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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상과 표현 원문보기 글쓴이: 김영원
만해 한용운 시 깊이 읽기(6)
류양선(柳陽善)
1. 「군말」과 「오도송(悟道頌)」
앞서 「만해 한용운 시 깊이 읽기 (4)」에서는 만해가 1917년 12월 설악산 오세암에서 쓴 「오도송(悟道頌)」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러고, 「만해 한용운 시 깊이 읽기 (5)」에서는 「오도송」을 쓴 다음 서울로 올라와 민족불교운동을 벌이면서 1918년 9월에 불교 잡지 『유심(惟心)』을 창간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창간호에 실린 창간사 「처음에 씀」이라는 글과 바로 뒤이어 수록된 「심(心)」이라는 시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불교 잡지 『유심』은 1918년 10월에 제2호를, 12월에 제3호를 내고는 그만 종간됩니다. 이렇게 된 것은 만해가 민족적 거사이자 인류사에 빛나는 3‧1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3‧1운동의 준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유심』을 계속 발행할 겨를이 없었겠지요. 만해는 3‧1운동으로 체포되어 투옥됩니다만, 3년 형기를 마치고 출옥하자 다시 맹렬한 활동을 벌입니다. 그러던 중 1925년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시집 『님의 침묵(沈黙)』을 쓰게 되는 것이지요.
위에서 말한 바, 득도의 체험을 기록한 만해의 「오도송」을 읽어 보고, 또 그 「오도송」과 관련하여 『유심(惟心)』 창간호에 실린 시 「심(心)」을 읽어 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님의 침묵』의 서문(序文)인 「군말」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쓴 글에서 이미 암시되었듯이, 「군말」과 「오도송」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군말」은 「오도송」의 변주(變奏)입니다. 달리 말하면, 「군말」은 「오도송」을 제창(提唱 : 설명, 해설)한 시입니다.
그러면 이제, 「오도송」과 「군말」을 배대(配對)시켜 놓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로 하겠습니다. 「오도송」 제1행은 「군말」 첫째 단락에, 「오도송」제2행은 「군말」 둘째 단락 앞부분에, 「오도송」 제3행은 「군말」 둘째 단락 뒷부분에, 「오도송」 제4행은 「군말」 셋째 단락에 각각 대응됩니다.
男兒到處是故鄕(남아도처시고향) 사나이 가는 곳이 바로 고향인 걸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루운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幾人長在客愁中(기인장재객수중) 나그네 시름 잠긴 사람 얼마나 될까
[연애(戀愛)가 자유(自由)라면 님도 자유(自由)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自由)에 알뜰한 구속(拘束)을 받지 않느냐?]
一聲喝破三千界(일성갈파삼천계) 한 소리 크게 질러 온 우주를 뒤흔드니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雪裏桃花片片紅(설리도화편편홍) 눈보라 속 복사꽃이 조각조각 붉어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긔루워서 이 시(詩)를 쓴다.]
전에 말했듯, 「오도송」 제1행에서 “男兒到處是故鄕(남아도처시고향) 사나이 가는 곳이 바로 고향”이라고 한 것은 탐(貪) 진(瞋) 치(癡) 삼독(三毒)으로 오염된 범부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그 굴레를 벗어난 깨달음의 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 배대(配對)시킨 「군말」의 첫째 단락도 역시 깨달음의 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 만해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루운 것은 다 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이 가는 곳은 어디나 고향이듯이, 깨달은 마음으로 긔루워하는 대상은 모두 님이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만해가 왜 “긔루운 것은 ‘다’ 님이다.” 하고 말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범부의 욕망으로 긔루워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자리에서 긔루워하는 것이니 ‘다’ 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아니, 실은 ‘나’와 ‘님’은 서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나’와 ‘님’은 서로 의지해 있으니, 내가 곧 님이요, 님이 바로 나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는 것은 중생에 의지하여 석가가 있다는 말입니다. 철학(哲學)이 칸트의 님이라는 것은 철학에 의지하여 칸트가 있다는 말입니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는 것은 봄비에 의지하여 장미화가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니의 님이 이태리(伊太利)라는 것은 이태리에 의지하여 마치니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역(逆)도 같습니다. 그러니 내가 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님도 나를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겠지요.
만해는 「오도송」 제2행에서 “幾人長在客愁中(기인장재객수중) 나그네 시름 잠긴 사람 얼마나 될까” 하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타향살이를, 즉 뭇 중생들이 고해(苦海)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심히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안타까움은 「군말」 둘째 단락 앞부분에서 “연애(戀愛)가 자유(自由)라면 님도 자유(自由)일 것이다.” 하는 말과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自由)에 알뜰한 구속(拘束)을 받지 않느냐?” 하는 물음으로 변주되어 표현됩니다.
‘이름 좋은 자유(自由)’란 “연애(戀愛)가 자유(自由)라면 님도 자유(自由)"라고 할 때의 자유입니다. 즉 범부들은 무명(無明)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헛된 욕망의 대상을 추구하는 것을 자유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이름 좋은 자유’에 오히려 ‘알뜰한 구속’을 받고 있으니, 이것이 「오도송」에서 말하는 ‘객수(客愁 : 나그네 시름)’ 즉 신산스런 타향살이 바로 그것이지요.
「오도송」 제3행에서 만해는 “一聲喝破三千界(일성갈파삼천계) 한 소리 크게 질러 온 우주를 뒤흔드니”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업식(業識)에 묶여 있던 만해 자신의 마음을 통쾌하게 부수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부수어 버리니, 그 마음의 그림자였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온통 무너져 내린 것이지요. 그리하여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의 자리에 나아간 것입니다. 즉 일체의 사량 분별과 마음의 작용이 끊어진 절대의 경계에 도달한 것이지요.
이 통쾌한 구절은 「군말」 둘째 단락 뒷부분에서,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하는 말로 변주됩니다. 만해는 ‘님’과 ‘그림자’라는 말을 써서, 이런 사정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지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님」이란 무명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또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무명에 가두어 둔 사람들의 욕망이 어떤 대상에 투영되어 나타난 마음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명명백백하게 알기만 하면, 무명에 훈습된 우리의 마음을 철저하게 부수어 버림으로써, 마음의 ‘그림자’인 가짜 ‘님’까지도 통쾌하게 부수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온 우주를 통쾌하게 무너뜨리는 것이지요.
만해는 「오도송」 제4행에서 “雪裏桃花片片紅(설리도화편편홍) 눈보라 속 복사꽃이 조각조각 붉어라” 하고 말합니다. 일체의 마음 작용이 끊어진 절대경계에서 홀연히 마음을 일으켜 다시금 삶의 자리인 현실세계로 돌아온 것이지요. 그 삶의 자리가 다름 아닌 고향입니다. 그리하여 눈과 꽃이, 시련과 행복이,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는 고향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만해의 삶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시절 인연을 따라 중생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세계입니다.
그래서 만해는 「군말」 셋째 단락에서,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긔루워서 이 시(詩)를 쓴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명 속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중생들에게,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신음하는 동포들에게, 눈보라 속에 복사꽃이 펄펄 날리는 아름다운 고향 소식을 전해 주려는 것입니다. 즉 시련 속에 행복이 깃들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해 주려는 것입니다. 아니, 만해는 ‘어린 양(羊)’인 우리 독자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의 자리가 바로 고향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詩)를 쓴다.”는 것입니다.
2. 변주(變奏)의 방식
이렇게 해서 이제, 「군말」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시 「군말」로 돌아오니, 역시 둘째 단락 뒷부분, 즉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하는 대목이 이 시의 핵심 부분임을 알게 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바람 불어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만해에게 ‘할(喝)!’로 다가왔듯이, 만해의 이 호통소리 역시 우리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할(喝)!’로 다가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만해가 「군말」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왜 특히 이 부분에서만 독자들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너’라 부르고, 또 ‘~이니라’ 하면서 자못 호령조로 꾸짖듯이 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있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있는 것입니다. 우주는 하나가 아닙니다. 70억의 인구가 살면 70억 개의 우주가 있는 것이고, 물고기가 보는 우주, 벌레가 보는 우주가 모두 다릅니다. 일체유심조(日遞唯心造)이니,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만법유식(萬法唯識)이니, 온 우주가 곧 마음입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허공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입니다. 유식무경(唯識無境)이니, 오직 마음만이 있을 뿐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깨달음을 얻은 만해에게는 「군말」의 셋째 단락, 즉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긔루워서 이 시(詩)를 쓴다.” 하는 대목이 이 시의 핵심 부분이겠지요. 그러나 범부중생인 우리 독자들로서는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하는 대목에서, ‘그림자’이건 ‘나’이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법공(法空)이요, 아공(我空)임을 깨닫고 법집(法執)과 아집(我執)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만해의 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걸려 넘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만해는 우리 독자들에게 얼마나 친절한 선사(禪師)인지요? 만해는 ‘어린 양(羊)’이 기루워서, 즉 우리 독자들이 기루워서 “이 시(詩)를 쓴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만해는 우리 독자들이 기루워서, 우리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오도송」을 변주시켜 근대시인 「군말」을 쓴 것입니다.
비단 「군말」만이 아닙니다. 「군말」만이 아니라 시집 『님의 침묵(沈黙)』 전체가 오도송의 변주입니다. 아니, 시 뿐만 아니라 만해의 지조 높은 삶과 걸림 없는 활동 자체가 「오도송」의 변주라 할 것입니다. 일제의 야만적인 폭압 아래 조금도 굴복하거나 타협함이 없이, 민족운동 내지 불교운동을 전개한 것은 모두가 「오도송」에 기록된 깨달음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그렇습니다. 만해가 근대시를 쓴 것, 그리고 독립운동을 한 것 등은 모두 역사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역사(근대)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 말은 「오도송」이 초월성을 지닌다면 「군말」은 역사성을 지닌다는 말입니다. 「오도송」이 「군말」로 변주된 것은 곧 만해에게 있었던 득도의 체험이 역사성(근대성)을 획득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군말」은 「오도송」의 근대적 버전입니다.
여기까지 오니, 즉 「군말」이 「오도송」의 변주라는 것을 알고 보니, 만해의 시집 『님의 침묵』 전체가 또한 그런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만해는 득도의 체험을 기록한 「오도송」을 쓰고 서울로 올라와 불교 잡지 『유심』을 창간합니다. 그리하여 그 잡지 창간호 서두에 「심」이라는 시를 써서, “심(心)만 심(心)이 아니라 비심(非心)도 심(心)이니 심(心) 외(外)에는 하물(何物)도 무(無)하니라.” 하고 말합니다. 앞에 말한 유식무경(唯識無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만해는 이처럼 「오도송(悟道頌)」과 「심(心)」을 쓴 지 7~8년 뒤에, 「군말」을 서문으로 하는 시집 『님의 침묵(沈黙)』을 쓴 것입니다. 하지만 「군말」이 「오도송」의 변주임을 감안하면, 만해는 「오도송」을 쓴 이후부터 시집 『님의 침묵』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오도송」과 함께 이미 『님의 침묵』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제야 비로소, 『님의 침묵』에 수록된 90편이나 되는 시들을 단 두 달 사이에 써낸 그 놀라운 사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시집 『님의 침묵』을 쓰는 데는, 두 달이 아니라 7~8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 나중에 상세히 살펴보겠지만, 만해의 시집 『님의 침묵』에서 서문인 「군말」과 후기인 「독자(讀者)에게」를 제외한 88편의 시들은 모두가 연작(連作)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88편의 한 편 한 편이 독립된 작품이면서, 그 88편 전체를 놓고 보면 서사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만, 시집 『님의 침묵』이 지닌 이런 성격 역시 이 시집의 서문인 「군말」에서 암시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시집의 그런 서사시적 구성 역시 피안(彼岸)으로 건너갔다가 차안(此岸)으로 다시 돌아오는 득도의 체험을 기록한 「오도송」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만해가 시집 『님의 침묵』을 쓰게 된 데에는 그 바로 앞에, 그러니까 1925년 6월에 설악산 오세암에서 『십현담주해』를 탈고한 경험이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아울러 1924년 10월에 장편소설 『죽음』을 탈고한 경험도 그에 못지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아니, 오도송을 쓴 이후 님의 침묵을 쓰기까지 8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만해가 써낸 여러 시편들과 산문들도, 또 3‧1운동으로 투옥되었던 경험과 그 이후의 여러 가지 활동 모두가 이 시집을 쓰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근원적 동기는 역시 「오도송」에 기록된 득도의 체험에 있었으리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대체, 만해는 무엇 때문에 「오도송」을 「군말」로 변주시킨 것일까요? 또 그 변주의 방식은 어떤 것이기에 서사시적 성격을 지닌 시집 『님의 침묵』을 쓸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한 마디로 시기(時機)에 맞춘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근대(일제 강점기)라는 시대(時代)를 따르고, 또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기(根機)에 따른 것이지요. 득도의 체험으로 역사를 넘어섰던 만해는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와 주체와 객체를 나누어 보는 근대적 사고방식을 수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늘 주체와 대상을 나누어 보는 우리 범부들의 사고방식을 살피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범부들의 마음(생각)은 언제나 ‘나’와 나 아닌 ‘누구’ 또는 ‘무엇’을 구별하는 데서 일어나는 법이니까요.
그렇습니다. 만해의 「오도송」은 ‘나그네 시름(客愁)’이 사라진 자리, 그러니까 주객(主客)이 합일되면서 그 둘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쓴 시입니다. ‘눈 속의 복사꽃(雪裏桃花)’이란 바로 그런 자리에서 바라본 이 세상에 대한 표현이지요. 그러나 만해는 「오도송」의 변주인 「군말」에 와서는 다시 주체와 대상(객체)을 나누어 보는 방식으로 시를 씁니다. 그 이원적 사고방식의 하나는 시인(주체)으로서 독자들(대상)을 의식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나’(주체)가 긔루워하는 ‘님’(대상)을 설정한 것입니다.
「군말」에는 ‘너희’, ‘너’, ‘나’, ‘어린 양(羊)’ 등의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이 단어들 중 ‘나’는 시를 쓰는 주체인 시인 자신이며, ‘너희’, ‘너,’ ‘어린 양(羊)’은 ‘나’가 쓴 시를 읽는 독자들입니다. 만해는 「군말」 말미에 ‘저자(讀者)’라고 명기함으로써, 「군말」이 저자가 독자에게 주는 서문(序文)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만해는 시집 『님의 침묵』의 맨 끝에, 이 시집의 후기(後記)라고 할 수 있는 「독자(讀者)에게」라는 시를 써 두고 있는 바, 이 ‘독자(讀者)에게’라는 제목 자체가 만해가 얼마나 독자들을 의식하고 있었는가를 웅변적으로 말해 주는 것입니다. 만해는 이 시의 첫머리에서, “독자(讀者)여, 나는 시인(詩人)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먼저 ‘독자(讀者)’를 부르면서 시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하나, 만해는 시집 『님의 침묵』에서 ‘나’가 긔루워하는 ‘님’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님’의 설정은 만해가 주체와 대상을 나누어 보는 방식으로 시를 썼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군말」 첫머리에서부터 만해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루운 것은 다 님이다.” 하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만해는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하고 말함으로써, ‘나’와 ‘님’이 서로 서로 주체가 되기도 하고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시에 나오는 ‘자유’와 ‘구속’, 또는 ‘님(진짜 님)’과 ‘그림자(가짜 님)’ 역시 서로가 상대를 의지해서 성립하는 개념들입니다.
만해가 주체와 대상을 나누어 보는 방식으로 ‘님’을 설정하여 시를 썼다는 사실은 시집의 제목인 ‘님의 침묵’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님의 침묵’이라니! 아, 만해는 ‘나’(주체)가 긔루워하는 ‘님’(대상)을 설정하되, ‘침묵하는 님’을 설정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근대’에 대한 시인의 인식, 더욱이 일제 치하의 가혹한 시대라는 만해의 현실 인식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지요. 아, 만해의 시대는 ‘님이 침묵하는 시대’, 진리가 사라져 버린 시대였던 것입니다.
‘님의 침묵(沈黙)’이라는 이 시집의 제목은 시 「님의 침묵(沈黙)」에서 따온 것입니다. 서문인 「군말」과 후기인 「독자에게」를 제외한 88편의 시편들 중 맨 처음에 놓인 시가 바로 「님의 침묵」입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만, 시 「님의 침묵(沈黙)」은 시집 『님의 침묵(沈黙)』의 서시(序詩)라고 할 수 있는 바, 이 시의 제목을 그대로 시집 전체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지요.
시 「님의 침묵」첫머리에서, 그러니까 시집 『님의 침묵(沈黙)』의 서시(序詩) 첫머리에서, 시인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하고, 님의 떠남을 반복해서 외칩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시인은 다시,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하면서 님의 떠남을, 님의 부재를, 님의 침묵을 거듭거듭 통절하게 외칩니다. 시인의 이 외침은 우리 독자들에게, 진리가 실종된 잔혹한 시대적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정녕 아프게 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도송」이 「군말」 내지는 시집 『님의 침묵』으로 변주된 방식을 두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하나는 만해가 독자를 의식하고 시를 썼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나’(주체)가 긔루워하는 ‘님’(상대)을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님’의 설정은 「군말」 내지는 『님의 침묵』이 「오도송」과는 달리 근대성을 획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즉 ‘님’의 설정은 「군말」 내지는 시집 『님의 침묵』이 긴장감 넘치는 내적 형식을 이루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이지요. 특히 그렇게 설정된 ‘님’이 ‘침묵하는 님’이라는 사실은 ‘나’와 ‘님’ 사이의 긴장관계가 얼마나 팽팽한 것인지, ‘나’가 ‘님’을 얼마나 사무치게 긔루워하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 줍니다. 바로 이 점이 만해의 시편들로 하여금 뛰어난 근대성을 지니도록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이지요.
3. 근대시의 확립
그렇다면 근대시란 무엇이며, 그것은 한국근대문학사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성립된 것일까요? 아니 그에 앞서, 근대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 성립하게 된 것일까요?
근대문학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근대문학의 성립 근거는 다름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한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내면이란 근대 사회와의 상호 교섭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볼 때, 개화기로부터 싹트기 시작한 한국의 근대문학은 1910년대의 모색기를 거쳐 1920년대 이후에야 성립된다고 하겠는데, 이런 사정을 시문학의 경우에 국한시켜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근대시를 향한 과도기적 시가(詩歌)로 개화기의 창가(唱歌)와 개화가사(開化歌辭)를 들 수 있습니다. 이어서 1910년대 일본 유학생들에 의한 창작, 그리고 1920년대 초기의 문예동인지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문학은 점차 근대시의 모습을 갖추어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소월(素月)의 시집 『진달래꽃』(1925)과 만해(萬海)의 시집 『님의 침묵(沈黙)』(1926)이 잇달아 간행된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국의 근대시가 확립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즉 소월과 만해에 와서야 비로소 온전한 의미에서 사회 현실과의 교섭에 바탕을 둔 개인의 내면이 형성된 것이지요.
1920년대 초기의 문예 동인지들과 여타 잡지들에서 보이는 시편들은 대체로 낭만주의적 경향을 지니고 있는 바, 이로써 일정 정도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낭만주의 시편들은 국권상실의 위기에 처해 공동체적 의식을 노래한 개화기 시가는 물론 해외시 도입에 따른 서투른 형식 실험에 그친 1910년대의 시들을 상당 부분 극복한 것입니다. 낭만주의란 훼손된 현실 세계에는 없는 어떤 대상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시적 경향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시문학은 1920년대 초기에 와서야 비로소 근대적 미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미의식은 자유시라는 새로운 형식 실험을 낳게 됩니다. 하지만 1920년대 초기의 낭만주의 시편들은 그런 형식 실험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합니다. ‘예술’을 절대화한 결과 그 자유시에 내재된 미의식을 관념화시키고 말았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 일제 시대라는 당시의 민족 현실에서 유리되어, 고립된 자아의 추상적 내면을 토로하는 데 그친 것입니다. 말하자면 절대화된 예술적 이상, 즉 환상 속으로 줄달음치고 만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환멸에 이르는 궤적을 보이고 말았는데, 이는 결국 근대적 개인의 내면에는 미달한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근대적 개인의 내면이란 어떤 풍경일까요? 아니, 근대 내지 현대란 어떤 시대일까요? 한 마디로 말해 상실의 시대입니다. 사람의 사람다움을 유지시켜 주는 무엇인가 가장 소중한 뼈대와도 같은 것을 잃어버린 시대, 그것이 근대 내지 현대입니다. 그리고 근현대 사회란 그런 정신적 뼈대의 상실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무참히 깨어지고 찢겨 버린 훼손된 세계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그저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조차도 까맣게 잊어버린 그런 시대입니다.
이렇게 훼손된 세계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가슴 가득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상처투성이의 마음, 이것이 근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 풍경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는 환자들로 가득한 거대한 병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픈 줄을 모르니,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알 턱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그 상처를 몹시 아파하며 세상을 몹시 슬퍼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시인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아픔과 슬픔은 그 자체로 이 세상에 대한 저항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자아 또는 개성이 담겨야 근대시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은 곧 훼손된 세계에 대한 개인의 내면적 대응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인의 아픔과 슬픔을 표현하는 시의 바탕에 이 세상을 향한 어떤 갈망이 깔려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시문학은 자기 인식을 위주로 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현실 인식을 위주로 하는 근대 소설에서처럼 타락한 사회를 가로질러 여행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근대시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근대 사회에 대한 정확한 현실 인식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현실 인식으로 인한 내면의 움직임이 바로 파괴된 현실에 대한 시인의 응전입니다. 시문학 특유의 고백적 토로의 배면에 깔린 시인의 저항입니다. 훼손된 세계에 대한 이러한 응전과 저항은 곧 상처받은 자아에 대한 인식으로 되돌아오고, 그럼으로써 자아와 세계의 균열로 인한 아픔과 슬픔, 고통과 불안, 갈등과 괴로움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감정들과 정서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시인의 내면에서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근대적 의미의 자아와 개성인 것이며, 근대시로 성립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한국문학사에서 근대시는 아무래도 소월(素月)과 만해(萬海)에 와서야 확립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두 시인은 자아와 세계의 분열,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과 불안을 안으로 감추거나 밖으로 드러내면서, 그것을 ‘님’을 향한 그리움 속에 통합시켜 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님’의 설정은 두 시인이 황폐한 근대 세계에서 뛰어난 근대시 쓸 수 있도록 한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물론 소월과 만해 이전에도 ‘님’을 등장시킨 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님’을 향한 간절하고도 무한한 그리움은 이 두 시인의 시편들에 와서야 독자들의 가슴에 메아리치게 된 것이지요.
더욱이 소월과 만해의 시대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시대입니다. 근대 세계 자체만 해도 훼손된 세계이거늘, 망국의 설움까지 겹친 일제 강점기의 시인의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소월은 「초혼(招魂)」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虛空) 중(中)에 헤여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主人)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하면서, 님의 이름을 “설움에 겹도록” 부릅니다. 그리고 만해는 「님의 침묵(沈黙)」에서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면서, “님의 침묵(沈黙)을 휩싸고” 도는 “사랑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처럼 소월과 만해는 한국 근대시를 확립시킨 뛰어난 시인입니다. 그러면서도 소월과 만해는 서로 다릅니다. 소월이 지극한 슬픔을 슬픔 그 자체로 노래했다면, 만해는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그것을 승화시켜 마침내 그 슬픔을 극복해 냅니다. 소월이 당시 독자들의 울음을 대신 울어 주는 시인이라면, 만해는 그렇게 울면서도 당시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인입니다. 위에 인용한 시편만 보더라도, 소월이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하고 외치는 반면, 만해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하고 말하지 않습니까?
소월과 만해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요? 소월의 시가 근대성을 지닌다면, 만해의 시는 그것과 함께 영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만해의 시는 역사성과 아울러 역사를 넘어서는 초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다는 것은 「군말」이 「오도송」의 근대적 버전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오도송」이 「군말」로 변주되었다고 해서 「군말」이 「오도송」의 선시적(禪詩的) 성격 즉 초월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변주(變奏)’라 할 수도 없겠지요. 만해는 가슴 가득한 상처를 눈물로 드러내면서도,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독자들의 상처까지 치유해 주는 시를 썼습니다. 만해는 근대 시인이면서 동시에 근대를 넘어선 시인입니다. 그런 까닭에, 만해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시적(近代詩的) 성격과 선시적(禪詩的) 성격을 아울러 살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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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소월의 시 「초혼(招魂)」에서
3)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沈黙)」에서