝 삶이라 해도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어우러져야 세상이련만…. 이제 보니 지킴이가 사라진 역 출구가 앞니 하나 빠져버린 입 모양처럼 휑하다.
더는 바쁠 것도 없는 순한 길에 들어서면 묻어둔 기억들이 자라기 시작한다. 지나온 길과 장소, 떠나간 사람들, 바람처럼 술렁거렸던 계절에의 추상이 자꾸 가지를 뻗는다. 갈수록 무성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걸 보면 시간은 그리움도 키우나 보다. 부모 형제 도라도란 모여 살던, 한때가 고여있고 어릴 적 친구와 현재의 나를 담고 있는 곳, 그러므로 장소에도 고유한 시간의 흐름과 ‘무드’가 존재한다는 말은 내게 퍽, 긍정적이다.
나의 귀갓길은 구서역에 당도하면서부터 익숙한 것들에 우선 안도한다. 가끔은 길 위에서 삶의 허무와 마주치는 일이야 어찌 면할 수 있으랴. 그렇다고 오래전에 걸어 보았던 푸른 바람 같은 꿈은 키우지 않는다. 길을 걷는 사람은 모름지기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지만, 경건하게 익혀 가는 걸음이면 길도 어느 순간 다정해진다는 것을, 안다. 시인 박목월은 ‘나의 일생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에서 가로등이 켜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가로등이 없을경우, 아득한 어둠은 영원한 어둠이 되어 버린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이다’라고 했다. 희망이 흔들릴지라도 가로등 하나 걸어 두는 길, 그래서 길에 대한 궁금증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 삶의 행보라 여긴다. 그렇게 깨달아 가는 것, 길이란 그런 것이겠다.
집으로 가는 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는 귀갓길에는 몸속에서도 스멀스멀 길을 내는 것들이 있다.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다가 애틋함인가 하면 지울 수 없는 그리움과 익숙한 것들의 편안함이 공존한다. 나를 노출 시켰던 하루의 긴장감과 피로감에서 풀려나 내 정신이 은둔할 곳, 그 나른한 안도감에 길도 평화가 되는 게 아닐까. 아릿하게 그리운 어제와 발등에 얹혀 부대끼는 오늘과 그 사이 어디쯤 지하철 구서역이 있다. 혹여 과일 장수 아주머니가 나타났을지 그것부터 궁금한 나는 벌써 내릴 채비를 서두르는 중이다.
“이번 역은 구서 ~ 구서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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