戊戌(2018)年의 풍성한 10月 가을에
~~~"자운회 가족" 나드리하다~②~~
언 제 ; 2018년 10월 27일 하루
갔는곳 ; 옛 백제의 수도 부여
<부소산성,백마강,낙화암,고란사,백제문화단지, 궁남지>
자운회의 오랜 역사를 살펴보면 1970년 8월 16일자 창립총회를
회원(동징,동활,순식,기식,보식,종식,동길) 7명이 구성하여 수몰된 고향을
상기하고, 고향을 잊지 않으려고 자양의 정씨 형제들이 자양이라는 紫자와 운주산의 정기를
이어받으려고 雲자를 가져와 "紫雲會"라는 이름으로 48년의 세월을~~~
50년이라는 성년을 맞이해 언제부터인가 가족의 우의를 돈독코자 부부나드리 행사를 거행함에
금년에는 옛 백제의 수도 부여를 살펴봄에 서울 부근에 거주하는 회원도 부여에서 합류하여 정말 뜻깊은
야외행사가 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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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물결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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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갱이 막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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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부부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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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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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백마강변의 부소산에 있는 바위.
==내 용==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의하면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는 강물에 임하는데, 모든 후궁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하고, 서로 이끌고 이곳에 와서 강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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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낙화암의 본래 명칭은 타사암이었는데,
뒷날에 와서 후궁이 궁녀로 와전되었고 이후 궁녀를 꽃에 비유하고 이를 미화하여 붙인 이름이 분명하다.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용담(勇談)이 많은 영주(英主)였는데, 여러 차례 신라의 여러 고을을 쳐서 천하에 그 성세(聲勢)를 높인 뒤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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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은 계속운행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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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성 남쪽의 망해정(望海亭)에서 궁녀들을 데리고 가무주연(歌舞酒宴)의 향락을 일삼았다.
좌평 성충(成忠)은 이를 근심하고 극력 간(諫)하였으나,
왕은 이 말이 귀에 거슬려 그를 옥에 가두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마음이 아파서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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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할 때 일찍이 백제의 침략을 받아온 신라는 무열왕 및 김유신(金庾信) 등의
영주와 명신(名臣)이 나타나서 나라의 힘을 크게 길러 복수를 하고자 당나라 군사와 힘을 합하여
백제를 치게 되었다. 이에 백제의 용장 계백(階伯)은 4천의 적은 군사로써 황산(黃山)벌에서 신라 군사와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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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나당연합군의 수많은 군사가 일시에 수륙 양면에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해오자
왕은 그제야 성충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음을 후회하였다. 왕은 하는 수 없이 해질 때를 기다려 왕자
효(孝)를 데리고 웅진성(熊津城)으로 달아나서 싸웠으나 성문은 부서져 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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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궁녀들이 슬피 울면서 흉악한 적군에게 죽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것이 옳다 하여
대왕포(大王浦) 물가 높은 바위 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사비수 깊은 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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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에서 백제의 군대가 전멸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신라군은 소부리성을 향하여
총공격을 감행하였다.때를 같이하여 당나라 군사는 백강 어귀에서 싸워 실패하자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30만 대군이 일시에 물밀듯이 쳐들어 오니 백제군도 최후의 혈전으로 맞섰으나 나당 연합군은 부근의
산세를 교묘히 이용하여 점점 도성으로 압축해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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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최후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의자왕은 친히 군대를 지휘하여
모두 나가 싸우기를 명하였다.백제의 군대들은 어명을 받들어 일당백의 용기로 최후의 일각까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니,그야말로 시산혈해를 이루는 피비린내 나는 결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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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군의 고함소리는 천지를 진동하고,시민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댈 뿐이었다.
백제군은 1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면서 최후까지 항전하였으나,중과부족 시세의 흐름을
막을 길은 없었다.밀리고 밀려 궁성문 밖까지 적군의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했다.왕은 이제 최후가
다가왔음을 알았다."아! 충신 성충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한이구나.7백년 사직이 나에게서 끝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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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 소리와 함께 눈물을 흘렀다. 궁성문 밖에는 당나라 군사들이 아우성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언제 몰려 들어올는지 알 수 없다.어느 덧 대궐 정문에는 당나라 기가 꽂히고 있었다.
왕은 황망히 태자 효를 데리고 궁궐 뒷산 부소산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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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이미 깊어 달이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도성 안은 아비귀환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며 이따금 비명을 지르고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궁녀들도 왕을 모시고 가겠다며 나섰다. 벌써 궁성 정문이 무너졌고 군창을 불을 질러
그 불빛을 이용하여 왕은 웅진성으로 도망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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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들도 뒤를 따랐으나,길은 험하고 일시에 많은 사람이 뒤엉켜 갈팡질팡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뒤에서는 적병이 마구 몰려오고 있었다.적병에게 붙잡히면 욕을 당해 몸을 더럽히게 된다.
붙잡히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하여 앞으로 달려갔으나 푸른 강물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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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에게 몸을 더럽히고 구차하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궁녀들은 이렇게 말하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강물로 뛰어 들었다.
아까운 꽃송이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다.여기서 낙화암이란 말이 생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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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들의 꽃같은 젊음을 마치 꽃잎처럼 푸른 백마강에 몸을 던진 것을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했습니다.즉 떨어질 낙에 꽃화 그리고 바위 암 입니다.
낙 화 암 (落 花 岩):백제 궁녀들은 정절은 생명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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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사는==
있는곳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1
고란사(皐蘭寺)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의 북쪽 백마강변에 있는 절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되었다. 마곡사에서 갈라져 나온 절이며,
법당 건물은 숭각사를 옮겨 중건 하였다. 고란사 바로 위쪽으로 낙화암이 있다. 절 뒤의 바위틈에는
고란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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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중식을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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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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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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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만나는 회원들의 모습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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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문화관으로~~
===백제문화단지에===
**개 요**
정부가 지정한 백제 문화권이 대통령령에 의해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1993년부터 2010년까지 백제의 옛 수도 지역인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일대에
조성된 백제 관련 테마파크. 롯데그룹의 민자투자를 받아 롯데부여리조트, 롯데아울렛이 안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역시 이 단지 내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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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0여만 평 규모로 1994년부터 충청남도와 문화관광부가 부소산과 낙화암 맞은편
백마강변에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지었으며 1998년에 첫 삽을 떴을 때는
국무총리까지 다녀갔을 정도라고. 그런데 이 당시 국무총리가 김종필이었고, 이 사업 자체가
김종필의 주도로 충청권의 민심을 사기 위해 이뤄진 거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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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세계대백제전 개막에 맞춰서 2010년 9월 17일에 공개되었다.
롯데 그룹이 투자한 민자투자만 3100억 원대... 이거 안 했으면 예상 적자만 연간 100억 원대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단순 '역사 재현'만 목표로 하는 문화재단지가 아니라 '테마파크' 형식으로 개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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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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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한참 이후 시대인 고려 시대 건축물도 남은 게 얼마 없어 겨우 고려 불화 같은
회화 등에서 건축물 양식을 살펴볼 수 있지만, 백제는 그림은 커녕 기록도 별로 없으니
고증이 쉬울 리 없다. 결국 일본에 남아있는 백제 관련 유적이나 한국의 백제 관련 유적 등을
참조하여 고증했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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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구름과 천정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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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로는
◈ 천정문(天政門)<사비궁의 정문>
◈ 천정전(天政殿) = 사비궁의 정전으로 국가의 큰 정사를 하늘에 고하여 결정했다는 천정대에서
이름을 따왔다. 왕의 즉위 의례, 신년 행사 등 각종 국가 의식이 거행되고,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사비궁 내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 문사전(文思殿) = 동궁(東宮)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문관에 관한 집무공간으로서 문사전의 문(文)은 동쪽을 의미한다
◈ 연영전(延英殿) = 신하들의 집무 공간이며 천하의 인재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무덕전(武德殿) = 서궁(西宮)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무관에 관한 집무공간으로서 무덕전의 무(武)는 서쪽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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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복장의 근무자와 한 컷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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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과 건물과 하늘의 구름이 조화를 이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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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할수록 기록은 남겨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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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의 이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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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국화는 자기의 모습을 만개하려고~~
가을 향기 가득한 연주곡 모음
첫댓글 50년 가까이 이어온 자운회의 발전과 올해 뜻있는 가을여행을 축하합니다.
우리문중의 핵심으로 활동하고있는 분들의 모임이기에 더욱 관심이 있고 앞으로 더욱 큰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나는 부여를 생각하면 해방되던해 배운
"따뜻한 봄날에 동무들과 백제의 옛서울 찾았드니 무심한구름은 오락가락 바람은 옛대로 부는구나" 동요가 생각 나내요!.
예~!
서울 근교의 회원을
고려하여 연락하여 합류할 수 있도록
오랫만에 만나 회포도 풀고 전부가 성숙되어가는
시기에 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었으나 각자의 개성이 달라
사진 찍기를 싫어하고 왠지 아쉬운 점이 있으나 만날수 있는
여건만으로도 만족했으며 얼굴 보고 웃고 반기고 하는 새로운
감회를 느꼈습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